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 승복했는데 전면 재선거? 엄밀히 ‘불법 재선거’

[정밀추적┃6·3 참정권 침해 사태] 민주주의 수호 외치며 헌정 질서 무너뜨리는 역설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6-06-16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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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질 빚어진 표 차이가 당락 영향 입증돼야 선거 무효

    • 정원오 승복…전면 재선거가 오히려 ‘불법 재선거’

    • 2000년 美 부시 vs 고어 선거도 부정선거 논란

    • 고어 재검표 주장, 연방대법원 막아서며 사태 종료

    • 美 민주당 불복했다면 법과 질서 부정하는 사태

    • 김어준·전한길, 부정선거론으로 민주주의 훼손

    • 민주주의 지키려면 ‘전면 재선거’ 구호 멈춰야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 씨가 6월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관리위원회가 폐기했다고 밝힌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용지 보관상자 추정 물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 씨가 6월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관리위원회가 폐기했다고 밝힌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용지 보관상자 추정 물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오세훈 후보(현 서울시장)의 당선은 부정선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낙선 역시 부정선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6·3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되는 사유가 됩니다.”

    6월 12일, 한국사 강사 출신 보수 유튜버 전한길 씨가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된 잠실개표소 앞에서 한 말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송파구뿐 아니라 서울시 전체, 더 나아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체를 무효로 하고 다시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전후 맥락을 확인해 보자. 지방선거 당일, 잠실7동 제2투표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로 인해 투표용지가 빠르게 소진됐다. 결국 오후 4시 46분 무렵 투표용지가 완전히 동났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참관인에게 고지한 후 투표를 일시 중단하며 대기 중이던 유권자들에게 번호표를 발급했다.

    투표용지는 일련번호가 부여돼야 한다. 그 절차를 밟기 위해 시간이 더 소요됐고, 그러는 동안에도 투표용지 요청이 빗발쳤다. 선관위는 결국 일련번호 없는 ‘무번호 용지’를 배부했다. 그럼에도 오후 5시 9분 무렵이 되자 무번호 투표용지마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투표 종료 시간인 오후 6시부터 인근 투표소에서 빌려온 투표용지로 투표를 진행했고, 밤 10시가 돼서야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가 마무리됐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투표 중단은 송파구만의 일이 아니었다.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용지가 부족했고, 26개소는 투표 중단 사태를 겪었다. 전 세계에 없어서 못 파는 메모리 반도체를 거의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나라, LNG 선박을 건조하고 원자력발전소를 지어내는 나라에서 종이가 없어서 투표를 못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전면 재선거가 오히려 ‘불법 재선거’

    이 사안의 심각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순한 행정 착오나 실수로 여길 일이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 전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마치 스스로의 역할이 ‘행정부 수반’에만 머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그래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동시에 헌법 제66조 1항에서 명시하고 있듯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이며, 2항에서 정하듯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할 헌법적 가치가 너무도 가볍게 무시당하는 모습 앞에서 유권자의 분노가 솟구쳤다. 스스로의 구호를 ‘재선거’로 한정 짓고 요구 사항을 압축하며, 기존 정치권의 개입을 차단하는 모습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다수는 조직된 소수에게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법. 언제부터인가 올림픽공원에서 태극기를 밀어내고 성조기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한 직후 시민과 학생들에 의해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전 씨는 다음 주가 되자 올림픽공원에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자신의 지론인 부정선거 음모론을 펼치며 전면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소위 ‘윤어게인’ 세력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이미 대법원 판결을 비롯한 법적 절차를 통해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윤어게인 세력을 등에 업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지방선거 성적표가 보여주듯 민심의 심판도 끝난 상태다. 우리는 이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선거와 민주주의, 투표와 의사결정의 본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두 번 갖기 힘든 천금 같은 기회인 것이다.

    필자 또한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당 투표소가 속한 선거구의 기초의원이나 기초단체장 등의 경우라면 그렇다. 아주 작은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선거인 만큼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재투표를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반면 서울시장 선거나 지방선거 전체는 어떨까.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이 선거 전체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수진영의 오 시장이 당선됐음에도 그것을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전 씨가 그런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보수를 지키기 위한 보수 유튜버라고 자처하지만, 보수진영에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하는 이유가 뭔지 의아할 따름이다.

    전면 재선거 주장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애초에 투표용지 부족은 재선거를 치를 법적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재선거 절차를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진 사람이 불복하거나, 이긴 사람이 기권하거나, 법원이 재판으로 선거를 무효로 해야’ 재선거가 치러진다. 선거가 무효가 되려면 선거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진 표의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었음이 명백히 입증돼야 하는데, 송파구에서 벌어진 일은 전체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전 씨의 주장대로 재선거를 하면 그 재선거는 ‘불법 재선거’가 된다.

    둘째, 이미 정 후보가 결과에 승복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전 씨도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정 후보의 낙선 역시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은 송파구의 투표와 개표가 지연되면서 재선거 여론이 솟구칠 때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라며 재선거 요구를 일축한 바 있다. 그러한 고압적 태도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결론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이미 2위 후보가 패배를 인정한 마당에 재선거를 운운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소리다.

    필자는 지금 민주주의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민주적인 선거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이야기다. 이번 6·3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처럼 절차에서 다소 논란이 발생한 경우, 2위를 한 후보자가 그 논란을 더 끌고 가서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대신 깔끔하게 승복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정치 이벤트 중 하나다.

    조지 W 부시 vs 엘 고어 대선에서도 벌어진 개표 논란

    미국에서 벌어졌던 일을 떠올려 보자. 2000년 대선,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당시 후보)이 맞붙었다. 미국 대선은 주 단위 선거의 승리자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도록 돼 있다. 선거 당일 부시 전 대통령과 고어 후보의 플로리다주 득표 차는 1784표. 고작 그 숫자로 인해 대선의 승패가 갈렸다.

    플로리다주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전까지 사용하던 투표용지보다 복잡하고 무효표가 많이 나오기 좋은 투표용지를 사용했다. 도장을 찍거나 펜으로 체크하는 대신 구멍을 뚫는 식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구멍이 뚫린다 해도 그 구멍을 막고 있던 종이, 이른바 ‘천공밥’이 다 떨어지지 않아 무효표가 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잽 부시였다는 점이 그 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대통령선거 투표에 대한 수작업 재개표 결과를 최종 집계에 포함하라고 판결했다. 출구조사 결과를 본 후 얼마 있다가 부시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밝혔던 고어 후보는 입장을 바꿔 개표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표 차는 537표로 줄어들었다.

    그 시점에서 연방대법원이 개입했다. 연방대법원은 재검표를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법원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고어 후보는 부시 전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 한번 철회했던 패배 승복의 뜻을 다시 밝혔다. 한 달 가까이 진행된 미국 대선 재검표 논란에 종지부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사건을 ‘연방대법원의 정치 개입’으로 여기곤 한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결과는 마음에 들지만 그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는 식의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일리가 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만약 그때 민주당이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끝까지 재검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면 어땠을까. 법과 질서라는 가치에 의해 작동하는 미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고어 후보를 찍었던 민주당원 혹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졸지에 국가의 법과 질서, 시스템 전체를 부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을 테니 말이다. 고어 후보의 패배 승복은 미국 전체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부정선거 주장, 김어준과 다를 것 없어

    여기서 우리는 ‘선거를 왜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일까. 그것은 승리자의 관점일 뿐이다. 패배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선거는 내가 왜 졌는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정 후보의 패배 인정은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선관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등에 업고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다. 패배의 결과를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정 후보가 적절한 시점에 확실하게 선거 결과에 대해 승복 의사를 밝힌 덕분에 대한민국의 선거와 헌정 질서는 그나마 더 큰 위기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는 보수진영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친(親) 민주당 계열의 유튜버인 김어준 씨야말로 부정선거 음모론의 ‘원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리를 거둔 제18대, 제19대 대선을 두고 온갖 음모론을 제작해 퍼뜨렸다. 

    만약 정 후보가 적절한 시점에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김어준-전한길 연합’이라는 희대의 조합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세력은 다르지만, 아무런 죄책감도 거리낌도 없이 근거 없는 음모론을 유포하며 대중을 현혹하고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행보는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든 표는 소중하다. 국민의 참정권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헌법상의 권리다. 하지만 투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한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안을 두고 전면 재선거를 외치는 것은 선거의 본질과 기능을 외면하는 것이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패자가 승자를 인정하며, 승자가 패자를 존중할 수 있게 해주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한 수단일 뿐이다.

    이미 패자가 승복한 서울시장 선거,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와 무관한 그 외 지역의 선거를 다시 하자는 주장은 그저 황당할 뿐이다. 단언컨대 그것은 민주주의 질서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다. 끝없는 재선거 요구, 그것은 오히려 나라를 망가뜨리려는 세력, 내부의 적, 이른바 정권과 공생하는 가짜 야당 ‘엔추파도스(Enchufados·플러그가 꽂힌 사람들, 즉 겉으로는 반대 세력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결탁해 체제를 유지해 주는 가짜 반대파)’의 구호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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