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쟁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이어야 한다. 합동참모회의에서 토의된 결론과 함께 전문성 있는 소수의견도 함께 보고받아 선택하는 주체가 바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합참의장은 대통령과 국방장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보좌하기 위한 주요 군사조언자(principal military adviser)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 군에서 배출한 합참의장이 다른 군에 관해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음을 감안해 각 군 총장을 제2의 군사조언자로 정해놓았다. 미국 대통령은 군의 최고사령관으로서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을 필요에 따라 쉽게 접촉하고, 군부의 다양한 의견을 조정·통제·선택한다. 다시 말해 대통령 자신이 문민통제의 핵심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합참의장은 군의 최고지휘관이다. 유사시 전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것도 합참의장이다. 이는 최악의 경우 합참의장의 전행과 월권을 견제하고 감시할 안전장치가 사실상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국방장관은 상징적이고 행정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합참의장이 군사작전 분야의 최고책임자가 되는 기묘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민 국방장관의 가치
흔히 군 출신 인사들은 민간인 국방장관이 군사전략과 작전운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미흡하므로 군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군복을 벗고 바로 임명된 국방장관도 한국의 현실에서는 문민으로 불린다. 군사전략과 작전운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국방장관이 있는데 굳이 문민통제 원칙을 위반하고 1인의 현역 4성 장군인 합참의장에게 전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부여해야 하는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더 나가보자. 순수 민간 출신 국방장관이라고 해서 군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현실성이 없다.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의 보좌를 받는 역대 미국 국방장관의 상당수가 순수 민간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오히려 민간 출신이 국방을 보다 융통성 있게 관리할 수도 있다.
흔히 미국에는 국방장관 자격이 있는 민간인이 충분하지만 한국에서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도 군의 문민통제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정치 혹은 안보 분야 인사들이 있다.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이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의 건의를 받아 전쟁을 억제·준비·수행하는 과정에서, 군 출신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고차원적인 정치·경제·안보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부적인 군사작전은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의 통제하에 각 군 참모총장이 실시하는 것이 작전 경험상 더 유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한국군의 지휘구조는 다음과 같은 3대 원칙에 따라 재편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첫째는 합참의장을 군 작전지휘계선에서 제외하고 대통령, 국방장관, 국가안보회의에 대한 주 군사조언자가 되도록 규정함으로써 문민통제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방부와 합참의 기능과 조직을 대폭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합참의장 1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작전 전문성을 갖고 있는 각 군 본부와 참모총장은 대통령과 장관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계룡대에 있는 것이 한국군의 현실이다. 이래서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에 대한 각 군의 보좌와 보조 기능이 가능할 리 없다. 지휘구조 혁신과 함께 각 군 참모총장의 지휘소를 계룡대뿐 아니라 국방부 또는 합동참모본부에도 둘 수 있어야 한다.
문민통제의 원칙이 확고해져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문민 국방장관을 통해 군을 지휘하게 되면, 합참의장과 각 군 총장은 도리어 대통령을 쉽게 접촉해 보좌할 수 있게 된다. 문민 국방장관을 추월하는 것이 아니라 보좌의 효율을 높인다는 측면이 강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발생한 군사상황에 대해 각 군의 전문성 있는 인력이 그때그때 곧바로 대통령과 장관에게 조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전사령부, 존속해야 하나
다음의 원칙은 대통령과 문민 국방장관의 군 작전지휘계선에서 직접 각 군 참모총장 혹은 각 군 사령관을 두고, 이들에게 각 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관할 작전구역이 전세계적인데다 군의 규모도 워낙 크기 때문에 지역별로 통합전투사령부를 설치했지만, 한국의 경우는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합참의장의 참모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면 문제가 없다. 이를 통해 합참통제형 통합군 체제에서 합참협의형 3군병렬제로 군 지휘구조를 바꾸는 한편 합참과 국방부기구를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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