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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격론! ‘과거사 전쟁’

권력 주도 과거청산, 도식적 이분법은 위험천만!

  • 글: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ahnbj@snu.co.kr

권력 주도 과거청산, 도식적 이분법은 위험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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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행위 규명을 일제 식민지배 잔재 청산의 전부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위험하다. 전후 한국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도 정형화된 이분법적 시각을 탈피해야 한다. 진정한 과거사 규명과 청산은 과거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권력 주도 과거청산, 도식적 이분법은 위험천만!

민간인 학살, 의문사, 인권유린 등 반인도적 행위는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사진은 2001년 12월 철저한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재야인사들.

바야흐로 한국사회는 마치 과거와의 ‘전쟁’에 돌입한 듯하다. 무엇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그러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 필요성을 되풀이해 역설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국정의 중추기관도 자체적으로 규명해야 할 과거사 과제를 제시하며 대통령의 뜻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집권 여당을 비롯해 친여 언론과 사회단체 역시 과거사 규명과 청산을 위한 입법과 여론 조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국가적 사업’ ‘국정의 우선과제’가 된 과거사 규명 및 청산 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과거청산 논의에 대한 비판

현재 우리 사회에 과거청산 문제를 두고 찬반 입장 사이에 심각한 논란과 갈등이 일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철저한 규명과 처벌을 통해 청산해야 한다’는 ‘청산론’과 ‘갈등을 피하고 사회통합을 위해 가능한 한 덮고 관용해야 한다’는 ‘관용론’의, 대립된 두 입장의 문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청산과 관용,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정하기에 앞서 따져보고 숙고해야 할 것은 과거청산의 대상, 기준, 방식 등이 과연 그 명분에 부합하고 합리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 글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지금 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선도하는 과거청산 논의를 비판하고자 한다.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청산 논의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친일 과거청산문제다. 친일파 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온 것이고,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특별법’의 제정 및 개정 시도를 계기로 정치적·사회적 이슈로 공론화되고 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불행하고 부끄러운 과거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잘 알아야 할 부분이라는 점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규명하려는 작업은 매우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현재 논의중인 친일 과거청산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적할 것은 친일행위 규명을 일제 식민지배 청산작업의 전부인 양 여기는 경향이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해 과거청산의 목적은 불행한 역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역사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일제 과거청산은 식민지배라는 불행한 역사의 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친일세력 개개인의 행적을 밝혀내고 심판함으로써 식민시대의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간단하고 편리한 방식일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태도나 다를 바 없다.

30년이 훨씬 넘게 지속된 일제 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단지 소수 친일세력에만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일제 강점기 역사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친일세력 청산을 부르짖는 데는 여러 가지 명분과 논변이 있다. 즉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모순과 폐단의 주요인은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친일세력이 온존한 데 있으며, 따라서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반민족행위를 규명, 심판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례는 戰時라는 특수성 지녀

친일행적을 은폐하거나 호도(糊塗)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고 비난받아야 할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학살, 고문, 인권유린, 인종차별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거스르는 반인륜적 행위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 반하는 부역행위를 청산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외국의 사례 가운데 조국을 등지고 적과 내통하며 부역한 행위를 규명하고 청산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부역자를 대량 처벌한 프랑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전후 10만여 명의 대독(對獨) 부역혐의자를 재판에 회부해 8만여 명을 처벌한 프랑스는 우리 사회에서 과거청산의 모범사례로 간주되며, 친일파 청산과 관련해 비교의 대상으로 빠짐없이 거론된다.

그러나 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청산 사례가 우리에게 과연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또 그것이 정말 모범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의 여지가 많다. 우선 프랑스의 경우 독일이 점령한 시기는 전시에 해당하고, 레지스탕스의 관점에서 보면 부역행위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이적행위였다. 그 점에서 36년간 일제 통치가 이어진 우리 경우와 비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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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ahnbj@sn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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