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심판 국면서 여야 지지율 호각
보수 과표집으로 민심 왜곡? “이것 또한 여론”
여론조사 부정, 선거 패배로 이어져
지지율 선방 국민의힘, 중도층서는 안심 못 해
여론조사 불신 민주당, ‘진영의 덫’ 포획 우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열리는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67/b5/6a/0f/67b56a0f242ad2738276.jpg)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열리는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동아DB]
지상투표식 여론조사 풍토는 1936년 미국 대선을 거치며 변화했다. 미국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잡지구독자, 유선전화 가입자 등 1000만 명에게 엽서를 보낸 뒤 236만 명으로부터 답변을 받고 알프레드 랜던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 반면 한 신생 여론조사기관은 다양한 계층의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방문 면접조사를 실시한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후보가 이길 거라고 내다봤다. 결과는 루스벨트의 승리.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200만 명이 넘는 표본을 가지고도 수치는커녕 결과 예측마저 실패했다. 반면 신생 여론조사기관은 1500명밖에 되지 않는 표본으로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해 선거 여론조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 업체가 바로 갤럽이다.
갤럽의 성공 이후 통계학 안에서만 머물던 표본 추출 방식이 여론조사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진짜 민심’을 알려면 모든 국민에게 일일이 의견을 물어야 하나 이는 물리적으로나 비용 측면에서 불가능하다. 전체 국민과 지역‧성‧연령대가 비슷한 비율로 표본을 꾸려 여론을 측정한 것이 최선이다. ‘지구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처럼 표본이 국민 여론을 가늠하는 축소판이 되는 셈이다.
탄핵소추‧체포‧구속에도 尹 지지율 상승한 이유
한국에선 1987년 12월 16일 13대 대선을 기점으로 정치 여론조사가 본격화됐다. 이전엔 독재 정권 시절인 만큼 국민들이 의사를 밝히길 꺼렸고 과학적 여론조사에 대한 믿음도 부족했다. 13대 대선 땐 투표 종료 직후 공개되는 선거 예측 결과를 한국 언론들이 발표하지 않는 가운데 일본 NHK가 가장 먼저 대대적으로 발표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당시 한국 매체들은 개표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의 당선이 확정적”이라는 NHK의 보도에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여론조사는 시대 변화에 따라 한계를 드러냈다가 이내 보완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2000년대는 집 전화(유선전화)보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예측 오류가 확대됐고, 2010년대엔 사전투표가 변수로 등장했다. 그때마다 여론조사는 구조적 변화를 꾀하며 지난 대선처럼 0.74%포인트 차이의 승패도 예측할 만큼 발전했다. 어느 정도 저명한 여론조사기관이라면 최소한 날림 공사하듯 여론조사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논쟁적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호각을 다투는 여야 지지율이 그렇다. 한국갤럽이 2월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39%로 더불어민주당(38%)과 오차범위 안에서 팽팽히 맞섰다. 탄핵 직후인 12월 17~19일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4%에 그쳐 민주당과 격차가 24%포인트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탄핵 국면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와 비교해도 차이가 있다. 한국갤럽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1개월 뒤인 2017년 1월 17~19일 진행된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지지율은 37%대 12%로 벌어졌다. 당시 국민의당(11%)‧바른정당(9%)‧정의당(3%) 등 제3지대 정당들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나 범여권 대 범야권으로 분류해도 21%대 51%로 차이가 컸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선전하고 있는 이유로 ‘결집 현상’을 꼽는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이후 진보 지지층은 한시름 놓고 관망세로 돌아선 반면, 보수 지지층은 탄핵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결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보통 잘 받지 않거나 중간에 끊어버리는 자동응답 전화(ARS) 조사 응답률이 평소보다 높게 나온다. 적극적 응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조사원 전화 인터뷰도 사정은 비슷하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1000여 명의 표본 중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많다. ‘1000명의 마을’에 보수 350명, 진보 250명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들으니 보수 진영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이른바 ‘보수 과표집’이다.
‘계엄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은 보수 과표집으로 민심이 왜곡되고 있다며 여론조사에서 진보와 보수의 비율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은 “이것 또한 민심”이라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응답할 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여론조사는 지역‧성‧연령대 등 확실히 구분되는 요인으로 표본을 구성한다. 서울과 부산, 남성과 여성, 30대와 60대는 뚜렷한 기준이 된다. 반면 진보와 보수 같은 주관적 정치 성향은 그 경계가 모호할뿐더러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예컨대 서울에 사는 한 30대 남성은 비상계엄 직후 이에 대해 반대하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다 윤 대통령이 구속되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보수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 민심은 이벤트에 따라 출렁이는 법이다.
여론조사는 민심에 드리워진 그림자다. ‘민심 그 자체’라고 할 순 없지만 민심이라는 본체의 형상을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여론조사를 볼 때 스코어보다 흐름이 중요하다. 신뢰도나 오차범위 같은 개념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민심의 조류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여론조사가 불리하게 나타나면 관심을 꺼버리거나 부정한다는 것이다. 20대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지지율 부침을 겪자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대표적 예다.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 과제를 밀어붙이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윤 후보는 당내에서 이준석 대표와 싸웠고,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등 실언을 거듭한 탓에 지지율이 하락 추세였다.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불리할 때마다 민심에 눈 감는 태도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계속됐다. 자체 피드백을 하지 않으니 국민들 속 터지는 이야기만 계속했다. 임기 내내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훌쩍 뛰어넘었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지율이 낮게 나올 때마다 ‘바닥 민심’을 찾는 건 핑계다. 많은 정치인들이 “내 주변 민심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인간관계는 수많은 ‘필터링’의 결과물이다. 먼저 언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의 범위가 일차적으로 설정된다. 학교와 직업 등을 거치면서 몇 차례의 필터링이 추가로 이뤄진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사람의 인간관계는 그 자신을 닮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인맥이 넓더라도 전국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의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한 개인의 주변 인맥보다 전국 다양한 집단을 고루 포함하는 여론조사 표본이 객관적이다. 자기 주변을 바로미터(척도)로 삼는 소위 ‘주변미터’보다 여론조사를 참고하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된다.
여론조사는 모의고사, 부정하면 본선에서 필패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회(신전대협)이 1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여론조사업체 관리 법안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 21일 여론조사기관·단체의 등록 요건을 법률로 정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5/6a/3c/67b56a3c1a6cd2738276.jpg)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회(신전대협)이 1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여론조사업체 관리 법안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 21일 여론조사기관·단체의 등록 요건을 법률로 정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뉴스1]
여론조사는 불가근불가원의 존재다. 맹신하며 일희일비해선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경합을 벌이는 최근의 여론조사들은 두 정당에 각기 다른 과제를 던져준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와중에도 지지율이 유지되면서 국민의힘은 자칫 “지금의 방향이 맞다”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일부 의원들의 탄핵 반대 집회 참석, 조기 대선 언급 자제 등도 강성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측면이 있으며, 지지율에서 나오는 자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론조사에도 함정은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중도층 지지율이 만만치 않은 만큼 안심하긴 이르다. 한국갤럽의 앞선 2월 11~13일 조사에서 자신을 중도층으로 밝힌 이들은 민주당에 37%, 국민의힘에 32% 지지 의사를 보냈다. 대선은 이들에 의해 갈린다. 표면적인 수치에 취했다간 이를 간과할 수 있다.
생각만큼 지지율이 나오지 않고 있는 민주당은 여론조사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문항의 편향성을 이유로 해당 업체를 고발하겠다고 했다가 비슷한 결과의 여론조사들이 잇따르자 철회했다. 대신 당내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 개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여론조사기관·단체의 등록 요건을 정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대표는 중도 확장을 이유로 오랫동안 주장해 온 기본사회 구호의 철회도 시사했었다. 한쪽에선 중도 확장하겠다며 대표 브랜드까지 버리는 듯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여론조사기관들 잡겠다고 으름장 놓는 것은 모순적이다. 민주당이 ‘여론조사 개혁’의 고삐를 강하게 쥘수록 이들은 스스로 놓은 진영의 덫에 포획될 것이다. ‘검수완박’에 매몰돼 일을 그르쳤던 2022년 지방선거처럼 말이다.
여론조사를 부정하는 자세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문제 해결을 위한 진단 자체를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부정하는 정치인들은 보통 언제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샤이(shy) 지지층’에 기대를 건다. 이는 송나라 농부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본 뒤 사냥에 나설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토끼가 부딪혀 죽길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략이 아닌 요행에 기대는 자세다. 자신의 바람 내지 주변 여론에 기대어 그나마 가장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지표인 여론조사를 부정하는 태도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도 비판했던 반지성주의의 다른 유형이다.
한국 여론조사의 대부로 꼽히는 고 박무익 전 한국갤럽 회장은 생전에 “주먹구구식 의사 결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며 “사실 확인이라는 바탕 위에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게 무한 경쟁이라는 21세기에 살아남는 지혜”라고 주장했다. 여론조사라는 데이터에 근거한 이성적 판단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첫걸음이요 선거 승리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