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 최장집 < 고려대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입력2005-04-12 14: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부시의 신방위전략 아래서도 남북한 평화공존 관계는 발전할 수 있다.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에 따라서는 남북한 관계의 자율적 공간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의 정책이 남북관계를 규정할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 화해협력 평화공존이라는 공감대를 이룬다면 부시 정부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금년 초 미국 공화당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는 한국의 대북 화해평화공존정책과 남북한 관계를 전망해보면서, 지난해 역사적인 6·15남북정상회담 의미를 되새겨보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건은 얼마나 빨리 성사될 것인가 하는 시간의 문제였을 뿐 거의 자동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부시 정부는 방위전략을 세계적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대북 및 동아시아정책을 클린턴 정부의 포용정책과는 확실히 대조적인 강경기류로 급격하게 바꾸어놓았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적대와 증오로 얼룩진 남북한 관계를 평화공존, 화해협력 관계로 전환하려는 한국정부나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개방적 자세로 보조를 맞추기 시작한 북한정부에 중대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 초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은 양국정부의 대북정책이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대통령의 방미는 한 미국언론의 표현처럼 “미국과의 불화로 상처받은 방문(troubled visit)”이었는지 모른다. 한국 여론은 그 성과에 대해 압도적으로 비판적이었고, 특히 언론들은 재난 혹은 그에 가까운 실패로 평가하는 등 극도로 부정적인 비판을 쏟아내면서 여론을 주도했다.

    과연 그렇게 보아야 하나? 이러한 문제를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작년 1차 남북정상회담 의미를 짚어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교적 자율성 연 남북정상회담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작년에 있었던 1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냉전을 해체하는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계기였다. 2차세계대전 후 냉전의 확대발전이나 1980년대 말 이래 냉전 해체는 모두 유럽과 아시아의 두 축을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이 점에서 독일과 한국은 두 진영간 갈등과 변화의 핵심적인 지역이었다는 공통성을 갖는다. 유럽의 냉전해체가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로 상징된다면 아시아냉전의 해체는 6·15남북정상회담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이는 남북한관계의 변화가 전략적·전술적 차원의 변화이기에 앞서 일차적으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남북한이 평화공존, 화해협력을 중심으로 한 관계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거나 극히 협소한 외교적 자주성 내지 외교적 자율의 공간, 즉 남북평화관계의 전제조건으로서 ‘북방외교’와 대조되는 ‘서방외교’ 공간을 열었다.

    노태우 정부 시기의 북방외교는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해체에 발맞추어 자율적으로 대북정책의 영역을 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방외교는 과거 북한의 배후지원국가였던 러시아·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새로이 발전시키고 강화함으로써 북한을 배후에서 포위하는 패권적 대북관계, 즉 일종의 북한고립화 전략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방외교는 남북한간 평화협력 관계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중국, 소련은 물론 지금까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연합과 유럽국가들과의 외교관계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중심내용으로 한다. 이는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걸쳐 실시된 서독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에 비유될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심에 두되, 이에 대칭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소련·폴란드·체코를 필두로 한 동유럽과의 관계개선이 동·서독 관계발전의 전제조건이 된 당시 독일 상황과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율적 외교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정치지도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탈냉전과정에서 얻은 필연적 부수효과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냉전이란 양대진영으로 분할된 영역 내에서 패권적 초강대국을 정점으로 위계적 권력관계 구조를 갖는 체제다. 이러한 구조 내에서 진영을 구성하는 성원의 자율적 외교공간은 진영간에 냉전적 대립이 강할수록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냉전의 해체와 탈냉전 세계화의 구조는 이러한 위계적 관계가 느슨해지는 만큼 국제관계의 성원들에게, 아무리 약소국가라 하더라도, 자율적 공간을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게 마련이다. 즉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면서 자율 공간을 만들어내고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남북한간 화해협력, 평화공존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는 이를 한반도판(版) 데탕트 단계, 즉 평화공존과 화해를 바탕으로 한 남북한간 협력적 파트너십의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일차적으로 전쟁 위협을 제거하는 평화공존관계 설정, 즉 남북한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체제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냉전 후 남북한관계의 최소목표임을 뜻한다.

    그 동안 남북관계는 힘에 의한 것이든,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든 통일이 궁극적 목표였다. 이는 또한 자신의 체제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통일과 증오(적대)는 하나의 짝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이를 평화관계로 바꾸려면 화해, 관용, 공존, 오랜 시간과 전망이 필수적이다. 남북한관계의 철학과 비전이 바뀌어야 이것이 가능하다. 즉 화해와 공존은 일방적 승리의 포기, 즉 최대 목표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평화공존 이후의 관계발전 방향을 계속 열어두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한관계에서의 탈냉전의 비전은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한반도에 민족주의가 가장 긍정적이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어떤 통일된 이상사회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극한대결과 전쟁을 통하여 경험했던 것과 같은 최악의 재난을 방지하는 평화 관리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남북한관계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념적이기보다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 체제와 관련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신념 또는 도덕적 판단, 집단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데올로기적인 것, 낭만적인 정서와 이념, 신념의 체계들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3월의 한미정상회담을 어떻게 보느냐는 앞으로의 한미관계, 미국의 대북정책, 남북한관계를 포함한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돼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국내의 보수적 여론과 언론은 크게 비판적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필자는 여기서 이러한 평가가 옳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들 비판적 여론은 전략전술적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전략전술적으로 본다는 것은 반공을 절대적인 가치와 목표로 설정한 기반 위에서, 위계적·폐쇄적·경직적 특징을 가진 한미동맹관계를 유일하고도 불변의 것으로 상정했던 지난 냉전시대의 틀로 이해하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략전술은 이 관계의 구조를 변하지 않도록 하는 전략적 수단과 방법이며, 또 이것이 외교의 최대목표요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뜻한다.

    냉전의 해체는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의 해체 또는 성격변화로 인해 이 틀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유연하고 상호의존적이며, 다면적이고 다자적인 국제관계를 발전시킨다. 냉전 시기에 한국과 같은 약소국이 갖지 못했던 자율 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전환과정에 자율적 공간을 적극 활용할 기회를 준다. 탈냉전과정은 동맹체제 내 국가들간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변화를 수반한다.

    따라서 필자는 냉전해체라는 국제관계의 구조적 변화라는 관점에서, 지난 3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비판적 여론은 이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탈냉전의 전환과정에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미간의 일정한 차이, 주권국가로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율 공간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비판자들은 주로 세 가지에 초점을 둔다. ①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내용의 문제로, ‘햇볕정책’이 미국의 대북정책과 충돌함으로써 한미관계 공조의 틀에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 ②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러시아대통령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부시 정부의 기본정책중 하나인 ‘미 본토(또는 국가)미사일방위(NMD)’와 ‘전역미사일방어(TMD)’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한국이 한미관계보다 한러관계로 경도하거나 아니면 미국과 소련, 중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 ③ 회담의 타이밍 문제로서 김대중-부시의 대면이 너무 빨랐고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사전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주권국가의 자주외교

    우선 첫 번째 문제를 보자. 남북정상회담이 클린턴 전대통령의 포용정책과 페리보고서의 틀과 충돌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하나의 주체적 행위자로서 자율 공간을 활용하고 적극적 외교를 펴는 것은 필수적이다. 탈냉전을 지향하는 자율적 외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그 시각과 가치가 냉전 수구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독립된 주권국가가 취할 수 있는 자주외교의 한 표출 형태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차이가 그토록 심각한 외교적 문제라면 미국의 이해를 구하거나 협상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지금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일방적이고도 공격적인 방어전략은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중국과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주요 국가로부터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형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분명히 드러나듯이, 부시의 새로운 전략구상은 너무나 과격하고 충격적이어서 전세계가 그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말대로 “부시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정도다(5월5~11일호). 핵미사일통제와 핵확산방지, 그리고 육해공에 기초를 두었던 종래의 방위전략으로부터 우주공간으로 장(場)을 확대하여 이를 선점하려는 전면적 전환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 때문에, 심지어 일본조차 정책을 확정하지 않고 관망하면서 신중히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다(아사히신문, 5월3일자).

    현재적·잠재적 비판자들과 지지를 유보하는 전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자국의 전략 변화를 설득하고, 새로운 전략체계에 참여 인센티브를 주어야 할 측은 미국이지 다른 나라가 아니다. 5월 초 미 국무부의 아미티지 부장관과 겔리 아태차관보의 방한은,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는 대가로 새로운 전략체계를 지지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중요 목적이었다.

    셋째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신정부의 정책 결정자들과 외교채널을 유지하지 못한 무능력이나, 치밀한 준비부족 같은 외교적 실책을 탓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준비를 위하여 회담을 수개월 늦춘다 하더라도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클린턴 민주당정부의 포용정책을 그대로 되밟지 않는 것이라면 한미간에 발생한 불편한 관계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시 정부의 방위전략변화로 커다란 도전에 부딪힌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동방정책이 진행되던 도중 두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소련이 ‘프라하의 봄’을 무력으로 분쇄하고, 소련 영향권 내의 국가들에게 제한주권을 부과하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선포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닉슨 행정부의 출현이다. 반공을 강조하고 매카시즘과 깊숙한 관계를 가졌던 공화당 보수파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는 막 진행되고 있던 데탕트에 대한 역진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후 소련은 팽창정책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닉슨 정부 역시 냉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보였던 이 시기, 닉슨 정부는 서독의 동방정책에 결코 우호적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란트 정부는 동방정책을 일관되고 착실하게 추진하여, 밖으로는 닉슨 정부가 유럽에서 데탕트를 추구할 수 있는 한 축(軸)을 만들고, 안으로는 1982년 이후 헬무트 콜 기민당정부가 이를 계승하도록 하여 독일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과 독일이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냉전의 최전방으로서 분단과 미군정을 경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데탕트와 탈냉전의 타이밍에 차이가 있는 것은 자율 공간을 활용하여 기회를 창출하는 지도자들의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민들의 공감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서독과 미국, 한국과 미국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자율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차이다. 그것이 마치 동맹의 해체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3월 한미정상회담 과정에 미국의 신정부 고위인사들이 한미간 동맹관계에 어떤 차이 내지는 틈새라도 생긴 듯 불쾌함을 나타낸 것은, 한국도 일정한 자율 공간을 활용하면서 대북정책 주도권을 가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혹은 일정한 외교적 자율공간을 확보한 한국이 자신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미사일방어체제를 무조건 지지하지 않고 유보적 태도를 보인 데 대한 그들의 유쾌하지 않은 심리적 상태의 표현임과 동시에, 한국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길들이기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거친 한국대통령 다루기’를 국내의 일부 냉전보수파들이 지지한 것은 자국(自國)부정적 심리상태가 아닐 수 없다.

    탈냉전으로 바뀐다는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지난 한미정상회담이 다수 여론과는 달리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대북 평화공존, 화해협력정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그의 보수강경파 막료들과의 대면에서 난관에 직면했다. 그러나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볼티모어 선’ ‘월스트리트 저널’ 그리고 짐 호그란드, 돈 오버도프와 같은 베테랑 기자 등 주요 언론과 언론인들, 기업인들을 포함하는 비정부적 차원에서는 적지 않게 한국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들의 지지는 남북관계에서 탈냉전으로의 변화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햇볕정책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유럽과 캐나다 등 세계 여러 국가들이 부시 정부의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정부의 대북평화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대북평화정책이 시대변화를 대변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정책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요컨대 1차 남북정상회담 성과와 이후 한반도에서 탈냉전 진전 정도는 유럽의 냉전해체에 발맞추어 아시아냉전해체를 뒤늦게 촉발하면서 세계적 수준에서 탈냉전과정을 바꾸기 힘든 것으로 만들었다는 구조적 변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냉전적 발상을 갖는 부시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추진하는 미국의 패권적 팽창정책은, 탈냉전과 평화질서의 발전이라는 구조적 변화와 조응하기 어렵다. 물론 냉전적 요소가 국지적으로 존립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변화된 상황과 2차 남북정상회담

    1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답방을 제일의 의제로 올려놓았다. 답방이라는 말은 1차 정상회담의 성공을 표현하는 말로, 내외적 조건의 연속성을 전제로 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답방은 1차 회담의 합의내용을 다지고, 그 바탕에서 한반도 탈냉전을 가속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미국 공화당정부의 수립 이후 석 달 동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한반도의 탈냉전 과정은 커다란 재조정기를 맞게 된 것이다. 설사 탈냉전 과정이 다시 진행된다 하더라도 과거 클린턴정부와는 크든 작든 차이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미국으로부터 포용정책을 지원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남한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제한적 개방정책’이 상호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협력 분위기가 일정하게 냉각된 상황에서 남북한은 1차 회담의 합의내용을 지키고, 나아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탈냉전을 실현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부시 정부는 집권 초 수개월 동안 한반도의 탈냉전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북한을 ‘불량국가’, 미사일방어망 구축의 주요 타깃으로 규정하면서 대북 강경정책을 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전세계적 수준의 방위전략 수정이라는 차원, 둘째는 지역적 수준인 대(對)한반도 정책변화라는 차원, 셋째는 국내적 수준으로서 이에 대한 남북한간의 대응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패권 확대정책을 추구하고 미사일방어망을 지속적으로 구축할 것이냐 아니면 국내외적 반대에 직면하여 포기할 것이냐가 첫 번째 차원의 문제다. 두 번째 차원은 강경정책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U턴하여 다시 포용정책을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리고 마지막 차원은 남한과 북한의 냉전보수파들이 냉전 상황을 만들어 내부상황을 보수화하고 사태를 뒤집을 것이냐 아니면 냉전 후의 화해협력, 평화공존세력들이 우세해질 것이냐의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드러나는 것은 NMD, TMD 같은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중심으로 한 미국 방위전략의 전면적 방향전환과 대북강경정책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동일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하면 부시의 신방위전략 아래서도 동아시아에서 남북한평화공존관계 발전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에 따라서는 남북한관계의 자율적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첫 번째의 전체 방위전략적 수준보다는 두 번째의 대한반도정책 수준에 있어서 남북한의 정책방향과 남북한 각각의 국내적 조건이 미국의 정책을 바꾸는 데 더 큰 효과를 가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정책이 한반도정책을 규정하기보다는 국내 조건이 그 향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즉 인과관계는 역(逆)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화해협력, 평화공존 공감대를 이루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북한 지도자들은 1차 정상회담의 정신과 성과 위에서 2차 회담을 성공시켜 이러한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미 1차 정상회담은 한국사회 내부에서 확실히, 그리고 아마도 북한사회에서도 상당 정도로 증오와 적대의식을 누그러뜨리고 상대와 화해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남북한 평화공존화해관계가 지나치게 빨리 전개되는 데 우려를 나타냈던 이른바 ‘속도론’의 설득력도, 그리고 남남 갈등을 강조하면서 대북포용정책에 반대했던 보수적 비판의 소리도, 주류언론의 논조와는 다르게 그만큼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평화공존관계의 발전을 중심으로 한 탈냉전은 이미 과거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한국사회에 확고히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힘이 아니었다면 5월 초 미 국무부 고위관리들이 방한해서 김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이루어질 2차 남북정상회담은 확고히 탈냉전 평화공존정책을 실현해야 할 과제를 안는다. 그것은 2차 정상회담의 실현과 합의를 통해 개선되는 남북관계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뒤집거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인식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이는 동시에 남북대립을 기화로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도 가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차 회담은 회담의 성사 못지않게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중요하다. 의제의 내용과 관련하여, 최소-최대목표 사이의 범위는 미국의 정책과 남북한 각각의 국내적 조건, 이들 양 체제가 수용할 수 있는 변화의 정도라는 두 가지 변수에 의해 제약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6·15합의를 준수해야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전쟁위협을 종식하는 남북한 평화공존관계의 제도화와 국내냉전구조를 크든 작든 일정하게 해체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설정과 관련하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다시 한 번 유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동방정책은 동독에 대한 외교적 승인 및 화해공존뿐만 아니라 동유럽국가와 화해하기 위해 동독-폴란드 간 국경인 오데르-나이세선(線)을 인정했다. 이는 당시 서독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결정이었다. 이러한 큰 결정이 동서독간 평화공존이 정착되고 통일이 가시화된 상황에서가 아니라 데탕트 초기단계에서 취해진 조치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의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한반도 평화체제를 제도화해서 남북한간의 외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문제다. 즉 전쟁위협 종식과 실질적 군축 내용을 담는 한반도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과 관련한 문제다. 이러한 문제들은 휴전협정체결 이후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을 잇는 평화공존체제 구축을 위한 업적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는 한반도평화협정은 군축, 군대 재배치를 비롯해 실질적 평화와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남북한 관계개선에도 불구하고 군사문제에서 북한의 위협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또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는 중요한 명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2차 정상회담에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점이다.

    둘째, 민주주의와 인권개선이라는 보편적 가치실현을 위해 남북 내부의 냉전적 잔해를 제거하고 극복하는 문제가 포함될 수 있다. 예컨대, 남한의 국가보안법 개폐와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전문(전국적 범위의 인민민주주의혁명을 규정)의 개폐가 의제가 될 수 있다. 분단과 남북대결을 빌미로 사회의 보편적 발전을 제약해왔던 요소들을 상호제거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에 착수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합의는 북한에게도 상당한 민주화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남북한 지도자들은 남북 사이의 평화, 군축협력을 실질적으로 합의해서 북한의 군사위협을 명분으로 현재 강경노선을 취하는 미국 부시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을 바꾸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회담 문제는 김대중 정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임기 후반 실질적으로 남북관계와 국내정치를 좌우할 최대 고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신냉전과 미국의 패권확대 정책

    현재 부시 정부의 대동북아정책은 클린턴 정부의 ‘민주주의의 점진적 확산을 통한 포용정책’에서, 미사일방어체제의 구축을 앞세운 패권확대정책으로 전환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미 본토미사일방어와 전역미사일방어정책은 그 대표적 표현이다. 현재 러시아-중국-북한은 이러한 정책변화로 인해 미국이 패권을 확장하고 동북아의 균형을 파괴하는 것을 우려해 새로운 미사일방어정책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냉전해체를 향해 나아가던 한반도에 다시금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혹자는 이를 신냉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시 정부의 강경보수화는 아버지 부시 정부는 물론 레이건 정부의 그것을 뛰어넘는 것으로, 냉전의 절정기 60년대에 공화당 초강경우파를 대변했던 배리 골드워터 유형에 비유될 정도로(‘워싱턴포스트’ 4월18일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평화, 협력의 분위기는 크게 흔들리고 있고,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미관계는 일대 조정국면에 들어갔다. 그래서 새로운 긴장국면을 초래하고 있는 부시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과연 지속 가능하며, 이러한 정책이 성공해서 신냉전이 도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를 검토하기 위해 먼저 냉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냉전은 기본적으로 세계적 수준에서 체제간, 이데올로기간 대립에 의해서 존립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에서 해체된 냉전이 동아시아에서 존립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한반도에서도 냉전의 해체는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말 영국수상 마거릿 대처가 “냉전은 끝났다”고 천명했을 때, 반세기전 처칠이 냉전의 시작을 선포했을 때와 같이, 그것은 헤겔이 말하는 “시대정신 (Zeitgeist)”을 표현하는 선언이었다. 이는 우리말로 하면 거역할 수 없는 ‘대세(大勢)’를 의미하는 것이다. 냉전 후 세계를 특징짓는 개방성, 평화, 상호의존, 경제이익, 시장경쟁, 세계화, 정보화의 시대가 군사경쟁, 폐쇄성, 위계성, 이데올로기대립 등 냉전질서의 특징들과 조화하기는 어렵다.

    부시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자들은 오히려 전임 클린턴 정부의 정책이 냉전적 잔존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자신들은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개념을 통해 핵전략을 포함한 안보문제를 전반적으로 재평가한 바탕 위에서 새로운 미사일방어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새 전략은 새로운 발상에 입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즉 냉전시기의 육해공을 무대로 하였던 군비경쟁을, ‘우주 속에서, 우주로부터, 우주를 통해’ 군사력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하여 잠재적 경쟁자들이 우주공간을 적대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사전에 억제하고자 하는 거대기획하에, 무한대의 우주공간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첨단과학기술로 무장된 병기를 통하여 우주경쟁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미국의 패권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신방위전략은 최첨단 정보화산업과 우주개발산업 발전이라는 냉전 후의 요소를 함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획이 군사전략과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이를 정당화하는 담론의 체계, 레토릭은 여전히 지난 시대의 냉전적 이데올로기 대결을 불러일으키는 공격적·군사적 내용을 중심에 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한 외국 언론인의 표현처럼 “모든 국가 위에 군림하는 미국(America ber Alles)”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위압적이고 일방적인 것이다(‘뉴욕타임스’ 4월16일자). 이 거대기획은 1000억 달러 이상, 많게는 2000억 달러 이상의 프로젝트비용이 필요하고,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국가를 잠재적인 적 내지 군사적인 경쟁자로 설정하면서 대규모대결을 가상한다. 또 북한이나 이란, 이라크와 같은 몇몇 ‘불량국가’들에 의한 미사일 공격을 상정하는 전략적 사고에 기초한다.

    사람들은 과연 그러한 기획이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며 군사기술적으로도 효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갖는다. 이렇듯 야심적인 부시 정부의 패권정책이 시대에 맞지 않고, 이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기획이 갖는 진실성에 대한 회의와 무엇보다 시대정신과 조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초 레이건 정부 시기에서와 같이 신냉전적 상황이 사실상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핵확산으로 미국의 핵독점을 통한 안정적 저지력이 약해지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쿠바의 앙골라혁명해방군 지원 등 사태에 대응하면서 ‘악의 제국’이라는 냉전담론을 내세우고 냉전전략을 강화했다. 또 이른바 ‘별들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대륙간전략방어체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한 바 있었다. 이 시기는 냉전의 마지막 국면이기도 했다. 쇠퇴국면이기는 했지만 냉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냉전부활전략이 실패했는데, 냉전이 해체된 21세기 냉전후 시기에 부시 정부가 지나간 냉전시대와 같은 대결상황을 부활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정치군사전략이 한 시대의 사회적 조건이나 가치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냉전적 상황이 특정지역에서 특정시기에 국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신방위전략을 구상하는 부시 정부 사람들의 견해와는 달리, 군사적 위협보다도 군사적 케인스주의와 유사한 어떤 논리, 그리고 부시의 등장을 도운 미국 국내의 경제적 기반과 더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과 이에 대응하는 방위전략이라는 양자간 관계에서 볼 때,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 내지 끌어당기는 요소라 한다면, 후자는 밀어내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의 정책은 이 양자 사이의 상대적 힘의 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세계적 수준에서 도전세력이 존재하여 실제로 군사적 위협이 되기 때문에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중심으로 한 최첨단기술로 무장된 군사력 확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후자는 실제적 군사위협과는 덜 대칭적으로, 또는 그것과는 무관하게 방위체계의 확장을 도모한다는 설명이다.

    냉전 후로 오면서 끌어당기는 힘보다 밀어내는 힘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대규모 군사위협이 그만큼 적어지는 가운데서 정치경제적·군산복합적 요구가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첨단과학기술개발의 요구가 밀어내는 힘을 만든다는 것이다. 첨단과학기술 정보 및 우주개발 산업화는 아마도 방위 분야가 최첨단과학기술을 소비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산업부문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해외의 언론은 부시 정부의 고위 정책결정자들이 첨단방위산업부문과 구체적인 커넥션을 갖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인터내셔널헤럴드 트리뷴’ 3월6일자). 밀어내는 요소가 일정 정도 힘을 갖는 것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무엇보다 먼저 그러한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은 국제적·국내적 여론의 저항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부시 정부에게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은 최우선순위의 책정적 요구이며, 상당 정도로 첨단방위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반도평화는 우리 외교역량에 달려

    그러나 미국은 민주주의국가이며, 기본적으로 선거와 여론에 의존하는 정책을 펴기 때문에 첨단방위전략을 구축하는 군사지향적 정책은, 이러한 밀어내는 힘과 민주주의적 여론이라는 힘 사이에서 균형점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한반도정책과 관련하여 볼 때, 미국에 중요한 것은 대북강경정책이 아니라 미사일방어체계의 구축이라는 점이다. 이 점이 암시하는 것은, 남북한 화해협력관계 증진이 미국 방위전략 전환과 반드시 충돌한다고 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탈냉전 성격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필자는 암묵적으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더 평화적이고 덜 이데올로기적이며, 덜 대결적인 체제로 상정하면서 탈냉전과 냉전 후라는 말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해왔다. 탈냉전은 분명 냉전을 해체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이 탈냉전이 반드시 평화의 가치와 질서를 그 중심에 놓는 냉전 후 체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냉전 후는 또 다른 수단에 의해 적대와 갈등, 지배와 피지배로 얼룩진 시대가 될지 모른다.

    여기에서 결론은 분명하다. 냉전 후의 남북한관계를 평화 질서로 정착시키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은 미국 내 여론, 동맹국 여론뿐만 아니라 결국 현지국가의 국내정치적 조건과 여론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이 점에서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는 분리될 수 없고, 미국의 대한반도정책과 한국 내의 평화정책에 대한 지지(와 반대)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고리를 이룬다.

    그렇기에 남북한 정부가 한반도에 평화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비전을 지속시켜야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국내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부시 정부의 정책과 한국정부의 정책이 서로 다르고 한국이 활용할 자율 공간이 생긴 새로운 상황에서 이는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