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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처럼 얽힌 갈등의 현장

머리띠 동여맨 대한민국, 기대수준 안 낮추면 막나간다

난마처럼 얽힌 갈등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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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은 갈등론자들의 전유물인가. 노동계 하투(夏鬪)가 소강상태로 접어들긴 했지만, 사회 각계에서 분출하는 갈등의 진폭은 좁혀질 줄 모른다. 참여정부 들어 전례 없이 폭증하는 사회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법은 없는가.
난마처럼 얽힌 갈등의 현장

7월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에서 전경련을 상징하는 허수아비를 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는 금속산업연맹 소속 노동자들

“허리 아파 어깨 아파, 골병 대책 마련하라!”“비정규직 차별 없는 주40시간 실시하라!”7월2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 민주노총(위원장 단병호) 산하 금속산업연맹의 ‘총파업승리결의대회’가 막 시작됐다. 1000여 명 가량의 수도권지역 노동자들이 금감원 건물 앞 차도를 가득 메웠다. 집회가 시작된 후에도 ‘단결투쟁’ 문구가 적힌 머리띠와 노조 조끼 차림의 노동자들을 태운 전세버스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날 집회는 서울·부산·울산·창원 등 전국 12개 도시에서 금속산업연맹 소속 노동자 9만여 명이 동시참여한 대규모 시한부 연대파업의 하나. ‘철의 노동자’ ‘파업가’ 등이 울려퍼지자 개별 단위노조들의 깃발과 피켓이 연신 아래위로 오르내렸다.

노동자들의 주장은 ▲단체협약 노동시간 주40시간으로 단축 ▲근골격계 직업병 대책 마련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 ▲임금인상과 최저임금 현실화 등 이른바 ‘4대 임단협 공동요구안’을 사용주들이 받아들이라는 것. 이들은 “철도노조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한 노무현 정권은 개혁할 자세부터 안 돼 있다” “공권력 투입은 전체 노동자에 대한 선전포고다” “자본가단체와 언론이 노동자의 절박한 요구를 집단이기주의와 정치투쟁으로 오도하고 있다”며 정부와 재계, 언론을 강력히 성토했다.

“노무현 정권의 오락가락을 보수세력이 부채질하는데, 과연 누구 목소리가 큰지 한번 붙어보자. 우린 수십 명씩 감옥에 보내면서 살아왔다. 끝까지 가보자!”는 극단적 표현들도 쏟아졌다. 그러나 몇몇 노동자는 “경찰이 새까맣게 깔렸다”며 근심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1시간30분 후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몰려간 곳은 50m 남짓 떨어진 전경련 회관. 곧이어 “전경련 해체” 구호와 동시에 노동자들이 던진 계란들이 회관 건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기자의 머리 위로도 계란 몇 개가 지나갔다. 터진 계란들은 건물 정면에 부착된 대형 플래카드 위로 지저분한 얼룩을 남기며 흘러내렸다. 거기에 적힌 캐치프레이즈는 이랬다. ‘새 정부와 함께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어갑니다-전국경제인연합회.’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2시간 반 동안 같은 건물 내에선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 주재로 ‘신(新)노사문화 확립을 위한 회원사 간담회’가 개최돼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소송, 가압류 등 가능한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엄정하게 취할 것이란 내용을 포함한 ‘신노사문화 확립을 위한 우리의 다짐’ 결의문을 채택한 터였다.

불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물 안팎에서 벌어진 이같은 노(勞)와 사(使)의 첨예한 대치는 최근 잇따른 사회갈등들의 한 단면을 극명히 보여준다. 갈등의 현장에서도 짭짤한 재미를 보는 이들이 없진 않다. 무더운 날씨 덕분에 얼음에 재운 생수와 캔음료를 연거푸 팔아대던 한 40대 여성 노점상은 “늘 하는 사람이 (시위)하는 바람에 매상이 오르지 않는다”면서도 곁에 있던 남편에게 혼자말처럼 툭 던졌다. “(시위대가) 저쪽으로 가면 내가 (손수레) 끌고 갈게.”

2003년 한국사회는 갈등이 지배중

시위현장에서 화염병과 마스크, 치약이 자취를 감춘 요즘이지만 사회 각계에서 분출하는 극한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7월2일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6말7초(6월말∼7월초)’에 벌어진 노사분규만 살펴봐도 조흥은행 노조 파업(6월23일 타결), 부산·대구·인천지하철 등 3개 노조 공동파업(6월24일), 철도노조 파업(7월1일 파업 철회), 한국노총(위원장 이남순) 하루 총파업(6월30일) 등 릴레이 파업이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당초 7월6일로 예정됐던 화물연대의 재파업 찬반투표 실시가 유보되고, 7월11일 파업을 예고했던 26개 지방공사 의료원 노조가 일단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일부 단위노조의 경우를 제외하곤 노동계 하투(夏鬪)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모양새다.

하지만 갈등은 노동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집단요구의 분출도 그에 못잖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집단요구의 분출이 곧잘 정부와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진다는 사실이다.

‘필승! 신도시 백지화, 꿈은 이루어진다.’ ‘날강도 노무현 정권, 신도시 철회하라.’ ‘주민동의 없는 강제수용! 건교부가 투기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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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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