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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북지원방안’ 위한 남·북·미 비밀협상 전모

다국적 자본으로 北 산업시설 재건하는 ‘CDM 프로젝트 5단계’

‘새 대북지원방안’ 위한 남·북·미 비밀협상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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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북관계란 변화하기 마련이다. 2009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얼어붙었던 한반도에는 간만에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정상회담 관련 비밀접촉 사실이 공개된 후 3차 정상회담에 관한 기대감이 새해 정국의 관심사로 떠오른 형국. 2~3월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는 당국자들의 예측이 쏟아지면서 초점은 다시 ‘과연 북한은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 과정에서 최근 주목을 받은 것이 미국 국가안보사업이사회(BENS) 관계자들의 평양 방문이다. 2009년 12월17일 ‘조선중앙통신’은 “찰스 보이드 BENS 회장을 단장으로 한 기업가대표단이 3박4일간 머물며 경제부문 일꾼들과 투자환경 조성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안보문제 전문가들은 BENS가 옛 소련의 핵 폐기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미국의 위협감축협력프로젝트(CTR) ‘넌-루거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91년 샘 넌,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 주도로 만들어진 법안을 근거로 꾸려진 넌-루거 프로그램은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핵무기 해체를 돕기 위해 미국이 자금과 기술, 장비, 인력 등을 지원한 프로그램이다. 루거 의원은 2007년 2·13 합의 이후 정책보좌관을 여러 차례 방북시키는 등 북핵 폐기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방안을 협의한 바 있으며, 2003년 이 법안이 확대적용되는 데는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동참했다.

북한이 핵 폐기를 결심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우선 북한이 그간 진행해온 핵개발 프로그램의 규모와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후 사찰과 검증작업을 통해 그 내용이 입증되면 확인된 프로그램에 사용됐던 설비와 시설을 폐기해야 하는데, 그 폐기 작업 자체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소요비용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아직 그 규모가 확인되지 않은 우라늄농축시설은 논외로 치고 국제사회에 알려진 플루토늄 핵 시설만 따져봐도 그렇다.

플루토늄 핵 시설을 폐기하려면 흑연로 및 재처리시설 관련 장비를 파괴한 뒤 국외로 반출하고,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과 플루토늄을 포함하고 있는 폐연료봉도 미국이나 러시아 등 핵무기 보유국으로 반출해야 한다. 핵공학박사인 강정민 미국 존스홉킨스대 객원연구원은 “이들은 모두 고준위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으므로 제염 분야의 전문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최대 수천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넌-루거 프로그램의 골자는 이렇듯 핵무기 개발에 사용된 장비와 시설을 민간산업용으로 전환하는 비용을 미국 정부 등의 예산으로 지원하고 관련 종사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돕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정해진 바가 없지만, 북측이 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보이드 BENS 회장은 귀국 직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한 관리가 넌-루거 프로그램을 우리의 방북 목적과 연계해 거론하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평양의 눈앞에 떨어진 제2의 당근인 셈이다.

‘봉이 김선달식 장사’

이와 함께 앞서 설명한 대로 2008년 봄 남북 간 협상이 진행됐던 탄소배출권과 CDM 사업 역시 최근 서울 주재 외교관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협상내용에 정통한 한 인사는 다국적 기업이 북한의 낙후한 산업설비와 발전시설을 저탄소 설비로 교체해주는 비용을 대는 이 사업을 가리켜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식 장사’라고 표현한다.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앉아서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전혀 지급할 필요가 없는 장사이기 때문. CDM 사업의 구조적 특성이 이렇다 보니 정권교체기라는 민감한 시점에 남측에서 던진 제안에 대해 북측이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6자회담에서 논의됐던 경수로 건설이나 중유 제공에 비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데다, 그 자금의 출처가 각국 정부가 아닌 다국적 기업이라는 점도 미국 등 선진국 자본의 투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론적으로 CDM 사업에는 상한선이 없다.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할수록 투자금액도 고스란히 증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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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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