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대한민국 요동치게 한 122일의 기록

[긴급점검 | 尹 탄핵이 남긴 것]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에서 탄핵까지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5-04-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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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비상계엄 선포

    •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걸린 시간 5시간 59분

    • 찬성 204명, 반대 85명, 무효 8명으로 탄핵안 가결

    • 5시간 20분 만에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구속

    • 11차례 탄핵심판 변론, 헌재 평의 기간 38일

    • 4월 4일 11시 22분, 尹 대통령 직위 잃어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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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은 탄핵 결정문을 읽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윤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국회가 12월 14일 오후 6시 15분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111일 만의 결정이었다. 현직 대통령 파면은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였다. 

    비상계엄에서 탄핵까지 일련의 과정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전 국민을 잠 못 들게 한 것은 물론 탄핵심판을 두고 여론이 양분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과 헌법재판소 앞은 극한의 진영 갈등을 빚는 현장이 됐다. 파면 결정으로 모든 것이 일단락된 듯 보였으나 충격이 컸던 만큼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헌정사 두 번째인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사태, 그 122일간의 역사적 순간들을 되짚어 봤다. 

    ① 한밤중 비상계엄, 급박했던 5시간 59분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윤 전 대통령은 생방송 긴급 담화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린다”는 말로 시작한 선포문에는 국회 다수당의 횡포로 국정 마비에 대한 우려,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에 대한 우려, 국가안보와 헌정 질서 수호에 대한 의지 등이 담겨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오후 10시 27분경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는 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의 일이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하고 계엄사령관으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 계엄군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출동을 지시했다. 군병력과 경찰 특공대 일부가 국회 주변과 주요 시설에 배치됐고, 12월 4일 오전 12시 30분경 계엄군 일부가 국회의사당에 진입해 야당 의원들과 충돌이 발생했다. 한편,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대원 10명에게 경기 수원시 권선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과천청사 서버실 점거를 지시했고, 이들은 오전 2시경 선관위 본부 건물을 점거했다. 

    국회와 시민사회는 계엄군의 국회 및 선관위 진입을 입법·선거기관 침해로 규정하고 즉각 반발했다. 국내외 언론과 국제사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헌정 질서 파괴 우려를 담은 비판 성명을 쏟아냈다. 오전 12시 49분 국회의사당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가 개최됐고, 재석 여야 국회의원 190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여론의 압박이 이어지자 윤 전 대통령은 오전 4시 26분 비상계엄 해제를 공식 발표했다.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걸린 시간은 5시간 59분이었다. 국무회의를 통해 오전 4시 30분 계엄이 공식적으로 해제됐고, 계엄군은 주요 기관에서 철수했다. 



    ② 2차 탄핵안 가결, 계엄 후 11일 만

    비상계엄으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12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1차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의 책임이 있으나 탄핵으로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국민의힘이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계산에서였다. 

    탄핵안 가결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200명)의 찬성이 필요했다. 이날 본회의에는 야당 의원 192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안 표결 직전 본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해 출석 인원이 200명에 미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표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탄핵안은 자동 폐기됐다. 

    12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2차 탄핵안 표결이 개최됐다. 앞서 윤 전 대통령은 7일과 14일 두 차례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반복했는데, 이에 국민 여론은 악화됐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탄핵 찬성 쪽으로 이탈 표가 나와 결국 2차 탄핵안은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찬성 204명, 반대 85명, 무효 8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야 6당 의석이 전체 192석으로 가결되려면 야권 전원 찬성과 여권에서 최소 8명의 이탈 표가 나와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이상이 나온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1일 만의 일이었다. 헌재는 ‘2024헌나9’ 사건번호를 부여했으나 윤 전 대통령이 탄핵심판 접수통지서를 수령하지 않아 심판은 다소 지연됐다. 12월 19일 접수통지서가 발송돼 20일 대통령 관저에 정상적으로 도착한 것으로 보고 심판 절차를 진행했다. 

    탄핵안 가결 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국정을 운영했다. 그러나 한 권한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보류하자, 야당은 12월 27일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다. 직무가 정지된 한 권한대행 대신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고, 12월 31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제외한 나머지 정계선·조한창 후보자를 임명했다.

    ③ 3차례 소환 불응, 2차 체포영장 집행, 현직 대통령 첫 구속

    윤석열 전 대통령은 12월 4일 이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칩거했고, 비상계엄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내란 수괴’로 지목되면서 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6일 검찰은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를, 경찰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을 구성했다. 검찰은 8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체포하고, 국군방첩사령부와 육군 특수전사령부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이어갔다. 경찰은 11일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를 긴급체포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경호처 관계자들이 막아서면서 관련 자료를 임의 제출받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수사 과정에서 중복 수사 등의 혼선이 발생하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가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경쟁적으로 벌였기 때문. 앞서 11일 경찰과 공수처가 공조수사본부를 구성했지만,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과 중복되는 사안에 대해 공수처법에 따라 수사 우선권을 주장했다. 결국 검찰은 18일 윤 전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 대한 내란혐의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기로 결정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 및 구속도 진행됐다. 윤 전 대통령은 공수처의 18일, 25일, 29일 세 차례 소환 요구에 모두 불응했다. 결국 공수처는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 법원은 이튿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025년 1월 3일 공수처 수사관들과 경찰 병력 150명이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대통령 관저에 들어갔으나 경호처와 군인 약 200명이 막아서면서 6시간의 대치 끝에 체포는 불발됐다. 

    7일 체포영장이 재발부됐고, 15일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진행됐다. 경찰과 공수처는 오전 5시 10분경 체포영장 집행을 고지하고 관저 진입을 시도했다. 작전을 위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서울경찰청 등에서 형사 총 1100여 명이 동원됐는데, 경호처와 대치 끝에 윤 전 대통령이 유혈 사태를 우려해 자진해서 나가겠다고 결정해 오전 10시 33분 체포됐다. 영장 집행을 시작한 지 약 5시간 20분 만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윤 전 대통령은 경기 과천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조사를 받았고, 19일 오전 2시 59분경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증거인멸을 우려로 구속영장을 발부해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다.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에 격분해 이날 오전 3시 10분경 법원을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경찰과 충돌했다. 이후 경찰은 140명을 입건, 92명을 구속했다.  

    ④ 탄핵심판 11차례 변론, 52일 만의 석방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은 1월 14일부터 2월 25일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주요 쟁점은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위헌성, 국회 봉쇄 및 정치인 체포 지시 의혹 등이었다. 1월 1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첫 변론이 열렸으나 당사자인 윤 전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4분 만에 종결됐다. 

    16일 열린 2차 변론부터 국회 측과 윤 전 대통령의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윤 전 대통령은 21일 3차 변론기일부터 2월 25일 11차 변론기일까지 총 8차례 참석했다. 4~10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증인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백종욱 전 국정원 3차장,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조태용 국정원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한덕수 국무총리, 조지호 경찰청장 등 총 16명이었다. 2월 25일 11차 변론기일에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과 국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직접 최후 진술을 마쳤다. 

    한편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간 연장 신청을 불허했다. 이튿날 재신청도 불허당하자 검찰은 26일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후 3월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청구를 인용했고, 대검찰청에서 윤 대통령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하면서 체포 후 52일 만인 8일 윤 전 대통령은 석방됐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구속 시 통상 10일 이내 기소해야 함에 따라 1월 24일 자정까지 기소했어야 하지만 검찰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과 관련된 서류가 법원에 제출되고 반환되는 데 소요된 약 43시간 30분을 구속 기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기소 시점인 1월 26일 오후 6시 52분은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실제 시간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며 이를 제외하더라도 구속 기간은 1월 26일 오전 9시 7분까지로 해석된다고 보고 검찰의 기소 시점은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⑤ 평의 기간 38일,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인용’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이 종결된 2월 25일 이후로부터 헌법재판관 8명의 긴 숙고의 시간이 이어졌다. 역대 탄핵심판 평의 기간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 때 11일이었기 때문에 당초 2주 정도 걸릴 거란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선고기일조차 정해지지 않자 헌법재판관들 사이 기각과 각하, 인용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마침내 헌재가 4월 1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기일을 평의 기간 38일 만인 4월 4일로 지정했다. 역대 대통령 탄핵심판 가운데 가장 긴 평의 기간이었다. 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탄핵심판 선고가 시작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8명 만장일치 의견으로 11시 22분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문 권한대행은 탄핵심판 결정문 요지에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그 위법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중대하고, 파면을 통해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그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판시했다. 문 권한대행이 주문을 낭독한 즉시 효력이 발생해 윤 전 대통령은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부터 대통령 직위를 잃었다. 비상계엄을 일으킨 지 122일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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