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2030은 ‘尹 측은지심’ 아니라 ‘무자비한 진보 시대’ 걱정”

[심층취재 | 위기의 헌법재판소] 2030이 尹 탄핵·헌법재판소에 분노하는 이유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5-02-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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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탄핵 반대 2030 = 비주류 ‘강경파’

    • 이대남 현상의 본체 ‘온건파’와 달라

    • 정치권, 2030 비호하며 효능감 키워

    • ‘박근혜 탄핵 반대’ 노인과 정서 달라

    • 분노 종착지는 진보 추동하는 헌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 기일인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 집회가 열리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 기일인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 집회가 열리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계기로 2030세대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특히 2030 남성들을 놓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이 뜨겁다. 이들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있고, 서울서부지방법원 사태의 주축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는다. ‘여의도 2030 여성’ 대 ‘서부지법 2030 남성’이라는 구도는 정치권과 미디어에 의해 거듭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먼저 확실히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2030 남성들이 세대 내 주류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사람연구원·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6~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34세 남성의 탄핵 찬성 비율은 81%로 또래 여성(87%)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반민주당·반이재명 정서가 고조된 1월에도 탄핵 찬성 여론은 여전히 우세했다. 한국갤럽의 1월 통합 정기조사에서 20대 이하, 30대 남성의 탄핵 찬성 비율은 각각 53%(반대 35%), 62%(반대 31%)로 국민 전체 평균인 60%(반대 34%)와 비슷했다. 여론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2030 남성층에서 탄핵 반대 여론이 더 우세하다’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일부라고 할지라도 탄핵에 반대하는 2030 남성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은 대통령 관저와 헌법재판소 앞에서 적극적으로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으로만 봐도 태극기 부대는 분명 과거보다 젊어졌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나.

    탄핵 반대 청년들 과거 ‘애국 보수’ 표방 집단

    보수화했다고 평가받는 2030 남성들은 크게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뉜다. 하나는 극우·강성 보수 집단이며, 다른 하나는 온건 보수에서 온건 진보를 아우르는 집단이다. 편의상 전자를 강경파, 후자를 온건파로 부르겠다. 강경파는 보수정당의 전통적 지지층과 궤를 같이한다. 흔히 말하는 ‘안보보수’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애국, 반공 등의 가치를 추종한다. 온건파는 새누리당 시절 유승민을 지지했던 ‘개혁보수’ 같은 부류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당시 페미니즘 정책 기조에 반발하며 이탈한 중도·온건 진보 성향의 남성들이 가세했다. 이들은 젠더 이슈에 한해서는 완강한 편이지만, 이념적 태도는 강경하지 않다.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과 같은 안보 이슈에 거부감을 가진다. 그보다는 공정·합리 등 생활 속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

    많은 언론이 탄핵에 반대하는 2030 남성들의 존재를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부상한 ‘이대남 현상’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 요컨대 “젠더 갈등으로 진보에서 이탈한 2030 남성들이 지금은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는 집단이 됐다”라는 식이다. 틀렸다. 주체가 다르다. 탄핵에 반대하는 건 앞서 언급한 강경파다. ‘이대남 현상’의 본체는 온건파다. ‘이대남’이 누구인가.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국민의힘에 압도적 표를 몰아주며 주목받았던 2030 남성들이다. 이들은 원래 보수가 아니다. 중도와 진보 사이 어디쯤엔가 머물렀던 유권자들이다. 2017년 대선에선 문재인·안철수·유승민 중 한 명을 꼽았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염원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들은 젠더 갈등으로 2020년 전후 보수 진영에 편입된 이대남이 아니다. 원래부터 보수정당을 지지했거나, 그런 정서를 가진 집단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도 이들 중 일부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표현에 따르면 ‘애국 보수’를 표방하는 집단이다. 이 중 상당수는 아마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를 찍었을 것이다. 당시 홍 후보는 2030세대에서 약 8%의 표를 얻었다.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 우파’들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먼저 환경이 변했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층 남녀 갈등이 확산했다. 이 갈등은 강성 보수 집단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했고, 병력도 충원했다. 애국·반공 등 기존 가치에 반페미니즘 기조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때마침 유튜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반페미니즘을 핵심 콘텐츠로 하는 유튜브 채널들이 세를 불렸다. 이들은 구독자·지지자들을 결속하며 일종의 시민단체 역할을 했다. 이 하부구조가 탄핵 반대 집회의 근간을 형성한다.

    정치권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이나 국민의힘 지도부 구치소 면회 자리에서 ‘2030 청년’을 강조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또한 서부지법 사태를 놓고 “시민이 분노한 원인은 살펴보지 않고 폭도라는 낙인을 찍는다”며 시위대를 두둔하기도 했다. 2017년 탄핵 땐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들이 나설 공간이 없었다. 2025년엔 반대다. 2030은 지금 탄핵을 막는 최전선에 섰다. 그 공로를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는다. 효능감이 클 수밖에 없다.

    1월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2030 직장인들이 보수 집회에 참석해 있다. [동아DB]

    1월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2030 직장인들이 보수 집회에 참석해 있다. [동아DB]

    탄핵 반대는 본질 아냐, 핵심은 진보 향한 분노

    ‘청년 우파’들은 왜 탄핵에 반대하며 분노하는가. 유튜브에 올라온 각종 집회 영상에 힌트가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라고 말이다. 그 이유는 가깝게는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 멀게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계속된 ‘진보 우위’ 정치 구도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그간 진보 진영이 추진해 온 좌편향 교육, 반기업 정책, 친북·친중 외교정책 등으로 나라가 망가졌다고 말한다. 윤 대통령 탄핵 또한 민주당이 30회 가까이 밀어붙인 ‘줄 탄핵’의 연장선으로 본다. “오죽하면 나섰겠냐”는 스타 강사 전한길 씨의 발언은 사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선 젊은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2030 청년들에게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측은지심이 그다지 묻어나지 않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불쌍해서 어떡하느냐”며 눈물을 훔쳤던 노인들과는 사뭇 다른 정서가 감지된다. 개인적 인상이긴 하지만 슬픔보단 분노의 감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당연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 지지층이 선대부터 봐온 인물이자 보수의 적자였다. 지지층에게 그의 탄핵은 빛나는 산업화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과 같았다. 윤 대통령은 다르다. 불과 3년 반 전 김건희 여사는 자기 남편을 “문재인 대통령의 충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보수의 서자도 아니다. 이방인이다. 애초에 보수층이 윤 대통령을 지지한 것도 그의 보수 정체성에 매료돼서가 아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싫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싫어서였다. 지금 그의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마음가짐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걸로 보인다. 대통령 탄핵은 민주당의 폭정에 굴복하는 거란 심리다.

    강성 보수 성향 2030 남성들에게 문재인 정부 5년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이긴 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도 연달아 전례 없는 대승을 거뒀다. 야당인 보수 진영은 무기력했다. 지지율 격차도 컸다. 정부 여당의 행보에 제동을 걸 방법이 없었다. 대대적 적폐 청산 수사가 이뤄졌다. 많은 보수 진영 인사가 포토라인 앞에 서는 수모를 당했다. 일명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보수 진영에 몇 없는 청년 단체들은 탈탈 털렸다. 대통령은 나날이 성장하던 원자력산업을 멈춰 세웠다. 대신 산을 깎아 태양광 패널을 심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웃음꽃을 피웠다. 진보 진영은 김 위원장을 “계몽 군주”라고 치켜세웠다. 서해상에서 피격당한 공무원은 나 몰라라 했다.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도 했다. 거기에 페미니즘이 더해졌다. 강성 보수 청년들은 탄핵을 용인하면 이와 같은 ‘무자비한 진보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거라고 믿는다.

    진보의 다음 타자는 이재명 대표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보다 더 강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거기에 범진보 진영은 이미 180석 넘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로선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렇게 되면 그는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를 손에 쥐게 된다. 사람들은 ‘이재명의 5년’이 ‘문재인의 5년’보다 더 선명한 진보 색채를 띨 것으로 전망한다. 이건 비단 보수층뿐 아니라 중도층도 걱정하는 바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이 대표는 기본사회 구호를 철회하는 한편 한미일 협력에 유연한 자세를 보이려 한다. 그러나 “중국 가서 ‘쎼쎼(감사합니다)’하면 된다”는 말과 ‘가치동맹’을 탄핵 사유로 넣었던 사실은 남아 있다. 최근의 갑작스러운 ‘우클릭’ 경제 공약이 ‘악어의 눈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헌법재판소로 향하는 ‘청년 우파’의 분노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된 1월 19일 새벽 윤 대통령의 지지자 수백 명이 서부지법 후문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된 1월 19일 새벽 윤 대통령의 지지자 수백 명이 서부지법 후문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동아DB]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입법·사법 시스템 전체를 성토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 헌법재판소가 모두 민주당과 한패가 돼 대통령을 탄핵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수사권도 없으면서 대통령을 무리하게 체포해 망신을 주었고, 법원은 법 효력을 자의적으로 배제해 가면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분노한다.

    이들의 분노가 향하는 종착지는 헌법재판소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2월 3~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방식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2%,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3%였다. 연령별로는 30대(54%), 20대(53%) 순으로 탄핵심판 불신 여론이 높았다. 탄핵심판 불신 목소리가 과반을 넘긴 세대는 2030뿐이다.

    서부지법 사태가 벌어지던 날 일부 청년은 헌법재판소 담을 넘었다. 헌법재판소가 진보 진영의 요구에 부응해 탄핵심판에 임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재판소 인적 구성이 강성 보수 지지층의 이러한 의구심을 키우는 측면은 있다. 헌법재판관은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대통령 추천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이다. 현재 이념적 구성은 진보보다 중도·보수가 다소 우위에 있다. 그런데 진보 성향 재판관 모두가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이를 두고 보수 인사들은 “특정 단체 출신이 대거 소속된 헌법재판소가 진영의 요구에서 벗어나 공정한 탄핵심판을 할 수 있겠냐”고 끊임없이 의구심을 제기한다.

    강성 보수 청년들이 헌법재판소에 분노하는 건 단지 탄핵 때문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사회갈등에 결론을 내리는 최종 기관이다. 이 사회의 물줄기가 진보로 향할 것인지, 보수로 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호주제 폐지, 동성동본 혼인 허용, 수도 이전 위헌 등의 결정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법원도, 국회도, 그리고 대통령도 거스를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군 가산점제, 여대 약대 정원 문제 등 청년층이 민감한 젠더 이슈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앞의 청년들은 이와 같은 변화, 그러니까 헌법재판소가 추동할 진보적 흐름에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청년 우파들이 우려하는 헌법재판소의 진보화를 초래할 장본인이 윤 대통령이라는 점은 공교롭다. 사실 최근의 결정을 보면 헌법재판소가 딱히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긴 어렵다. 인적 구성으로도 중도·보수가 더 많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임기를 겨우 2년 반 넘긴 상태에서 비상계엄을 일으켜 직무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4월 18일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한다. 원래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보수적 성향은 더 짙어졌을 것이다. 뜬금없는 비상계엄은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했다. 만에 하나 차기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가 승리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진보적 색채는 더 뚜렷해질 것이다. 이 일을 초래한 장본인이 윤 대통령이라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신동아 3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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