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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⑥

전두환 집권과 미국의 ‘거리두기’

전두환 못마땅히 여기던 미국, 국보위 출범하자 파트너로 인정

  • 글: 이흥환 미국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전두환 집권과 미국의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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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의 이 발언은 신군부를 고무시켰다. 불과 1년 전인 박정희 정권 때 카터의 입장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었다. 카터는 임기 내내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주문처럼 외고 다녔다. 박정희와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고, 그가 살해되기 직전까지도 박정희의 군부독재 정권을 끔찍이도 혐오했다. 그런 카터가 박정희 정권의 후계자이자 유신체제의 상속자인 신군부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나 카터의 태도는 광주사태 직후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신군부의 정권 장악이 확실시된 시점이다. 신군부는 광주를 재점령한 직후인 5월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이하 국보위)를 발족시켰고, 전두환은 국보위 상임위원장 자리에 앉았다. 최규하 대통령이 6월12일 텔레비전 담화를 통해 정치개혁 일정을 발표했지만 이미 권력의 축이 신군부로 넘어갔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글라이스틴은 1980년 5월말에서 6월 사이의 변화된 상황을 저서 ‘뒤얽힌∼’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12·12 때는 신군부 실세와 접촉하기를 꺼렸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신군부의 고위급 실세와 접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최규하 대통령을 명실상부한 국가 원수로 대하는 것도 이제는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1980년 6월부터 한미 양국 정부간의 기본적인 의견 교류는 최규하 대통령이 아닌 전두환 장군을 통해 이루어졌다.’



글라이스틴은 국보위 출범 이후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1980년 9월1일)하기까지 3개월 사이에 전두환을 세 차례 만났다. 세 차례 모두 국무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실세와 접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말에 걸맞게 글라이스틴은 연이은 회동을 통해 신군부와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거래’를 하게 된다. 워싱턴의 훈령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전두환-글라이스틴의 첫 번째 회동(6월4일)과 두 번째 회동(6월24일) 사이인 6월21일, 크리스토퍼 국무차관은 신군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거래의 목적과 전략을 글라이스틴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는 전문을 타전한다. 이 전문은 한국의 정치 발전과 민주화 등 기존에 강조했던 내용 외에 현실(신군부의 정권 장악)을 중시하는 부분이 곳곳에 삽입돼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지시 문건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발신: 국무부 장관수신: 주한 미대사 (즉각 전달)배포금지CHEROKEE

제목: 한국 문제 쟁점-한국 지도자들에게 미 정책 전달 지시

1. 전체 내용 2급 비밀

2. 한국 외무장관과 전두환 장군과의 면담 약속을 잡아 아래 기술한 미 정부의 대(對)한국 정책을 전달할 것. 6월4일 전두환 장군과의 회동 이후 변화된 상황에 대한 추가 평가보고서 제출 요망. 아래 내용은 기존의 우리 정책을 재확인하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은 아님.

이 전문은 국방부 및 국가안보회의와 상의해 작성된 것이며 모두 동의한 내용임을 참고할 것.]

“실질적 차원에서 그와 거래해야”

[3. 우리의 목적과 전략:전두환 장군과 그의 동료들이 군을 동원해 한국정부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고 단합된 군부가 이런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나, 우리는 현재로서는 다음 사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결정했음. 즉 현 체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용하기 힘든 행동을 완화시키고, 헌법에 기초한 합법적인 정부가 되도록 하며, 정치와 행정에 대한 군의 관여를 감소시키고, 분별 있는 경제정책들을 시행토록 하며, 야당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탄압을 억제시키는 것임.

동시에 우리가 한국의 현 정권과 지나치게 동일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현 정권의 행동이 완전하고 정상적인 한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행동인지를 지켜보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임을 지적해주어야 함.

4. 시나리오(A) 수감돼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언급을 포함해 아래 적시된 모든 지시사항을 전두환 장군에게 전달해야 함. 우리는 6월4일 전두환 장군과의 회동 때 전 장군이 언급한 내용이 이행되는지를 주시해왔으며, 최근의 일들이 양국간의 중요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해왔음.

(B) 전두환 장군을 만나기 전 6월23일 월요일에 박동진 외무장관을 만날 필요가 있음. 화요일 마닐라의 아시아개발은행이 실시할 대한국 차관 제공 여부 투표에서 우리가 기권하리라는 점을 월요일 한국 정부에 통보해야 하며, 통보할 내용은 추후 지시할 것임.

5. 전두환 장군과의 회동:이번 회동의 구체적인 목적은 실질적인 차원에서 그와 거래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가 암묵적으로 인정했음을 그에게 전달하는 것이며, 아울러 그의 행동 여하에 따라 관계가 규정된다는 점을 그에게 이해시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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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흥환 미국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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