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라면 자신만의 지지자 연합 만들어야
이재명, 개별 집단에 이익 안겨주며 연합 구축
탄핵 와중에도 ‘양곡법 개정안’ 고집, 충남·전남북 표심 노림수
상징·서사·세계관 없으니 ‘이해관계’만 남아
단기 이익 호소, 중도층에 소구력 없어
이익 배분 과정서 지지층 내 갈등 필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성장’을 29번 언급했다.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6/88/46/67b6884618c1d2738276.jpg)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성장’을 29번 언급했다. [뉴스1]
이 대표가 겪는 곤란은 그가 의제를 잘못 선택했다거나, 아니면 그를 마뜩잖아하는 중도 유권자를 돌려세우는 데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익분배형 정치’라 규정할 수 있는 그의 정치 행태가 가진 약점 때문이다. 그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고, 지지자 연합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표만의 약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민주화의 서사를 더는 동원 기제로 쓸 수 없는 민주당의 상황에서 기인한 것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시도 논의 규탄과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6/88/ab/67b688ab247fd2738276.jpg)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시도 논의 규탄과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된 ‘먹사니즘’
대선후보급 정치인은 자신만의 지지자 연합을 만들어내고 유권자들을 동원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 중진 의원과 대선후보급 정치인의 가장 큰 차이다. 한국의 정당은 스스로의 조직과 이데올로기가 약하고, 사실상 플랫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대선후보가 만들어내는 지지자 연합이야말로 그 시기 해당 정당의 지지자 연합 자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다종다기한 유권자 집단을 엮어 ‘연합(coalition)’을 형성할 것인지야말로 대선후보의 핵심 과제다.
이재명 대표는 개별 유권자 집단의 이해관계에 제각각 반응하고, 그들에게 이익을 배분해 주는 방식으로 지지자 연합을 구축해 왔다. 이 대표가 중심이 돼 인구집단, 계층, 직능 및 이익단체에 공공자원을 배분해 주거나, 배분해 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방식이었다. 지방자치단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흔히 나오는 포크배럴(pork barrel·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정부 예산이나 이권 등을 나눠주는 것) 정치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전면에 내세운 것이 이 대표 정치의 특징이다. 그가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먹사니즘’은 이익분배형 정치를 압축한 표현이다.
![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농업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등이 안건으로 상정되고 있다. [동아DB]](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b6/88/f5/67b688f511ebd2738276.jpg)
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농업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등이 안건으로 상정되고 있다. [동아DB]
문제는 대통령이 사라진 행정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거나, 최소한 국회의 행보에 어깃장을 놓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에서, 왜 민주당이 도리어 양곡법 개정안을 가지고 한 총리에 대한 탄핵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느냐다. 해답은 쌀 농가의 지리적 분포에 있다. 2023년 기준 전국 미(米)곡류 재배 농지(66만1300㎢)의 시도별 비율은 전남이 21.4%로 가장 높고, 다음이 충남(18.9%), 전북(15.9%), 경북(12.8%), 경기(9.5%), 경남(8.7%), 충북(4.6%) 순이다. 충남과 전북·전남 등 민주당 세가 강한 3개 시도가 전체 쌀 재배 면적의 56.2%를 차지하는 셈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 대표가 대선에서 친(親)민주당 농촌 지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전남 해남·진도·완도가 지역구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2024년 12월 17일 SBS 유튜브 프로그램 ‘스토브리그’에 출연해 “지역구 농어민들이 끓고 있다”며 “당장 저에게 전화가 와서 왜 한덕수를 끌어내리지 않느냐고 하신다”고 말한 게 법안의 성격을 보여준다.
상징과 서사 없는 이재명과 민주당
외부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탄핵 직후 국면에서 굳이 급하게 민주당 고정 지지층을 챙겨줘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양곡법 개정안이 시급한 상황이라 보기 어렵고, 대선 이후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하면 되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특검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행정부 각료를 압박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이 대표가 지지층에게 즉각적 이익을 안겨줘야 하는 건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그는 민주당 내 고정 지지층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통성이 없는 비주류 정치인이다. 두 번째는 그에게 거대 서사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지층을 화학적으로 결합하고, 장기적 이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기적 이익을 반복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세 번째는 민주당 자체의 문제다. ‘민주화’라는 거대 서사는 유효 기간이 끝났고, 검찰·언론 개혁 같은 광의의 권력 기구 개편 의제는 2022년 대선 패배로 파탄 났다. 새로운 세계관과 이데올로기가 없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념 대신 ‘이익’을 부각하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의 양대 산맥은 한때 ‘난닝구’라 불리기도 했던 호남이나 호남 출신 이주민, 그리고 흔히 ‘강남 좌파’라 이야기되는 서울 마포구·용산구·성동구께에 사는 대졸-대기업-화이트칼라다. 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의 독주는 서울 상위 중산층에 기반한 친문(親文)식 정치가 몰락하면서 그 진공상태를 채울 인물이 호남 출신 이주민에 기반을 둔 이 대표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호남이나 호남 출신 이주민 입장에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인물이 아니고, 적절한 상징이나 역사도 갖고 있지 않다. 수도권에서 중하층 노동자나 자영업자로 삶을 살아가는 호남 출신 이주민이 모인 경기 성남시 중원구에서 경북 안동 출신 이주민 노동자 출신 변호사는 입지전적 자수성가의 사례일 뿐이다. 변호사 활동을 하다 정동영 팬클럽 회장을 거쳐 성남시장이 되는 과정도 ‘난닝구의 적자’를 칭하기엔 부족하다.
후보가 서사와 상징이 빈약해도 정당이 이를 제공해 준다면 만회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역할처럼 말이다. 민주당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와 비전, 그리고 역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세계관을 이뤘던 여러 상징은 무너지고 있다. 북한과 민족 공동체 형성을 도모하고, 이를 위해 중국·러시아 등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는 비전은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신냉전으로 끝이 났다. 문재인 정부 시기 민주당은 검찰과 언론을 주된 청산 대상으로 삼으며, 개혁 대 반개혁 구도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을 기점으로 거센 역풍을 맞았다. 인적 구성 측면에서도 1987년 6월 항쟁을 만들어내고 1990년대 민주화를 이끌었던 인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학생운동권 출신의 인적 네트워크는 이전과 비교해 양적·질적으로 뒤떨어진다.
2021년 말부터 민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인간 이재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등 ‘재명학(學)’ 열풍이 분 것은 단순히 민주당의 잘못된 조직문화 때문이라 할 수 없다. 이 대표를 부패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순수한 민중의 대변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대변자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서사를 부여해야 한다. 문 전 대통령 당시에도 그와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합성해 친일 독재 세력에 대항하는 독립운동 민주화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세도정치에 대항하는 정조의 행보 같다고 주장하는 행태가 만연했다. 당시와 다른 건 이 대표가 가진 상징 자원이 부족하므로, 좀 더 기본적인 사항부터 서사를 만들기 위해 무리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자발적 동의’ 없는 단기 이익 호소의 한계
이재명식 이익분배 정치는 민주당 지지자 연합을 구성하는 소집단별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각각의 정책을 내놓는 식이다. 기본소득, 기본사회를 근간으로 삼되 중도층 공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개별 이해당사자에 맞게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 완화, △주52시간제 예외 규정 확대 같은 정책을 내놓는다. 유권자를 쪼개어 관리 가능한 집단으로 상정하고, 개별 집단별로 따로 공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전략은 근본적 약점이 있다. 정치세력이 헤게모니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적·단기적인 이익을 주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인식의 게임이고, 유권자들이 장기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와 비전이 자발적 동의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역할이다. 적절한 이데올로기와 상징 없이 단기 이익에만 호소하는 것은 민주당 외곽의 중도 또는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것은 그들의 반대 정서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민주당을 편들 수 있을 매력적 세계관을 새롭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거센 반대 정서에서도 중도층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는 핵심 메시지 덕분이었다.
지지자 연합이 소집단의 물리적 결합 수준에 그친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지지자 연합의 화학적 결합이 필요한 이유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소집단을 조율해서 최대공약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집권 이후가 아니더라도 지지자 연합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때로는 특정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는 정책을 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기존 지지자들의 양보와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단기 이익 이외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대표가 내놓은 중도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과거 주요 대선후보보다 더 큰 건 이전에 보장됐던 단기 이익이 훼손된다는 판단에서다. 대선 캠페인이 진행될수록 ‘이해관계들의 대립’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성장률이 급격히 내려가면서 파이를 키워서 모두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식은 불가능해졌다. 신참자가 지지자 연합에 들어오거나, 누군가의 이익을 키워야 하는 경우 다른 집단은 손해를 볼 것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개혁 이슈는 이해관계 재배분이 세대 간, 계층 간 제로섬게임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을 시사한다. 이 대표가 계속 압도적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수록 이익 배분의 현실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헤게모니 개념을 만든 안토니오 그람시는 특정 집단이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른 집단들로부터 지적·도덕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경제라는 하부구조의 이해관계가 정치와 사회라는 상부구조로 투영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 역할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역설했다.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세계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나아가 서로 상충하는 요소들의 균열이 심해지면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보수 정치의 와해에도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유권자들로부터 광범위한 동의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건, 이 대표의 개인적 특성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이익분배형 정치에 제대로 된 상징과 서사를 부여하지 못하는 민주당 정치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신동아 3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