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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 결합해야 희망있다”

세계적 석학 앨빈 토플러의 미래전망 <대담> 오명 동아일보회장

  • 정리·천광암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iam@donga.com

“한국,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 결합해야 희망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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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 : 전세계적으로 정보통신산업이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토플러 : 정보통신산업의 침체는 닷컴에 대한 과도한 반응과 통신산업에 대한 과잉투자로 설명할 수 있어요. 이를 둘러싸고 지나친 열기와 비관주의가 뒤섞여 있습니다. 정보기술이 가져다준 변화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은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4.4%의 양호한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잖아요. 정보기술 발전이 주도한 생산성 향상으로 생활의 질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예컨대 지난 30년간 미국 가정의 생활공간이 40% 늘었어요.

오명 : 최근 미국에서 정보기술 투자와 생산성 간의 관계 등 신경제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습니다. 정보통신 경기의 침체와 첨단기술주의 약세는 신경제 회의론자들이 힘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을 줬다고 보는데….

토플러 : 정보기술이 신경제의 전부는 아니죠. 신경제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50년대 지식노동자의 비중이 육체노동자의 비중을 앞지르면서 시작됐습니다. 신경제의 시동을 건 획기적인 기술발전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첫째, 정부만 갖고 있던 대형 컴퓨터를 기업이 갖기 시작했다. 둘째, 제트기가 상용화됐다. 셋째, TV가 널리 보급됐다. 넷째, 스푸트니크호 발사로 우주시대가 열렸다. 다섯째, 피임약의 등장으로 산아제한을 할 수 있게 됐다. 신경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매우 강력한 것입니다.

오명 : 앞으로 한국경제는 세계 경기, 특히 미국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입니다. 미국 경제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만약 미국 경제가 회복된다면 원동력은 여전히 정보기술일 것으로 보십니까.



토플러 : 미국 경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것이 가속화하고 있어요. 침체도 빠르고 회복도 빠르죠. 유럽은 기술공포증을 갖고 있어 경제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유럽은 IT분야도 크게 뒤처져 있어요.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이라고 해봐야 독일 IBM 직원 5명이 설립한 SAP가 고작이에요. 노키아나 에릭슨은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의 기업이어서 좁은 의미의 전형적인 유럽기업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유럽연합(EU)은 1년 예산의 절반 이상을 농업 분야에 쏟아붓고 있어요. 반면 정보기술이나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예산은 극히 적잖아요. 유럽은 전통적으로 제약산업이 발달해서 바이오기술 등에 앞설 수 있는 여건을 갖췄으면서도 신기술에 대한 거부 반응 때문에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유럽에 비해 미국과 아시아의 전망은 밝습니다. 다만 세계 경기를 예견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군사적 변수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겁니다. 예컨대 중국의 정치가 불안해지면 세계경제의 판도는 크게 바뀔 수 있어요.

오명 : 일본은 하드웨어에 집착해서 지식기반사회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강력한 IT산업 지원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시아권의 새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고요. 한국 중국 일본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토플러 : 일본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경제만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더 큰 문제죠. 국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1950년대와 1960년대 일본은 제품 품질이 나빠 거의 수출을 하지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일본이 경제적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55년 미국과 경제 군사 정치적인 문제를 아우르는 거래를 했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에 군사기지를 두는 대신 일본 물건을 사주기 시작했어요. 또 미국은 우호적인 자민당을 지원했습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은 그때와 많이 다릅니다. 소련이 없어졌고 일본은 수출할 상품이 아주 많아요. 미국은 경제적인 이해 때문에 자민당의 지지기반을 뒤흔들고 있어요. 쌀시장과 유통시장 개방이 한 예죠. 쌀시장을 개방하면서 전통적인 자민당 지지세력이던 농민이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민당 지지기반인 구멍가게 주인들도 대형 유통업체들이 확산되면서 더 이상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게 됐어요.

IT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일본은 IT를 정말 잘 받아들였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재빨리 받아들여 기존 제품에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응용했어요. 그러나 서비스 금융 유통산업 등에는 정보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반걸음만 나가고 반걸음을 남겨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죠.

오명 : 귀하는 ‘전쟁과 반전쟁’이라는 저서에서 제3의 물결시대에는 이전의 전쟁과 전혀 다른 하이테크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고도의 지식사회에서 ‘지식전쟁’이 갖는 파괴력은 엄청납니다. 컴퓨터 시스템의 교란만으로도 모든 것을 마비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지식정보가 고도화할수록 사회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것은 아닌지.

토플러 : 시스템은 결코 완벽할 수 없습니다. 백업시스템이나 복구시스템 등 복잡한 시스템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완전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들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테헤란에 사는 10대 소년이 혼자서 파괴할 수도 있어요. 많은 우수한 인력들이 보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위험은 우리 삶의 일부가 돼버렸어요.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방문했을 때 한 간부로부터 “IT시스템의 보안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그것을 조정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100% 보안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명 : 인터넷 사용이 확산되면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권력이 수평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잖아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권력은 여전히 집중돼 있고,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도 한정된 계층에만 열려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토플러 : 나는 ‘제3의 물결’에서 ‘반(半)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는 위험한 점도 많아요. 만약 미국 정찰기가 중국에 억류됐을 때 국민투표를 했다고 가정해보세요. 흥분한 미국인들이 ‘중국을 공격하자’는 위험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겁니다. 대의제나 대표제는 그런 점에서 유용하죠. 정보기술의 발전은 반직접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에 대한 접근 기회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아졌어요. 인터넷은 ‘일 대 일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국제전화시스템과 ‘일 대 다(多)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대중매체의 결합이에요.

이것은 흩어져 있지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거죠. 물론 인종차별주의자 테러리스트 등의 세(勢)결집 등 나쁜 목적에 활용될 수도 있지만, 소비자 권익의 증가에 기여하는 점이 많습니다.

새로 산 자동차가 고장을 일으켰을 때 과거에는 몇 번씩 교체를 요구하다 결국 포기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에 ‘이 차를 샀더니 이런 결함이 있는데 비슷한 문제를 겪은 사람이 없느냐’는 글을 남기면 순식간에 수백 명이 모여듭니다. 그 다음에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해요. 인터넷은 단일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다양성을 기초로 한 사회로 변하도록 영향을 줍니다.

현재의 정치시스템은 이와 같은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위기를 맞을 수도 있어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 걸맞은 새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야 위기가 해소될 겁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오명 : 귀하는 저서 ‘권력이동’에서 권력이 수평적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을 뒷받침하는 조건으로 기술발전이 정보유통체계를 개선해 정보불평등 현상이 해소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유통 방식의 등장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른바 정보화의 혜택이 국가 지역 세대간에 편중되게 적용되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문제가 생겨나고 있는 거죠. 디지털 디바이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정보 격차 해소될 것

토플러 :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 접속 등 IT 관련 비용을 낮추는 겁니다. 몇 년 전 멕시코에서 7000여 명의 교사들에게 강연할 때 질문을 해봤더니 TV는 모두 가지고 있는데 PC는 값이 비싸서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거예요. 전세계에 4억 대의 PC가 보급돼 있고 유선전화 수는 9억 대가 넘어요. 휴대전화는 5억∼6억 대에 이르고요. 인터넷이 확산되는 속도는 이보다 훨씬 빠를지도 몰라요. 기업들간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가격은 더욱 내려갈 것으로 봐요.

어떤 사람들은 ‘정보기기가 모든 사람에게 퍼지는 것을 기업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죠. 기업은 모든 사람에게 뭔가를 팔고 싶어하기 때문에, 기업간 경쟁은 정보의 분배를 촉진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의 정보에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1970년대에도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용어는 없었지만 나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어요.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낙관적입니다. 19세기 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도 정보 격차에 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아날로그 디바이드’인 셈이죠.

그 당시 전화는 일부 갑부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가정에 전화가 있습니다. 인터넷 격차는 전화 격차가 해소된 것보다 훨씬 빨리 해소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책 준비중

오명 : 귀하는 대학 졸업 직후 미국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관계잡지에 칼럼을 쓰기도 했고, 강단에 선 경력도 있으며, 기자와 편집장을 지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십수년이나 앞서 ‘정보혁명’을 예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토플러 : 한 가지 경험을 꼽기는 힘들어요. 1950년대에 노조잡지에 자동화와 실업에 관한 글을 실으면서 컴퓨터의 영향에 대한 연구를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1961년부터 미국 경제잡지 ‘포천’에서 2년간 일했고 그 뒤 IBM 요청으로 ‘자동화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백서’ 작업을 했어요. 중앙집중과 탈집중, 실업, 자동화 등이 연구 주제였죠.

1968년에는 AT&T로부터 전화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았습니다. 4년간 연구해서 1972년 11월 AT&T를 분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죠. AT&T 경영진은 이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캐비닛 속에 꼭꼭 숨겨두고 아무도 읽지 못하게 했어요. 그로부터 12년 뒤 AT&T가 분할됐잖아요.

미래 예측은 결코 신비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변화를 주도하는지를 보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래는 저절로 읽힙니다.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적절히 조화시키면 되는 겁니다. 나는 VCR가 개발될 당시 연구소에 찾아가 연구진과 이야기를 나눈 뒤 VCR가 보편화할 것임을 곧 알았어요. 또 테드 터너를 만났을 때 케이블TV의 미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오명 : 다음 저서를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새 책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토플러 : 항상 새로운 책을 준비합니다. 새 책은 다가오는 지식경제에 관한 겁니다. 부의 창출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 즉 시간 공간 지식 등의 측면에서 조명할 생각이에요.

오명 : 끝으로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토플러 : 지식기반사회,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의 융합 등이 유토피아 사회를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작용이 생겨날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정반대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고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세상이라는 점은 분명하겠죠. 그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를 궁극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몫일 겁니다.

신동아 200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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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천광암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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