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때는 보수 난립, 현재는 보수 단일 대오
민주당은 ‘내란 세력’ vs ‘민주주의 수호 세력’ 구도
국민의힘 당원이 ‘탄핵 찬성파’ 뽑을지가 변수
2021년 전대처럼 ‘전략적 선택’ 다시 할지 주목

캡션1. 19대 대선을 앞두고 2017년 4월 28일 문재인, 심상정, 유승민, 안철수, 홍준표 대선후보가 TV 토론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DB
물론 탄핵이 잘못됐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매우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탄핵을 당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아무리 마땅한 일이라도 탄핵과 같은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절대 기쁜 일도 아니거니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정치 이벤트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물러난 사례는 역사를 통틀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들이 탄핵이 거론될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국을 흔들었던 워터게이트, 리크게이트, 지퍼게이트, 이란 콘트라게이트 등을 보면 미국 대통령도 탄핵당할 수 있는 ‘상황’은 수없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았다. 탄핵이란 그만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불행한 일이기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최후의 수단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탄핵을 8년 사이 두 번이나 경험했다. 이런 ‘불행’이 반복됨으로써 우리에게 ‘비교 사례’를 제공해 주고 있기는 하다.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직전인 2017년 1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주류는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당시 바른정당은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분열돼 창당한 정당 중 가장 큰 규모의 정당이었다. 바른정당은 대선 당시 유승민 전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 즉 보수가 분열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 것이 19대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당시 대선의 또 다른 특징은 더불어민주당이 지금과 같이 거대 야당이 아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0대 국회는 여당 새누리당과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의석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의석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은 특정 정당이 국회 활동의 상당 부분을 좌우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대선에서 누구를 뽑아도 입법부와 행정부를 완전히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19대 대선 당시의 이 같은 정치 구조적 특징을 논하는 이유는 현재는 19대 대선 당시와 정치 상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21대 대선을 앞둔 지금은 19대 대선 당시처럼 보수정당이 분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민의힘에서는 10명이 넘는 정치인이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는데, 그럼에도 탈당이나 분열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보수 진영이 단일 후보로 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보수 진영의 ‘완전한 단일 후보’ 탄생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으로 봐서는 이준석 후보가 완주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후보가 국민의힘 다른 후보들과 접촉한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봐서는 보수 진영 전체의 단일 후보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2021년 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국민의힘 당원들은 전략적 선택으로 최연소 당대표로 이준석 대표를 선출했다. 동아DB
19대와 21대 대선이 다른 점
또한 19대 대선 당시와 다르게 22대 국회는 민주당이 거대 야당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민주당이 의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 권력마저 가져가게 되면 견제는 고사하고 입법부와 행정부가 한 몸으로 움직여 ‘독선적 국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런 구조적 차이 외에도 유권자의 주관적 이념 성향도 차이가 난다. 19대 대선 당시에는 진보 우위의 구도였다. 우리나라는 본래 보수 우위의 정치 지형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의 충격으로 유권자 이념 지형이 진보 우위로 바뀐 것이다. 이런 진보 우위 정치 지형은 2021년 11월까지 지속되다가 이후 보수 우위 정치 지형으로 바뀌었다.그런데 이번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다시금 진보 우위 정치 지형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한 이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3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2025년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3월 평균 유권자들의 주관적 이념 지형은 ‘보수적’ 32%, ‘중도적+성향 유보’ 43%, ‘진보적’ 25%였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이념 지형에서 보수 우위 현상이 지속된 것이다.
여기서 혹자는 왜 ‘주관적’ 이념 지형을 언급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념은 본래 주관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어제까지는 보수였는데, 오늘부터 갑자기 진보가 될 수 있는 것이 이념이라는 존재의 특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적 이념 지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왜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진보 우위의 이념 지형이 형성됐지만, 지금은 보수 우위 정치 지형이 지속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부분적으로 탄핵 사유에 접근하는 전직 대통령들의 태도와 방식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자신의 탄핵 사유인 국정농단이라는 문제를 이념적으로 포장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를 이념적 사안으로 만들었다. 그 때문에 보수 우위 정치 지형이 지속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이념적 포장이 불가능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일 박 전 대통령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국정농단 사건을 이념적으로 포장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국정농단 사건이 친북 세력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반대로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를 ‘부정선거’ ‘종북 세력’ 그리고 ‘중국’ 등의 용어를 동원해 이념적 성격이 강한 사안으로 비치게끔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우위가 아직도 존재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문재인 정권 시절 진보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보수 우위가 지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는 다르게 보수 우위가 지속된다는 점은 21대 대선 정국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대 대선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정말 안쓰러울 정도였다. 대선 직전이던 2017년 4월 넷째 주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 38%, 국민의당 18%, 자유한국당 11%, 정의당 7%, 바른정당 4%였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자유한국당 지지율보다 3배 이상 높았다. 또한 당시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면 문재인 40%, 안철수 24%, 홍준표 12%, 심상정 7%, 유승민 4%였다. 그런데 19대 대선 결과를 보면 문재인 41.08%, 홍준표 24.03%, 안철수 21.41%, 유승민 6.76%, 심상정 6.17%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진보 진영 후보,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 득표율의 합(合)이 중도 보수 진영 후보, 홍준표와 안철수 그리고 유승민 후보의 득표율의 합보다 작았다는 점이다. 즉 대선이 본래 이념 대결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는 뭐라 응답하든 막상 투표장에 가면 자신의 이념 성향대로 투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을 민주당은 주목할 것이다.
2017년 당시에는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 이념 지형 역시 진보 우위였음에도 선거 결과가 이랬는데, 현재는 보수 진영의 분열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고 이념 지형도 보수가 우위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가 현재 독보적인 대선후보라 하더라도 선거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기에 민주당은 대선 구도를 바꾸려 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보수 분열 가능성 높지 않아
민주당이 원하는 대선 구도는 무엇일까. 이념 대결 구도가 아닌 ‘내란 옹호 세력’ 대 ‘민주주의 수호 세력’의 대결 구도일 것이다. 이런 대선 구도가 정착하기만 하면 민주당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선 중도층이 갖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대표가 아무리 비호감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란 옹호 세력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내란 반대 세력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중도층은 판단할 것이다. 또한 보수층 일부 역시 흡수할 수 있다. 보수층에서도 비상계엄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이런 선거 구도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민주당이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시한 개헌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헌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일종의 블랙홀 같은 존재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진짜 개헌이 추진되면 국민의 시선은 분산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대선 국면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는 후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역대 대선에서 개헌 주장이 거의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유도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후보가 강한 후보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개헌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개헌 주장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시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똑같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 친명 세력이 우 의장을 비난한 것이다. 결국 우 의장은 개헌 촉구 나흘 만에 스스로 개헌 주장을 ‘철회’했다.
어쨌든 민주당은 ‘내란 세력’ 대 ‘민주주의 수호 세력’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 ‘내란 잔당 세력 척결’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의 ‘노력’에 국민의힘도 호응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탄핵을 찬성한 의원들에게 ‘조치’가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런 모습을 보일수록 민주당이 원하는 선거 구도, 즉 ‘내란 옹호 세력’ 대 ‘민주주의 수호 세력’의 대결 구도는 좀 더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다.
또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민주당이 원하는 선거 구도가 어렵지 않게 형성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현재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파로 나눌 수 있다. 만일 국민의힘 당원들이 탄핵 반대파를 대선후보로 선택한다면, 민주당은 ‘내란 공세’를 더욱 강력하게 전개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반대로 탄핵 찬성파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결정된다면, 민주당은 생각만큼 쉽게 국민의힘을 공략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원하는 선거 구도도 쉽게 형성되기 힘들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내부 상황을 보면 과연 탄핵 찬성파가 대선후보로 선택될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국민의힘 당원들이 과연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의힘 당원들, ‘전략적 선택’ 할까
국민의힘 당원들이 ‘전략적 선택’을 한 경우는 실제로 존재했다. 2021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대표 사례다. 당시 국민의힘 당원들은 정권교체를 절실히 원했고, 그 결과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연소 당대표의 탄생이었다. 당시 만 36세이던 이준석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국민의힘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 덕분이었다.그렇다면 이번에도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가능할까 궁금해진다. 한국갤럽의 4월 첫째 주 정례 여론조사(2025년 4월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 지역에서 근소한 차이지만 탄핵을 가장 확실하게 찬성한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들 중 지지율 1위에 올랐다. 이 부분을 확대 해석하면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우연이라고 그냥 지나쳐서도 안 된다. 해당 부분은 보수의 심장부터 전략적 선택을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대 대통령선거는 2025년 6월 3일 치러진다. 대선은 미래 가치에 대한 투표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이제 대한민국 주권자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