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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정권 핵심 실세가 회고하는 문민정부 5년(下)

  • 송문홍songmh@donga.com

YS정권 핵심 실세가 회고하는 문민정부 5년(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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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바탕 꿈이었나. YS 개혁에 환호하던 갈채는 아련히 잊혀가고 그 자리에 썰렁한 비판만 남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절차적 정통성을 가진 문민정부에 자랑스레 참여했던 핵심인사들은 지금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그 시절을 돌이켜볼까. 문민 비화 마지막 회에는 김정남(교문사회)·최양부(농수산) 전 수석비서관·한승수 전 비서실장·한승주 전 외무장관·손학규 전 보건복지부 장관·김정원 전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등이 증언한다. 이 연재는 고려대학교 정경학부의 ‘대통령학’수업에서 이뤄진 ‘김영삼정부 심포지엄’에서 녹취한 내용을 같은 대학 대통령학 연구실(실장·함성득 교수)의 협조하에 발췌·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이북출신 목사 설교들은 YS “한 장관, 우리가 너무 약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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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유형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첫째로는 머리 좋고 부지런한 사람, 둘째는 머리는 좋은데 게으른 사람, 셋째는 머리는 나쁜데 부지런한 사람, 넷째는 머리도 나쁘고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네 가지 지도자상 중에 가장 바람직한 상은 머리 좋고 게으른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독단적으로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 사람보다 사안에 대한 이해는 빠르면서도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에게 일임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낫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머리 나쁘고 게으른 형, 머리 좋고 부지런한 형,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형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형일까 생각해보면 무척 재미있을 것입니다.

내가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네 가지 정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정책 개발과 선택입니다. 대통령은 실제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미리 방향을 잡고 정책을 선택하는 로드 맵(road map)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크고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정책에 대한 우선순위도 결정하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 하루에 한번이라도 생각을 할까요? 아마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번 정도, 때로는 보고를 받을 때 뿐일 겁니다. 그런데 한미정상회담에 나올 때 클린턴은 사안의 핵심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둘째, 스태프의 활용입니다. 비서실, 각료에 권한을 위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문성을 가진 이들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과시하고 싶어하는 개인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금융실명제와 같은 정책을 수립할 때도 경제수석인 박재윤씨조차 쉬쉬하면서 정책을 발표하고 ‘몰랐지?’하는 식이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을 수행하고 중국에 갔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워싱턴에서 일정이 있어 중국에서 바로 출국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김대통령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그때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4강 외교’ 대신 ‘4각 구도’라는 말을 하고 중국과의 관계개선 등에 대해서 말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중에 등거리외교니 뭐니 하면서 말이 많았지만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기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 한 장관에게만 미리 말하는 거야” 하시는 거예요. 물론 저도 그때까지 그런 사실을 몰랐지요. 이번에도 ‘몰랐지?’ 하는 식이었지요.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적인 정규과정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특징 때문인지 교육받은 사람이나 전문 관료를 경시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독학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YS의 ‘몰랐지?’ 스타일

셋째, 조직의 운용입니다. 조직의 운용에는 커뮤니케이션, 모티베이션, 경쟁, 평가 등이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상하 그리고 각 부처와 조직 간에 수평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일방도 쌍방도 아닌 무방입니다. 상하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경제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위기인지 아닌지. 싱가포르의 경우는 우리와 다르더군요. 국민들과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우스운 예를 하나 들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우리 대사관이 우리나라 정세에 대한 자료를 얻으려고 하면 어디서 그 자료를 얻는 줄 아세요? 바로 미국 국무부에 가서 받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미국 대사관은 국정원, 청와대, 정부부처 등에서 수집한 자료를 미국 본국에 보고하는 반면, 우리 대사관이 받아보는 본국 자료는 외무부에서 보내주는 자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통일부는 외교부가 하는 일을 모르고, 외교부는 국정원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위에서 내려와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이렇듯 부처간에 상호 의사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티베이션, 즉 잘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적당히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일들이 보람 있는 일이라는 환상을 갖게 해야 합니다. 제가 외무부 장관 시절 국장, 과장들은 서로 일을 따내려고 안달이었습니다. 힘들지만 일을 도맡으려고 합니다. 물론 이에 따라 예산이 더 주어지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능력있는 상급자로 인정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대사관에 나가서 놀라는 일이 많습니다. 그들이 매우 헌신적으로 일하며 밤을 꼬박 새워가면서 일하기도 합니다. 제가 또 놀란 것은, 외무부 장관직에서 떠난 뒤에 대사관에 갔을 때는 그저 노는 것만 생각하고 골프를 치자고 성화여서 놀랐습니다. 물론 다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외국 주재 대사관 직원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본국 대통령이나 장관이 공항을 이륙할 때”랍니다.

그 다음은 계속적인 점검(continuation)이 필요합니다. 즉, 지시를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상기시키고 회상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외환보유고에 대한 보고도 처음에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다가 잊혀지거나 보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쟁(competition), 즉 체크와 밸런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싫어하던 것이 평가(evaluation)입니다. 여러분도 장관들을 A, B, C 식으로 성적을 매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가된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런 평가는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기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이야기인데 옛날 황희 정승이 들판에 있는 농부에게 두 마리 소 중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냐고 묻자 그 농부는 황희 정승의 귀에다 속삭이듯이 “저기 누런 소가 더 잘합니다”라고 했답니다. 황희 정승이 왜 그렇게 속삭이냐고 묻자 소들에게도 ‘감’이란 게 있어서 금방 알아채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이렇듯 평가는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조직과 스태프의 활용 면에서 볼 때 군 출신 대통령들은 조직과 스태프에 많이 의존했습니다. 그들은 스텝을 활용할 줄 알았고, 권한을 위임할 줄도 알았습니다. 반면에 YS나 DJ는 그렇지 못했지요.

도그마는 강해도 위임능력은 뛰어난 YS

넷째, 정치력 확보와 정책의 보호, 그리고 설득력,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김대중 정부 때 외무부장관으로 입각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느냐고 묻습니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과 제가 추구하는 노선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에는 제가 설득하면 듣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는 저와 의견이 80%가 같다고 하더라도 제가 나머지 20%를 설득할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입각 제의도 없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정권 초기에는 교수 출신 각료들이 많이 입각하지만 정권 말기로 갈수록 관료 출신 각료들이 많이 입각한다는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도 많은 학자들이 각료로 입각했습니다. 안기부장으로 교수 출신 김덕씨, 통일원장관에 한완상씨, 그리고 저 같은 사람들이 일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말기로 갈수록 이들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거의 관료 출신으로 채워집니다. 물론 지금 김대중정부도 관료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관료 출신 장관들은 윗사람 입맛에 맞게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관료들이 정책을 이끌면서 IMF를 초래했는데, 그 관료들이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관료 출신들을 계속 기용하는 것은 윗사람 마음에 들게 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외부 인사의 입지를 약하게 하고 텃세를 부립니다.

이상과 같이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을 살펴보았는데, 이를 대표하는 게 미국의 레이건과 카터 대통령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머리는 좋지 않았지만 일을 안 하는 듯하면서도 참모들을 잘 활용한 반면, 카터는 머리도 뛰어나고 굉장히 부지런했지만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회창 총재는 카터 대통령과 비슷한 스타일입니다. 전직을 무시할 수 없지요.

YS와 DJ를 비교해보면 공통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습니다. 공통점은 과거 군사정권의 대통령들이 조직과 스태프를 잘 활용할 줄 알았던 데 반해 이들은 조직적이지 못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수십년간 야당지도자였다는 특징 때문인지 독불장군식이었습니다. 안기부에 언제 끌려갈지 모르기 때문에 메모도 깨알같이 적고, 정치자금을 누가 줬는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자기만 알 수 있게 하는 등 투명하지 못했고, 책임성도 약했습니다. 차이점은 YS는 DJ에 비해 이해가 느리고 도그마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위임 능력은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네바협상 때 대통령과 갈등 겪어

시간이 없는 관계로 제가 외무부장관 시절에 했던 일들을 다 말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먼저, 신외교 5대 기조를 설정했습니다. 이건 외무부 직원 중 머리 좋은 사람들을 뽑아서 주말까지 고심해가면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로 나누는 게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과거엔 아무도 이런 기조를 설정하지 않았었습니다.

다음은 북한 핵문제입니다. 제가 장관으로 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일요일 11시가 되면 저에게 전화를 하는 거예요. 그 시각이 되면 항상 어김없이 전화를 했어요. 어느 날인가도 11시에 전화를 해서 “한 장관, 우리가 북한에 너무 약하게 나가는 게 아냐?” 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 시간이면 교회가 끝나는 시간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느 목사가 설교할 때 또 뭐라고 했습니까? 목사들 중에는 이북 출신이 많고 반공주의자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했더니, 김영삼 대통령이 “음, 충청도 출신도 한 명 있는데…”라고 하시는 거예요.

김영삼 대통령도 초기에는 강경파가 아니었습니다. 지난번 YS 강연시 당시 상황이 미국은 전쟁과 가깝고, 자신은 그렇지 않아 클린턴과 긴밀한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시 전화로 듣고 있었는데…. 핵문제 개입시 YS와 견해가 달라 많은 불화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정부 내부나 언론, 국회, 정당 등의 반대나 북한의 끊임없는 충동질, 이를테면 대남방송을 통한 김영삼 대통령 비방방송이 제네바 합의 수용을 어렵게 했습니다.

94년 제네바협상에 갔을 때 서울시각으로 6시, 그러니까 제네바 시간으로 한밤중이었는데, 김영삼 대통령과 협상 문제로 갈등을 겪었죠. 전화로 말로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얘기가 오갔어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7시 반쯤에 또 전화가 왔어요. 현철이한테 물어봤는지 누군한테 물어봤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장관이 발표할 거죠?” 하면서 협상안을 수락했어요. 협상시 우리나라에는 정당·국회 등 모두가 강경했습니다. 특히 당시 국방부장관인 권영해씨도 강경파 중에 한 명이었어요.

그런데 특이한 건 강경론자들은 대통령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대통령이 없으면 목소리를 높이는 거예요. 당시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저는 장관직을 걸고 이것만은 처리한다는 생각을 하고 회담에 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국인 노동자 복지 문제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끊이지 않는데, 한국에 가면 특히 알아야 할 말을 배울 때 “월급 왜 안 주세요?” “때리지 마세요” 등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질문) 어업협정과 같은 외교정책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매우 소극적인 외교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달라이라마 방한 문제와 같이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해서는 자존심 문제라기보다 서로 주고받는 식의 외교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대만 대표부의 명칭 문제는 대만대표부를 ‘대사’라고 칭하지는 못했지만 중국의 양해를 구해서 ‘미션’이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이는 어느 나라 대표부에도 없는 명칭입니다.

중국대사를 만나 우리가 노태우정권 당시 대만에 너무 섭섭하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했노라고 말하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나 마찬가지라고 했더니 아무 소리도 못 하더군요.

이것은 제 추측인데 핵문제 때 저희는 중국에 북한을 제재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는데,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임을 북한에 알렸다고 합니다. 물론 저의 요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양국간의 주고받기식의 외교가 성과를 거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여러 이해가 걸린 사항에 대해서는 굴욕외교가 아닌 주고받기 식 외교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대통령과 장관, 대통령과 수석, 장관과 수석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화가 부정적 면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물론 심각한 갈등은 문제가 되지만 어느 정도의 긴장은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제가 장관 재직시 수석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나는 때때로 대통령과 얘기할 때 수석이 자리를 비켜주도록 건의하기도 했으니까요. 이것은 물론 내가 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하지만 경험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 다시 한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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