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 병역비리수사의 계기가 된 반부패국민연대 정치인 리스트의 비밀을 추적해온 기자는 최근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99년 11월말 여권에서 작성, 청와대에 전달된 병무비리수사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언급된 병무비리의혹 현역의원 명단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지난해 1월 반부패국민연대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진 명단과 일치한다. 정치인 수사가 각본에 따라 진행된 것 아니냐는 항간의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제껏 공개되지 않은 별도의 정치인 명단(45명)이 담긴 이 보고서는 또 박노항 원사와 정형근 의원의 비리커넥션 의혹과 기무사의 수사방해 혐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청와대 보고서를 토대로 추적한 박노항과 정치인 리스트의 관계.
병역비리수사를 축소·외압시비로 얼룩지게 만든 정치인 리스트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먼저 이 수사의 배경과 진행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창군 이래 최대의 병역비리수사가 진행된 계기는 1998년 5월 원용수 준위(당시 국방부 인사참모부 소속 병무청 모병연락관) 구속사건이었다. 그 직후 박노항 원사(당시 국방부 합동조사단 병무청 파견 책임자)가 잠적하면서 수사는 장기전에 돌입했다.
소문으로 돌던 정치인 리스트가 일반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1월 시민단체인 반부패국민연대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제3차 병역비리합동수사과정에서였다. 수사팀은 정치인 리스트라는 유령과 1년 동안 씨름을 했으나 결과는 허망했다. 반부패국민연대 명단을 토대로 군·검합동수사반이 수사 초기 조사대상으로 삼은 정치인은 모두 54명(아들 75명). 그 중 혐의가 짙은 27명(아들 31명)을 집중조사했는데 이번 수사에 이르기까지 혐의가 확인된 정치인은 4명밖에 없다. 그나마 기소된 사람은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 한 명뿐이다.
수사팀은 정치인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난 데 대해 다음의 몇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혐의가 드러났어도 공소시효가 지나 사법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뇌물이 오고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일부 정치인은 소환에 응하지 않아 조사를 못했다 ▲박노항이 잡히지 않았다.
박노항 원사 체포로 재가동된 군·검합동수사반은 정치인 수사에 관한 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결과는 예상된 것이기도 했다. 김동신 국방부장관은 박원사 수사가 한창이던 5월2일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 “언론에서 제기한 정치인이나 사회저명인사의 병역비리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힘으로써 정치인 수사에 대한 기대심리에 쐐기를 박았다. 언론의 과장보도 탓도 있지만 박원사가 잡히기만 하면 모든 의혹이 풀릴 줄 알았던 국민들은 수사결과에 허탈함을 느끼며 불신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 관련 수사를 떼놓고 보면 지난 3년 동안 진행된 병역비리수사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평균 7.8%였던 신체결함 면제비율이 지난해 3.1%로 줄어든 것은 이 수사의 공으로 돌릴 만하다. 3차 합동수사반만 하더라도 1년 동안 327명을 적발, 그 중 159명을 구속기소하는 실적을 올렸다. 병역비리수사의 큰 틀을 짠 1차 합동수사반(1998년 12월∼1999년 4월)은 207명을 적발, 그 중 100명을 구속함으로써 그해 5월 병역실명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데 공을 세웠다. 2차 수사팀(1998년 5~7월)은 비리관련자 69명을 찾아내 그 중 21명을 구속했다.
2차 합동수사가 막을 내린 후 군 안팎에선 축소·은폐시비가 일었다. 그에 따라 그해 8월 기관(기무·헌병) 관련 특별수사팀이 탄생했는데, 이 팀은 본격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만에 전격해체됨으로써 외압의혹을 낳았다. 국방부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심층보도 등 여론에 밀려 그해 10월 2차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이 팀은 두 달에 걸쳐 기무·헌병 고위간부들의 병무비리혐의를 수사했다. 결과는 2명 구속에 8명 징계처리. 그에 따라 또다시 축소·은폐시비가 일었다.
결국 국방부는 그해 12월 한 달 동안 기무사의 수사방해 혐의와 수사축소·은폐의혹 및 일부 군검찰 관계자의 수사기밀 유출혐의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반부패국민연대에 정치인 리스트를 포함해 1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수사자료가 넘어간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현역의원 21명
반부패국민연대에 정치인 리스트를 넘김으로써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람은 누구인가. 또 리스트는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몇 종류가 작성됐는가. 지난 몇 달 동안 정치인 리스트의 비밀을 추적해온 기자는 최근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반부패국민연대가 기자회견을 갖기 두 달쯤 전 여권에서 작성한 병역비리수사 관련 보고서다. 1999년 11월말 여당 관계자 A씨가 작성,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에 건넨 이 보고서의 제목은 ‘고위층 병무비리 재수사의 필요성’이다. 보고서의 근간을 이룬 것은 병역비리수사 관계자의 증언과 그가 건넨 자료였다.
보고서는 정세분석 참고자료 명목으로 청와대에 전달됐다. A4 용지 7쪽 분량(활자체가 커 실제 양은 많지 않다)의 이 보고서는 기무사의 병역비리수사 방해의혹을 제기하면서 재수사, 특히 정치인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비리의혹 의원 명단. 모두 21명인데 이는 반부패국민연대가 발표한 현역의원 숫자와 일치한다. 명단도 물론 같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박노항 원사와 정형근 의원의 비리 커넥션 의혹을 유난히 강조한 점이다.
한편 민정수석비서관실에도 이 보고서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전달됐다. 작성자는 동일인이지만 전달자는 다르다. 당시 여당의 중진급 인사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와 만나 문제의 보고서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수석비서관실엔 이 보고서와 함께 100여 쪽에 이르는 수사 참고자료가 전달됐다.
이 자료엔 군의관 진술서, 군검찰 관계자 증언, 병역비리수사일지, 비리커넥션이 형성된 병원 명단 등과 더불어 정치인 수사 관련 보고서가 포함돼 있다. ‘추가적인 병무비리의혹 조사대상 국회의원’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보고서엔 또 다른 종류의 정치인 리스트가 첨부돼 있다. 그해 10월 공개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사항을 참고해 만든 것으로 ‘의심이 가는’ 정치인 45명(아들 57명)의 이름 소속정당 면제사유 등을 도표로 정리해 놓았다.
다음은 정무수석비서관실에 전달된 보고서 전문.
1. 개요
○병역면제 비리로 전국에서 연간 약 4000억 원 음성적 뇌물 거래
-연간 13만 여 명이 병역면제(18%)
-군병원, 기무·헌병 기관세력이 결탁된 병무비리 커넥션이 비리 핵심
-비리 건당 최소 1000만 원에서 최고 1억 원 이상 거래
*지방의 경우 수도권의 약 60∼70%
*연간 수도권에서 1200억 원에서 1500억 원, 전국적으로 연간 4000억 원 이상이 음성적 뇌물로 거래될 것으로 추정
○올해 4월과 7월 두 차례 군·검·경의 합동수사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과 군 기관세력이 결탁한 병무비리의 몸통수사는 불발
-기무사 수사개입으로 기무요원 수사 차단
-일부 정치권의 수사중단 압력
-검찰 고위층의 병무비리
○비리 당사자의 절대 다수는 한나라당·자민련 국회의원과 그 주변세력
-구 여권 정치인과 후원회, 자치단체장, 병무 전문 브로커, 기무·헌병요원이 결탁
-군병원을 거점으로 조직적 병무비리
-93∼97년 사이 부산·경남 지역 비리 최고조
*병무비리의 최대 주범인 박노항과 정형근, 정석모 의원의 연결고리 확인
*정치인 21명에 대한 의혹 규명을 위해 군병원을 급습, 수사하던 중 외압으로 수사 중단(한나라당 15명, 자민련 5명, 국민회의 1명)
2. 전개과정
○현 정부 출범 후 대통령님 지시에 의해 개혁 차원에서 병무비리수사 진행
-98년 12월까지 분석자료 600여 건 중 2건만 밝혀내는 미미한 실적
-99년 1월부터 군의관들이 수사에 협조하며 전직 의무하사관의 제보로 활기
-99년 4월, 7월 두 차례 수사발표를 통해 건군 이래 최대 규모 병무비리사범 처리(200여 명)
○병무비리수사가 정치인 등 고위층과 기무요원에 대한 수사로 확산되면서 저항과 수사방해행위 표면화
-99년 3월 병무비리 수사팀 대폭 교체
-제보자의 신분이 누설, 수사에 지장 초래
-군 기무사가 수사개입
*기무요원, 소환에 불응
*수사팀 문제점 부각
*내부제보자 개인적 약점을 조사
○구 집권세력의 병무비리 실체가 은폐되고 비리의 몸통이 가려지는 결과 초래
-병무비리 최대 주범으로 장기도피중인 헌병 출신의 박노항 원사에 대한 가택수사 당시 정치권 병무비리 단서 발견
*박노항 원사와 연계된 정형근-정석모 의원 비리 커넥션 가능성 확인
*병무비리가 구 여권 정치자금 조성에 활용
-최초 기무수사를 전담했던 특별수사팀 9명 중 7명을 원대복귀, 정치권 내사를 사실상 종결
○병역실명제 실시 이후 정치권 등 고위층 병무비리 의혹이 고조되고 명년 총선에서 정치쟁점화될 것으로 예상
-99년 9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병무비리수사에서 고위층 병역면제 사실 축소·은폐의혹 상세히 보도
-99년 10월, 참여연대가 대통령님과 국방장관에게 질의서 채택, 성명 발표
3. 향후 대책
○고위층 병무비리 수사방향
①제1안: ‘선택적·제한적’ 비리수사v -정치권과 기무부대·군병원 수사
-범죄사실이 중한 경우에 국한
②제2안: ‘포괄적·무제한적’ 비리수사
-정치권과 후원회, 지방자치단체장, 고위공직자, 기무요원, 헌병, 군병원
-기무사 대수술
○최고 통치권자의 비리척결 의지를 바탕으로 특별수사팀 편성 필요
-완벽한 보안이 보장되는 소수정예 수사팀 편성
*최초 수사시 내부 제보자 포함
-의혹 대상자 병적기록, 진료기록만 확보하면 의혹규명이 가능
*비리의혹 국회의원(21명)
-병무비리 1차수사팀 자료
강재섭, 김도언, 김태호, 노기태, 박성범, 서정화, 신상우, 이규택, 이신행, 이우재, 이회창, 정형근, 주진우―이상 15명
김선길, 김종호, 이건개, 이정무, 정석모―이상 5명
서석재―이상 1명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전달된 보고서 제목도 ‘고위층 병무비리 재수사의 필요성’이다. A4 용지 15쪽 분량으로 정무수석비서관실에 건네진 보고서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1. 개요
○올해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건군 이래 최대 규모의 병역비리 수사
-약 200명의 비리사범을 사법처리
-‘국민의 정부’의 대표적 개혁 성과
○군·검·경의 합동수사에도 불구하고 구 기득권층과 군내 정보기관을 비롯한 기관세력이 결탁한 병무비리 몸통수사는 불발
-군 수사관계 기관간의 내부 갈등
-개혁의 무풍지대인 기무사의 부당한 수사개입
○비리 당사자의 절대다수는 한나라당 자민련 국회의원과 그 주변세력
-정형근·정석모-기무·헌병의 연결고리 확인
2.전개과정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님의 지시에 의해 개혁 차원에서 진행된 병무비리수사는,
-98년 6월 원용수 준위의 병무비리를 적발함으로써 당시까지 군내에 만연된 군 인사청탁 비리의 상당 부분을 성공적으로 밝혀냈음
-그러나 더욱 중요한 병역면제 비리는 의학지식, 신검규정 지식을 구비한 병무 전문 수사관의 부재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함
○98년 12월까지 분석자료 600여 건 중 2건만 밝혀내는 미미한 실적에 불과하던 병무비리수사는,
-99년 1월경부터 군의관들이 수사에 협조하고
-한때 병역비리에 가담하였으나 이를 뉘우치고 수사에 협조하고자 하는 전직 의무하사관의 내부제보로 활기를 띠게 되었음
○그러나 99년 3월경 군 검찰부의 고석 중령이 병무비리 수사팀에 합류하면서부터,
-돌연 제보자의 신분이 누설돼 수사에 지장이 초래되고,
-군 기무사가 병무비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부 제보자의 과거 행적과 개인적 약점을 추적, 조사, 유포하는 등 수사 방해행위가 표면화 됨
○이 과정에 과거 병무비리에 가담했던 지방 기무요원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수사팀에 자수하면 선처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자수할 의사를 기무사령부에 보고하였으나,
-기무사령부 감찰실은 이들의 자수를 차단하며
-기무사에 대한 국방부 특별수사팀의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소환에 불응
·수사팀 문제점 부각
·내부 제보자 개인적 약점을 추적하고 있음
정형근 의원 아들 병역 조사
○특히 병무비리혐의로 장기도피 중인 박노항 원사의 가택수사 당시 발견된 각종 정치인 비리 관련 단서와,
-특히 박노항 원사와 연계된 정형근-정석모 비리 커넥션의 실체가 철저하게 부정되고 있고,
-93∼97년 사이 집중적으로 저질러진 구 집권세력의 병무비리에 대한 수사자료도 실종됐으며,
-기무수사를 전담했던 특별수사팀 9명 중 7명을 원대복귀시킴으로써 정치인 내사를 사실상 종결
○이 와중에서도 고위층 비리에 대한 축소·은폐의혹이 증폭되는 실정으로,
-현재 SBS를 비롯한 언론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믿을 만한 제보를 바탕으로 국방부를 취재하고 있으며,
-지난 10월 병역실명제도 시행에 따른 고위층과 그 직계존비속 병역의무 이행실태가 공개되면서 특수층의 높은 병역면제율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증폭되고 있음
3.주요 사실
1)정치인 관련 수사
-병무비리는 군 헌병 출신의 박노항 원사(현재 도피중)가 구 여권세력, 특히 정형근, 정석모와의 친분관계를 통해 이뤄졌으며, 이러한 사실은 군 병무비리 1차 수사팀에서 박노항 가택수사, 군의관 증언 등을 통해 이미 포착하고 있었음. 수사팀은 이 사실을 기초로 주요 정치권 인사 자제의 병역면제에 비리의혹이 있다고 판단, 조사대상 명단을 작성
○비리의혹 국회의원(21명)
-정무수석비서관실에 전달된 보고서 명단과 일치(편집자 주)
○박노항 원사와 정형근·정석모 의원의 친분관계
-별첨자료 #1: 김OO, 임OO 군의관 진술(정형근, 정석모 의원 보좌관과 박노항이 군의관들을 접대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음)
○수사팀은 정형근 아들 정OO의 보충역 판정과정을 면밀히 조사
○정형근, 정석모 의원 보좌관과 박노항의 친분관계는 한나라당 여타 의원들에게도 활용돼 아들 병역면제에 활용됐다는 의혹이 있음
-한나라당 비리의혹 국회의원 아들의 병적기록표와 진료기록을 최초 수사팀 요원이 검토하면 밝혀질 수 있는 사안임
2)기무사의 병역비리수사 개입
-병무비리수사가 이명현 검찰관과 김대업 전직 의무하사관, 다수의 군의관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대한 수사로 확대됐으나, 99년 4월27일 수사팀장이 이명현에서 고석 중령으로 교체되고, 수사에 협조했던 대다수 군의관이 구속되며, 제보자인 김대업이 수사팀에서 배제되면서 기무·헌병·정치권으로 이어지는 핵심 의혹라인이 수사대상에서 제외됨.
○과거 비리행위를 자수하려는 지방 기무요원을 기무사 감찰실에서 차단
-별첨자료 #2: 부산 612기무부대요원 김수정 진술 참조
○기무사 감찰실은 병무비리 합수부 조사팀에 기무요원이 소환돼 진술하기 전에 사전교육
-대부분의 혐의사실을 부인하도록 교육시킴
-별첨자료 #4: 특별수사팀 속기록
기무사의 수사방해 혐의
○기무사가 최초 수사팀의 제보자인 김대업의 개인 약점을 확대·왜곡해 수사팀을 와해시키려 기도했음
-별첨자료 #3: 김대업 양심선언 참조
-별첨자료 #4: 특별수사팀 속기록
○1차 수사팀의 총 책임자인 이명현 소령은 수사과정에 고위층 및 기무사로부터 외압이 있었음을 증언
-별첨자료 #5: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이명현 편지
○99년 4월27일 병무비리 1차 수사발표 이후 고석 국방부 검찰부장은 정보제공자인 김대업의 신분을 누설
-김대업은 병무비리 몸통이 기무사라고 주장
-99년 7월10일경 국방정책보좌관 김인종 중장, 고석 국방부 검찰부장, 1차 수사팀장 이명현 소령, 김대업 등이 모인 회의석상에서 고석 검찰부장의 김대업 신분누설사실 확인
3)기무사의 수사팀 와해공작
-병무비리 수사팀의 기무사에 대한 수사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1차 수사팀에 대한 기밀누설은 물론 수사팀에 포함돼 있던 전직 의무행정 하사관 김대업을 서울지검이 재구속하도록 압력을 행사. 또다른 한편으로는 수사팀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군법무, 의무장교들의 문제점을 확대한 보고서를 작성, 청와대에 보고
○기무사는 병무비리 합수부에 소환되어 조사받은 기무요원을 자체적으로 재조사하고, 정보수집을 통해 군법무 의무장교들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킨 보고서를 작성, 9월 청와대 보고
-기무요원을 수사한 검찰관의 문제점을 집중수집
○합수부에 참여하고 있던 서울지검 검사측과 고석 검찰부장 사이에 갈등 조성
4.문제점
1)만성적·고질적 병무비리 척결의 어려움
-병무비리는 지난 수십 년간 마약조직이나 간첩조직과 유사하게 은밀하고도 전국적인 커넥션으로 형성돼 왔으며, 이들에게 청탁해 도움을 얻은 사회 고위층은 또다시 이를 비호하는 세력으로 작용해 성역 없는 수사가 대단히 어려움
○군 수사팀이 밝혀낸 병무비리 유형과 사례를 종합하면,
-병무비리 유형은
①현역에서 5급 면제판정으로 전환
②4급 공익대상자에서 5급 면제자로 전환
③현역 입영 후 의병전역이 있으며,
-병무비리 사례금은,
·건당 최소 1000만 원에서 최고 1억 원 이상
·지방의 경우 수도권의 약 60∼70% 정도이며,
-수사팀이 추정하는 연간 규모는,
·연간 수도권에서 1200억∼1500억 원
·전국적으로 연간 4000억 원 이상이 음성적 뇌물로 거래될 것으로 추정
○병무비리의 전국적인 커넥션은,
-주요 비리발생 경로를 보면,
①각 지방에 장기간에 토착화된 전·현직 병무 담당 기관요원
②각 지방 병무청 전·현직 직원
③이들과 사회 고위층·부유층을 연결하는 브로커로 구성돼 있음
○특히 이들을 수사해야 할 기관요원이 거꾸로 비리의 당사자가 됨에 따라,
-일선 병무 실무자의 금품수수 사실이 비교적 용이하게 드러나는 소규모 비리척결은 가능한 반면,
-기관의 고위층에 청탁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의학지식, 관련법규, 신검규정, 전국적인 비리조직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 및 제보자·협조자에 의해서만 수사가 가능
2)구 기득권층 병무비리 척결 필요성
-금번 병무비리 수사과정에 드러난 주요 비리 당사자는 구 기득권층과 결탁된 기관세력이었으며,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 자민련과 부산·경남 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
○군 수사팀이 병역면제 비리의혹이 있다고 지목한 정치권 다수가 한나라당과 자민련 소속
-병역면제 비리의혹 국회의원 21명 중 15명이 한나라당
-차후 수사시 한나라당 후원세력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
○특히 병역면제 비리의 최대 주범인 박노항과 관련 있는 정형근과 정석모 의원이 의혹의 핵심
-과거 정보기관과 유대가 깊은 정형근 의원의 정보인맥이 비리 커넥션으로 활용됐는지 여부를 집중점검하는 것이 중요
3)특별수사대책의 필요성
-최초 수사팀에서 활약했던 제보자와 군의관들이 대부분 배제된 상황에서 현재 구성된 특별수사팀은 추가적인 성과를 거두기에 역부족
○수사에 협조하는 내부 제보자와 실무자들을 보호할 필요성
-최초 이들의 과거 비리는 면책하기로 국방장관,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에게 보고된 바 있음
-차후 수사시 계속 활용해야 함
○박노항의 조속한 검거를 독려함과 더불어 보안이 보장되는 특별수사팀 구성 필요
-정형근 의원의 비리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함
-최초 수사에 참여한 전문가에게 병역면제 비리의혹 의원 아들의 병적기록을 제공하면, 비리 의원들을 확인할 수 있음
5.결론 및 대책
○최초 수사 착수시의 개혁정신으로 고위층에 대한 의혹 규명을 지속
-통치권 차원의 특별수사 지시 요망
○기무사에 대한 대혁신과 부패 척결
○국민들의 병역기피 심리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중요
-병영문화 혁신과 장병 사기 진작책 강구
보고서 내용 중 정형근 의원 관련 부분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이는 1997년 10월경 정의원 및 정석모 전의원의 보좌관이 박원사와 술자리에 동석한 사실을 확대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기무·헌병의 병역비리를 전담하기 위해 편성된 군검찰 특별수사팀은 1999년 8월 하순 군의관 2명의 진술을 통해 두 보좌관이 박원사와 어울린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은 군의관 임아무개 소령의 진술 요지.
-1997년 9, 10월경(또다른 증언자인 군의관 김아무개 소령은 ‘10월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용산역 앞 사조참치집에서 박노항 원사와 본인과 김OO 소령이 저녁에 식사를 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던 국방부 김OO 소령, 육사병원장 김OO 소령을 만났다.
-5명이 어울려 2차로 용산역 부근 단란주점(지하)에 갔다.
-거기서 정OO 의원 보좌관, 정OO 의원 보좌관, 60대 전후의 여자 1명, 평택시의회 의원 1명과 합류했다.
-정OO 의원 보좌관과는 이전에도 3∼4 차례 박노항 원사와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정OO 의원과 평택시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술을 마셨다.
-본인과 김OO 소령, 김OO 소령, 김OO 소령은 먼저 나와 귀가했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지만 박노항 원사와 정OO 의원 보좌관은 같은 고향 사람으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던 것 같다.
여기서 박원사와 가까운 사이라고 언급된 보좌관은 정석모 전의원 보좌관 이아무개씨다. 또 ‘평택시의원’으로 지칭된 사람은 평택 출신 경기도의원으로 지금은 민주당 의원이다. 5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문제의 정형근 의원 보좌관은 “다 클리어된 얘기”라며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나는 박노항과 전혀 모르던 사이다. 정석모 전의원 보좌관의 약속이 겹쳐서 생긴 일이다. 그 자리에 가니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 후엔 서로 연락한 적이 없다. 그때는 박노항이 수배되기 전이고 내가 의원 모신 지 한 달밖에 안 됐을 때다. 이 일을 의원과 연결시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박노항과 술 마신 정치인들
보고서에 언급된 정형근 의원의 장남은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사유는 청력 장애. 성남비행장에서 방위로 근무한 그는 1995년 8월 상병으로 전역했다.
5월3일 한겨레신문엔 관련자들의 해명이 실려 있다. 술자리를 주선했던 정석모 전의원의 보좌관 이아무개씨는 한겨레신문(5월3일)을 통해 “박 원사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93년께 정치권에 있는 다른 고향 선배한테 소개를 받았다”며 “박 원사가 저녁도 잘 사고 매너가 좋아 자주 어울렸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자리는 옛 여권 사무처 요원으로 함께 일했던 이아무개 보좌관과 김아무개 청와대 행정관 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가 나와 연락이 돼 박원사와 합석하게 됐다”며 “비리 청탁과는 무관한 술자리였다”고 주장했다.
이날 술자리에 있었던 여당의원도 “우연히 동석한 자리였을 뿐 박원사와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며 “그 뒤 박원사를 만난 일도 없다”고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군검찰은 최근까지도 술자리에서 박원사와 동석한 이들을 조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군검찰 주변에서는 “박원사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다 조사대상으로 삼는다는 원칙에 비춰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편 보고서 작성자가 주장하는 당시 국방부 검찰부장 고석 대령(당시 중령. 현재 육군 3군사령부 법무참모)의 행적과 기무사의 수사방해 혐의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대령 및 기무사와 극한대립 관계에 있던 군검찰 수사정보원 김대업씨의 시각이 많이 반영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고대령은 병무비리 전과자인 김씨를 못마땅히 여겨 자신이 주도권을 쥔 2차 수사 당시 수사팀에서 김씨를 배제했다. 1999년 11월 고대령이 참여연대에 의해 공무상비밀누설혐의로 고발당한 것은 김씨의 제보 탓이었다. 병무비리수사 초기 상당한 공을 세우고 3차 군·검합동수사반에서도 활약한 김씨는 박노항 원사가 잡히기 직전인 지난 4월초 사기혐의로 구속돼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대령은 ‘신동아’ 인터뷰(2000년 4월호 ‘병무비리수사 극비내막’)를 통해 기무사 유착혐의에 대해 “터무니없는 음해”라며 “내가 수사할 때 기무·헌병을 가장 많이 잡아넣었다”고 주장했다. 또 정보원인 김대업씨의 신분을 노출시키고 수사팀에서 배제한 데 대해선 “김씨가 수사팀에 들어오면서 한 약속과 달리 자신이 저지른 병무비리를 다 털어놓지 않았고, 비위사실이 자꾸 드러난 데다 전과자 주제에 수사관 행세를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수사 초기 군검찰에 의해 ‘병무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기무사는 전과자인 김씨를 앞세운 군검찰의 수사방식을 문제삼으며 청와대에 이를 보고하는 등 군검찰과 대립했다. 기무사는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일부 기무요원의 비리를 두고 기무사 전체가 병무비리에 관련된 것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 내용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정치인 명단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의원 수가 21명이 아니라 19명임을 알 수 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15명인데, 실제론 13명의 이름만 적혀 있다. 이는 보고서 작성자에게 명단을 넘겨준 제보자의 착오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부패국민연대의 기자회견 직후 명단을 공개한 몇몇 주간지가 정치인 수를 21명이라고 전제하고, 19명 또는 20명의 이름만 보도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주간지들은 모자라는 인원에 대해 ‘미확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명단에 오른 의원의 대부분은 아들이 방위복무나 의병 제대, 또는 면제된 경우다. 하지만 수사관계자의 ‘감’에 의존해 만든 자료인 탓에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틀린 사례도 있다. 예컨대 정석모 의원의 두 아들은 모두 만기제대했는데도 명단에 올라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반부패국민연대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현직의원 수와 군·검합동수사반이 조사대상으로 삼은 현직의원 수가 다르다는 점이다. 반부패국민연대가 제보자로부터 받은 명단은 모두 세 종류. 합동수사본부는 그 세 종류의 명단에서 중복자를 빼고 119명을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그 중 정계 인사는 54명(아들 숫자 75명)으로 그 중 37명이 현역의원이었다. 당시 합동수사반 관계자는 이에 대해 “37명엔 반부패국민연대 리스트에 오른 현역의원 21명 외에 검찰과 군검찰이 내사해온 정치인들이 포함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전달된 ‘추가적인 병무비리의혹 조사대상 국회의원’이라는 보고서에는 현직의원 45명의 명단이 있다. 이 명단이 반부패국민연대에 넘어간 세 종류의 명단 중 하나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개연성은 있다. 반부패국민연대가 밝힌 현직의원 수는 정확히 말해 21명이 아니었다. 21명은, 반부패국민연대 표현대로라면 ‘수사가 중단된’ 의원 수다. 반부패국민연대는 기자회견 당시 “직계 존비속의 병역이 면제된 현직 국회의원은 수사가 중단된 21명을 포함, 7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청와대 보고서 작성자 A씨에 따르면 제보자 B씨는 두 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명단을 갖고 왔다. 처음 것은 앞서 소개한 21명의 명단. A씨는 이를 1차로 청와대에 전달한 후 제보자에게 좀 더 자세한 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제보자는 다시 명단을 만들어 왔다. 거기엔 현직의원 7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A씨는 그 중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의혹대상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의원을 빼고 다시 명단을 만들었는데, 그 숫자가 바로 45명이라는 것이다. 제보자는 당시 국회의원 70여 명의 명단 외 전국 병원 명단 자료도 들고 왔다. A씨는 이 자료들은 검찰 관계자에게 넘겨줬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한겨레신문(2000년 1월25일)이 검찰 관계자의 말을 빌려 “청와대가 반부패국민연대로부터 받아 검찰에 건넨 자료에는 여야 중진을 포함해 모두 40여 명의 현역의원 명단과 의혹사실이 기재돼 있다”고 보도한 점이다.
다음은 이 보고서의 요지.
1. 개요
○수십 년간 만성화·고질화된 병무비리 관행을 고려할 때 사회지도층의 병역면제 비리는 광범위할 것으로 추정
○첨부된 국회의원 자제의 경우 면제사유, 신검 판정일자 등을 고려할 때 보다 정밀한 조사가 요구됨
2. 조사방법
○병적기록과 진료기록을 분석
○면제 판정시 압력 및 청탁 여부를 조사
정치인 리스트의 원조는 1차 군·검합동수사 당시 군검찰 수사팀이 별도로 작성한 ‘사회관심자원’ 리스트다. 사회관심자원이란 병무청에서 특별관리하는 계층으로 일반인보다 병역 면제율이 훨씬 높은 정계 재계 연예계 체육계 등의 인사들이다. 애초 수사팀은 병무청에 사회관심자원의 병적기록부를 요구했다. 하지만 병무청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수사팀은 병적기록부의 약식 형태인 병적카드를 활용했다. 병적기록부처럼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질병면제자의 경우 신검일 면제사유 입대일 전역일 등 기본 사항은 적혀 있어 수사의 기초자료로 삼을 만했다. 서울병무청에서 신검을 받는 사람은 연평균 12만 명에 이른다. 그 중 면제자 수는 평균 1만5000명. 수사팀은 서울병무청에 들어가 최근 3년 동안 면제를 받은 사람들의 병적카드를 모두 복사해왔다.
그러나 사회관심자원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병무청 직원들이 사회관심자원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병적카드를 빼돌렸거나 수사팀이 잘 찾지 못하도록 뒤죽박죽 섞어놓았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일단 아버지 직업란에 정치인이라고 적힌 병적카드를 따로 분류한 다음 그 중 ‘냄새가 나는’ 것들을 추렸다. 정치인 리스트의 원조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모두 16명인데 그 중엔 현직장관도 포함돼 있었다.
수사팀은 정치인 명단을 비롯해 재계 11명, 연예계 22명 등 모두 54명에 이르는 사회관심자원 리스트를 만들었다. 당시 수사팀장이던 이명현 소령은 1차 수사가 마무리되던 시점인 1999년 4월초 법무관리관 박선기 소장(당시 군·검합수반 공동수사본부장)과 고석 검찰부장에게 이 리스트를 각각 한 부씩 건넸다.
묘하게도 이 명단의 일부는 반부패국민연대 명단과 일치한다. 지난해 1월24일 대검 중수부가 밝힌 반부패국민연대 리스트에는 재계 11명, 연예계 22명이 포함돼 있다(그 중 실제 수사대상이 된 것은 재계 1명, 연예계 3명). 달라진 것은 정치인 리스트. 군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사회관심자원 리스트에 있던 16명 중 3명이 빠지고 8명이 추가돼 21명으로 늘어났다. 추가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야당의원이다. 사회관심자원 리스트에는 김용환 정석모 정형근 이회창 의원 등이 없었다. 자식들의 병적카드를 구하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반부패국민연대 명단엔 이들이 올라 있다.
한편 2차 군·검합동수사 당시 군검찰 수사팀장이던 고석 대령은 수사가 끝난 후 서울지검에 30여 명의 사회지도층 명단을 넘겼다. 이 명단엔 정치인은 없고 의과대학교수 기업체 대표 등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명단도 반부패국민연대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3차 군·검합동수사반이 수사대상으로 삼은 119명의 직업은 정계 재계 연예계 체육계 등으로 나뉘는데, 그 중 ‘기타’로 분류된 사람이 35명이었다.
반부패국민연대에 정치인 리스트를 포함한 수사자료를 넘긴 제보자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반부패국민연대는 박노항 원사가 검거된 후 회의를 갖고 당시 제보자의 신분이나 명단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청와대 보고서 작성자인 A씨와 자료 제공자 B씨는 자신들을 반부패국민연대 제보자로 꼽는 데 대해 펄쩍 뛴다. B씨는 오히려 “반부패국민연대의 정치인 명단 발표는 병무비리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수사에 들어가기도 전 대상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A씨 또한 “반부패국민연대의 기자회견에 놀랐다”며 자신이 제보자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반부패국민연대의 기자회견은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정치권의 의도에 부합한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보고서가 전달된 시점은 병역비리수사가 숱한 의혹을 남긴 채 막을 내릴 무렵이었다. 그에 앞서 참여연대는 ‘개혁통신’을 통해 병역비리수사의 축소 및 외압의혹을 제기하며 재수사를 강력히 촉구했으며 일부 언론도 이에 동조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청와대는 반부패국민연대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 재수사 방침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검찰도 은밀히 재수사에 들어갈 준비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상황에 ‘기막힌 사고’가 터진 것이다.
군검찰의 고위관계자는 “누군가 반부패국민연대를 이용해 수사를 촉발했다”며 항간에서 제기된 ‘연출 의혹’에 공감을 나타냈다. 반부패국민연대의 기자회견은 병역비리 재수사의 대외적 명분과 선거에 활용할 여지를 찾던 여권에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반부패국민연대는 명단에 오른 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 표현대로라면 “여권이 딱 원하는 모양”으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사실 정치인 수사는 병역비리수사의 본질이 아니다.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민단체가 청와대에 명단을 넘기고, 청와대가 다시 이를 군검찰과 검찰에 넘기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면서 정치인 수사는 병역비리수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더욱이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혐의가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부 의원들은 낙선운동 물결에 휩쓸렸다. 공교롭게도 명단에 오른 의원들은 대부분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야당 탄압 및 기획수사 시비에 휘말릴 만한 상황이었다. 결국 정치인 수사는 총선 전에 끝내느니 마느니 하는 정치공방 속에 변죽만 울린 채 끝이 났고 그 부담이 현 수사팀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정치인 수사가 흐지부지된 첫째 원인은 이처럼 정치논리 개입이다. 정도를 걸어야 할 병역비리수사가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갈팡질팡한 것이다. 여권은 이를 선거국면에 활용한 혐의가 짙다. 야당은 야당대로 정치공세로 일관하면서 소환에 응하지 않는 등 수사진행을 가로막았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하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수사방식과 법적용의 문제다. 병역비리수사과정을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검찰의 수사방식을 비판했다.
“검찰 수사의 초점은 병역면제의 대가로 금품수수 사실이 있었는지 여부다. 그런데 정치인을 비롯한 고위층 인사들은 뇌물을 쓰지 않아도 청탁이 가능하다. 검찰이 딱 떨어지는 기소요건만 선호하니 돈은 유죄지만 ‘빽’은 무죄가 되는 모순이 생겼다. 사회지도층이라는 점에서 정치인 수사는 국민 법감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정치인들의 병역비리실태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병역비리수사에 참여한 군검찰 관계자는 정치인 수사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법적용’을 제시했다.
“정치인들의 병역비리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선 지나치게 엄격한 법적용에서 벗어나야 한다. 뇌물수수혐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병역면탈죄나 공문서 위조(군의관의 허위진단서 작성)와 관련한 공범죄 적용 등 병역법위반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병역면탈죄는 본인에게만 적용되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크다. 수사 당시 상부에 병역법위반죄를 확대적용하자고 주장했지만 무리한 법적용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정상적으로 진행해도 쉽지 않은 정치인 병역비리수사를 더욱 힘들게 한 건 명단 공개였다. 수사대상자가 미리 공개되는 것은 수사팀에 엄청나게 부담을 주는 일이다. 당사자들의 증거 조작 및 은닉 가능성이 있는 데다 국민의 기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수사는 수사의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정상적인 수사라면 박노항 원사처럼 면제청탁을 연결한 브로커 및 이를 해결한 군의관의 진술을 확보한 다음 마지막으로 청탁자, 곧 정치인을 소환해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수사팀은 무기도 채 갖추기 전 전쟁터로 내몰린 셈이다.
게다가 명단의 신빙성도 문제다. 구체적인 혐의가 아니라 ‘의혹이 있는 것 같다’는 개연성만으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수사가 부실수사로 비쳐진 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청와대 보고서 작성자 A씨도 명단의 부실 가능성을 시인한다. “관보에 게시된 입대일 전역일 면제사유 등 초보적인 수준의 자료를 근거로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 조사해보면 혐의가 없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남은 의문은 박노항 원사와 정치인 리스트의 연관성이다. 사실 박원사의 혐의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병역비리 루트는 다양하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면제자 모두가 박원사를 통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지도층이나 군 고위층은 박원사의 윗선이나 병무청 간부 또는 기무사 헌병대 같은 군내 파워기관의 실력자들에게 선을 댔을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병역비리수사과정에 그런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렇긴 해도 박원사가 병역비리의 주범이라는 굴레를 벗을 순 없다. 그는 신검이 이뤄지는 병무청, 그것도 전국 병무청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울병무청에 파견돼 병역비리를 감시하는 헌병 책임자였다. 따라서 서울 지역에서 이뤄지는 웬만한 병역면제 청탁은 그의 감시망에 걸려들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그는 감시대상인 군의관들을 매수해 병역비리의 공범으로 만들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법 적용범위 확대해야
김동신 국방부장관의 ‘호언’대로 수사팀은 박원사로부터 정치인 관련 비리에 대해선 아무것도 캐지 못했다. 군검찰 관계자는 “병역비리수사는 최종 해결사인 군의관 진술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며 “1차 수사 당시 수사에 협조한 군의관들에 대한 면책 약속이 깨진 순간 사실상 수사는 끝난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박원사가 이번에 시인한 병역비리는 대부분 1차 수사 당시 수사에 협조한 군의관 20여 명의 자백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다.
1995년 11월 2000억 원의 비자금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로 향하며 “나 혼자서 모든 책임을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박원사가 노 전대통령 흉내를 낼 경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사람들은 누구일까.
군의관들의 수사협조에 힘입어 이후 진행된 병역비리수사의 토대를 마련했던 1차 수사팀이 수사일정에 쫓겨 미처 조사하지 못한 100여 건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른다. 군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군의관들의 진술 중엔 박원사와 정치인이 연결된 병역비리도 포함돼 있었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병역비리실태를 제대로 파헤치기 위해선 좀더 적극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 면책을 약속해서라도 군의관들의 진술을 더 끌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박원사를 비롯한 병무 브로커들을 더 추궁해야 한다. 기무·헌병요원의 혐의도 더 밝혀야 한다. 군검찰에 따르면 서울은 헌병 소속의 박원사가 제패했지만 지방은 기무요원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법 적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돈이 직접 오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및 군 고위층 인사들의 병역비리를 덮으면 안 된다. 병역법위반죄가 어렵다면 알선수뢰죄나 직권남용죄를 적용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이 수사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도덕적 단죄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법감정이다.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며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회지도층에 경각심을 주고 국민들에게 병역의무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병역비리수사는 장기적으로 더욱 철저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