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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영화 읽기

‘아바타’에 얽힌 국제정치의 진실

마음을 얻는 외교, 그 잔혹한 두 얼굴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아바타’에 얽힌 국제정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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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기술의 신기원을 열어젖혔다는 ‘아바타’는, 그러나 영화 외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다. 외계종족의 형상을 ‘입고’ 현지에 뛰어들어 친밀감과 상호 이해도를 높이겠다는 아바타 프로그램의 기본개념, 에너지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원주민과의 협상에 임하지만 무위로 돌아가자 결국 무력분쟁에 돌입하는 일련의 과정, 아바타 프로그램을 작전정보 수집 채널로 활용하고자 하는 군부 등, 영화의 핵심갈등은 모두 미국의 대외정책 운용과 국제정치의 최근 흐름을 정통으로 꿰뚫고 있다.
영화 ‘아바타’가 전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1월 중순, 미국의 피겨스케이팅 스타 미셸 콴이 한국을 방문했다. 같은 시기 국회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재건팀(PRT·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과 경비 병력 파병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영화와 스포츠, 정치라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벌어진 이 세 가지 사안 사이에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말하면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에 빛나는 미셸 콴은 방한 기간에 가평의 청심국제중학교, 광주의 중고등학생들, 연세대 대학생들을 만났다. 전통음식연구소를 방문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주선한 곳은 미 국무부와 주한 미 대사관. 중국 등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 콴은 2006년 미 국무부가 최초로 임명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특사’다.

PRT사업의 경우를 보자. 미국이 2002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지역의 재건사업을 활성화기 위해 처음 도입한 이 시스템은 군과 외교관, 관련 전문가 등이 한 팀을 이뤄 불안정한 국가의 재건사업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군비지출 부담이 증가하면서 미국은 지역재건팀의 운영을 다른 국가로 이관해왔고, 한국 정부는 2009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 자체적으로 지역재건팀을 파견하고 경비 병력 350명을 파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해서, 영화와 현실의 두 사건을 잇는 하나의 키워드가 등장한다. 바로 ‘미국이 다른 문화와 접촉하는 방식’이다.

22세기의 공공외교?

“봐,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얻어야 해. 그들처럼 보이고 말해야만 그들은 우리를 신뢰하기 시작할 거야.” - 아바타 프로그램의 책임자 그레이스 어거스틴 박사의 대사.

우리말로 공공외교 혹은 대중외교로 번역되는 ‘Public Diplomacy’는 20세기 말 이래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그 중요성이 급속도로 강조되고 있다. 문화적으로 차이가 큰 국가와 국민들에게 미국 문화를 전파하고 상대 문화를 이해하려 애씀으로써 ‘긍정적인 미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공공외교의 기본 콘셉트다.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이 국제분쟁의 주요원인으로 떠오른 1990년대 이후, 할리우드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미국의 문화자산을 국제정치에 활용해야 한다는 ‘소프트파워’론이 그 이론적 근거로 자리매김했다. 군사력이나 경제제재 대신 상대방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부드러운 힘’이 21세기 국제정치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설명은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영화 속 어거스틴 박사의 말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미 국무부는 1999년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차관직을 신설해 이 분야를 경제외교나 국제안보외교에 버금가는 주제로 확장했다. 주한 미 대사관의 경우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와 크리스토퍼 힐 대사의 부임을 계기로 적극적인 공공외교 활동에 나섰다. 대사가 젊은 네티즌과 온라인 채팅을 하고 대사관 전용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져 화제가 된 것이 모두 이 무렵. 미셸 콴의 공공외교 특사 활동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공외교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은 근래지만 그 뿌리는 매우 깊다. 영화 속 어거스틴 박사가 아바타를 입고 시도한 첫 프로젝트는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 나비족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한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다. 학생들과 찍은 사진 속 박사의 모습은, 1961년 이래 20만명에 가까운 미국 젊은이를 제3세계 국가에 파견한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들을 연상케 한다. 국무부 산하 해외공보처(USIA)가 각국에서 운영한 미국문화원(USIS), 세계 53개 언어로 방송되는 라디오 ‘미국의 소리(VOA)’ 등도 모두 ‘상대방의 언어로, 상대방 속에 뛰어들어, 상대의 마음을 얻는다’는 영화 속 아바타 프로그램과 꼭 닮았다.

언어와 문화를 전파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관을 확산시킨다는 미국의 전략은 오늘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재건사업을 통해 민주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중동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영화에 영감을 얻은 미국의 공공외교 담당자들이 22세기 중엽이 되면 실제로 아바타를 입고 외교에 임하겠노라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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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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