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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카르자이들’ 탓에 탈레반만 신난다

국제 원조의 불편한 진실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부패한 ‘카르자이들’ 탓에 탈레반만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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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일가는 부패 분야의 최고봉 격이다. 재건 현장마다 ‘카르자이들’이 나타난다. 나라 전체가 범죄 소굴이다. 관리들은 원조금을 빼돌려 호주머니 채우기에 바쁘다.
  • 매관매직이 일상사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국제 원조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세계 각국이 곤란을 겪는 나라를 원조한다. 원조가 순수하게 인도주의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목적이 따라붙는다. 특히 미국은 원조를 통해 각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일본도 비슷하다. 원조를 통해 수출을 늘리고 원자재를 확보하고자 한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과거 식민통치를 한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원조에 나선다.

한국은 원조 덕분에 가난을 벗어난 나라다. 물적 원조는 물론이고 군사 원조도 받았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유엔 깃발 아래 재건 지원이 이뤄졌다. 국제사회가 제공한 원조 덕분에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고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국제 원조를 받아 성공한 가장 모범적 사례가 한국이다. 광복 직후 국민의 13%에 불과하던 문자 해독 인구는 50년 뒤 99%로 늘었다. 기대수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도 눈부셨다.

원조로 쌓은 민주주의 방파제

미국은 한국을 돕는 일에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었다. 사회간접자본(인프라), 교육·보건·농업개발 등에 투자했다. 한국 기업인과 정부 관리를 훈련시키고 인재를 미국에 데려가 양질의 교육을 받게 했다. 미국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곤란에 처한 나라를 자국 국민의 세금으로 돕고 있다.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미국이 세금으로 조성한 재원을 다른 나라를 위해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1845~1850년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미국 의회는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에 나설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갑론을박 끝에 원조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미국인이 낸 세금으로 다른 나라를 돕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랬던 미국이 국제원조에 발 벗고 나선 결정적 이유는 옛 소련과의 냉전 때문이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서유럽 국가에 대한 대대적 경제 원조를 추진했다. 소련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방파제를 쌓고자 원조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셜 플랜이었다. 초기에는 소련이 군사적으로 점령한 나라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 미국의 원조가 제공됐다. 소련의 공산화 정책이 없었다면 미국의 원조는 다른 양상을 띠었을 소지가 크다. 미국의 대외 원조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이 막을 내린 1990년대 급격하게 감소한다. 안보 리스크가 줄면서 원조도 줄어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이던 2001~2005년 미국의 대외 원조 규모가 40%가량 급증했다는 점. 이는 9·11테러 이후 안보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물론이고 이슬람 테러 조직이 암약하는 아랍이나 아프리카 나라를 상대로 활발하게 대외 원조를 했다. 그중 예멘을 예로 들어보자.

그 많던 원조는 어디로 갔을까

예멘에서는 현재 알카에다 소속원이 급증하고 있다. 알카에다 지도자 알 말라키가 활동한 곳으로 미국에는 말썽꾸러기 같은 지역이다. 미국은 예멘이 알카에다의 테러 기지가 되는 것을 막고자 원조를 대폭 늘리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올해 예멘에 6750만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한다. 국무부는 2013년에도 1억6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제공하려는 원조 프로그램엔 알카에다 요원으로 전락하기 쉬운 젊은이를 상대로 한 직업훈련이 포함돼 있다.

원조를 받아 성공한 한국은 매우 특별한 사례다. 아프가니스탄은 막대한 원조를 받았으나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그 많던 미국과 동맹국의 원조는 어디로 갔을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계획은 각종 국제기금을 이용해 이곳을 부흥시킴으로써 테러를 막고 전쟁의 상처를 씻어준다는 ‘멋진 것’이었다. 백악관은 아프가니스탄 원조를 시작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서유럽을 재건하고자 실행한 마셜 플랜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탈레반을 몰아내고 지원금을 제공하면 아프가니스탄이 가까운 장래에 ‘보통 국가’의 모습을 갖추리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미국의 이런 장밋빛 기대와는 달리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리들은 재건 기금을 무너진 나라를 되살리는 데 쓰지 않고 제 밥그릇을 채우는 일에 사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부패는 말단 관리부터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가족에 이르기까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일례로 국제 원조 자금 일부가 수도 카불의 도시 재건에 쓰였는데, 공공 기관이나 서민 주택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들의 초호화 주택을 짓는 데 돈이 들어갔다. 서민 거주지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대형 저택이 늘어선 세푸르 지역은 2001년 이전엔 그냥 황무지였다. 현재 세푸르의 주택 소유자는 대부분 관료다. 부유층 거주지를 만드는 것도 도시 재건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원조금으로 관료와 특권층의 개인 주택을 짓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그래서 이 지역의 다른 이름이 ‘도둑들의 도시’다. 세푸르 빈민가에서 교사 일을 하는 자만(48) 씨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무지하다. 우리를 돕고자 세계 각국이 얼마나 많은 돈을 보내는지 잘 모른다. 정부도 똑같이 무지하다. 국민을 위해 써야 할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정부 고위직에 올랐다는 것은 원조금을 빼돌려 외국 은행에 예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세상이 다시 뒤집혀 탈레반 정부가 세워지더라도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부유하게 살 수 있다. 변호사로 일하는 살만(37) 씨는 “국민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 정부 관료 중 국민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다”고 비꼬았다.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아프가니스탄에선 일상사다. 가즈니에서 경찰서장을 하는 아하마드 씨는 2010년 중앙정부 고위 간부에게 2만 달러를 주고 서장 직을 얻었다. 그는 “3년간 높은 분에게 공을 들여 서장이 됐다. 친척들의 현금을 모두 동원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만 달러는 집을 서너 채 사고도 남을 돈이다. 그에게 ‘왜 서장직을 원했는가’라고 물었더니 “몇 배를 뽑을 수 있는데 2만 달러가 대수냐”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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