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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군사에서 군사로, 전범국가의 놀라운 집념

일본의 우주개발사

非군사에서 군사로, 전범국가의 놀라운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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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우주 개발은 이토카와 히데오라는 천재의 고집으로 시작되었다.
  • 이토카와는 전범(戰犯)국가 일본이 받을 수밖에 없는 제한을 애국심과 지혜로 뚫고 나간 사람이었다. 이토카와가 우주로 가는 길을 열자 과학기술청이 나서서 강력한 액체로켓 개발에 도전함으로써 일본은 미국 유럽과 더불어 액체 수소로켓을 발사하는 최고의 우주 선진국이 되었다.
  • 지금 일본은 안보를 위해 우주 기술을 활용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의 우주 개발은 단 한 명의 천재로 인해 시작되었다. 바로 도쿄(東京)대학 교수였던 이토카와 히데오(系川英夫·1912~1999). 1935년 도쿄제국대학 공학부 항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일본의 3대 항공기 제작사였던 나카지마 비행기(現 후지중공업)에서 육군의 97식 전투기, ‘하야부사’로 불린 1식 전투기 등의 설계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즈음에는 독일로부터 건네받은 도면 몇 장을 들고 제트 전투기 ‘기카’ 제트엔진을 담당해 Ne-20 엔진을 만들었다.

1941년 도쿄제국대학의 조교수로 임용된 이토카와는 1948년부터 정교수로 활동했다. 전후 일본이 항공 개발에 제한을 받자 그는 바이올린을 연구하며 유유자적했다. 1953년 약 6개월간 미국을 둘러보고 돌아와서는 도쿄대에 5명의 회원으로 로켓연구클럽을 만들고 일본 정부에 로켓 개발 허용을 요구했다. 1958~59년이 국제지구물리관측년(IGY)으로 지정된 점에 착안해, 연구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로켓 개발을 추진한 것.

클럽 활동이 본격화되자 이토카와는 1954년 2월 도쿄대학 생산기술연구소(이하 생기연)에 AVSA(Avionics and Supersonic Aerodynamics·항공전자 및 초음속 공기역학) 연구반을 만들었다. 이 연구반은 1975년까지 태평양을 20분에 주파하는 ‘하이퍼소닉 수송기’개발을 목표로 했다. 이토카와는 로켓 개발에 관심조차 없던 정부와 기업을 설득해 연구에 투자하도록 만들었다.

이토카와의 펜슬로켓

1954년 부족한 예산으로 다양한 소형 로켓을 개발해 연소시험을 했다. 그때 탄생한 것이 직경 1.8cm, 길이 23cm, 무게 200g의 펜슬로켓이다. 펜슬로켓에는 더블베이스 추진제, 즉 무연화약이 사용되었다. 무연화약은 니트로글리세린과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주성분으로 하고 안정제와 경화제를 혼합 압축시켜 만든 것이었다. 펜슬로켓의 첫 수평발사는 1955년 3월 11일, 고쿠분지역 근처의 총기공장 권총사격장에서 있었다.



4월 12일에는 정부 관계자와 언론이 참가한 가운데 공개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1.5m의 발사대에서 수평으로 발사된 펜슬로켓은, 연구진이 세워놓은 종이스크린을 뚫고 나가 그 뒤에 있던 모래더미에 박혔다. 이후 연구진은 1개월 이상 시험을 계속하며 실제 비행을 위한 사전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리고 지바에 있는 생기연에서 50m 길이의 선박실험용 수조 안에서 300mm의 2단형 펜슬로켓 수평발사시험을 실시했다.

그 후의 시험은 아키타현의 미치카와(道川) 해안에서 했다. 미치카와는 1955년 8월부터 1962년 사이 일본 로켓 기술 발전의 근거지로 자리매김했다. 1955년 8월 6일 미치카와에서 처음으로 펜슬-300 로켓의 경사 발사가 있었다. 이 로켓은 고도 600m, 거리 700m를 16.8초간 비행했다. 펜슬로켓 다음은 베이비로켓이었다. 이 로켓도 직경 8cm, 길이 120cm, 무게 약 10kg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베이비로켓은 2단식의 무연화약 고체로켓으로 S형, T형, R형의 세 모델이 만들어졌다.

이 로켓들은 1955년 8월부터 12월 사이 발사되었는데, 고도는 6km 정도에 달했다. 베이비로켓-S형에는 스모크 파우더를 섞은 추진제를 넣어 연기가 나게 함으로써, 궤적을 추적해 비행 성능을 확인했다. T형에는 일본 최초로 원격측정장비를 탑재했다. R형을 통해서는 탑재기기의 회수에 성공했다. 베이비로켓의 시험발사가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2단 추진장치가 점화되지 못했고, 진공관에 문제가 발생했다. 로켓 앞쪽에 장착한 관측카메라가 제일 중요한 영상을 찍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실패를 극복해나가면서 로켓 기술의 걸음마를 착실히 배워나갔다.

펜슬 아닌 진짜 로켓으로

국제지구물리관측년이 다가오면서 로켓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국제지구물리관측년 프로젝트에는 지구상 9개소에 관측지점을 세운다는 것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일본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토카와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빨리 관측용 로켓을 완성시켜야 했다. 베이비로켓의 성공을 확인한 이토카와 팀은 실물 로켓인 ‘카파(Kappa)’개발에 돌입했다.

이토카와 팀은 순차적으로 로켓을 대형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펜슬, 베이비로켓 이후에는 알파, 베타, 카파로켓을 개발하며 노하우를 쌓은 후, 오메가로켓으로 고도 100km를 정복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제지구물리관측년까지 시간이 촉박해, 바로 카파로켓으로 고도 100km에 도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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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 인텔엣지(주) 대표 nava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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