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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인제 지지는 변치 않는 나의 소신”

이인제 후원회장 파문의 주인공 박찬석 경북대 총장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이인제 지지는 변치 않는 나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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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최고위원 본인은 경선불복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던가요?

“가족끼리 회의를 해 어느 장군을 대표로 전쟁터에 내보내기로 했는데 그 대표가 나가기도 전에 (아들 병역문제로) 부상을 당한 것 아니냐, 일어서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대타가 나가 전쟁을 치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 그래서 나간 거라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이 대선결과에 불복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겁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총장을 가리켜 ‘운동권이다’ ‘TK(대구·경북)가 아닌 BK(부산·경남)다’는 등의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나를 BK 출신이라고 몰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엄청난 손해입니다. 나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생활을 해왔습니다. 서울에서는 단 5일도 하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나라당 의원 중 순수한 TK 출신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나를 BK라고 몰아붙이면 안 되죠.”

―이인제 후원회장을 맡은 것이 심사숙고한 결정이라고 봐도 됩니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했다는 얘기가 ‘La tierra es redonde(라 티에라 에스 레돈데),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 아닙니까? 하도 말이 많으니까 (후원회장을) 안 한다 했지만 그 사람들 생각은 그 사람들 생각, 내 생각은 내 생각 아닌가요.”

―후원회장 그만둔 뒤 이최고위원을 만나셨습니까?

“만났죠. 미안하다고 했죠. 사정이 이래서 못하게 된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남대와 인재교류도 하고 지역갈등문제 해결을 위해 애를 많이 쓰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피상적으로 이 지역갈등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자기 필요할 때는 지역감정을 이용하면서 평소에는 문제라고 해요. 나는 그런 게 싫더라고요. 영호남 갈등 해소한다며 만나 공 한번 차고 악수하고 술 마시고는 돌아와서 상대를 욕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지속적인 문화의 교류, 이해가 있어야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학에는 전남대 학생 110명이 와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시행하는 학생교류 프로그램인데, 우리 학교 학생 110명도 전남대에 가 있습니다만, 정부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체 협찬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학교 장학금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더라구요. 학생들이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두 지역의 학생들이 있는데 어떤 학생들이, 어떤 교수들이 경상도 욕을 하고 전라도 욕을 하겠어요.”

“내 아들 먼저 전남대로 보내”

―처음부터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학생교류의 뜻을 알리고 장학금도 준다며 모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학교에서만 160명이 지원했어요. 그런데 부모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했더니 동의서를 받아온 학생이 60명밖에 안 되더군요. 100명은 달아나버렸습니다. ‘전라도를 어떻게 가’ 이런 식이었죠. 당시 전자과 2학년이던 아들에게 ‘네가 먼저 전남대에 가서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애를 먼저 보내고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박총장은 득의 만면해서 “지금 모집하면 경쟁률이 4 대 1”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런 일은 우리만 할 게 아니라 다른 대학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간 500억원이면 1만 명의 학생을 1년간 교류할 수 있는데 영호남 사이에 88고속도로 뚫는 것보다 지역감정 해결에 더 효과가 높다”는 것이 박총장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인제 후원회장을 그만두신 것은 결국 지역감정에 굴복한 것 아닙니까?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는데도 그렇게 오해를 한다면 굳이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정치를 할 생각이었으면 국회의원 출마를 하든, 시장출마를 하든 선거판에 나서야지 후원회장 맡는 게 무슨 정치냐, 이런 정치도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어느 신문의 기자칼럼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후원회장을 맡았으면 이렇게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곳에 살면서 이 지역 정서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기는 싫습니다. 내가 부덕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낫지, 지역의 물이 흙탕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내가 물길을 따라가지 못했다, 할 수 있지만 내가 잘못했다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일로 교수협의회에 섭섭한 마음이 드셨을 텐데요?

“1~2년은 사람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3~4년은 못 속입니다. 나는 말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이번 건도 세월이 지나면 판가름날 겁니다. 세월이 지나면 ‘총장이 옳았구나. 우리가 무리했구나’ 할 겁니다. 지금도 그러잖아요. 우리가 너무했다고….”

박총장은 총장관저에서 학교까지 14km를 매일 40분씩 자전거로 달려 출퇴근하고 있다. 97년 9월에 시작했으니 3년 넘게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출퇴근뿐 아니라 시내에 약속이 있어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 자전거에 심취하면서 박총장은 자전거에 관한 책도 읽고 전국자전거운동연합회에도 가입하는 등 단순한 취미가 아닌, 자전거 마니아로서 활동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라는 제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총장 집무실 한켠에는 자전거 모형이 자리잡고 있어 그의 자전거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자동차를 졸업한 사람”

―출퇴근은 물론 외출 때도 자전거를 타신다는데, 까닭이 있습니까?

“처음에는 운동할 시간이 없어 시작했는데 타다 보니 의미를 두게 됐어요. 나는 ‘자동차는 졸업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장거리 갈 때는 버스나 기차를 타지만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는 것은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 양복을 입고 다닐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약속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양복을 입고 갈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고 하면 상대방도 흔쾌히 그러라고 합니다.”

박총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인재지역할당제’다. 서울사람이 듣기에 일단 거부감을 주는 이 제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 지방이 몰락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방도 인프라는 잘 돼 있습니다. 농촌 가보면 더 놀랄 정돕니다. 도로도 잘 포장돼 있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울로 갑니다. 교육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재들이 서울로만 몰리면 지방은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막아야 하는데 지방에 장학금을 더 준다, 기숙사를 지어준다, 좋은 교수들을 배치한다는 대책으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방에도 좋은 학생들이 몰리는 학과를 보면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교육대학 등인데 이들 학과를 졸업하면 자격증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지방에 정착하게 되면 파급효과도 적지 않습니다. 대구에서 100명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당장 지역경제에 파급효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부심으로 남게 되고, 지역발전을 가져옵니다. 지역발전의 핵심은 자부심입니다. 그러려면 좋은 학생들이 있어야 합니다.

인재할당제란 중요한 국가고시에 관한 한 그 지역의 인구비례로 선출하는 제도입니다. 사시나 행시, 회계사 시험 등 중요한 국가고시를 인구비례로 지방에 할당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법시험에서 1000명을 뽑는다고 할 때 대구·경북의 인구비율이 12.5%니까 125명을 대구경북 지역에 할당하는 겁니다. 그러면 서울로 가지 않을 거예요. 지방대학이라도 약대 한의대 의대 등의 대학입시경쟁률이 높은 이유가 뭡니까? 한의대 등은 사실상 할당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할당제라는 이름만 안 붙였을 뿐입니다. 의대 교육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걸 하자는 겁니다.”

―그럴 경우 형평성 문제라든지, 합격자의 질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이미 인재할당제를 알고 입학하면 학생들의 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역차별이 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인재할당 특별법을 만들자고 주장해왔습니다. 지난번 15대 국회 때도 법률안을 제출했습니다만 임기가 끝날 때까지 통과가 안돼 자동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운동차원에서 지역대학 총장들과 힘을 모아 입법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지역대학 총장들이 자기 지역 출신 의원들을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서울로 올라가는 학생들이 대략 6만 명입니다. 6만 명이면 연간 들어가는 돈이 6조원입니다. 매년 6조원의 돈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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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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