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탄생하기 전에도 인기인과 유명인은 있었다. 물론 지도자나 영웅도 있었다. 그러나 스타는 그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디까지나 스타는 대중매체에 의해, 대중매체를 위해, 대중매체에서 만들어지는 유명인이자 영웅이며,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예술영역에서 나타났다. 스타는 철저히 현대적인 현상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창극과 판소리 및 신파극을 포함한 무대공연 예술은 1900년대부터 진작 발전하고 있었고 인기인도 배출되고 있었다. 예컨대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이라 일컬어지는 송만갑, 이동백,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 등이 있었고, 전통예술 분야가 아닌 연극 분야에서도 배우들이 세인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국 연극·영화사에서 영화는 연극에 빚을 많이 졌다. 초기 영화계의 중요한 인적 자원 대부분이 연극계로부터 인입되었기 때문이다. 또 연극 이외의 문학이나 음악 분야에서도 유명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타 = made in USA’
그러나 진정한 ‘스타’는 좀더 늦게 나타났다. ‘스타’의 원산지는 미국이다. ‘스타 시스템’ 자체가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과 흥행 경쟁체제로부터 생겨났기 때문이다. 영화사가(史家)들은 할리우드에서 ‘스타’가 최초로 등장한 해를 1909년으로 본다. 그 이전까지는 배우의 이름이 영화의 자막에 나오지도 않았다 한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계 후발주자이면서 독립영화제작사의 하나였던 페이머스 플레이스사의 프로듀서 칼 램믈은 대기업에 맞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개발한다. 자신이 제작한 영화의 흥행 성공을 위해 플로렌스 로렌스라는 여배우를 다른 회사로부터 스카우트한 뒤, 신문에 그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거짓 루머를 흘린 것이다. 신문들이 이를 보도하자 그는 그 보도가 메이저 영화사들이 퍼뜨린 거짓말을 그대로 실은 것이며 플로렌스 로렌스는 자사에서 만든 영화에 출연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바로 이 사건이 플로렌스 로렌스라는 이름을 세인에게 각인시켰고 이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크게 히트했다.
이때부터 스타는 영화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고, 스타라는 사회 문화적 현상은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로 퍼져나간 것처럼 곧 전세계로 번져나가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신문에서 ‘스타’라는 단어가 실린 것은 1920년대 중반 이후이다. 동아일보는 1925년 11월27~29일 ‘영화계 진화(珍話)’라는 제명하에 할리우드 배우에 관한 외신 가십을 사흘 연속으로 실었고, 같은해 12월1일엔 ‘영화배우계 현재’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 영화계를 이끌고 나갈 ‘조선배우학교’ 배우들과 ‘합자회사 토월회’의 소속 배우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들은 그 무렵 배우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스타를 다룬 전형적인 연예기사는 아니었다. 기사에서 다룬 인물들이 아직 제대로 된 의미의 ‘스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같은해 12월5일자 연예면에 ‘스타’라는 말이 쓰인 기사가 나타난다. 제목은 ‘지상최행복(地上最幸福) 스타 생활’. 역시 할리우드의 대스타들을 다룬 외신 인터뷰 기사를 번역한 것이었다. 이 기사는 일번타자로 ‘일신(一身)으로 이신(二身)의 생활, 정말 자기와 ‘스크린’의 자기 - 빠렌치노씨 감상록’을 다루었다.
루돌프 발렌티노의 인터뷰
기사의 주인공인 루돌프 발렌티노는 1920년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남자 스타였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출신의 그는 갖은 고생을 하다 스타가 된다. 검은 머리와 갈색 눈을 가진 전형적인 라틴 미남이던 그는 ‘춘희’ ‘시크’ 등에 출연하며 여성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다가 인기 절정이던 31세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인터뷰 기사는 스타의 존재 방식에 대한 전형적이고도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인터뷰에서 발렌티노는 “판(fan) 제씨가 스크린으로부터 친해지신 (…) 극히 로맨틱한 사나이로 열정적 사랑에 살아서 적을 무찌르고 마침내 사랑하는 애인을 자기 품에 안고야 만다든가, 혹은 구차한 운명에 쪼들려 이것을 대항하다 못하여 영웅적으로 최후를 마치는” 스크린 속 발렌티노가 있고, “가난한 이민자 청년이다가 대단한 노력으로 남의 갑절씩이나 행복을 누리는 청년으로 팬들이 별로 만나보지 못한” 실제 인물이 있다고 말한다.
이 실제 인물과 극중 인물 사이의 거리는 꽤 먼데, “영화에 나타나는 젊은 발렌티노를 참말 발렌티노와 같이 봐주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스크린의 발렌티노가 진짜 발렌티노보다 세상의 관심을 더 많이 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구태여 참말 발렌티노를 들추어 보이고자 생각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연인이거나 비극적인 영웅인 발렌티노와 현실의 발렌티노는 차이가 있지만, 현실의 모습을 다 드러낼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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