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런던 올림픽 기업도 함께 뛰었다

금맥 캔 ‘회장님들’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2-08-23 0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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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메달-비즈니스-마케팅 3효과
    • 펜싱 코리아 도약 이끈 SK
    • 현대차, 양궁 금메달 3개 싹쓸이
    • 한화, 사격 집중 육성 金명중
    런던 올림픽 기업도 함께 뛰었다
    한국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국가별 메달집계 순위 세계 5위에 올랐다. 올림픽 출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적을 올린 배경에는 지난 4년간 구슬땀을 흘리면서 연습에 몰입한 선수들의 고생과 이들이 안심하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대기업들의 후원과 격려도 큰 몫을 했다. 올림픽의 주역은 선수다. 입상 여부와 무관하게 참가한 것만으로 영광이다. 국민의 박수는 최선을 다한 선수 모두에게 향했다. 그러나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을 떠나 비즈니스 일정을 뒤로 미루고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런런 현지를 찾은 대기업 회장들도 숨은 선수들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의 스포츠 관련 지원액은 4276억 원에 달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체 체육 예산 8403억 원의 절반가량이다. 흥미로운 것은 4276억 원 중 1325억 원을 비인기 종목에 투입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탁구·레슬링·양궁 등 18개 종목에서 23개 실업팀을 운용하면서 선수단 운영 및 협회 지원, 국제대회 유치 및 개최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삼성, 육상 레슬링 등 전폭지원

    런던 올림픽 선수단을 가장 통 크게 후원한 기업은 삼성그룹이다. 삼성전자는 마라톤과 경보 등 육상을 지원한다. 삼성생명은 레슬링과 탁구, 에스원은 태권도를 후원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삼성이 후원한 종목에 출전한 선수들이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얻었다. 삼성의 스포츠 후원은 다른 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런던 올림픽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인 삼성은 올림픽 개최 1년 전부터 올림픽 마케팅을 전개해왔다. 삼성은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전원에게 갤럭시S3를 기증했다. 응원단을 구성해 런던에 파견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스포츠 마케팅에 눈을 뜬 삼성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을 필두로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에 참여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과 함께 런던 올림픽을 참관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선수단을 응원하고 메달 시상을 하는 것이 공식 일정이었다. 이 회장은 개막식 때 손에 태극기를 들고 직접 응원했다. 영국 현지에서 사업을 점검하고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메달, 비즈니스, 마케팅의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SK 후원 종목 메달 6개

    대기업 총수 중 런던 올림픽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이다. SK가 후원한 펜싱에서 연일 승전보가 들려오면서 그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한국이 유럽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펜싱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 등 총 6개의 메달을 수확한 것은 이변에 가깝다.

    최 회장은 수영과 핸드볼도 지원했다.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스페인·덴마크 등 강호를 연파하며 올림픽 8회 연속 4강이라는 ‘우생순 신화’를 이어가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도 남자 수영 자유영 200m와 400m에서 각각 2위를 기록하면서 2회 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최악의 오심 판정을 딛고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낸 신아람 선수는 “SK가 대한펜싱협회를 적극 지원해준 덕분에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 해외 유명선수와의 대결을 통해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은 덕에 올림픽에서도 전혀 긴장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SK는 2002년부터 연간 5억 원씩 펜싱협회 운영비를 지원했다. 2009년부터는 후원금을 10억 원으로 늘렸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인 최 회장은 8월 6일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남자핸드볼 예선 최종경기를 일반석에서 한국 응원단과 함께 관람한 뒤 인근에 있는 선수촌을 방문했다. 왼쪽 슬개골 근육이 손상돼 남은 경기 출전이 힘들어진 여자핸드볼 김온아와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된 정유라의 상처를 살펴보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 최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협회 운영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우선 사무국 수준에 머물던 행정조직을 운영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국가대표 포상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바꿨다. SK는 지난해 434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국내 첫 핸드볼 전용경기장(서울 송파구 방이동)을 건립했다. 최 회장이 SK의 경영 노하우를 협회 운영에 이식해 장기 발전 전략을 세운 점을 핸드볼인들은 높게 평가한다.

    현대家의 남다른 양궁 사랑

    현대자동차그룹은 자그마치 27년 동안 비인기종목인 양궁을 후원해왔다. 정몽구 회장이 1985~1997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았다. 정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이 뒤를 이어 2대째 양궁 선수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현대차가 27년간 양궁에 지원한 금액은 300억 원이 넘는다. 최근 2년 동안엔 47억3000만 원을 쏟아 부었다. 현대가(家)의 양궁사랑은 사회적 책임 경영이나 스포츠마케팅 그 이상이라는 것이 태릉선수촌 사람들의 뒷이야기다. 8월 2일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 결승전에서 멕시코 선수와 슛오프까지 가는 각축전을 벌인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둔 기보배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가장 먼저 감격의 포옹을 나눈 사람이 정 부회장이라는 것만 봐도 양궁과 현대가의 관계를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 정 부회장은 올림픽 기간 내내 양궁 경기장을 지켰고,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딸 때마다 선수, 감독과 얼싸 안고 기쁨을 함께 나눴다.

    런던 올림픽 기업도 함께 뛰었다
    양궁협회장 재직 당시 정몽구 회장은 양궁의 과학화를 추진했다. 과학기자재를 도입해 훈련 방법을 일신시켰다. 정 회장은 양궁 장비 개발을 독려하기도 했다. 한국 선수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산 활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노력의 결과다. 현재 전 세계 양궁인이 한국산 장비를 가장 선호한다.

    한국 양궁은 런던 올림픽에 걸린 금메달 4개 가운데 3개를 차지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선수단은 물론 현대가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한화, 포스코도 신바람

    한화그룹도 신바람이 났다. 한화가 지원한 사격 종목에서 한국은 진종오 선수가 2관왕에 오르는 등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사격에 대한 애정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선 굵은 리더십으로 사격 발전을 이끌었다.

    김 회장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의 진로가 불투명해지자 갤러리아사격단을 창단했다. 2002년 6월부터는 김정 한화 고문에게 대한사격연맹회장을 맡도록 한 뒤 지금껏 80여 억 원의 발전기금을 지원했다. 진종오의 두 번째 금메달이 확정된 후 김 회장은 이라크 출장의 경유지이던 두바이공항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김 회장은 2008년 사격연맹 창설 이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전국사격대회인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를 창설해 사격의 저변 확대와 선수들의 실질적인 경기력 향상을 도왔다. 사격 선수들 사이에서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는 ‘꿈의 무대’로 통한다. 국내 대회 중 유일하게 종이표적이 아닌 전자표적으로 전 경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국제사격연맹 경기규정을 준수하는 유일한 국내 대회로 선수들이 국제 대회와 유사한 환경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다.

    변경수 사격대표팀 감독은 김장미 선수의 금메달 획득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화의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특히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서 전지훈련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는 기록을 제대로 낼 수 없는 사격 종목 특성상 겨울철 전지훈련은 전력 향상에 중요하다.

    포스코는 양학선 선수가 체조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따면서 오랜 후원의 결실을 보았다. 포스코와 대한체조협회의 인연은 1985년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스코는 박 전 회장이 대한체조협회장을 맡은 뒤부터 지금까지 130억 원을 지원했다. 현 체조협회장은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이다. 포스코교육재단이 주최하는 전국 초·중학교 체조대회는 체조 스타의 산실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 김수면,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유원철 등이 이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했다.

    리듬체조의 손연재는 KB금융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도 KB금융그룹의 지원을 받았다. KB금융그룹은 컬링 국가대표팀도 후원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협회장을 맡고 있는 탁구는 남자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린 것은 아니다. 구자열 LS전선 회장은 2010~ 2011년 2년 동안 13억5000만 원을 사이클에 투자했다. 런던 올림픽 사이클 경기 관람에 나선 구 회장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으나 성적은 별로였다. 구 회장은 “런던 올림픽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조 회장과 구 회장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금맥을 캘 수 있을까?

    두산그룹을 이끌던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은 8월 11일 열린 ‘한국선수단의 밤’ 행사에서 “평생 먹을 욕의 10배를 사흘 동안 다 먹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박 회장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유도의 조준호와 펜싱의 신아람 오심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이 적절치 못했다는 데 있다.

    박용성 회장 “욕 엄청 먹었다”

    여론의 거센 질타가 이어졌고 선수단의 불만이 터져 나왔는데도 박 회장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날 “조준호의 경우 오심 사건이 아닌 오심 정정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오심으로 억울한 패배를 당해 동메달 결정전 출전을 거부하려던 신아람에게 박 회장이 직접 출전을 종용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는 “블랙카드를 받으면 올림픽 출전 기록이 아예 없어지고 단체전도 못 나가기 때문에 출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펜싱 오심 때는 선수뿐 아니라 코치진까지 블랙카드를 받는 것을 각오하더라도 항의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박 회장은 그런 뜻을 무시한 채 특별상 수상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유도의 판정 번복 때는 세계유도협회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메달을 수상한 선수들만 쏙쏙 골라내 귀국 일정을 폐막식 이후로 조정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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