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당선으로 ‘보수 재건’ 주도할 정치적 자산 확보
“시작도 끝도 시민과 함께였기에 이길 자신 있었다”
‘윤어게인’ 대체할 새 보수 가치와 이미지 구축 과제

6·3 보궐선거로 당선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6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6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의 서사 구조는 대개 비슷하다. 권력 승계가 빈번했던 봉건시대와 주권자 국민이 선거를 통해 권력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 시대의 그 과정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원리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주체가 ‘민초’와 ‘주권자’라는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 검사에서 대선주자로
6·3 보궐선거에 부산 북구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생환한 한동훈 의원도 서사 구조가 닮은꼴이다. 강남 8학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시쳇말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였다. 검찰 입문 후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조선제일검’으로 통했다.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이른바 ‘추미애-윤석열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그는 부산과 충북 진천, 사법연수원을 떠돌며 네 차례 좌천되는 시련을 겪었다. 위기의 순간, 그는 강력한 조력자인 윤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으며 중앙 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첫 법무부 장관, 그것도 최연소 장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엘리트 검사에서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에 이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발탁됐지만, 그가 이끈 2024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패했다.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다시 당대표직에 오른 뒤에는 자신을 장관과 비대위원장으로 발탁한 용산(윤석열 당시 대통령)과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결국 그해 12월 계엄과 탄핵이란 파국을 맞았다.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문제와 당원 게시판 사건(한 의원 가족이 윤 전 대통령 내외를 비판한 글을 당원 게시판에 올린), 계엄과 탄핵 등으로 윤 전 대통령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치인 한동훈’은 ‘엘리트 검사’ 출신이란 꼬리표를 비로소 떼게 된다. 계엄 선포 직후 제일 먼저 ‘무효’를 선언하고,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를 주도한 그를 주권자 국민이 ‘윤(尹)과 다른 인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보수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았고, 지난해 21대 대선 이후 당권을 장악한 장동혁 체제는 그를 제명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가 6·3선거 히어로로 다시 중앙 정치 무대에 돌아온 것이다. 그의 국회 입성은 정치인 한동훈 컴백,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계엄과 탄핵으로 궤멸되다시피 한 보수 재건의 명분을 내세우고 살아났다는 점에서다. 그것도 보수세가 강한 PK,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 북구갑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점에서 그는 ‘보수 재건의 아이콘’으로 비상할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한동훈 의원은 유권자들과 만나는 첫 선거를 매우 공격적이고 헌신적으로 치러냈으며 결과까지 만들어냈다”며 “그가 부산 북구갑에서 득표한 42.97%는 ‘미래의 보수’를 상징하는 숫자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산 북구갑에 출마하며 그가 내건 구호는 “끝까지 한동훈”이었다. 6·3선거뿐 아니라 2년 뒤 치러질 2028년 총선,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부산 북구갑에서 ‘끝까지’ 정치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 “끝까지 한동훈”이다. 그런데 이 슬로건이 6·3선거 막바지에 빛을 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까지 부산에 총출동하고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이 총력전을 펼치면서 무소속 후보였던 그는 양쪽에서 협공당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시민을 믿었다”고 강조했다.
시민의 힘으로 다시 국회 본회의장에 서다
“두 전직 대통령이 부산을 다녀간 뒤 양당 지지층, 특히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하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로 확연했다. 그럼에도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의 표정과 눈빛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민과 함께 시작했고, 끝까지 시민과 함께했기에 이길 자신이 있었다.”6월 5일 채널A 뉴스 출연을 위해 대기실에 머물던 그는 ‘신동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선거 후일담을 이렇게 말했다. 이날 채널A 뉴스에 출연한 그는 국회에 입성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제가 국회 본회의장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2024년 12월 3일 밤이었다. 그때 했던 결단이나 행동으로 정치적 극형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늘(6·3재보선에 당선한 의원들이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 선서를 했다) 시민들께서 시민의 힘으로 다시 저를 그곳(국회 본회의장)으로 불러주셨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 선거운동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것보다 열 배 더 열심히 의정 활동 하겠다고 약속드린다.”
“끝까지 한동훈” 슬로건에 담긴 두 번째 의미는 ‘정치인 한동훈’과 ‘끝까지’ 함께해 달라는 호소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의 정치적 목표는 차기 대선 승리다. 계엄과 탄핵으로 무너진 보수를 재건한 결과물이 등 돌린 국민의 지지를 다시 얻어 집권에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대권을 잡으려면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와 그 뜻을 함께할 ‘동지’를 규합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리고 다수 대중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수권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제명 결정 후 첫 공개 행보였던 2월 8일 서울 송파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동훈 콘서트’에서 선언한 “헌법과 사실, 그리고 상식에 부합하는 좋은 정치를 위해 함께 행동하는 다수의 역전승을 시작하자”는 선언은 차기 대권을 향한 ‘정치인 한동훈’의 출사표였다. 6·3선거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하는 지지자, 이른바 ‘동지’가 적지 않음을 과시하며 첫 승을 거뒀다. 그에게는 이제 ‘세력’을 규합해 당권을 잡고, 2028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차기 대선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는 과연 보수 재건의 아이콘이 돼 차기 대선의 최후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이현우 서강대 석좌교수는 “당에서 제명된 그가 무소속으로 살아났다는 점에서 보수 재건을 주도할 최소한의 정치적 자산은 확보한 셈”이라며 “다만 검사 특유의 배타성을 극복하고 포용력을 발휘해 보수가 원하고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통 큰 정치를 펼칠 수 있느냐가 그의 차기 대선 직행 가능성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보수’라고 하면 기존 가치와 이념을 ‘지킨다’는 소극적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계엄과 탄핵으로 기존 보수 가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현 상황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보수 가치를 세우는 ‘창조적 보수’라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에 이제 막 진출한 한 의원에게는 ‘윤어게인’을 대체할 새로운 보수 가치와 이미지를 구축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는 셈이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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