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업과 시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恨)을 시원스레 풀어주는 소나기처럼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국운을 가로막는 먹구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국민들의 인식수준이 파업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낮은 것은 아니지만, 파업이 일상화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고 있다.
파업은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만족의 수준’이 ‘국민적인 관용의 수준’을 넘을 때 정당성을 상실한다. 아무리 합법적인 파업이라고 해도 국민정서가 돌아서면 실패로 끝날 개연성은 더욱 높아진다. 파업 당사자들이 국민계몽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데다, 한국사회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다기화된 각양각색의 위험과 갈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파업의 격렬성과 시위대의 주장을 관찰하다 보면 한국사회가 금세라도 침몰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이 사실이다.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은 후 가뜩이나 소심해진 탓이기도 하거니와, 집단충돌에서 빚어지는 손실은 결국 당사자들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감당해야 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보면 파업과 이해충돌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은 덜 수 있는 근거들이 더러 발견되기도 한다. 우선 ‘국민소득 1만달러’의 발전단계에 내포되어 있는 갈등의 수준을 따져볼 때 그렇다.
세계 각 나라의 성장궤적을 비교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국민소득 2000달러와 6000달러에서 사회 전체가 요동치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것을 ‘경제성장의 정치지대’라고 한다면, 국민소득 2000달러와 6000달러는 정치와 사회영역에서 전면적인 패러다임의 변혁을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국민소득 6000달러를 통과하던 때가 1990년대 초의 민주화 시기와 일치하고 그후 패러다임의 변화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왔음을 생각하면, 현재의 갈등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완료하지 못해 치르고 있는 ‘실패의 비용’인 셈이다.
더욱이 그후 한국사회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IMF사태를 겪지 않았던가. 경제를 파탄시킨 책임의 소재를 밝히지 않은 채 제도개혁을 통해 전국민에게 무작위로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위기관리정책은,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방어와 이익관철을 위해 투쟁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이익갈등의 조정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적·구조적 재난이 자신에게 엄습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은 오직 집단투쟁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 이런 욕구를 반영한 결과이자 ‘방어의식’을 ‘투쟁의식’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