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두고 판이하게 갈리는 당심과 민심
‘당원 투표 50%’ 경선, 본선서 부메랑 될 수도
3자 대결서 존재감 이준석 “단일화 언급 예의 아냐”
사전투표 무용론, 투표 무용론으로 확산 가능성

국민의힘은 4월 7일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출범했다. 국민의힘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등 현 지도부를 재신임하고 대선 관리를 맡겼다. 동아DB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6월 3일 조기 대선을 치르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상황은 전보다 악화됐다. 대진은 이전과 유사할 공산이 크다. 이재명 전 대표의 대선 재도전이 유력하며 여권 주자만이 변수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그사이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이 무죄로 뒤집히면서 사법 리스크 우려가 일정 부분 희석됐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은 4월 14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재판이 시작되면서 사법 리스크의 중심에 섰다. ‘진땀승’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4년 만에 건넜는데…되돌아온 ‘탄핵의 강’
국민의힘 처지에서 가장 큰 부담은 되돌아온 ‘탄핵의 강’이다. 보수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른 2017년 19대 대선에서 참패 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연패했다. 연패의 사슬을 끊은 때가 2022년 20대 대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탄핵의 원죄’가 없는 당 밖 인사를, 그것도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주도했던 윤 전 대통령을 당을 대표하는 대선주자로 선출하며 탄핵의 강에서 한 발짝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다”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작심 발언을 한 이준석 의원을 2021년 당대표로 선출하며 탄핵의 강을 건넜다고 평가받았다.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다시금 탄핵의 강이 국민의힘 눈앞에 펼쳐졌다. 4년여 동안 힘들게 탄핵의 강을 건넜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형국이다. 한국갤럽이 4월 8~10일 전국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안 인용에 대해 묻는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70%가 윤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해 ‘잘못된 판결’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조사 대상을 전체 응답자로 확장하면 ‘잘된 판결’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9%로, ‘잘못된 판결(25%)’, ‘모름·응답 거절(7%)’이라고 응답한 비율을 크게 앞질렀다.
여론조사 추이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부정적이다. 최근 조사 결과는 비상계엄 이후 한국갤럽에서 관련 주제로 실시한 13번의 조사 가운데 두 번째로 탄핵 긍정 여론이 높게 나왔다. 해당 조사보다 탄핵 찬성 비율이 높았던 조사는 비상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 13일 발표한 첫 조사(75%)뿐이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처지에서는 당심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1차 경선에서 100% 국민 여론조사로 후보를 4명으로 압축한 뒤 ‘당원 투표 50%, 국민 여론조사 50%’로 2차 경선을 진행한다. 이때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등 후보가 2차 경선과 동일한 룰로 최종 경선을 치른다. 최종 후보 선정에 당심이 50% 반영되는 만큼 당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요 주자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수용하면서도 탄핵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난, 다소 복잡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심과 민심의 사이에 줄타기를 해낸 후보만이 최후 승리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차기 대선은 여느 때처럼 ‘중도층의 표심’이 최종 승자를 결정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중도층에서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한 찬성 입장이 특히 높게 나타난다. 앞선 한국갤럽 조사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증도라고 응답한 이들 중 80%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인용에 찬성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탄핵에 대해 찬성 혹은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이 자칫 본선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민의힘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부각될 경우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반사 이득을 얻는 식으로 국민의힘 경선이 흘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의 행보 또한 변수다. 윤 전 대통령은 4월 11일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에 도착한 뒤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 말라”라고 말하는 등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며, “어차피 뭐 (대통령) 5년 하나 3년 하나” 등 민심과 거리가 있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나라와 국민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말한 만큼 조기 대선 국면에서 역할을 도모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반이재명 빅 텐트’ 순탄하지 않아
탄핵의 강은 자칫 ‘분열의 강’으로 확산될 수 있다. 20대 대선에서 1%포인트 이내에서 승패가 결정된 만큼 이번 대선 역시 어느 세력이 통합을 이뤄내느냐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지난 대선처럼 중도 및 보수 세력이 이른바 ‘반명 빅 텐트’를 치지 않고서는 승리가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4월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한 분이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빅 텐트를 만들어야 이재명 정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원팀이던 주요 주자들은 현재 각자의 영역에서 대선 완주 의사를 다지고 있다.특히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의 존재는 조기 대선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는 민주당 후보, 국민의힘 후보, 개혁신당 후보 3자 대결로 대선이 흘러갈 경우 캐스팅보터로 활약할 수 있다. 세계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4월 10~11일 전국 성인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3자 대결에 따른 선호도를 조사(무선전화면접으로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 결과 ①이재명(45%)·김문수(29%)·이준석(14%) ②이재명(44%)·홍준표(29%)·이준석(11%) ③이재명(45%)·한동훈(25%)·이준석(11%) 세 경우 모두 이 후보는 10% 이상 지지율을 얻으며 존재감을 보였다.
이 후보는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이 후보는 4월 14일 “연대나 단일화를 언급하는 것은 대구·경북 분들을 위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완주 의사를 드러냈다. 천하람 개혁신당 대표 역시 이날 “후보 본인이 단일화는 없다고 완주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여론조사 결과가 이 후보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만큼, 후보단일화 과정은 지난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이념이 합치되지 않을뿐더러, 이준석 후보와 국민의힘 내 강경파 사이의 감정 역시 좋지 않은 만큼 단일화가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내에서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 공방이 펼쳐지며 분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국민의힘 후보 사이에서는 날 선 발언이 오가고 있다. “국회의원 몇 명이 배신해서 상대 당에 합세해 (탄핵소추안 의결정족수) 200석을 넘고, 헌법재판관 몇 명이 힘을 합쳐 대통령을 파면하는 게 과연 민주주의인가.(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조기 대선을 가져온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하다 보면, 지금 나온 후보 가운데 한동훈 후보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나경원 의원)” 등 탄핵에 반대한 이들을 겨냥한 ‘배신자론’이 제기됐다.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 의원은 4월 12일 “김 전 장관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탄핵을 끝까지 반대하며 권력의 헌정 파괴를 사실상 옹호했다”고 선을 그었다. 안 의원은 “헌법을 배신한 자들이 이재명 전 대표를 심판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명분 없는 위선”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범죄혐의자 이재명’에게 필패할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 역시 나 의원을 두고 “통합진보당을 닮지는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홍 전 시장 역시 김 전 장관을 두고 “탈레반”으로, 한 전 대표는 “나르시스트”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변수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경선은 이재명 전 대표와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맞붙지만,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기류가 만연하다. 특히 권리당원 50%, 국민 여론조사 50% 방식으로 ‘국민참여경선’을 치르게 되면서 당심을 잡은 이 전 대표가 앞서나갈 전망이다. 당 안팎으로 “들러리 경선”이라는 표현마저 사용될 정도다. 나아가 ‘형제 정당’인 조국혁신당은 “압도적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의 유력 후보를 총력 지원한다”고 밝히며 ‘표 몰아주기’에 나서고 있다.

2월 27일 광주 북구 전남대 후문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부정선거 전면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 부정선거 음모론
‘부정선거의 강’은 보수가 건너야 할 마지막 강이다. 12·3비상계엄 사태는 그간 음지에 있던 부정선거 음모론을 양지로 끌어올렸다. 윤 전 대통령은 12·12대국민담화에서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나”며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부정선거를 내세웠고, 탄핵심판 역시 부정선거를 무대로 진행됐다. 헌법재판소가 “(부정선거에 대한) 피청구인의 판단은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일축했으나, 일부 보수 지지자 사이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슈다.탄핵 이후로도 윤 전 대통령 지지자 일부는 여전히 “부정선거 out” “부정선거 은폐하면 간첩이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의혹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상당수 극우 유튜버들은 일찌감치 “이번 대선에서도 부정선거가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탄핵심판에서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다가오는 조기 대선에서 어느 때보다 필사적으로 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으로 보인다”라며 지지자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들은 사전투표를 부정선거의 주된 무대로 꼽고 있다.
지난해 22대 총선의 사전투표율은 역대 최고 수치인 31.3%를 기록했다. 당시 사전투표함 개표 후 지역구 50여 곳의 당락이 뒤바뀌었는데, 모두 민주당 후보가 역전승을 했다. 민주당 지지자가 대거 사전투표에 참여한 것이 선거 승리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선거 당일 불의의 사고 및 일정이 생겨 투표장에 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지지자들이 사전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후보자 처지에서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 국민의힘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마냥 손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자칫 ‘사전투표 무용론’이 ‘투표 무용론’으로 확산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광장 등에서는 대선무용론이 하나둘 언급되고 있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는 4월 16일 부정선거 의혹 해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대선 불복운동’을 시사했다. 다가오는 조기 대선에서 보수 진영이 세 개의 강을 어떻게 건너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