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스포츠 애국주의에도 正道는 있다

  • 김성해│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입력2012-08-21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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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애국주의에도 正道는 있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한낮의 폭염만큼이나 런던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기가 높았다. 한국이 몇 등인지,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는지, 축구가 4강에 들어가는지에 관한 뉴스가 쏟아졌다.

    올림픽 뉴스에 따르면 한국은 메달순위 상위에 올랐고 어려운 환경을 딛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후일담이 국민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으며 한국인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졌다. 그럼에도 뭔가 모를 불편함이 있다. 월드컵, 동·하계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대회 때마다 반복되는 스포츠 애국주의에 관한 것이다.

    이름만 바꾼 전쟁터

    국제사회에는 여전히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강대국에 유리하게 국제협약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약소국의 이익은 강대국들의 타협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다. 팔레스타인인과 쿠르드족이 겪는 불행은 약소민족의 설움을 보여준다.

    국가, 그중에서도 강한 국가가 중요하므로 우리는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스포츠를 통해 ‘내 나라 내 민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올림픽을 통해 민족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며 집단 기억을 축적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스포츠 애국주의에도 정도(正道)가 있다. 한국의 스포츠 애국주의는 여기에서 다소 벗어나 있으며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쿠베르탱은 올림픽으로서 국가 간 이해의 부족을 극복해 궁극적으로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국가 간 메달 경쟁보다는 인류 공동 축제를 통해 세계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이 본질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국내 언론의 올림픽 보도에선 이러한 목적이 퇴색한 느낌이다. 올림픽은 이름만 바꾼 전쟁터로 묘사된다. 모든 국가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쟁자가 되고 특히 일본·중국과 경쟁할 때엔 맹목적 민족주의가 지배한다.

    국내 언론은 올림픽 보도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뉴스에서 국제사회의 이해나 다른 나라의 고통에 대한 공감대 수준은 낮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는 맹목성으로 인해 올림픽 콘텐츠가 획일화되는 것도 문제다.

    스포츠 외교를 통한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 각국의 생활체육 인프라 현황, 스포츠 테크놀로지의 성과, 스포츠 마케팅의 현장에 관한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은 국가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엘리트 체육에 집중 투자했다. 그 결과 올림픽 성적은 세계 상위권으로 올라섰지만 생활체육 기반은 지금도 매우 취약하다.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 거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이번 올림픽 보도에선 페어플레이 정신, 협력과 공존의 경험, 대화와 타협 등 언론이 당연히 강조해야 할 보편적 가치도 홀대받았다.

    지나친 자국중심주의 지양해야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은 봉사, 교양, 창의성, 균형 잡힌 인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른바 자유교양 교육은 그가 세운 펜실베이니아대학부터 시작됐다. 세계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선 다른 나라 사람을 이기는 능력뿐만 아니라 절제력, 친화력, 경청의 자세를 겸비해야 한다. 이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스스로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올림픽 무대에서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싸우고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는 아름답다. 승부에 대해 궁금해하는 대중의 관심을 무시할 수 없는 언론의 특성도 있겠지만 결과에만 집착해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지 반성해볼 대목이다. 국가 간 경쟁에 내재된 이해와 관용, 공존의 가치도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올림픽 보도는 이러한 가치를 4년마다 국민에게 환기해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자국중심주의를 지양해야 더 큰 것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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