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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취미·휴식 구분없는 ‘테마 마니아’로 변신하라

일·취미·휴식 구분없는 ‘테마 마니아’로 변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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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세 차례나 옮겨다니며 도합 19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끝내고 꼭 5년 전 프리랜서로 나선 필자를 먼저 예로 들어보자.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은 역사여행과 그에 따른 연구였는데, 회사에서 하는 일은 그것과 너무 달라 늘 고민했다. 벌어놓은 돈이라도 많으면 부담없이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 수 있겠지만 역사여행을 하면서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갈 일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정년퇴직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겠다 싶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통이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곧 우리나라 문화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그렇다면 사람들은 세계문화유산이 도대체 뭔지, 다른 나라에선 어떤 것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지 궁금해할 것 아닌가. 그걸 현지에서 취재해 신문에 기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련자료를 조사하고 내가 정말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점검해봤더니 웬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곧바로 취재계획서를 만들어 신문사로 달려가 뜻을 전하자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1년 동안 세계문화유산 탐방을 떠났다. 또 그걸 발판으로 삼아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하고 책도 낸다면 프리랜서로 나서도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아직은 어려운 점이 많지만 날이 갈수록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 믿기에 희망을 갖고 이 일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란 필자처럼 글 쓰는 사람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조직에 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에 해당할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가는 대부분 프리랜서라 할 수 있고, 전문분야라 할 수 있는 방송 번역 통역 만화 사진 바둑 스포츠 분야도 이에 포함되며, 이제 와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소호(SOHO·Small Business Home Business)’와도 구별하기 어려워 그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사이버 공간을 이용해 전자상거래, 정보수집 및 교류, 상담, 과외지도 등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이런 자영업자와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장사에 남다른 소질을 발휘,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기도 했던 필자의 대학 친구는 ‘원단(wondan),’ ‘양말(yangmal)’, ‘감자(gamja)’ 등 많은 도메인을 갖고 있는데, 시장 규모가 엄청난 이런 품목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주고받으며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벌일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 막대한 자본과 시설을 투자해 사업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며 “사업은 모든 것을 손에 쥐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한다.



공간과 시간의 벽을 허무는 인터넷이 있기에 사업의 성패는 기업의 규모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떤 면에서는 순발력 있는 개인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이는 개체들의 ‘커리어 창업시대’가 열렸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니아의 경쟁력

어릴 때부터 나비에 관심이 많은 내 선배의 친구는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10년 넘게 찍어 모은 나비 사진 가운데 특이한 나비 문양을 기본 디자인으로 삼아 넥타이를 만들어 팔고 있다. 그런가 하면 뜨개질 취미를 살려 인터넷에 손뜨개 가게를 연 주부도 있고, 과일을 아주 좋아하는 어떤 이는 과일을 그냥 파는 것이 아니라 서울 신촌에 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고 차 대신 껍질 깐 과일을 팔고 있다. 상호도 그럴듯하게 ‘과일까게’로 내세웠다. 이곳에선 카페에서 커피를 리필해주듯 과일을 리필해준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한 정회선씨는 순수학문인 언어학이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상식을 깨겠다며 자신의 전공을 인터넷과 연결, ‘언어과학’과 ‘스톡캐스터’란 회사를 차렸다. 자신의 취미를 살려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자신의 취미나 기호, 특기를 틈이 나면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아예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경쟁력이 높겠는가.

마니아(mania)의 강점이자 특징은 이렇듯 높은 경쟁력에 있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잠을 자면서도 그 일에 관한 꿈을 꾸는데 누가 그를 앞설 수 있겠는가. 미국의 ‘포천’지도 최근호에서 미국 기업들이 갖고 있는 경쟁력의 원천은 마니아, 즉 어떤 일에 미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도 이런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일 것이다.

그런데 프런티어 정신은 서부 개척이라는 현실적 영토 위에서나 존재했던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첨단과학의 산물이자 가상세계인 사이버 영토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대표적 인물로 인터넷 서점 ‘아마존(Amazon)’을 창업한 제프 베조스를 꼽을 수 있다. 그가 95년, 시애틀에 있는 차고에 컴퓨터 3대를 놓고 창업하려 했을 때 그의 성공을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부모도 아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길로 나갔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은 99년에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안정감을 줄지는 몰라도 계속 같은 일을 하면서 관료주의와 싸우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벌이는 데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겠다”며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곤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과학자나 사업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은 대부분 아주 적은 자본, 거의 무일푼으로 일을 시작했다. 오로지 창의성과 용기,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일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벤처 열풍이 꺾이기가 무섭게 벤처를 악용한 이들까지 가세하면서 급기야 우리 사회에 벤처 무용론까지 일긴 했지만, 우리가 기댈 마지막 언덕은 벤처뿐이다. 무늬만 벤처가 아닌, 모험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창의력이 꿈틀대는 아이디어를 펼치기 위해 밤을 낮처럼 밝히며 일하는, 명실상부한 그런 벤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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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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