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0월1일 오전 충남 계룡시 계룡대 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61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을 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이 직접 군통제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문민통제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합참의장은 의장과 합참부의장, 각 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사령관으로 구성되는 합참회의 모임과 회의를 운용하지만, 절대로 군령권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더욱이 1949년 합참이 발족한 이래 미국의 합참의장은 이제까지 육군에서 8명, 해군과 공군에서 각각 4명, 해병대에서 1명이 돌아가며 임명돼왔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노태우 정부 말기, 국방부는 해·공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군참모총장을 강제로 면직시키면서까지 소위 818계획, 즉 군구조개선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육군이 주축이던 국방부는 육해공 3군의 병립제 군제를 통합군제 유형으로 변경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30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졌던 논쟁이 육군 출신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결론 내려진 셈이다. 각 군 본부가 갖고 있던 군령(軍令)과 군정(軍政)을 분리해, 군령은 작전지휘권이 통합된 합동참모본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각 군 본부는 작전지휘계선에서 제외된 채 군정 분야만을 담당하도록 그 기능을 축소하는 국군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 1990년 7월14일의 일이었다.
한 사람의 군인이 전군에 대한 군령권을 한손에 쥔 현재의 합참의장 중심체제를 과연 문민통제라 부를 수 있을까.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아니라 합참의장이 사실상의 통합군사령관 역할을 하는 구조는 ‘군인통제’나 다름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형적인 체제가 문민정부 직전에 완성된 것을 눈여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권을 내놓게 된 군부가 군령권이라도 움켜쥐기 위해 시도한 일종의 ‘총성 없는 쿠데타’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의 문민통제 실현에 가장 앞장서야 할 국회가 당시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추인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합참의장을 견제하는가
통합군 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명확하다. 이를 통해 각 군 작전의 합동운용성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보다 효율적인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사실상 통합군 체제가 대통령의 군 통수권이라는 확고부동한 원칙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앞서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통수권은 대통령이 첫 번째(first in command)이고 문민 국방장관이 두 번째(second in command)이며, 절대로 1인의 군인에게 전군에 대한 군령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 헌법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는 국방부 장관과 차관, 차관보급에는 원칙적으로 민간인 출신만이 임명될 수 있다. 군 출신의 경우 정규장교에서 전역한 지 10년이 지나야 비로소 ‘문민’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군 내부의 불필요한 인맥형성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쿠데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한 제도적 결과물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군사정권 종식이 임박한 시점에서 육군이 중심이 된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합참의장 1인에게 전군의 군령권을 집중시키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현재의 합참통제형 지휘구조는 각 군 본부와 각 군 참모총장의 전문성, 작전경험 등을 배제한 것이었다. 실제의 전쟁 상황에서 합참의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매우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