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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취미·휴식 구분없는 ‘테마 마니아’로 변신하라

일·취미·휴식 구분없는 ‘테마 마니아’로 변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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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테마를 가진 마니아들은 일을 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철저하게 따지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다 그 일을 하면서 얻는 경험은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쌓이기에 언젠가는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급하게 비용대비 효과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코스트 개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를 당신의 경우와 비교해 보라. 회사 일을 위해 당신 개인의 돈과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고, 그에 대한 보상을 얼마나 기대했으며, 상사나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을 때 얼마나 섭섭했는지를.

사람들은 그것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비용대비 효과를 따지지만, 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자신이 미쳐 있는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별한 보상이 없어도 열을 내서 밤을 지새우곤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니아는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지닌다. 이와 관련해 프리랜서 광고인 박흥준씨는 ‘네 안의 가능성을 찾아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근원은 미치는 것이다. 콜라 광고를 만들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라고 하면 그때서야 음식점을 물어물어 찾아다닌다. 그렇게 하면 삼류 광고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란 자신의 취미나 특기 등으로 행동반경을 좁혀 특정 분야에 에너지가 집중된 사람을 말한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연극배우 이름을 줄줄 외고, 그 사람의 사생활도 꿰고,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다 알고, 연극을 통해 어떤 인간관계를 맺는지도 알아야 한다. 극장의 위치는 물론, 그곳으로 가는 교통편까지 그림을 그려내듯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겐 남다른 고집도 있고, 그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일에 대한 강한 열정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조직문화가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이들만의 자랑이고 힘이다. 한때 프랑스 문인들 사이에 ‘엘랑 비탈(럏an vital)’이란 말이 유행됐던 적이 있다. 이는 ‘생명력’이란 뜻으로 주로 철학나 예술 분야에서 쓰인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엘랑 비탈이 ‘일’이라는 경제분야, 아니 보통사람들의 일상에까지 침투해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바로 이 마니아들에 의해서. 일이 예술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혼과 분리될 수 없는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거나 전문가에게서 얻는 지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도 열정 앞에서는 눈 녹듯 풀린다. 그들이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그것은 단지 그들의 용기나 의지를 시험해 보는 것일 뿐 그들을 쓰러뜨리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열정은 이런 것이다.

오픈 칼라(Open Collar)

그러나 ‘나인 투 파이브’가 적용되는 회사에서는 이러기가 쉽지 않다. 모든 일은 프로젝트별로 진행되기 십상이어서 일을 늘 그런 마니아에게 맡길 수가 없다. 비전문가들이 일을 하기에 비용은 많이 드는데도 질은 떨어지기 일쑤다. 따라서 원가는 상승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기업도 마니아들에게 일을 맡기는 게 질과 비용 면에서 모두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웃소싱 개념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프리랜서나 자영업자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어준다. “개체의 시대라면 개인만을 위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사회의 궂은일은 누가 할 것인가” 하는 우려의 눈으로 ‘개체의 시대’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이 대목만은 쉽게 수긍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앞다투어 벌어지는 구조조정이란 것도 과거의 조직 중심 시스템이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고비용 구조를 저비용 구조로 바꾸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마니아들을 육성하고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마니아들이 주축인 프리랜서나 소호 자영업자는 주로 자신의 집을 터전으로 삼고 활동한다. 그래서 ‘재택노동’ 혹은 ‘재택사업(Home-based Business)’이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이들에게는 출·퇴근이 없고 복장도 자유롭다. 일찍이 “2차세계대전 이후 30여 년간 노동자들이 향유했던 평생직장 같은 것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전 미국 노동장관)는 이들을 화이트 칼라로도 블루칼라로도 딱 잘라 분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택노동’의 저자 폴 에드워드는 이들에게 화이트 칼라도 블루 칼라도 아닌 ‘오픈 칼라(Open Collar)’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줬다. 그것은 자유와 자율, 그리고 융통성을 상징하는 자유복장을 뜻했다. 재택 노동자는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맬 필요도, 스커트를 걸치고 하이힐을 신을 필요도 없다.

이들에게는 조직에서 으레 있기 마련인 상하관계의 딱딱한 위계질서 같은 것도 없다. 늘어지게 늦잠을 잘 수도 있고 공원을 한 차례 산보한 다음, 느긋하게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몰입이야말로 이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최대 무기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그 결과로 소비자(주문자)로부터 직접 평가받고 보상받을 뿐이다. 그런 만큼 성취감도 크다. 대개 소비자와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를 직접 체감,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이나 용모와 신체에 핸디캡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주위의 시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에 더욱 좋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감독자가 없기 때문에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늘어지게 잘 수 있다고 해서 마냥 늦잠을 잘 수도 없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시간만 보내서도 안 된다. 몸이 아파서도 안 된다. 회사라면 유급 병가를 얻을 수도 있고, 연월차 휴가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오픈 칼라에겐 그런 것이 없다.

집안에 대소사가 생겨도 곤란하다. 쉴 수는 있으되 소득의 감소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승진·승급도 없으며, 일자리를 잃게 돼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으며 퇴직금도 당연히 없다. 출장을 가야 할 때도 남이 경비를 대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기 책임으로 해나가야 한다. 기획능력과 마케팅 능력까지 갖춰야 하며, 홀로 있음으로써 생겨나는 고독감도 이겨내야 한다. 철저하게 ‘자율·자급형 인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능력있고 건강하다면 정년을 모르고 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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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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