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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남북첩보전쟁 반세기(하)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 vs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 이정훈 hoon@donga.com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 vs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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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은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간첩사건 때마다 거론되는 지하당을 거쳐,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직을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로 통칭하기로 한다. 평양에서 이를 지휘하는 사람이 곧 조선로동당 대남비서인 김용순인 것이다(남로당과 조선로동당 관계에 대해서는 이 기사 말미에 있는 별도 기사를 참조하기 바람).

광복 전후 이땅의 대공수사기관은 경찰과 SIS와 CIC로 불렸던 군 방첩부대(기무사의 전신)뿐이었다. 1961년 6월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가 창설되면서 대공수사국이 추가됐는데, 이때부터는 국정원이 대공수사 기관의 대표가 되었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을 제치고 남조선 혁명을 완성하려는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의 지독한 투쟁이 ‘대남공작’이고, 이러한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를 뿌리째 뽑아내겠다는 것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의 엄숙한 다짐이 ‘대공투쟁’인 것이다.

조선로동당 4개 대남부서 중에서 ‘수석’은 통일전선부(통전부)다. 김용순은 물론이고 이효순·김중린·허담 등 역대 통일전선부장은 조선로동당의 대남 비서를 겸했다. 통전부는 북한이 추진하는 대남공작의 기본 골격을 만드는 곳이다. 북한이 추진하는 통일방안을 만드는 싱크탱크 격이다. 이산가족 만남을 위한 적십자회담이나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회담은 전부 이곳에서 도맡는다. 남한 땅에 떨어지는 북한 삐라도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고 있다. 통전부 요원은 영사 직함으로 해외에 나가 해외교포 포섭활동도 한다. 일본에 있는 조총련도 이곳에서 관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육군 소장을 달고 논산훈련소장을 지낸 최홍희(현재 캐나다 거주)와 육군 중장 출신으로 외무부장관을 지낸 최덕신(崔德新·사망)이 1979년과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은 97년 발생한 황장엽 비서의 한국 망명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는데, 두 사람을 상대로 포섭 공작을 한 것이 바로 통전부였다. 최근 남북협상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아·태평화위’와 그전에 자주 등장했던 ‘조평통’, 그리고 8·15 대회를 주도하는 범민련 북측본부 등은 전부 통전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다.



통전부가 북한의 통일방안을 만드는 ‘두뇌’라면 사회문화부는 통전부가 만든 통일방안을 실행하는 ‘수족’이다. 사회문화부는 남한으로 침투해 지하당(서울지도부)을 만드는 일을 한다. 92년까지 지하당인 남조선로동당을 만들어 관리해 오다 북한으로 도주해 지난해 북한에서 사망한 ‘할머니 공작원’ 이선실, 95년 10월24일 부여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검거된 ‘부여간첩’ 김동식, 97년 10월27일 부인 강연정과 함께 울산에 침투했다가 검거된 후 부인은 자살한 ‘울산부부간첩’ 최정남, 98년 12월까지 민혁당을 지도하다 여수앞바다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돌아가다 해군 광명함의 포격을 받아 반잠수정이 격침됨으로써 사망한 윤태림 등이 전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었다.

유고급 잠수정 운영하는 작전부

이러한 사회문화부와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것이 작전부다. 작전부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을 한국으로 침투시키고, 임무를 마친 공작원을 북한으로 데려오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침투 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작전부(당시는 조사부라고 했다)는 휴전선을 통해 주로 육상으로 침투했다. 그러나 한국이 남방한계선 전체에 철책을 친 다음부터는 해상침투가 많아졌다. 해상침투를 위해 작전부는 서해의 남포와 해주, 동해의 원산과 청진에 연락소를 운영하고 있다.

작전부는 크게 두 종류의 선박을 운영한다. 하나는 유고급 잠수정이고 다른 하나는 반잠수정이나 자선을 싣고 다니는 공작모선이다. 유고급 잠수정은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주로 이용되고, 공작모선은 동·서해 모두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 해군은 그동안 자선은 여러번 격침시켰다. 그러나 반잠수정 격침은 드문 편이다.

반잠수정은 대개 5t급으로, 275마력짜리 OMC엔진을 세 개 달고 있다. 30(시속 55km 정도)내지 35노트로 달리는 일반 모터보트에 붙이는 엔진의 대당 가격이 1000만∼1500만원인데 반해, OMC엔진의 대당 가격은 무려 5000여 만원이다. 이렇게 좋은 엔진을 세 개나 달고 있기 때문에 반잠수정은 57노트(시속 102km 정도)까지 달릴 수 있다. 한국 해군 함정 중에서 가장 빠른 고속정도 35노트 이상은 달릴 수 없다. 따라서 반잠수정은 보고도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해군은 이러한 반잠수정을 딱 두 번 격침시켰다. 1983년 12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 이상규와 전충남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상륙시키고 빠져나가던 반잠수정을 격침시킨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로는 98년 12월 여수 해안에서 민혁당을 지도한 윤태림을 태우고 빠져나가던 반잠수정을 수십 척의 함정을 동원해 차단함으로써 완벽히 격침시킨 적이 있다.

공작모선은 대개 80t급으로 북한에서 제작한 1100마력짜리 라시보 엔진 4대를 달고 있어, 최고 53노트까지 달릴 수 있다. 한국 해군은 이러한 공작모선을 딱 한번 격침시켰다. 1983년 8월13일 울릉도 부근에서 작전하던 구축함 ‘강원함’(DD-922)은 ‘어선인지 상선인지, 또 국적이 어디인지’가 불분명한 선박을 발견하고 정선(停船)을 명령했다. 작전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도 침투한다(일본 침투에 대해서는 뒤에서 밝힌다). 이 선박은 ‘풍산호’라는 위장 명칭을 붙이고 일본으로 가던 공작모선이었다.

정선 명령을 받은 풍산호는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강원함의 최고 속도는 30노트에 불과했으나 이 함정에는 헬기가 실려 있었다. 간첩선이라고 판단한 강원함은 헬기를 띄워 풍산호를 격침시켰다. 해군 함정 중에 유일하게 공작모선을 잡은 강원함은 2000년 12월 퇴역했다.

1999년 3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은 수상한 선박을 발견해 정선 명령을 내렸으나 이 선박은 소총을 쏘며 고속으로 청진까지 도주했다. 불심검문을 거부하고 했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불심선(不審船)’으로 불렸던 이 선박도 작전부가 운영하는 공작모선이었다.

80t급인 유고급 잠수정은 아예 발견조차도 않되는 경우가 많은데 98년 6월 22일 속초 앞바다에서 우연찮게 걸려들었다. 잠수함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어선들이 쳐놓은 그물이다. 그물이 잠수함 스크루에 걸리면 오도가도 못 하므로 물 위로 부상한 다음, 사람이 나가서 칼로 그물을 잘라내야 한다. 이날 유고급 잠수정은 어민들이 쳐놓은 꽁치 그물에 걸려들었다. 물위로 부상한 잠수정은 승조원을 밖으로 내보내 칼로 그물을 뜯어내다가 어민에게 발견되었다. 어민 신고를 받는 해군 함정이 달려오자 승조원들은 잠수정 안으로 들어가 폭사(爆死)했다(유고급 잠수정은 작전부에서 운용하나 덩치가 큰 300t급의 상어급 잠수함은 인민무력성(인민군) 산하 정찰국에서 운영한다. 상어급 잠수함은 96년 9월 강릉에서 좌초한 바 있다).

간첩은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다

공작모선으로 침투할 경우에는 해안에서 40해리(약 72km) 떨어진 곳에서 반잠수정을 내린다. 그러나 유고급 잠수정으로 침투하면 1∼2km까지 바짝 접근한다. 해안까지의 거리가 1km 내외일 경우 작전부 소속 안내조와 사회문화부 소속의 공작원이 오리발을 신고 수영해서 침투한다. 그 이상일 경우에는 추진기를 타고 들어온다. 추진기는 스크루를 가진 소형 엔진인데, 수중에서 이를 붙잡고 있으면 수영보다 훨씬 빠른 3∼5노트의 속도로 침투할 수가 있다(추진기는 스쿠터라고도 하는데, 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들은 잠수시 스쿠터를 자주 이용한다. 스쿠터는 이미 레저 용품이 된 지 오래다).

추진기는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 아니라 작전부 소속의 안내조를 침투시킬 때 주로 이용한다. 2명으로 구성된 안내조는 육상에 올라가 약정한 드보크에 공작원에게 전달할 물품(돈이나 무기, 난수표 등)을 묻어놓거나, 공작원이 드보크에 묻어놓은 물품을 갖고 돌아온다. 추진기에는 통상 3명이 타는데, 추진기를 조작하는 추진기 기수는 육상에 올라간 안내조가 돌아올 때까지 추진기를 갖고 해안에서 기다린다. 공기통은 추긴기 기수만 매는데, 공기통에서 3개의 호흡대를 뽑아내 추진기 기수와 안내조 2명이 입에 물고 호흡을 한다.

98년 7월12일 묵호 앞바다에서는 이러한 추진기와, 공기통을 맨 채 사망한 추진기 기수 시체가 발견되었다. 수면의 기압은 1기압이나 10m의 바닷속은 2기압이다. 2기압 속에 있다가 갑자기 1기압으로 나오면 허파 속에 있던 공기와 혈관 속에 있던 공기의 부피가 두 배로 커진다. 이렇게 되면 혈관 속에 있던 작은 공기방울이 커져 머리로 연결된 뇌혈관을 막는다. 공기방울이 뇌혈관을 막아 피를 흐르지 못하게 하면 사람은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사망한다. 잠수 세계에서는 이를 ‘공기 색전증(塞栓症)이라고 하는데, 추진기 기수는 공기색전증으로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추진기를 타고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안내조 2명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작전부의 안내조는 사격이나 특공무술 훈련도 받기 때문에 테러나 암살 임무도 수행한다. 울산부부간첩 최정남의 진술에 따르면 96년 분당에서 김정일의 처이질 이한영을 저격 사망케 한 것도 작전부였다고 한다.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남자 시체가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합신조가 달려가 죽은 사람이 무기를 갖고 있는지, 이 사람의 지문이 남한에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해 간첩인지의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대공수사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에 따르면 한눈에 죽은 자가 간첩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이 남자의 ‘거시기’에 ‘고래가 잡혀 있으면’(包莖수술을 했으면) 남한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북한인이다. 북한 공작원들은 왜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에는 아직 포경수술을 하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작원도 그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지내는 것이다. 때문에 합신조에 참가한 사람들은 과학적인 수사에 앞서 변사자의 생식기부터 살피게 된다.

대외정보조사부(조사부)는 영사와 무역원으로 위장해, 해외에서 교민이나 외국으로 온 한국인을 상대로 공작한다. 작전부가 조사부던 시절, 대외정보조사부는 작전부 산하의 조사실이었다. 그러다 81년 조사부가 작전부가 되면서 조사실이 독립해 대외정보조사부가 되었다. 1978년 홍콩에서 최은희·신상옥 부부를 북한으로 납치한 것이 조사부다. 그러나 한국에 있던 두 사람을 홍콩으로 가게 한 데는 사회문화부의 공작이 있었다. 87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시킨 ‘위장 일본인 부녀(父女)’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김현희), 그리고 96년 7월에 검거된 ‘교수 간첩’ 무하마드 깐수(정수일)도 조사부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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