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항로 잃은 韓 경제, 트럼프 심리에서 관세 해법부터 찾아야”

[Special Report | 대한민국, 이대론 안 된다] ‘중앙은행가’ 조홍균 고려대 교수의 한국경제 진단 & 처방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5-04-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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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는 ‘공동의 적’ 설정하고 단합 유도

    • 역량·신뢰 갖춘 지도자가 美와 정책 대화 나서야

    • 대통령 잘 뽑으면 성장 둔화 크지 않을 수도

    • ‘저출생·고령화’가 한국경제 진짜 위험 요인

    • 무역부터 재정까지 경제정책 성찰 이뤄져야

    조홍균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경제의 난제를 타개하려면 종합적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역량을 갖춘 차기 정부가 집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조홍균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경제의 난제를 타개하려면 종합적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역량을 갖춘 차기 정부가 집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배에 비유하면 항로를 잃은 배와 다를 바 없다. 이제는 정부가 경제구조가 변화하는 대전환기에 한국 경제 시스템과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 적기를 놓치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 

    한국 경제, 항로 잃은 배와 같아

    조홍균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의 진단이다. 조 교수는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이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재무관리를 공부했다. 1989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조사제1부 조사역, 정책기획국 차장 등 중요한 직책을 역임하며 금융위기 대응, 통화정책의 효과 분석, 국제금융시장 동향 등을 두루 통섭한 경제통이다. 이론 연구에도 열의를 보여 한국은행 해외학술연구원으로 선발·파견돼 미국 워싱턴대 로스쿨에서 법경제학을 전공,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으로 퇴사한 그는 올해부터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의 금융경제정책과정 총괄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조 교수는 3월 ‘우리 시대의 금융 경제 읽기’(박영사)라는 책을 펴냈다. 중앙은행가로 30여 년간 쌓은 실무 경험과 학문적 성과를 활용해 정책·시장·제도·인간을 이해하는 통찰력과 현실을 읽는 시각을 세상과 공유하겠다는 생각으로 집필한 책이다. ‘어느 중앙은행가의 메모’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극적인 선거 과정에서부터 정치·경제·법·사회가 직면한 현실 이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금융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4월 중순 조 교수에게 한국 경제가 넘어야 할 난제와 해법을 듣기 위해 서울 중구 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을 찾았다.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정치 긴장이 다소 완화됐지만, 한국 경제는 대선 전까지 60일간 리더십 공백이라는 부담을 여전히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시선을 동시에 드러냈다.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며 경제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됐다. 외환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대외안정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추이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취약한 정치 거버넌스가 경제·사회적 거래비용을 높여 경제·사회적 성과 제고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조기 대선 국면과 차기 정부에서 정치 거버넌스를 교정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더 큰 불확실성에 빠질 수 있다.”



    2024년 5월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뉴시스

    2024년 5월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뉴시스

    단기 거시 정책으로 성장률 높이려는 생각 버려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에도 못 미칠 거라는 전망이 많이 나온다. 

    “두 가지 변수가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향후 대선 정국과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 추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 방향에 따른 파급효과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역량과 신뢰성을 갖춘 지도자가 선출돼 트럼프 행정부와 원만하게 정책 대화를 이끈다면 성장둔화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다소 낙관적 전망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외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개선되면 내년 경제 성장률은 반등할 여지도 있다. 내가 우려하는 점은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뾰족한 대응책이 보이지 않아 인구 감소 전망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중장기적으로 저성장 경로에 빠뜨리게 하는 위험 요인이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다. 이제는 종합 처방 없이 그저 단기적 거시 경제정책을 동원해 손쉽게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령층, 여성, 외국인의 고용 참여 확대를 도모하는 사회 및 교육, 경제 정책을 담은 포괄적 정책 추진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높은 관세를 때린 후 국가와 기업별 손익을 따지고 협상을 벌여 관세를 잇달아 유예하거나 인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4월 2일 부과한 25% 상호관세가 4월 9일 발표된 유예 조치로 90일간 미뤄졌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관세율 25% 같은 숫자는 별로 의미가 없다. 더욱이 지금은 상호관세가 90일간 전격 유보된 상황이 아닌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한국이 작년 대(對)미국 경상수지에서 사상 최대치의 흑자 폭을 기록했고, 앞으론 그 흑자 폭이 줄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제는 정부가 한국의 무역구조 시스템과 정책의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구조조정이나 사업 재구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기존 ‘수입선(수입하는 물품을 만드는 나라)’을 일부 바꾸고 미국산 수입 물품을 늘리는 방식으로 다각적 대안을 마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차기 정부는 무역정책의 구조를 개편하고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가 만든 관세정책 게임 이기는 법

    미국과 중국 간 대립은 두 나라를 1·2위 수출국으로 둔 우리나라에 큰 악재로 작용한다. 경쟁국 상황을 차분히 지켜보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 부당한 권세에 순응하는 것으로 비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트럼프 정부는 고도로 전문화된 글로벌 공급망의 정점에서 형성되는 무역 불균형 문제를 기업의 손익계산서처럼 단순하게 취급한다. 미국은 리더십과 자유무역 확대 결정으로 지난 수십 년 가까이 번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트럼프 행정부는 그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조 교수는 이 대목에서 “관세정책이라는 게임에서 트럼프라는 플레이어가 선보이는 플레이가 무엇에 의해 작동하는지를 읽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관세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리와 연관이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 심리를 고려하면 그의 관세정책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그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결정이다. 책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우리와 그들의 정치’의 저자인 제이슨 스탠리 예일대 철학과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의 심리는 공동의 적을 설정하고 이에 맞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며 단합하려는 데서 기인한다. 트럼프가 지지자들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공동의 적’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캐나다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배경으로 국경에 따라 밀수된 펜타닐 등 마약 유입을 들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북부 국경을 따라 밀수된 펜타닐의 양은 2023년 기준 남 국경에서 압수된 것의 0.2%에 지나지 않음에도 펜타닐이라는 공동의 적에 모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사람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트럼프의 심리적 관점에서 관세정책을 바라봐야 우리가 승자가 되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요란하게 떠들며 이 사태를 키울 게 아니라 트럼프의 심리를 읽는 통찰력을 키워 치밀하고 내실 있는 접근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트럼프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정부 위정자로 발탁돼야 할 것이다.” 

    조 교수는 테이블에 놓인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잠시 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 벽면에 새겨진 ‘물가안정’ 글귀를 올려다봤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는 재정 분야 정책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부연 설명은 이렇다, 

    “윤석열 정부는 부채를 늘려 성장을 유도하는 정책은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출범 초기부터 총지출 억제를 통한 건전재정론, 부동산세·법인세·상속세를 아우른 전방위적 감세 조치를 과감하게 추진했지만,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 좋아졌는지는 의문이다. 2024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를 봤더니 통합재정수지만 43조4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더라.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이 재정건전성 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때 관리재정수지를 활용한다. 이 관리재정수지도 마이너스로 돌아서 104조800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냈다. 그러니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전년도(3.6%)보다 증가한 4.1%를 기록한 것 아니겠나. 이번 적자는 경기둔화와 법인세 감소로 인한 세수 부족이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팬데믹 이후 힘 실리는 정부 역할 확대론

    본인이 생각하는 재정 분야에 대한 성찰은 뭔가. 

    “‘작은 정부론’에 대한 성찰이다. 1980년대 영국 보수당의 대처리즘(영국 경제의 재생을 꾀하며 추진한 사회·경제 정책의 총칭)은 작은 정부를 지향했고, 영국의 경제부흥을 이끌어냈다.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해 물가가 높아지고 경기 또한 침체에 빠지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감세,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한 레이거노믹스를 펼쳤다. 하지만 코로나19 펜데믹을 거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높아지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그린 에너지 투자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부 역할 확대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정부의 경제 개입이 1930년대 대공항 이후 유례없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민간의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재정 적극주의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그동안 경제정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피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난제를 풀려면 차기 정부는 어떤 정책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보나. 

    “종합적 관점의 경제정책 수립 역량이다. 개별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예컨대 세금을 낮추면 재정지출도 동반 축소해야 한다. 정부가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면 경제성장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는 경제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정책 하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다원적이고 다층적이며 다변적이다. 현재 정부의 문제는 불요불급한 투자와 지출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좌우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정부가 등장해야 할 때다. 경제 대전환기에 정책, 시장, 제도, 인간을 이해하는 통찰력에 바탕을 둔 국가 경영 철학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차기 정부는 포퓰리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행정부가 중립적이고 전문적이며 현실에 토대를 둔 수준 높은 정책 역량을 갖춰야 경제 난국 돌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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