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단순한 허풍 아냐
1919년 ‘복수’ 택한 연합군, 재앙의 씨앗 뿌리다
‘카르타고식 평화’ 실패‧세계대전 재발…케인스 예견 적중
정반대 선택 ‘마샬 플랜’은 패전국도 껴안아
‘케인스식 평화’ 뒤흔드는 트럼프, 위기 놓인 세계질서
‘선장 없는 배’ 대한민국號 항로 고민할 때
![1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에 관한 포고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AP 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ae/ef/ae/67aeefae1e5dd2738276.jpg)
1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에 관한 포고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AP 뉴시스]
2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구호로 내걸고 대통령에, 그것도 두 차례나 당선된 사람이다. 미국 제조업을 보호하겠다는 말 정도를 하리라곤 얼마든지 예상 가능했다.
말로만 끝난다면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발언이 나온 상황이다. 트럼프가 저 발언을 한 것은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일괄적으로 25%의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와 결합해 있는 ‘실천적 발화’인 셈이다.
그날의 발언을 좀 더 살펴보자. 트럼프는 “미국 산업이 친구와 적 모두로부터 농락당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미국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산업 생산력을 지켜야 하며, 적과 친구를 가리지 않고 ‘면제도, 예외도 없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행정명령이 실제로 발효되는 것은 3월 12일이다. 일각에서 이를 ‘트럼프식 협상법’이라 부르며, 결국 철회되거나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 이유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관세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인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국제 정치 경제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군, 복수심에 사로잡혀 惡手 두다
잠시 1919년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옛날, 영국에서 어떤 전직 관료가 책을 출간했다. 그의 이름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그가 두 달 만에 써내려간 책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고, 케인스를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국제 경제 질서의 근간이 됐다.
케인스는 탁월한 경제학자로서 학계뿐 아니라 현실 정치‧행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도 컸다. 1915년 1월부터 재무부에서 일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학자뿐 아니라 관료로서의 역량도 탁월했던 케인스는 금방 두각을 드러냈다.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2월 끝났고, 전후 처리를 논하기 위한 파리평화회의에 케인스가 영국 재무부 대표로 참석하게 됐다.
회의가 열린 베르사유궁전에서 케인스는 크게 절망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 협상단이 독일을 향해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연합군은 독일을 향해 천문학적 액수를 배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 자국 영토 내에서 직접 전쟁을 겪은 프랑스는 가장 뜨거운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이긴 후 카르타고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 땅에 소금을 뿌려 불모지로 만들었듯, 독일을 완전히 박살내고 전쟁 수행 능력을 없애야 한다는 관점이 팽배했다. 이른바 ‘카르타고식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1870년 이후로 독일이 성취한 발전을 모두 해체시켜 놓는 것이 프랑스의 정책이었다. 영토 할양과 다른 다양한 조치를 통해 독일 인구를 줄이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일의 새로운 힘의 바탕이 된 경제 체계, 즉 철‧석탄‧운송을 바탕으로 건설된 거대한 경제 조직을 파괴하고자 했다.”
영국이나 미국 등 다른 승전국의 관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쟁을 벌인 나라가 잘못한 것이니 다시는 경제적으로 부활할 수 없도록 혹독한 배상금을 물려야 하고, 가능하다면 그들의 산업 발전마저도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되돌려야 한다고 봤다. 독일을 농업국가로, 아니 석기시대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증오의 목소리가 협상장에 넘실거렸고, 결국 330억 달러(1320억 마르크)에 달하는 엄청난 배상금이 부과됐다. 갓 전쟁을 치러 엉망이 되지 않았더라도 갚을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케인스가 세계대전 재발 예견한 세 가지 이유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동아DB]](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67/ae/ef/b6/67aeefb6103ed2738276.jpg)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동아DB]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바로 이 ‘상식’을 반박하기 위한 책이다. 케인스에 따르면, 전범국을 경제적으로 응징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더러, 사실 가능하지도 않다. 인도적 차원뿐 아니라 현실적 차원에서, 또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이유에서도 그렇다. 케인스는 책에서 패전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리는 보복적 정책이 패전국뿐 아니라 승전국의 질서마저 뒤흔들고, 결국 유럽을 다시 한 번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이 책에서 나의 목적은 카르타고식 평화가 실용적으로 옳지 않거나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카르타고식 평화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그런 평화의 경제적 요소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지배하게 될 강력한 경제적 추세들을 고의로 무시하고 있다. 시계는 절대 거꾸로 돌려질 수 없다. 중부 유럽을 1870년으로 되돌리면, 반드시 유럽의 구조에 긴장이 생기고 인간적 및 정신적 힘들이 느슨하게 풀리게 된다. 그러면 이 힘들은 국경과 민족을 넘어 프랑스와 프랑스의 안전을 보증하려는 국가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제도와 프랑스의 기존 사회 질서까지 휩쓸어버릴 것이다.”
케인스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구.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870년에 약 4000만 명이었던 독일 인구는 1914년 6800만 명까지 뛰어올랐다. 이렇듯 영토의 크기에 비해 많은 인구가 중부 유럽 강국들의 군사적 힘의 원천인데, 전쟁을 치렀어도 인구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기에 만약 경제 봉쇄로 그들의 생계를 박탈한다면 이들이 다시 한 번 유럽의 질서를 위협하게 되리라는 게 그의 논리다.
둘째, 경제적 상호 의존. 독일의 석탄 생산량은 1871년에 3000만t이던 것이 1890년에는 7000만t, 1900년엔 1억1000만t, 1913년에 1억9000만t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단지 독일의 국력이 늘어났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독일과 교역을 하는 중부 유럽, 더 나아가 유럽 전체의 생산력과 삶의 질이 향상됐음을 뜻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둔 유럽에서 독일은 러시아,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제1 고객이었다. 또 영국과 스웨덴, 덴마크의 제2 고객, 프랑스의 제3 고객이었다. 그리고 독일은 러시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제1 공급원이자 영국, 벨기에, 프랑스의 제2 공급원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려 정상적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유럽 전체 경제가 휘청하게 된다.
이는 독일과 패전국의 민심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하게 만들고, 이것이 바로 케인스가 염려한 세 번째 요소인 ‘사회적 심리 상태’다. 독일과 패전국 국민들은 저축을 통해 자산을 형성‧투자하는 등의 경제 활동을 할 의욕을 잃어버린 채 즉흥적 쾌락 추구에 몰두하게 된다. 사회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급진 세력의 폭동‧혁명‧체제 전복 등 위기에 노출된다. 결국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내부 결속을 꾀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패전국도 울타리 안으로… 대한민국 토대 된 ‘케인스식 평화’
2020년대인 지금 봐도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1919년의 케인스는 세계대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예언은 고스란히 적중했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독일은 빚을 지고 돈을 찍어냈으며, 그것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독일인들은 프랑스, 영국, 미국에 대한 원한에 사로잡혔다. 그런 증오의 감정에 히틀러라는 선동가가 불을 붙였다. 독일에서 다시 타오른 전쟁의 불길은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케인스로서는 자신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가 무려 10만 권이나 팔릴 만큼의 베스트셀러가 되긴 했지만 세상이 나쁜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얻게 된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케인스는 다시 한 번 전후 처리 협상에 나설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후 세계 체제를 케인스가 전부 설계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케인스와 ‘평화의 경제적 결과’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의 선택은 제1차 세계대전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킨 독일, 미국 본토인 하와이를 기습 폭격한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이른바 ‘마샬 플랜’이다.
물론 마샬 플랜이 시작된 것은 1947년이고, 케인스는 1946년 사망했다. 하지만 마샬 플랜이 케인스의 지적 영향 하에서 수립·실행된 정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패전국에 경제 원조를 하고, 미국 시장을 개방하며, 심지어 기술 이전을 통해 패전국의 산업을 발전시켜주기까지 했다. 케인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보며 통탄했던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풀 악셀’을 밟았다.
독일과 일본의 경제 기적, 그로부터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그 맥락을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전후 질서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나라다. 지금도 한반도는 천연자원이 척박한 땅이다. 우리가 지금의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와 국제 무역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식 평화’를 대체하는 ‘케인스식 평화’의 시대가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고, 우리는 그 평화 위에서 번영하고 있는 셈이다.
요동치는 세계 질서 조류, 대한민국號는 어디로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한 가운데, 11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ae/ef/d9/67aeefd91cd0d2738276.jpg)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한 가운데, 11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뉴스1]
앞서 말했듯 트럼프는 “미국 산업이 친구와 적 모두로부터 농락당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보복성으로 높은 관세를 ‘골고루’ 매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친구에게 우호적으로 시장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과거 적국의 경제 부흥을 위해 자본을 빌려주고, 시장을 열어주며, 기술‧문호를 개방하는 ‘케인스식 평화’와 대척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제조업 등 2차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인들이 경제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중국과의 군사 대결 구도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자국의 산업 생산력에 대한 위기감을 절감하는 것도 납득할만하다.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 관세‧정책을 들이밀면서, 지난 수십 년간 작동해온 국제 질서를 허물어뜨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명령과 발언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어온 ‘케인스식 평화’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미국 중서부 노동계급 유권자의 표심을 달래기 위한 ‘깜짝 발언’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의 전후 질서로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번영해온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케인스식 평화’를 지키는 것, 혹은 그것이 더 바람직한 국제 무역과 협력 체제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사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대한민국호(號)는 ‘선장 없는 배’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습적 계엄 선포로 스스로를 정치적‧법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수없이 탄핵안을 들이밀고 국정을 흔들어댄 것 역시 잘못됐다. 우리가 떠 있는 이 바다의 바람과 조류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지금이라도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 정국을 마무리 짓고, 전 국민의 이해‧협력 하에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고민해야 할 때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