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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강남서 형사과장 직위해제로 본 경찰과 언론의 관계

무분별한 언론, 비겁한 경찰 수뇌부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강남서 형사과장 직위해제로 본 경찰과 언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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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17일 MBC가 강남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을 특종보도하자 SBS는 다음날 ‘강남서 죽이기’에 들어갔다.
  • 기자 6명을 투입해 총력전을 펼친 결과 전직 강남서 형사가 현직에 있을 때 연루된 납치강도사건을 특종보도하는 개가를 올렸다.
  • 이 여파로 강남서장을 비롯한 4명의 간부가 지휘책임을 지고 직위해제됐다.
  • 그러나 형사과장과 형사계장의 직위해제 배경엔 다른 사정이 있었다.
강남서 형사과장 직위해제로 본 경찰과 언론의 관계
지난 6월18일 서울 강남경찰서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소동의 진원지는 서장실이었다. 이날 오전 남형수 서장을 찾아간 SBS 기자 2명은 서장실에 손님이 와 있어 바로 들어가지 못하자 부속실에서 서장 면담을 요구하며 고함을 쳤다. “강남서가 먼저 죽나, SBS가 먼저 죽나!” 서장을 찾아온 손님은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김용화 경무관이었다. 강남서 형사과장 황운하 경정이 배석한 상태였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온 기자들은 김수사부장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강남서에서 MBC에 수사보안사항을 유출했는데 관련자들을 문책할 용의가 없냐”고 질문공세를 폈다. 김부장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치우고 차나 한잔 하자”고 제의했으나 기자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김부장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SBS측의 공세는 전날 밤 MBC가 강남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을 단독보도한 데 따른 불만의 표출이었다. 이날 오후엔 SBS 시경 캡이 6명의 기자들과 함께 강남서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시경 캡은 서울경찰청에 상주하면서 일선 경찰서 출입기자들의 취재를 지휘하는 선임기자다. 시경 캡이 특정 경찰서에, 그것도 6명이나 되는 기자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강남서가 죽나, SBS가 죽나”

강남서 형사들과 타사 출입기자들의 눈총에 아랑곳없이 ‘강남서 군기 잡기’에 들어간 SBS 기자들은 결국 뜻한 바를 이루었다. 이날 오후 SBS 8시 뉴스에서 다뤄진 강남서 관련 보도는 무려 4꼭지. 하나같이 강남서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중 결정타는 전직 강남서 형사의 납치사건 관련 보도였다. 이날 송파경찰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4월 발생한 증권브로커 납치사건 전모를 공개했다. 피의자들 중엔 전직 강남서 경사 한아무개(36)씨가 끼여 있었다. 송파서는 보도자료에 한씨의 직업을 무직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데도 아닌 SBS 취재팀이 한씨가 범행 당시 강남서 형사과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이 뉴스는 다음날 아침 모든 일간지를 장식했다. 언론은 경찰이 현직 경찰관의 범죄사실을 은폐해왔다고 비난했다. 이날 오후 경찰은 황급히 강남서에 대해 문책인사를 단행했다. 남형수 서장을 비롯해 황운하 형사과장, 김종대 형사계장, 한씨의 직속상관이었던 박종무 마약반장이 한꺼번에 직위해제 당했다. 이로써 SBS는 전날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 단독보도로 자신들을 물 먹였던 MBC에 깨끗이 설욕했을 뿐만 아니라 MBC 특종을 도와준 것으로 ‘짐작되는’ 강남서 형사라인에 완벽하게 보복(?)했다.

애초 강남서 간부 4명의 직위해제 사유는 전직 강남서 형사의 납치사건 가담에 대한 지휘책임이었다. 하지만 형사과장과 형사계장의 경우 한씨가 사표를 낸 날 부임했기 때문에 감독책임이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자 문책사유가 바뀌었다. 이근표 서울경찰청장은 “서장과 마약반장은 감독책임을 물은 것이고, 과장과 계장은 수사중인 사안을 특정 언론에 발설한 데다 조직 장악력도 약해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의 직위해제가 MBC와 SBS의 특종 다툼과 관련된 것임을 인정한 셈이다.

이 사건은 경찰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찰 안팎에선 두 사람의 직위해제에 대해 지나친 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수뇌부가 비난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씨는 범행을 저지른 직후인 4월21일 사표를 냈고 5월8일 검거됐다. 당시 한씨를 구속한 양천경찰서는 그보다 일주일쯤 전에 범인 일당에 전직 형사인 한씨가 끼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청에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 수뇌부에서는 이미 한경사가 범행에 관련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수뇌부가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해 꼬리 자르기식 문책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직위해제할 만한 잘못이 있었다면 진작 했어야지 언론에 났다고 일사천리로 직위해제하는 건 비굴한 처사”라고 수뇌부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서울 모 경찰서의 간부는 “언론의 특종 경쟁은 언론사간 문제다. 특정 언론이 어떤 사건을 단독보도했다고 형사과장한테 그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까지 한 것은 상식 밖의 조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남서를 출입하는 모 일간지 기자는 “수사정보가 유출된 데 따른 관리책임을 물을 수야 있겠지만 직위해제는 과도한 조치”라며 “SBS의 파상 공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강남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또 경찰과 경찰 출입기자들은 어떤 관계인가. 경찰 출입기자들의 취재관행과 보도행태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경찰과 언론의 역학관계는 어떤가. 강남서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언론의 일그러진 관계를 조명해보기로 한다. 먼저 관련자들 증언을 통해 강남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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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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