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패권적 야망은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국은 MD계획의 명분을 위해서라도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부풀릴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평화는 MD계획의 명분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반도에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
미국의 MD계획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일본과 같이 이해관계가 걸린 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비난과 우려 일색이다. NATO를 비롯해 미국의 군사동맹국들이 미국의 군사정책과 전략에 이처럼 반기를 든 비협조적인 경우는 처음이다. 그만큼 부시 대통령이 천명한 MD계획은 명분도 없고 무모하기까지 하다. 모기 몇 마리를 막기 위해 서울시 전체를 유리막으로 덮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미국 내 여론도 부정적이다. MD계획은 미국이 전세계를 적으로 상대하는 전략적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한편 MD계획의 천명과 함께, 매파인 국방부를 중심으로 작성해온 미국의 새로운 군사정책과 군사전략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미 국방부는 90년대 초부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탈냉전 후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처한다는 목적으로 정책을 검토해왔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가 작성중인 새로운 군사정책과 군사전략은 미국의 패권주의적 야망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크게 우려된다. MD계획은 이와 같은 미국의 패권주의적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신국방정책은 국방부가 93년부터 4년마다 작성하는 미 국방정책보고서인 ‘4년주기 국방검토 2001(QDR: Quadrennial Defense Review 2001)’을 통해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MD계획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방한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전략개념인 ‘전략적 틀(strategic framework)’을 우리 정부에 설명해 주목을 끌었다.
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한 강한 의지
부시 행정부가 밝히는 새로운 군사정책과 군사전략은 철저하고도 일관되게 두 가지 목적과 배경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탈냉전 후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남겠다는 정치 군사적 오만과 야망이다. ‘로마제국’과 같은 세계 대제국인 ‘아메리카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 cana)’에 대한 강한 의지다.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의 전세계적 지배를 진척했다면,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군사정책과 군사전략은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중심의 질서와 지배를 완성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공화당의 자금줄이자 지지기반인 미국 군수산업체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탈냉전과 미국의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군수산업체를 위해서 새로운 무기 수요를 창출하려는 의도가 곳곳에서 보인다. MD계획은 물론이고, 군사력 구조를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기동성이 강화된 신속배치전력으로 개편하겠다는 새로운 군사정책이 그렇다.
미국의 새 국방정책 표적은 중국
우선 QDR가 담고 있는 미국의 새로운 국방정책은 다음의 네 가지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국방정책의 전략중심축을 아시아로 옮기고 ▲해외기지를 포함한 전방배치 전력의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전력투사능력을 강화하고 ▲정보시스템의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며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군사전력의 기동성을 높이고 경량화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유럽과 대서양 쪽에 실려 있던 전략중심축을 아시아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1세기에 미국의 세계패권 장악에 도전할 잠재적 경쟁국으로 중국을 지목해 왔다. 미 합동참모본부는 작년 6월, 미국의 장기 군사전략을 담은 ‘조인트비전 2020(Joint Vision 2020)’을 발표하면서, 중국을 “21세기 미국에 필적할 만한 경쟁국가”로 상정한 바 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협력자’로 선언했던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미국이 일본열도로부터 한국을 거쳐 대만, 필리핀을 잇는 태평양 동부연안의 ‘대중국 방위라인’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미국이 공산진영의 확장을 봉쇄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사했던 이른바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을 연상케 한다. MD계획을 비롯해,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나타나고 있는 미·일군사동맹에 대한 강조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등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윈 윈 전략(win-win strategy)’ 폐지 선언도 같은 맥락이다. 전략중심축의 변경은 지난 10년간 미국 군사전략의 기본개념이었던 ‘윈 윈 전략’의 폐지를 불가피하게 했다. 한반도와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동시에 싸워 승리한다는 ‘윈 윈 전략’은 중국을 대상으로 했을 때 새롭게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윈 윈 전략’의 폐지에 따라, 해외주둔 미군의 전력과 역할을 재검토하고 일부 미군의 철수 등 재배치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것이 주한미군의 전력 개편과 감축으로 이어질지는 속단할 수 없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구축중인 중국견제전략에 따라, 한반도의 중요성과 주한미군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주한미군의 지상전력은 일부 감축할 수 있으나, 해·공군력의 강화를 통해 주한미군의 전체 전력은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공화당이 ‘페리 보고서’에 대항하기 위해서 1999년 3월에 작성한 ‘아미티지 보고서’의 내용이 주목된다. ‘아미티지 보고서’는 “감축의 관점이 아니라, 변화하는 북한의 위협에 주한미군이 최적 수준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국내 미 군사력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것은 일부 지상병력 감축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첨단무기를 증강 배치해서 주한미군 전체 전력이 강화되고, 한국에 무기 구매를 강요하며 주한미군 방위분담금을 증액하라는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미국의 새로운 국방정책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미군을 이동 배치하기 위한 ‘전력투사(power projection) 능력’을 크게 높이고 미군의 기동성과 화력, 정보시스템을 크게 향상하겠다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140만 명에 이르는 현 병력을 줄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군사력 축소나 군사비 삭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력을 감축하는 대신 이를 무기로 대체하겠다는 의도이며, ‘양 위주’의 현재 군사력을 첨단 무기로 무장한 ‘질 위주’의 군사력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를 통해 많은 무기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군사정책과 전략은 철저히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냉전체제 종식 이후 감소 추세에 있던 미국 국방비는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폐기 대상이었던 무기계획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미 국방부는 국방정책을 재검토해서 향후 6년간 2000억~3000억 달러의 국방비 증액을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2~2007 회계연도 국방예산은 원래 계획안인 2조 달러보다 10~15% 늘어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무기구매예산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미 국방부는 금년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2002회계연도에 315억 달러를 증액하는 것을 비롯해 향후 7년 동안 무기구매예산을 연간 300억 달러씩 늘릴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1992년 이래 세 차례의 치명적인 사고를 낸 V-22 Osprey 수직이착륙기와 추락사고로 기계적 결함이 지적된 F-22 전투기 구매계획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와 군수산업체 간의 밀접한 커넥션을 들여다보면 이런 현상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상 및 위성방송장비 회사인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eneral Instrument)’ 회장 출신이며,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제너럴 다이내믹스 전자시스템(General Dynamics Electric System)’ 이사를 역임했다.
부시 대통령이 육해공군 3군 장관에 임명한 인물들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해군장관에 임명된 고든 잉글랜드(Gor- den R. England)는 F-16 전투기와 M-1A1 주력전차를 만드는 미국의 대표적인 군수산업체인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에서 30여 년간 근무한 부사장 출신이다.
부시 행정부와 군수산업 커넥션
그는 국방부로부터 470억 달러에 달하는 F-18 전폭기의 구매를 따내기 위한 책임자였다. 공군장관에 임명된 제임스 로쉬(James G. Roche)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스럽 그루먼(Northrop Grumman)’의 전자센서와 시스템부문 사장이었다. B-2 스텔스 폭격기를 생산한 ‘노스럽 그루먼’은 조립라인의 재가동을 국방부에 요청했다.
한편 미국은 MD계획을 합리화하기 위해 MD계획이 포함된 이른바 ‘전략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탈냉전으로 인해 세계안보환경과 안보적 위협요인이 변했기 때문에, 전략 개념 역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미티지 부장관이 밝힌 ‘전략적 틀’은 ▲비확산(non-proliferation)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미사일방어(MD)체계 ▲미국의 일방적인 핵무기 감축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비확산’은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려는 국가가 이를 갖지 못하도록 NPT(핵무기확산방지조약)와 같은 국제조약이나 국제기구 등의 외교적 수단을 통해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반면 ‘반확산’은 대량파괴무기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전략개념인데,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한 국가에 선제공격을 포함해 군사적으로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또 대량파괴무기로 공격해올 경우 MD를 사용하여 공중에서 요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미국은 이 ‘반확산’을 ‘자위권’ 행사로 확대 해석하고 있으나, 다른 국가의 군사시설과 생산공장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침략이고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MD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동맹국들에게 미사일 관련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미국의 주장은 비확산정책과 상호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전략적 틀’의 넷째 개념인 ‘미국의 일방적 핵무기 감축’은 미국의 핵군축 노력과 양보로 보일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은 보유 핵탄두 수를 ‘START(전략무기감축조약) Ⅱ’에서 합의한 수보다 더 적은 1500~2000개 수준으로 감축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가 ‘START Ⅲ’의 목표로 제시했던 1500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핵무기 감축’ 주장에는 오히려 핵무기 통제와 핵군축문제를 러시아 등 다른 국가와 협의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독단과 오만이 함축되어 있다.
이번 미국의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의 변화는 재래식 무기 수요의 대규모 창출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1961년의 핵전략 변경에 비견된다. 미국은 핵전략을 이전의 ‘대량보복전략 (massive retaliation stretegy)’에서 재래식전쟁과 제한전쟁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유연반응전략(flexible response strategy)’으로 바꾸게 되는데, 이것은 재래식 무기의 대규모 수요를 창출하여 한국전쟁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던 군수산업체들에게 활력을 주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특히 MD계획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 야망, 그리고 부시 행정부와 군수산업체간의 밀착성을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부시 대통령이 천명한 MD계획은 적국의 탄도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와 해외주둔 미군,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지상과 공중, 해상에서 발사되는 다양한 탄도미사일 요격시스템을 개발하여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계획은 당초 미국 본토 방어 목적의 NMD(National Missile Defense: 국가미사일방어체계)와 해외주둔미군과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한 TMD(Theater Missile Defense: 전역미사일방어체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NMD에 부정적인 동맹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NMD와 TMD를 통합한 새로운 MD개념을 사용하여 전지구적 차원의 미사일방어로 확대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 MD계획은 여전히 미국 본토 방어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그 핵심은 NMD이다.
MD의 기본개념은 이른바 ‘깡패국가(rogue state)’로부터 발사된 미사일을 지상레이더와 정찰위성, 조기경보관제기(AWACS)로 감지 추적하여 지상 공중 해상에서 미사일이나 레이저빔 등을 이용해 요격한다는 것이다. MD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의 미사일 경로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지상레이더와 정찰위성 조기경보관제기,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나 레이저빔을 발사할 수 있는 무기체계, 그리고 이를 지휘통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이 고려하는 MD는 알래스카 군부대에 배치되는 ‘지상요격미사일(GBI: Ground-Based Intercepter)’, 알래스카 근해 셰미야(Shemya)섬에 배치되는 ‘X-대역 레이더(XBR: X-band Radar)’기지, 북미대륙 주변에 배치되는 ‘조기경보레이더(EWR: Early Warning Radar)’기지, 우주에 떠 있는 조기경보위성, 로키산맥에 위치한 ‘전투운용본부(BMC: Battle Management Center)’로 구성될 전망이다.
MD의 기술적 결함
미국 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MD의 핵심적 구성요소는 ‘외기권요격체(Exo-atmospheric Kill Vehicle)’를 장착한 지상요격미사일. 이 요격미사일이 날아오는 적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충돌하여 파괴(hit-to-kill)한다는 것이다.
요격체계의 첫 단계는 미사일발사 초기인 이륙단계에서 요격하는 것이다. 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이륙단계요격체계는 개량형 보잉 747기에 레이저빔을 장착하여 적 미사일을 파괴하는 것이다.
MD는 TMD 개념에서 개발된 ‘상층방어(Upper-Tier Defense)’와 ‘저층방어(Lower-Tier Defense)’에 의해 보완된다. 대기권 밖이나 대기권 고고도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상층방어는 ‘전역고고도방어(THAAD)’와 ‘해상전역확대(NTW: Navy Theater-Wide)’로 구성된다. THAAD는 지상배치와 항공기 배치가 가능하며, NTW는 이지스함에 탑재될 예정이다. 상층방어는 사거리 3500km의 중거리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나, 사거리 5500km 이상의 ICBM 요격도 가능하다. 저층방어는 지표면으로부터 20km 미만인 저고도 대기권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으로, THAAD가 뚫렸을 경우와 사거리 600~1500km의 단거리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이용한다. 저층방어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이 사용된다.
부시 행정부는 2005년 첫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어떤 형태로든 MD를 실전 배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알래스카 지상요격미사일은 2004년, 이지스함 요격미사일은 2004~2005년에 완성이 가능하며, 항공요격체계는 2003년에 배치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획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술적 결함이 지적되면서 MD가 예정대로 배치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지금까지 실시된 세 차례의 미사일 요격실험에서 두 번이나 실패해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기술적 과제는 MD요격체가 공격탄두와 교란탄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튼 부시 대통령이 천명한 MD계획은 기술적 결함은 차치하고라도, 명분도 없고 무모하기까지 하다. ‘깡패국가’의 미사일 및 핵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 역시 군색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북한 이란 이라크 등의 미사일 위협을 과장해 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인류를 10여 차례나 전멸시킬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본토에 미사일 공격을 할 무모한 국가와 멍청한 지도자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의 의도는 딴데 있다. 미국이 국내외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군색한 명분을 대며 MD를 추진하는 데는 몇 가지 목적과 배경이 있다.
첫째, 절대적인 핵우위를 유지해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남겠다는 정치 군사적 오만과 야망이 뒤에 도사리고 있다. MD계획은 군사적으로 단순히 방어적 성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절대적인 핵패권과 핵선제공격능력의 독점을 의미한다.
MD계획은 핵강대국간에 유지돼온 핵무기의 ‘억지력안정(deterrence stability)’과 핵군축조약의 이론적 기반인 ‘위기안정(crisis stability)’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MD계획은 자신의 독점적이고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그 동안 인류가 기울여온 핵군축과 핵비확산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위기안정’은 상대방에 대해 확실한 ‘제2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의 확보를 통해 ‘제1격능력(first strike capability)’이 지니는 이점을 상실케 하여,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방지하는 군사적 안정을 달성하는 것이다. 선제공격의 이점을 상쇄할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기초한 확실한 보복능력의 확보가 전제될 수 있다면 선제공격을 단념시키고 군사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위기안정’의 논리다. 쉽게 이야기하면, 선제 핵공격을 받은 후에도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대량 보복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 함으로써 보복이 두려워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위기안정’의 러시아적 개념이 ‘전략적 안정(strategic stability)’이다. 그러나 ‘전략적 안정’은 군사적 이점(military advantage)의 균형 내지 부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위기안정’보다는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1972년 미국과 구소련 간에 체결된 ‘ABM(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은 바로 이와 같은 ‘위기안정론’에 따른 전형적인 군축조약이다. 74년 개정된 ABM조약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는 ABM을 각기 1개 지역에 100기씩만 배치할 수 있다. 이것은 ICBM배치지역이나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체계 전개를 금지하여, 상호 억지력을 증대시켜 ‘위기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제공격시 보복에 대한 취약성을 노출시켜 선제공격의 이점을 없애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MD계획은 바로 부시 대통령이 파기를 시사한 이 ABM조약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ABM조약의 파기는 SALT(전략무기제한협정)와 START(전략무기감축조약) 등 그 동안 미국과 러시아(소련)가 체결한 핵군축조약들과 NPT(핵무기확산방지조약)체제와 같은 국제적인 핵비확산 노력을 완전히 뒤엎고 그 전략적 기반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상호 선제공격의 이점을 상실케 하기 위한 ABM조약은 미국과 러시아 간의 ‘위기안정’과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핵무기통제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작년 4월 NPT(핵무기비확산조약) 평가회의 최종문서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MD, 군비경쟁 유발 우려
따라서 MD계획의 추진은 미국이 핵무기 선제공격능력을 독점적으로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예를 들면,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가지고 있는 미국은 상대의 보복공격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없이 언제든지 상대를 선제공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세계적인 핵억지력의 안정을 깰 뿐만 아니라, 당연히 핵강대국간에 군비경쟁을 유발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을 개발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신형 ICBM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증강하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은 자명하다.
둘째, 미국의 MD계획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도는 21세기 미국의 세계적인 패권에 도전할 잠재력을 지닌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최대 장점인 군사력에서 중국을 압도하고, 특히 핵전력 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해 선제핵공격능력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중국 견제전략에는 중국과 군비경쟁을 일으켜, 중국이 경제력을 군사비에 소진케 해서 중국의 경제성장을 억제하고 지연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중국의 경제력이 2020년 이후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레이건 시대의 향수에 깊이 젖어 있는 공화당 고위인사들은 소련이 붕괴한 것은 당시 소련을 압박한 군비경쟁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미국과의 군비경쟁으로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넘어선 군사비를 지출한 것이 소련 붕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층들은 중국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려 한다. 미국이 MD계획을 통해 군사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비를 무리하게 지출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결국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 경제가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21세기 중반에도 미국이 세계에서 독점적인 패권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셋째, MD계획 배후에 공화당 자금줄이자 지지기반인 군수산업체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탈냉전 후 무기수요가 줄어들고 유럽 군수산업체들의 거센 도전으로 위협받던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은 최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MD계획의 최대 수혜자는 300만 명의 피고용자와 로비스트 1만을 거느린 이들 군수산업체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프로젝트인 MD계획으로 미국 군수산업체들은 대박이 터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지상 NMD에 드는 비용만 600억 달러로 추산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해상과 공중을 포괄하는 MD 구축에는 240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군수산업계의 빅4인 보잉,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TRW는 돈벼락을 맞게 생겼다. 보잉은 MD 구성요소의 개발과 통합을 담당하고, 록히드 마틴은 미사일 탄두 추진체를,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잘 알려진 레이시온은 요격미사일 개발, TRW는 위성정보통신 분야와 전투운용시스템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넷째, 미국은 MD계획을 통해 전세계의 정보통신망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MD를 위해서는 전세계를 커버하는 조기경보위성과 지상레이더망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것은 전세계의 정보통신망이 미국의 통제와 지배하에 놓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메일까지 포착하는 통신감청체제인 ‘에셀론(Echelon)’을 능가하는 전지구적 규모의 정보통신망을 장악하면 미국은 명실상부한 ‘빅브라더(Big Brother)’가 될 것이다. 미국의 MD계획과 관련해 서유럽국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미국의 패권주의적 야망은 당장 남북관계와 한반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국은 MD계획의 명분을 위해서라도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계속 강조하고 과장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변화하는 북한’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는 MD계획의 명분 상실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MD의 명분이 손상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과 미사일협상을 진전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로서는 ‘변화하지 않는 북한’ ‘깡패국가 북한’ ‘테러지원국 북한’ ‘미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북한’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모처럼 조성된 화해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역사를 뒤로 되돌리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국의 MD계획은 동북아에 군비경쟁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통일을 늦출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MD 지지와 참여는 중국 및 러시아와 군사적 갈등을 불러올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지상레이더기지를 설치할 제1후보지역으로 일본과 함께 한국을 꼽고 있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는 미국의 MD계획에 말려든다면,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 적으로 삼게 되고, 중국과 러시아의 잠재적인 공격목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핵미사일이 우리를 겨냥할 것이다. 미국의 무모한 패권주의적 야망에 우리 민족의 생존이 휘말릴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