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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美 부시정권 출범과 한반도

대통령도 될 뻔했던 4성장군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 콜린 파월 스토리

  • 이흥한 < 미 KISON 연구원 >

대통령도 될 뻔했던 4성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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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월은 평생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투쟁의 기질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미군이 필요한 곳에는 가야 하지만 불필요한 곳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폐쇄적인 고립주의도, 맹목적인 팽창주의도 아닌 중도파 실용 외교노선이다.
“할렘에서 태어나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자랐다. 대학 성적은 보통으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 진출해서는 열심히 일했다. 인종차별의 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차별 때문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콜린 파월의 성공담은, 인종차별이 존재하긴 하지만 재능있는 소수 인종의 성공을 막을 만큼 사회 구조가 그렇게 부패하지는 않았다고 믿고 있는 미국인에게 용기를 주는 일화다.”

1995년 7월10일자 ‘타임’의 글이다. 1995년 7월은 미국이 콜린 파월의 이름을 외치고 있을 때다. ‘타임’은 그 파월을 커버 스토리로 다뤘고,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디를 가나 콜린 파월은 사람으로 둘러싸인다. 몸에 찰싹 들러붙는 스판 옷차림으로 무장하고 워싱턴 시내를 누비는 자전거 급행 배달원들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파월 앞에 와서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조른다. 식당 웨이터들도 이 퇴역 장군에게 백악관을 노리라고 조언하고, 기업체 회장들은 은밀히 파월이 출마를 결심하도록 돈을 대겠다고 속삭인다. 어디를 가나 콜린 파월은 박수를 받는다.”

괜한 박수가 아니었다. 한 여론 조사는 다음해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클린턴과 공화당의 보브 돌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 맞서는 선거판에 파월이 무소속으로 끼여들어 3파전을 펼칠 경우, 유권자의 3분의 1이 파월을 찍겠다고 했다는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다. 또 파월이 만약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경우 클린턴을 근소한 차로 물리친다고도 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파월은 22%의 지지율을 보였다. 보브 돌의 43%에는 못 미쳤지만 워싱턴 정치판의 고참들인 팻 뷰캐넌이나 필 그램이 얻은 지지율 6%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콜린 파월은 직업 정치가가 아니다. 백인도, 앵글로색슨도 아니다. 최연소 합참의장을 지냈다고는 해도 이미 2년 전에 은퇴한 퇴역 장성이었다. “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닙니다. 나는 군인이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한발 물러서는데도, 미국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이 흑인 앞에 성조기를 흔들어댔다.

미국 유권자들은 공화-민주 양당이 갈라 먹는 미국 정치에 식상할 대로 식상해 있었다. 이처럼 수십 년이 넘도록 해소되지 않는 불만은 공화-민주 어느 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당파 독립 후보를 원하게 했다. 어느 당의 이름표도 달고 싶지 않다는 유권자 수가 골수 민주-공화당원의 수를 넘어서고 있을 때였다.

이념적인 중도파 파월이야말로 이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상적인 대통령 후보였다. 게다가 차기 대선에 나설 클린턴은 상처투성이였고, 보브 돌은 이미 두 차례나 대선 후보의 문턱에서 물먹은 낙오자였다.

한편 파월은 이미 워싱턴 사람이었다. 현역 군인으로 영관급 제복을 입고 있을 때부터 펜타곤에서 백악관까지 워싱턴의 게임에 참여했으며, 손에는 훌륭한 성적표가 쥐어져 있었다. 레이건 때는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었고, 12대 합참의장에 그를 임명한 사람은 부시 대통령이었으며, 클린턴 때까지 그는 합참의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화려한 경력과 대중의 인기는 그를 대통령 후보로 세우기에 충분했으며, 성품과 대인관계도 나무랄 게 없었다.

철두철미한 계산가

레이건 대통령은 파월과 함께 찍은 사진에 이런 글을 써주었다. ‘당신이 그렇다고 하면, 당신 말이 맞다는 걸 나는 알고 있소.’ 포드 대통령은 파월을 ‘미국 최고의 대중 연설가’라고 평했고, 국방부 차관이었던 폴 월포위츠는 ‘훌륭한 정치인이 국민과 소통하는 교신 기술을 파월은 터득하고 있다’고 했다. 카터 행정부에서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전 에너지부 장관 찰스 던컨은 또 이렇게 말했다. ‘그도 뭔가 잘못이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게 뭔지 꼬집어낼 수가 없다.’

그러나 파월은 백악관으로 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1996년 1월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통령 불출마를 선택한 ‘열흘 간의 숙고’에 대해 이렇게 심정을 토로했다.

“자선전을 펴낸 후,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해야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35년간의 군 생활과 2년에 걸친 집필, 그 다음은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했다. 가족들과 모여앉아 10일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 출마는 나나 내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5년 ‘미국의 햄릿’이었던 파월이 대통령 불출마를 결심하고 5년 후, 그는 정치인으로 다시 나타났다. 공화당 정권에서 미 역사상 최초로 흑인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것이다. 1993년, 역시 미 역사상 최연소였던 합참의장 자리에서 은퇴한 지 7년 만이고, 1972년 백악관의 선발 연구원으로 워싱턴에 발을 디딘 지 28년 만이다.

4년 전에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고, 부통령 자리마저 버렸던 그가 국무장관 자리를 택했다. 왜, 어떻게 이런 선택을 했을까? 1995년 7월 파월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 ‘타임’의 제목은 ‘파월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커버 스토리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파월은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언제나 조심스럽게 위험과 보상을 견주는 철두철미한 계산가다. 그는 정치 장군으로서의 경계가 어디인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지를 알아챔으로써 성공의 길을 달려왔다. 그는 인생을 통해, 미국 정치라는 참호 속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 사람이 되기를 시사한 적은 없었다. 한편으로, 파월은 한번에 두세 개의 계단을 오름으로써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다. 그는 아주 단호한 사나이다.”

파월이 대통령 후보 출마 여부를 놓고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공화당 후보가 되든 무소속 독립 후보가 되든 자신이 대선에 뛰어든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정치의 고착화된 기반을 뒤흔들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할렘에서 합참의장까지-이것이 콜린 파월의 대명사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제 이 대명사는 ‘할렘에서 국무장관까지’로 바뀌었다.

1937년 4월5일생으로 올해 64세인 콜린 파월은 뉴욕 맨해튼의 동북부 할렘 출신이다. 아버지 루터 파월과 어머니 모드 파월은 자메이카 이민자였고, 뉴욕의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콜린 파월은 평범한 흑인 아이였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스포츠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줄곧 평균 점수인 C만 받았다. 잠시 보이 스카우트 활동을 했으나 운동이라고는 길거리에서 노는 것이 고작이었다. 평범한 가정, 평범한 점수, 평균 아이,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뉴욕시 공립학교에 다녔고, 모리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시립대학(CCNY)에 진학해 지질학을 공부했다. ROTC였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58년, 조지아 주의 포트베닝에서 기본 군사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했다.

24세 되던 해인 1961년, 지금의 아내인 알마를 친구 소개로 만나 9개월 만에 결혼했다. ‘내가 살아온 미국(My American Journey)’이라는 자서전에 파월은 양가 부모와 함께 찍은 그의 결혼식 사진을 소개하면서, ‘장인이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익살맞은 설명을 붙여 놓았다. ‘딸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잘 몰랐음에 틀림없다. 결혼식을 하기 36시간 전에 나를 처음 만났으니까.’ 파월의 장인은 알마가 자란 앨라배마 주 버밍엄의 고등학교 교장이었다.

아내 알마는 파월의 진정한 동반자였다. 결혼 전 중위였던 파월은 이미 베트남 행이 결정되어 있었고, 결혼하자마자 베트남으로 떠난다. 이후 35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파월 부부는 근무지를 따라 24번 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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