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3일 대순진리회 이유종(李有鍾·66) 종무원장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기자와 동행한 한길봉사회 김종은(56) 회장은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다른 유명인사들은 급식소에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데, 종무원장님은 직접 밥도 퍼주셔서 남다른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큰 도움을 주실 줄은 몰랐다”며 그가 환하게 미소지었다.
한길봉사회는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독립문소공원에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세워놓고 14년째 독거노인과 노숙자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왔다. 비용은 모두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김 회장의 사재(私財)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난 3월 서대문구청으로부터 퇴출명령을 받아 봉사활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공원내 무료급식이 동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돈이 많다면야 번듯한 무료급식소를 짓지요. 몇 해 전 간신히 마련한 컨테이너 박스가 철거된다면 어디에서 노인 분들께 점심을 대접해드리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한번은 구청에서 인근 교회를 무료급식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알선해놓았다고 해 기쁜 마음에 찾아갔더니 목사가 ‘신도들이 반대한다’며 거부하더군요. 그러던 중 지난 8월 종무원장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겁니다.”
우연히 한길봉사회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이유종 종무원장은 “노인들이 비바람을 피해 식사하고 휴식할 수 있게 조그만 건물이라도 사면 좋겠다”며 한길봉사회에 15억원을 기증했다. 김 회장은 “기증한 액수에 맞춰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 총면적 155평의 번듯한 건물을 매입할 계획”이라며 “지금까지는 점심 한 끼만을 제공했지만 앞으로는 하루 세 끼를 모두 드릴 예정이다. 휴게실과 이발소도 만들어 무의탁 노인들이 편하게 쉬실 수 있는 쉼터로 가꾸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한 대순진리회 중곡도장에 도착했다. 기와를 얹은 정문을 지나 도장으로 들어서니 높고 큰 기와집들이 웅장하게 서 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본당인 영대(靈臺)에서 기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종무원장실로 들어갔다. 7평 남짓한 사무실 가운데에 테이블이 있고 양쪽으로 오래된 듯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도 에어컨도 없이 자그마한 선풍기 한 대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여기까지 찾아오셨냐”며 함박웃음을 짓는 이 종무원장은 순박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다.
“한길봉사회 돕는 게 진짜 봉사”
-15억원이라는 큰돈을 내놓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저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임원들도 다 찬성했고요.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을 종지(宗旨)로 삼는 저희 종단에서는 남을 돕는 일이 아주 당연한 문화입니다.”
-한길봉사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10여년 전 우연히 독립문공원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한길봉사회 김종은 회장이 독거노인과 노숙자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더군요. 눈비가 내려도, 날씨가 추워도 들어앉을 곳조차 없이 밖에서 식사를 하는 노인들이 참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다 구청의 경고로 한길봉사회의 무료급식소 운영이 위기에 처했다는 언론보도를 보게 되었지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동안 김 회장을 지켜보면서 그가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이라 느꼈습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심지어 장인이 돌아가셨을 때도 상중에 살그머니 나와서 무료급식을 하더이다. 이토록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을 돕지는 못할 망정 쫓아내다니 말이 됩니까. 그래서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 이것이 진짜 봉사다 생각했지요.”
김 회장에 따르면 이 종무원장은 오래 전부터 한길봉사회에 지원금을 보낸 것은 물론, 종종 무료급식소를 방문해 노인들에게 밥을 퍼주는 등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직접 밥을 퍼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농사꾼 출신인데 뭐가 힘들겠어요? 날씨가 더워서 땀은 좀 흘렸지만. 밥을 푸면서 그런 생각이 들데요. ‘이곳에서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나도 어딘가에 불쌍한 독거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야겠다’는. 무료급식도 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노인사랑방 같은 걸 만들려고 합니다. 대순진리회의 도장이 시작된 곳인 중곡동에 부지도 마련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