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반세기를 살아온 DMZ를 훌훌 걷어내기엔 왠지 미련이 남는다. 어떤 이는 DMZ가 말끔히 제거되는 날, 우리가 마루 밑에 뒹구는 조선 막사발 하나를 아무 생각 없이 엿장수에게 넘겨줬다가 훗날 땅을 친 것만큼이나 자연생태계의 보고를 잃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또 어떤 이는 DMZ 보전을 포기하는 것은 머잖아 지구촌 최고 품질의 관광자원이 될지도 모를 보물단지를 팽개쳐 깨버리는 바보짓이라 말한다. 손대지 말고 가만 내버려두자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DMZ는 위기다. 배터리 수명이 다해 곧 소멸될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런 날을 예견해 지구 대홍수 때의 노아처럼 방주(方舟)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71년 5월6일 군사정전위 제315차 본회의에서 로저스(F. M. Rogers) 유엔군수석대표가 세계에서 가장 요새화된 DMZ를 비무장지대화, 즉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같은해 국토통일원의 통일문제 세미나에서도 DMZ의 국제평화지대(International Peace Zone)화가 제안됐다. 두 제안은 DMZ 정책제안의 효시로 봐야 할 것이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는 남북교역 자유지대, 평화구역 설치, 남북관광지 공동개발 등이 제안됐다.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정부투자기관, 강원도와 경기도 등 접경지역 자치단체 등에서도 우후죽순으로 정책제안이 쏟아져나왔다.
1999년 9월 정부가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 계획(MAB)에 따라 내놓은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 지정 계획은 지금까지 시도했던 ‘직접적인 평화정책’과 달리 자연생태계를 매개로 한 ‘간접적 평화정책’이다. 이어 2001년 환경인 신년 인사회에서는 유네스코 지정 ‘한반도 비무장지대 접경생물권보전지역(The Korea DMZ TBR)’ 계획이 제안됐으며, 올해 7월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정도 제안됐다.
방주의 설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정교하게 보완되는 것 같았다. 초기에 제안된 평화지대나 평화구역은 그야말로 선언에 불과하다. 그러나 ‘접경생물권보전지역’이나 ‘세계유산’은 DMZ에 대한 국민의 환경인식과 상징성을 포함할 뿐 아니라 남북환경협력의 모델이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론 DMZ에서의 도발이나 전쟁이 종식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제안된 모든 DMZ 정책의 종합편인 셈이다. 더구나 이들 계획은 노아처럼 암수 한 쌍씩 동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씨앗’을 가려 방주에 태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DMZ를 통째로 보전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의 추진과정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함정이 있다. 먼저 북한정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 DMZ를 두 군사세력간 완충지대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려면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군사령부의 협력을 구해야 하는 복잡한 정치적 문제도 안고 있다. DMZ 정책은 너비 4㎞, 길이 240㎞의 순수한 DMZ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최소한 민통선 지역, 넓게는 접경지역이라 불리는 DMZ 영향권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효율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자연은 2001년 1월21일자로 제정된 접경지역지원법에 의해 되레 파괴가 촉진되고 있다.
인간의 간섭과 전쟁후유증
‘모든 살아 있는 씨앗’만이라도 구제하겠다는 DMZ 정책은 그곳이 ‘자연의 보고’라는 신념에 근간을 두고 있다. 접경생물권보전지역을 제안할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DMZ에는 반세기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있다”고 말했다. “DMZ는 민족분단이란 아픔을 주었지만, 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선물을 보상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 자연의 보고가 얼마나 검증되지 않은 것이며, 그런 주장이 얼마나 자신 없는 것인지 이미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1999년 정부가 강원도 철원 양구 인제 고성군 등 4개 군의 민통선 북방지역 609㎢를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은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탁상구상과 현장상황은 전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