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짙은 색 안경을 즐겨 쓰던 박정희 전 대통령. 색안경이 흔치 않던 시절 그는 이 차림으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대선 후보 TV 토론의 효시는 미국 케네디와 닉슨의 토론이다. 1960년대 이야기지만, 당시 케네디는 검은 옷, 스타일리시한 머리 모양, 캘리포니아에서 태닝한 섹시한 얼굴색 등으로 젊고 박력 있게 보였다. 나이까지 많았던 닉슨은 회색 양복에 특색 없는 음성 탓에 인기를 끌지 못했다. TV 토론 후 선거판이 뒤집힌 건 물론이다.
언어적인 의사소통은 내용을 언어로 전하고, 비(非)언어적 의사소통은 강세·어조·억양 등 준(準)언어적인 특성을 포함하며, 몸짓이나 표정으로 화자의 태도를 보이는 메타메시지(meta-message)를 전달한다. 비언어의 대표적인 것이 몸짓과 소리다. 몸짓과 소리는 교양을 나타내는 척도다. 연설을 듣는 사람 중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은 7%에 불과하지만,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38%이고, 나머지 55%는 몸짓 등 비언어를 기억한다고 한다.
정치인 넥타이 색에 담긴 뜻
몸짓에는 얼굴 표정, 손짓, 걸음걸이 등이 포함된다.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란 원을 그리며 말하는데, 이는 보통 OK 사인을 뜻하지만 동시에 정확히 사고하고 철저히 계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 유명 MC 오프라 윈프리의 깍지 낀 손은 강한 자신감을 나타낸다. 러시아 총리 푸틴은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듯 고정하고 다른 한 팔을 힘차게 저으며 걷는 특징이 있다. 연설하는 정치 지도자의 손짓을 보면 안정된 상태인지 흥분한 상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연단(podium)에 똑바로 서서 연설하는 사람이 있고 무대 공간을 십분 활용해 움직이면서 연설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방식이 설득력을 더할 수 있는지는 내용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색깔이 이미지를 좌우하기도 한다. 늘 빨간색 넥타이를 매는 정치인 홍준표는 자극적이고, 용기와 애국심을 고취시키지만, 변화가 없어 따분한 인상을 준다. 국회의원 중에서 옷이나 구두가 제일 멋진 이는 이낙연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연초록색 넥타이를 매는 정치인이 늘어났는데, 신선미와 평화로움, 그리고 활기 있는 이미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파란색 넥타이를 즐겨 맨다. 차갑고 정의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오렌지색 넥타이는 건강해 보인다. 보라색은 잘만 매면 풍족하고 당당하며 정열적인 느낌을 주며 승리를 상징한다. 여성은 화려한 스카프로 눈길을 끌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는데,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거의 매지 않는다. 게다가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색깔의 옷을 입고 상의 옷깃을 늘 세워 전투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대통령은 권위를 상징하는 짙은 색 정장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의식(儀式)에 알맞은 색깔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가끔 밝은 색 옷을 입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더블 브레스트 정장을 입고 항상 두 손을 윗옷 주머니에 넣은 채 연설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짙은 색안경을 줄곧 써서 국민이 거리감을 느꼈다. 그때만 해도 거리에 색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보기관 사람 같은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노인이기도 했지만 연설 때 장음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연민의 정에 젖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머리를 약간 흔들며 걷는 모습이 안정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밝은 색 넥타이를 매게 했다. 국민에게 편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치게 하려 한 듯싶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정장을 입을 때 줄무늬 있는 넥타이를 매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공식 예식에서는 모닝코트나 턱시도를 덧입고 보타이를 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이런 공식 예복을 없앴다. 엄격하고 장중한 의식에서는 의복부터 달라야 하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듯싶다. 김영삼 정부 이전까지는 장관이 임명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양복점 주인이었다. 턱시도부터 맞췄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런 면에서 아직도 다분히 영국식이다.
이미지는 대상을 명확하고 확고하게 만들며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때 추상보다는 구상이 좋다.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어렴풋한 평화의 땅’ 같은 표현을 기피해야 할 추상화 같은 시라고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표현인 ‘가랑잎 빛깔의 외투를 걸친 새벽’을 칭찬했다. 이미지가 명확하다. 소설가 박범신은 작품 ‘비즈니스’에서 ‘가을 햇빛을 받은 바다는 옥양목처럼 희었다’라고 했다. 최인호의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는 ‘커튼 사이로 밝은 햇볕이 칼로 벤 상처에서 나오는 선혈처럼 스며들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음악을 해방이라고 말한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란츠에게 음악은 도취를 위해 창안된 디오니소스적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의 이미지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단정적인 이미지(clean-cut image)를 본다. 장면 전 총리, 김영삼 전 대통령,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등은 건전하고 긍정적인 이미지(sound · positive image)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중적인 이미지(public image) 쪽에 속한다. 전직 대통령이나 대권주자 중에 부정적인 이미지(negative image)나 손상된 이미지(tarnished image)를 지닌 인물은 보기 드물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 대통령으로서 국부(國父)라는 인식 그대로 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겼다. 정확히 표현하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라고 해야 옳다. 대통령 취임 때 74세였으니. 그리고 늘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걱정스러워하는 말투라 웃어른 같은 인상이 짙었다. 한복 차림이 잘 어울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조선의 정체성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듯도 했다. 그는 철학박사이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세상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동시에 국제적인 인물로 손색이 없어 우리나라 다른 대통령과 품격 면에서 크게 차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