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포스코·현대하이스코 ‘철강전쟁’ 내막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입력2005-04-12 1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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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핏보기에는 포스코사가 자기 제품을 팔지 않겠다는 것이나, 현대하이코스가 유독 포스코 제품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전세계적으로 철강업체들이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마당에 우리끼리 '팔아라' '못팔겠다' 고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권부중 하나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일 것이다. 공정위는 올해부터 ‘포괄적 시장개선대책(Clean Market Projec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신문업, 의료·제약업, 사교육, 건설업, 정보통신업, 예식·장의업 등 6개 업종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공정위는 76건의 부당내부거래와 불공정행위를 적발, 918억 원의 과징금을 해당 기업체에 부과했는데, ‘포괄적 시장개선대책’에 따른 조사를 본격화하면 올해 과징금 액수는 3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97년만 하더라도 공정위가 기업체에 부과한 과징금은 11억 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막강한 공정위에 ‘겁도 없이’ 대든 기업이 있다.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인 포스코(회장·유상부)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하는 한편, 서울고법에 시정명령의 집행정지 및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은 “포스코가 냉연강판 제조업체인 현대하이스코에 자동차용 열연코일을 판매하고, 그동안 판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문을 주요 일간지에 게재하며, 과징금 16억여 원을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공정위의 주장에 따르면 포스코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여 현대하이스코의 정당한 구매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것.

    문제가 된 ‘열연코일’이란 원광석을 고로에서 녹인 다음 불순물을 제거하고 적당한 두께로 압연한 후에 두루마리 형태로 만든 철강제품이다. 열연코일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강관용 열연코일로 파이프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다른 하나는 냉연용 열연코일로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그동안 포스코는 동부제강이나 연합철강에는 냉연용 열연코일을 판매했고, 현대하이스코에는 강관용 열연코일을 판매해왔다. 그런데 현대하이스코가 98년부터 냉연용 열연코일도 공급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포스코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월 중순경부터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의 방향은 대체로 포스코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고 현대하이스코에 대해서는 동정적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을 얻었는지 2월1일 현대강관에서 현대하이스코로 사명(社名)을 바꾸는 선포식이 열린 뒤 기자 간담회에서 유인균 현대하이스코 회장은 “포스코가 열연코일을 주지 않아도 우리는 해외공급처 다변화를 통해 올해 자동차 강판 120만t 생산목표를 반드시 달성, 자동차 강판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유회장은 “포스코의 열연코일 시장 독점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할 수 있지만 공정위가 스스로 조사에 나설 때까지 기다리겠다. 포스코의 시장독점에 대해 정부가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회장의 이런 발언이 있은지 나흘 후인 2월5일부터 공정위는 포스코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를 끝낸 공정위는 3월28일 포스코에 시정명령을 내렸고 포스코는 이에 반발해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명암 교차한 서울고법의 결정

    이런 일련의 상황 전개에 대해 포스코는 유회장의 발언이 공정위의 직권조사를 재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현대하이스코 관계자나 공정위 관계자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현대하이스코 관리지원팀 이상수 부장은 “유회장이 공정위 조사를 운운한 적이 없으며 우리가 공정위에 하소연한 적도 없다. 공정위는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고 직권조사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공정위 경쟁촉진과 이수균 사무관도 “현대하이스코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직접적인 발언을 들은 적은 없으며 1월에 집중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내부에서 의논해서 직권조사를 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서울고등법원이 5월7일 내린 가처분 결정이다.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대해 포스코가 현대하이스코에 냉연용 열연코일을 공급하는 것과 주요일간지에 사과문을 싣는 것은 행정소송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유보하고 과징금 16억여 원은 6월15일까지 납부하라고 한 것이다. 이 결정으로 포스코와 현대하이스코, 그리고 공정위 사이에는 명암이 교차했다.

    포스코는 벌금은 물게 됐지만, ‘실익’과 ‘명예’는 지킨 셈이고, 위세가 당당했던 공정위는 ‘체면’을 잃고, 시정명령으로 열연코일을 공급받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현대하이스코는 ‘실망’만 얻은 격이다.

    그러나 서울고법이 포스코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과징금 납부에 대한 집행정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포스코의 ‘독점’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정위와 포스코의 주장이 대립되는 부분은 첫째, 자동차 열연코일에 대한 시각 차이다. 공정위는 자동차 열연코일을 별도의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공정위 관계자의 말이다.

    “열연코일은 용도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특성이나 성분에 따라 구분합니다. 열연코일은 냉연용과 강관용으로 구별하는데, 포스코는 동부나 연합에는 냉연용 열연코일을 공급하면서도 현대하이스코에는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공정위에서는 이것을 문제 삼은 겁니다.”

    그러나 포스코는 자동차용 열연코일이 별도의 상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차 열연코일은 제품 특성이나 제조방법의 차이 때문에 일반 열연코일과는 다른 상품입니다. 마치 코카콜라의 원액과 같은 중간재입니다. 그동안 자동차용 열연코일은 어디에도 팔지 않고 자동차 냉연강판을 만들기 위한 중간재로만 사용했습니다. 자동차용 열연코일과 일반 열연코일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냉연용과 강관용도 구분할 필요없이 다같은 철강제품으로 보면 됩니다. 그동안 포스코는 강관용 열연코일은 현대하이스코에 제공해왔습니다.”

    둘째는 자동차 열연코일에 한정해서 볼 때 포스코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이냐는 문제다. 포스코는 자동차용 열연코일은 상품으로 판매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0%라는 주장이고, 공정위는 자동차 열연코일은 언제든지 팔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자가 소비도 시장점유율에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현실적으로 포스코가 현대하이스코에 자동차 열연코일을 공급할 여력이 있느냐는 문제다. 공정위 관계자는 “포스코는 현대하이스코가 공급을 요청하기 시작한 기간에 공급 물량이 있었음에도 현대하이스코에 조금도 공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현대하이스코가 요청한 기간동안 미니밀의 시험가동으로 전체 가동률이 저하됐고, 현대와의 대질신문에서도 추가공급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넷째는 포스코가 공급을 거절한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이다. 포스코는 “자동차 냉연강판 시장에서 수직적 계열화를 통해 현대하이스코가 독점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정당한 거절사유가 된다”는 주장인데 비해 공정위는 “그룹내 수직적 계열화와 공급 거절은 별개의 사안으로, 포스코의 공급 거절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가 포스코가 만든 냉연강판이 싸고 품질도 좋은데 계열사라는 이유로 현대하이스코의 제품을 구매한다면 부당내부거래로 문제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섯째는 경쟁력 문제다. 포스코의 주장은 “자동차용 냉연강판의 품질 및 원가측면에서 쇳물부터 생산하는 포스코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인데 공정위는 “경쟁력 문제는 시장원리에 따라 판단할 사안이지 포스코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제3자가 보기에는 포스코가 자기 제품을 팔지 않겠다는 것이나, 현대하이스코가 유독 포스코 제품을 요구하는 것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전세계적으로 철강업체들이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마당에 우리끼리 ‘팔아라’ ‘못팔겠다’고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포스코와 현대하이스코간의 ‘철강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현대는 지난 97년 경남 하동에 일관제철소를 짓기로 했다가 좌절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철강제품의 과잉생산을 이유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현대하이스코 관계자는 “당시 포스코연구소와 KDI가 공동으로 ‘기존 시설만으로도 연간 400만t이 남아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현대의 제철소 건설을 막는데 이론적으로 기여했다”고 한다.

    현대는 제철소를 짓는 것은 좌초됐지만 철강소재의 자체 조달을 위해 전남 율촌에 냉연공장을 착공했다. 이때부터 현대와 포스코 사이에서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당시 현대가 짓는 냉연공장의 설비는 연속공정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이 차질없이 계속 가동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열연코일이 생산라인에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열연코일을 대줄 여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현대에서 포스코 제품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포스코 관계자)

    “당시 현대는 포스코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400만t이 남는다는 연구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냉연공장을 지으면 열연코일을 공급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현대하이스코 관계자)

    일단 냉연공장을 지은 현대강관은 98년부터 10차례에 걸쳐 포스코에 열연코일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포스코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자 현대하이스코는 해외에서 열연코일을 수입,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 가와사키제철과도 제휴를 모색, 지난해 12월 중순 13%의 지분참여와 함께 연간 50만t 규모의 열연코일을 공급받기로 했다.

    그런데 현대하이스코가 포스코에 계속 공급을 요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하이스코 이상수 부장은 두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퀵 딜리버리(quick delivery)’ 때문입니다. 주문이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 안정적인 열연코일을 제공받아야 하는데 수입하는 경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포스코 제품은 국내에서 생산되므로 빨리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해외업체와의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업체에만 의존하는 경우 가격협상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처지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대하이스코는 해외업체로부터 열연코일을 수입해 자동차 냉연강판 생산량을 꾸준히 증가시켜 왔다. 현대하이스코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공급하는 냉연강판의 비중은 99년 21%, 2000년 31%, 올해는 60%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비해 포스코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공급하는 냉연강판의 비중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98년에는 74%였으나 99년 56%, 2000년 53%, 올해는 26%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어차피 추세가 이렇다면 포스코는 냉연강판 생산을 줄이고 자동차용 열연코일을 현대하이스코에 공급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에 대한 포스코 관계자의 항변이다.

    “그렇게 하면 그동안 포스코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서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시설비용과 노하우는 물거품이 됩니다. 지금까지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이 기술개발비와 시설투자비를 합해 1조1700억 원입니다.”

    결국 포스코에게는 그동안 투자해서 확보해놓은 주요 시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절박한 사정이 있고, 현대하이스코에게는 시장을 확보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절실한 사정이 있는 셈이다.

    포스코의 경우 2000년 자동차 냉연강판 매출액은 9642억 원이었다. 그런데 포스코가 현대하이스코에 자동차용 열연코일을 공급할 경우 연간 피해 예상액은 5230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하이스코는 포스코로부터 양질의 열연코일을 제공받지 못하면 일본 등 해외제품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부작용과 낭비를 염려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하이스코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양사가 모두 상대편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는 자동차용 열연코일을 현대하이스코에 공급하는 순간부터 자동차 냉연강판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빼앗긴다고 우려하고 있고, 현대하이스코는 포스코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냉연강판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포스코의 공정거래법 위반혐의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로 남겨두고, 과연 우리나라 철강업계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포스코와 현대하이스코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현대하이스코는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동차용 냉연강판 분야의 복수경쟁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자동차 강판시장은 포스코가 사실상 독점해왔고 가전이나 건자재강판 시장은 포스코가 동부나 연합과 상호보완적 경쟁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기존의 시장은 경쟁체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 현대하이스코 관계자의 말이다.

    “매년 20만t 이상의 고급 자동차용 강판이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는데 이것은 포스코가 독점적 위치의 안이함에 젖어 기술 향상과 제품 개발을 등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현대하이스코가 현대자동차 계열사라는 이점을 이용해 냉연강판 시장에 뛰어든 것이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지, 그동안 이 분야에서 기술과 설비투자를 해온 포스코가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다. 일부 고급 자동차강판은 설비투자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이지 기술 개발을 게을리했기 때문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제 세계화 시대는 ‘독점’으로는 버티기 힘들고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포스코도 복수 경쟁체제를 거부할 명분은 없을 것이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현대하이스코가 열연코일은 포스코에 의존하고 자동차 냉연강판은 수직적 계열화로 독점하려는 것은 진정한 복수 경쟁체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철소를 지으려다 좌절한 적이 있는 현대하이스코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의 말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의 시각에서만 보면 포스코나 현대하이스코는 서로 한치도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가지려면 핵심역량만 남기고 나머지는 국제적으로 아웃소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포스코나 현대하이스코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나머지는 양보하는 미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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