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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한명숙 여성부장관 부부의 우럭매운탕

경상도 사나이가 요리를 하는 까닭

  • 글·최영재 기자 사진·김용해 기자

경상도 사나이가 요리를 하는 까닭

경상도 사나이가 요리를 하는 까닭
지난 1월 초대 여성부 장관으로 한명숙씨(57)가 임명되었을 때, 여성계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온 말이 있다. “가장 적임자다.” 아무리 빼어난 인물도 질시와 모함을 받는 법. 그러나 한장관을 겨눈 질시는 없었다. 그는 한국여성민우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 지난 30년 동안 재야 여성 운동계에서 전문성을 쌓은 대표적인 여성계 인사로 여든 야든 정치적인 이유로 백안시할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만큼 한장관의 어깨는 무겁기 그지없다. 기대와 걱정 속에 출발한 여성부를 반석에 올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는 엄연히 남편과 고1 아들이 있는 주부다. 따로 가사노동을 해줄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바쁜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비결은 남편 박성준 박사(61·성공회대 강사)의 외조다. 재미있는 것은 박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전통을 지닌 경상도 남자라는 사실이다.

박박사는 경남 통영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줄곧 이곳에서 성장했다. 통영 출신 박경리씨가 쓴 소설 ‘김약국집 딸들’을 보면 경상도, 그중에서도 통영 남자들의 습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 남자들은 빈둥거리며, 낮에는 잠을 자고, 밤만 되면 노름과 술, 계집질로 세월을 지샌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와 아이들을 두들겨 팬다. 돈을 벌지도, 집안 일을 하지도 않는다. 여자들은 뼈 빠지게 일해서 생계를 꾸리고, 집안 일을 도맡는다. 여자가 돈을 벌어오면 남자는 이 돈을 빼앗아 노름판에서 날린다. 그래도 남자들은 집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이다. 작가 박경리씨가 묘사한 남자들은 바로 경상도 통영의 전형적인 남자였다.

그런데 이 경상도 남자 박박사는 아침을 굶고 출근하는 아내 한 장관에게 사과 한 조각이라도 먹이려고 애를 쓴다. 한 장관은 아침에 도대체 시간이 없다. 조찬모임이 있으면 아예 새벽에 나가고, 그렇지 않아도 대개 오전 7시30분이면 집을 나선다.

더구나 이 부부에겐 결혼 18년 만에 얻은 외아들이 있다. 이 아들은 올해에 고1이 되었는데, 공부 때문에 신경이 매우 날카롭다.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다 잠자리에 드니 식욕도 있을 리가 없다. 아침이라도 잘 먹여 보내고 싶은 아버지는 갖은 노력을 다한다. 식빵에 버터를 발라 토스터에 굽기도 하고, 프라이팬에 지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침을 먹고 가면 하루종일 마음이 편하고, 굶고 가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경상도 남자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박박사는 여기에는 “생각은 앞서가고, 몸은 힘겹게 쫓아가는 오랜 세월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가 평균적인 경상도 남자와 다른 점은 항상 새로운 사조나 문화 흐름, 삶의 양식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가 접한 새로운 삶의 양식 가운데 하나였다. 한장관 덕분에 페미니즘에 눈을 뜬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항상 새로운 경험을 재빨리 섭취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활동가인 아내와는 달리 그는 골방에서 책을 보고 사색하는 사람이었다. 몸은 얼른 따라주지 않지만, 적어도 머리로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였다. 지금도 그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 나오면 꼭 읽고야 만다. 생각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부도 젊은 시절에는 많이 다투었다. 소재는 대개 가사노동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런 일도 없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큰일을 잘 하려면 결국 같이 사는 사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박박사가 한장관의 일을 해주는 셈이다. 예순이 넘은 이제야 아내가 여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인격체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그는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니 나이가 드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를 자주 칭찬하고 격려한다. 바깥에서 힘겨운 일에 상처받고 들어온 아내를 집안에서 위로하고 쓰다듬어 휴식하고 재충전할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젊은 시절 함께 고생한 아내에게 보답하려는 마음도 있다. 67년 12월 한장관과 결혼한 박박사는 6개월 뒤인 68년 여름 통혁당 사건으로 투옥되어 8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출감했다. 24살에 바깥 세상에 혼자 남은 한명숙 장관은 13년을 옥바라지한 뒤 37살이 되어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한장관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이다. 같이 시간을 보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음식이다. 비록 바깥일에 바쁜 한장관도 주말만큼은 가족을 위해 음식 준비를 한다. 김치도 직접 담가 먹고 음식 솜씨도 상당하다. 평양 출신인 그는 냉면 같은 평안도 음식을 가장 좋아한다.

반면에 한려수도 푸른 바다를 보며 자란 박성준 박사는 생선 맛을 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그 어떤 생선도 고향에서 먹던, 싱싱하다 못해 살맛이 달디단 생선 맛과 비길 수 없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생선 요리다. 그래서 종종 매운탕을 끓인다.

박박사가 가끔 하는 생선 요리는 우럭매운탕.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우럭은 싱싱한 것으로 골라 비늘을 잘 긁고 내장을 뺀다. 지느러미도 자른 후 5cm 크기로 토막내고 소금을 약간 뿌려 놓는다. 다음은 밑국물인 장국을 만들 차례. 쇠고기를 기름기 있는 부위로 잘게 썰어서 양념장(청장 2작은술, 다진 파 4작은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으로 고루 무쳐서 냄비에 볶다가 물을 넣고 끓여서 장국을 만든다.

그 다음은 부재료 차례. 두부와 무는 납작납작하게 썰고, 파는 어슷어슷 썬다. 풋고추와 다홍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씨를 털어낸다. 쑥갓은 5cm 길이로 썬다. 그리고 모시조개를 소금물에 조금 담가 놓았다가 헹궈서 준비하고 미더덕을 깨끗이 씻어둔다. 찌개에 미더덕을 넣어 끓이면 짭조름하면서 시원하다. 장국이 끓어 맛이 들면 우럭과 조개, 무를 넣어 끓인다. 다음에 매운탕 양념(4인분 기준 고춧가루 1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다진 생강 1작은술)을 넣고 끓인다. 우럭이 거의 익었을 때 소금이나 청장으로 간을 맞추고, 파, 두부, 고추, 쑥갓, 미더덕을 넣고 잠시 끓이다가 바로 불을 끈다. 미더덕은 나중에 넣어 잠깐만 익혀야 독특한 맛과 향이 살아난다.

박성준 박사는 요리를 하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CNN 방송을 들으며 밥도 하고, 청소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영어 듣기를 완전히 마스터했다. 일어와 중국어도 가사 노동을 하며 터득했다. 그가 출강하는 성공회신학대 NGO대학원에는 가정·직장·학교를 동시에 다녀야 하는 주부 활동가가 많다. 이들에게 박박사는 자신만의 공부 비결인 가사노동 활용법을 전수해준다. 박박사는 집에서 요리를 할 때 강원도 홍성군 여성단체가 선물한 앞치마를 두른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남자가 빨래를, 남자가 설거지를, 남녀가 함께하는 행복한 홍성군’.

신동아 2001년 5월 호

글·최영재 기자 사진·김용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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