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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의 문화오디세이 ⑨

욕정과 순정, ‘스타’의 두 얼굴

“침실에 끌려가‘최후의 것’을 요구당한 스타 복혜숙은…”

  •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욕정과 순정, ‘스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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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F. 케네디는 마릴린 먼로를 침실로 끌어들이려 했고, 박정희의 요정 파티에는 심수봉이 불려왔다.
  • 스타는 가장 아름답고 섹시하면서도 순결하고 모범적인 사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이유는 단 하나. ‘공인’이기 때문이란다.
욕정과 순정, ‘스타’의 두 얼굴

영화 ‘아리랑’ 제작 도중 제작진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운데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이 춘사 나운규.

유신 독재가 무르익다 못해 고름이 날 지경이던 1976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한 대학에서 소속 교수가 거의 다 참석한 교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유신에 반대하는 학내 시위가 일어났고, 재야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교수들은 ‘학생 지도’에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9호까지 발령된 긴급조치는 이미 양심적인 지식인과 재야인사, 학생들을 옥에 가두고 있었다.

‘학내시위 및 학생지도 대책마련’을 위한 회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 뒤늦게 자연과학대학의 김 교수가 헐레벌떡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평소 좀 눈치 없는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교수로서의 진중함과 엄격함을 충분히 갖춘 성실한 학자였다.

김 교수 : (이마의 땀을 훔치며) “헉헉…, 선생님들, 크 큰일, 큰일 났습니다!”

교무처장 : (긴장한 목소리로) “아니, 김 교수 무슨 일입니까? 긴급조치 10호라도 내려졌습니까?”

김 교수 : “그, 그 글쎄 나훈아랑 김지미가 결혼한답니다!”

몇몇 교수 : (입을 딱 벌리고) “아 아니, 저, 정말입니까?”

또 다른 몇몇 교수 : (벌러덩!)

한 대학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1976년 여름 나훈아-김지미의 결혼 발표는 또 다른 긴급조치의 발동보다, 아니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미장원에 모인 동네 수다쟁이 아줌마들에게뿐 아니라 교무회의에 모인 근엄하신 교수님들에게도 말이다.

나훈아와 김지미가 누구던가. 그들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중의 스타로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요 영화배우였다. 나훈아는 1947년생, 뒤늦게 군대에 가 제대 직전에 이혼한 그는 당시 서른 살이었다. 역시 이혼녀였던 김지미는 나훈아보다 일곱 살이 많은 연상이었다. 두 사람은 세인의 눈을 피해 몰래 연애를 하며 갖은 연막을 다 피우다 전격적으로 결혼 발표를 한 것이다. 당시 톱스타의 사생활이야말로 긴급조치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남이섬에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으니 요즘 남이섬은 일본인 여성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모두 ‘후유노소나타’, 즉 ‘겨울연가’의 인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겨울연가’의 주연 배우 배용준, 욘사마의 인기 덕분이다.

‘겨울연가’가 만들어낸 한류(韓流)의 효과는 단지 관광수입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적지 않은 일본 여성이 한국 남자와 사귀고 싶어할 뿐 아니라, 결혼까지 하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라고 한다. 배용준이 드라마에 심어놓은 이미지에 홀려 일본의 미혼·기혼 여성들이 한국 남자에 대해 환상을 품게 된 것이다. 한국 남자는 다 ‘둔땅이’(극중 남자 주인공 ‘준상이’의 최지우식 발음)처럼 다정하고 순정적일 거라는.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자에 대해 집단적 호감을 보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신드롬은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고 강력하다고 한다(유재순, ‘한국 남자에게 혹하는 일본 여성들’, ‘주간조선’, 8월20일자 참조).

‘한국 남자 = 둔땅이(?)’

일본 여성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다정다감하고 순정적인 남성상을 일본 남성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다. 그러나 그런 남성상을 찾기가 일본에서만 어렵겠는가? 기실 그 ‘둔땅이’는 한국 남자의 평균과는 정반대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추상적인 동경의 대상인 그런 남성은 드라마 속에만 존재한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환상에 사로잡혀 그들은 배용준을 욘사마로 부르게 된 것이다. 첫사랑의 아련함과 희생적 사랑에 대한 추억이 향하는 자리에 준상이라는 이름의, 또는 배용준이라는 이름의 남성이 있고, 그는 하필 한국인인 것이다.

욘사마 같은 애인이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일본 여성들의 환상이야 물론 한국 남자 한두 사람만 만나보면 깨질 것이지만 ‘겨울연가’가 유발한 경제효과만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관광수입만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니, 그 외의 유·무형 경제효과까지 합친다면 스타 한 사람이 만들어낸 ‘대박’치고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득을 챙긴 것이다. 도대체 스타가 무엇이관대?

가히 우리는 스타를 먹고 산다고 할 만하다. 단지 스타가 유발하는 경제효과가 대단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끝없이 스타를 이야기하고, 스타를 즐기고, 스타를 통해서 사고하고, 스타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뜻이다. 스타가 만드는 경제효과는 이런 우리의 삶을 경제적으로 표현한, 그야말로 부대효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스타를 소비하고 동경하고, 스타에 매달리는 향(向)스타성은 물론 여성에게서 더 강력하게 나타나고 젊은이에게서 더 강하지만, 현대를 사는 남녀노소에게 이런 현상은 거의 예외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 어떻게 스타는 그야말로 별이 되어 우리의 하늘 위에 떴는가? 과연 스타는 어떤 표상인가?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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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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