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이 영국의 다국적 할인점 테스코와 손잡고 유통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방에서 먼저 개장한 유통점 ‘홈플러스’가 단위면적당 세계 최고 매출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승한 사장은 “할인점보다 낮은 가격, 백화점보다 높은 품질을 지향한 결과”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 하버드대가 삼성테스코의 유통점인 ‘홈플러스’를 성공 비즈니스 모델로 선정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게다가 홈플러스가 2005년이면 국내 55개 점포와 종업원 2만 명을 확보한 매출 10조 원의 초대형 유통점으로 성장할 전망인데다, 현재 한국을 비롯 전세계 유통시장에서 혁명을 몰고 오는 기업이라면 눈이 번쩍 뜨인다. ‘아니, 그런 회사가 있었나?’ 하고.
삼성테스코는 99년 5월 영국 최고의 다국적 할인점인 테스코(TESCO)와 삼성물산이 합작, 자본금 3200억 원으로 설립한 유통회사. 홈플러스(Home plus)라는 브랜드로 ‘할인점보다 낮은 가격, 백화점보다 높은 품질’이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새로운 개념의 유통업태인 ‘가치점’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대구점을 비롯, 서부산점 안산점 북수원점 영통점 김해점 창원점 등 7개점을 운영중이며, 올 연말까지 서울 영등포(12월 예정)를 비롯 6개점을 더 만들 예정이다.
97년 최초로 개점한 대구점은 유통점 단위면적당 세계 최고 매출액(도이치방크 보고서)을 기록하고 있으며, 7개점 하루 평균 매출액은 5억 원으로 전년도 대비 105%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총액은 6300억 원으로 5.9%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해, 업계 4위로 올라섰다. 종업원 수는 3470명.
삼성테스코는 외국 투자은행 분석가들로부터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평가되기도 했고, 그간 ‘고객만족경영대상’, ‘산업협력대상’, ‘한국유통대상’ 등 8개의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지금껏 그처럼 ‘조용’했던 이유는 뭘까.
바둑과 오목의 차이
“저는 바둑을 두지, 오목은 두지 않습니다.”
이승한(李承漢·55) 사장은 홈플러스를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부터 개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리스크가 적은 지방도시를 거점으로 성공한 후 이를 기반으로 ‘중원’에 진출하겠다는 것. 서울 시내 한복판에 ‘안테나 숍’을 세운 후 지방으로 세를 확장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유통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전략이다. 이는 삼성테스코가 추구하는 경영이념인 ‘글로컬 스탠더드(Glocal standard)’와 이사장의 경영철학인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의 절묘한 조화에서 비롯된다.
‘글로컬’은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의 합성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다국적 합작기업이므로 글로벌을 추구하지만, 유통점이라는 특성상 그 나라, 그 지역의 특징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미국 최대 할인점인 월마트가 한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월마트는 창고형 할인점의 효시로 생활필수품보다는 공산품을 주로 취급하며, 미국적인 쾌적한 쇼핑을 즐기도록 넓은 공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에서 월마트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국 사람들은 북적거리는 쇼핑을 좋아하며, 쇼핑의 주품목은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생산지와 직거래를 통해 신선식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지역주민의 문화생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마련해 지역 커뮤니티화함으로써 글로컬 스탠더드를 시도했다. 또한 직원 채용시 지역인력을 우선 채용하고, 협력업체도 지역 위주로 이용토록 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전략을 펴고 있다. 특히 ‘e파란’이란 환경캐릭터를 창조해 꾸준히 환경친화 운동을 벌인 것도 지역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착안대국 착수소국’은 계획할 때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하되 실행할 때는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뜻. 이런 경영철학에 따라 새로운 유통업태인 가치점을 창출했으며, 이는 결국 홈플러스의 성공요인이 됐다.
“가치점이란 단순히 물건을 싸게 파는 할인점과는 격이 다릅니다. 소비자에게 품질과 가격 면에서 모두 메리트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유통입니다.”
이승한 사장은 가치점이란 용어는 단순히 홍보를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유통은 과학’이라는 신념에서 창안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좋은 품질을 싸게 제공한다는 일차원적 상술에서 탈피, 소비자가 구매하는 과정에서 편리하고 좋은 서비스를 받고, 쾌적한 쇼핑환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삼성테스코는 홈플러스를 개점하기 전에 지역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그들이 ‘원 스톱 라이프 서비스(One stop life service)’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이를 매장에 최대한 반영했다고 한다.
즉 상품구매뿐 아니라 민원업무 은행 세탁 사진 약국 미용실 클리닉 카드서비스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쇼핑센터 안에서 해결하게 했다. 또한 교육 문화 오락 등을 위한 문화센터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 문화활동을 위해 다른 장소를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앴다. 할인점과 백화점의 장점을 고루 취해 새로운 생활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홈플러스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 최초로 ‘SI(Store Identity)’를 개발, 점포 외관을 비롯해 인테리어 디자인, 색상, 레이아웃 등에서 다른 할인점과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의 안전과 쾌적한 공간을 고려한 설계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건물을 짓는 데 돈을 너무 많이 들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많습니다. 물건을 싸게 파는 할인점인데 그렇게 투자를 많이 하면 이윤이 줄지 않을까 우려돼서 하는 질문인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건축에 대해 깊이 파고들다 보면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게 돼요. 쓸 데 없는 낭비를 최대한 줄이면 적은 비용으로도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사장은 “부지 확보를 위해서는 비용을 다른 할인점보다 더 들였지만, 건축비는 오히려 절감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가령 건물 바닥재의 경우, C사는 비싼 테라초(대리석 부스러기를 박은 다음 닦아서 윤을 낸 인조석)를 사용해 많은 돈을 썼지만, 홈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P타일을 사용하는 대신 왁스처리 등으로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해 내구성을 향상, 인조석과 같은 효과를 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경사로도 운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정기준인 16°보다 훨씬 낮은 12°로 설계, 더 많은 공간을 써 투자비가 더 많이 든 것 같지만 공간미학을 최대로 발휘해 16°경사로보다 적게 들었다고 한다.
또한 물류에서도 창고와 영업매장이 직결되도록 시스템화하고, 5t이나 10t 트럭을 여러 번 사용하기보다는 15t 트럭으로 한꺼번에 물건을 운반하게 해 효율을 높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물류 출입로를 15t 트럭에 맞게 설계했다. 이는 물류비용을 상당히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승한 사장은 이를 ‘밸류 엔지니어링(Value engineering)’이라 표현하며, 유통이 과학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홈플러스가 밸류 엔지니어링 기법과 SI를 도입해 건축비를 절감한 것은 이사장 개인 능력에서 비롯됐다는 게 직원들의 한결같은 칭찬이다. 그는 삼성물산(건설) 개발본부장과 회장비서실 보좌역 부사장으로 있을 때 건축전문가 못지않은 안목과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현재 한양대에서 도시계획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다시 태어난다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서울 소공동 삼성플라자와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 세워진 종로타워(국세청이 입주한 건물)도 이사장의 작품이다.
“이건희 회장께서 화신백화점 자리에 랜드마크가 될 건물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는 공간이 좁은데다 맞은편에 제일은행 본점 건물이 가로막고 있어 아무리 고민해도 눈에 띄는 건물을 짓기 힘들 것 같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기둥 세 개가 UFO를 떠받치는 형상으로 하면 좁은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컨셉트를 잡고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혀 내두른 모건스탠리
차별화된 점포 이미지와 가치점이란 전략을 내세운 홈플러스는 개점 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초로 설립한 대구점은 하루 평균 7억1000만 원의 매출로 국내는 물론 세계 할인점 업계 최고 매출을 기록중이며, 2000년에 오픈한 안산점과 북수원점, 영통점, 창원점은 잇따라 개업일 매출 신기록 행진을 벌여 업계를 경악케 했다. 김해점은 할인점과 패션몰이 합쳐진 국내 최초의 퓨전점을 지향, 또 다른 유통형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7개점 모두 성공한 것은 홈플러스의 장기 비전인 ‘전국 55개 점포의 2005년 이내 완공’을 가시화하고 있다. 외국 유수의 기관투자가와 애널리스트가 참석한 IR(기업설명회) 결과 8000억 원의 외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한 것은 그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도이치방크는 “삼성테스코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유통기업으로 보인다”고 평했으며, 모건스탠리도 “홈플러스의 매출은 믿기 힘들 정도다”고 혀를 내둘렀다.
오는 12월이면 홈플러스의 서울 입성이 시작된다. 영등포점이 개점하면 서울시민들도 소문만 무성한 가치점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영등포점의 성공 여부는 이승한 사장의 ‘바둑’이 중원 싸움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가늠케 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승한 사장은 97년 12월 초 이건희 회장의 부름을 받았다. “삼성물산 유통부문을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삼성그룹 입사 27년 만에 대표이사가 됐지만 그에게는 커다란 난관이 닥쳐왔다. 사업을 벌이기도 전에 외환위기가 터지자 유통처럼 투자비가 많이 드는 사업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유동성 위기로 핵심 사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가 구조조정 대상이 됐지요. 당시 꼬리를 끊어서라도 일단 생존을 확보한 뒤 다시 잘린 꼬리를 재생하는 ‘도마뱀 경영’과, 설령 다이아몬드를 바다에 내던지더라도 배가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는 ‘선상투하 경영’이 외환위기를 헤쳐나가는 삼성그룹의 경영전략이 됐습니다. 그 일환으로 외자유치가 결정됐고, 해외 파트너 선정작업을 추진하게 됐지요.”
하지만 세계 유수의 다국적 할인점 중에서 파트너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사장은 미국의 월마트를 비롯, 독일의 메트로, 프랑스의 까르푸, 프로모데, 일본의 이토요카토, 영국의 세인스베리, 테스코 등과 협상에 들어갔다. 그 결과 테스코가 가장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고, 삼성과의 전략적·문화적 차이도 가장 적었다. 이사장은 유통업에서는 시장과 고객전략이 철저히 로컬화돼야 한다는 지론을 폈고, 그 점이 다른 기업들과의 협상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에 비해 테스코는 매우 호의적이었어요. 경영권을 공평하게 나눠 갖자는 데 합의했고, 지분도 50 대 50으로 하자는 등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요. 하지만 테스코가 더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영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라는 동질성과 테스코의 기업철학이었습니다.”
테스코는 설립자 잭 코헨이 자신의 이름에서 ‘CO’를, 납품업자 스톡웰(T.E. Stockwell)의 이름에서 ‘TES’를 따와 명명한 것. 이는 창립 때부터 공급자와 윈-윈 파트너십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삼성그룹의 공존공영 기업철학과 일맥상통했다고 한다. 테스코는 영국 최대의 유통업체로 2000년 매출액이 44조5000억 원에 달하며 운영점포만 영국의 691개점을 비롯 전세계에 907개점이나 된다. 종업원은 24만명이며, 세계 유통업체 중 매출규모 10위권의 다국적기업이다.
이승한 사장은 협상만 마무리한 뒤 그룹에 잔류토록 예정돼 있었다. 당시 삼성물산의 현명관 부사장도 테스코측에 서한을 보내 ‘SH Lee’는 삼성그룹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테스코가 막무가내였다. “SH Lee가 CEO를 맡지 않는다면 협상 자체를 깰 수도 있다”는 식으로 나왔다. 1년에 적어도 7000억∼8000억 원을 투자하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최고경영자’가 절실했기 때문인 듯하다. 테스코가 시종 그의 CEO 기용을 고집하는 바람에 이건희 회장과 그의 관계가 좀 곤란해지기도 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테스코는 이사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합작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철저하고 지독스러운 면모를 인정한 것. 당초 50 대 50의 합작으로 추진되던 협상은 막판에 삼성의 유동성 문제로 인해 삼성 지분 50% 중 30%를 테스코에 넘기기로 약속됐다. 골드만삭스 등의 투자회사들은 외환위기로 한국의 기업 자산이 헐값으로 해외에 매각되는 분위기를 감안, 이 30% 지분을 장부가의 50∼60% 정도로만 평가했다.
그러나 이사장은 테스코와 끈질기게 협상해 장부가보다 200억 원을 더 많이 받아냈고 로열티까지 챙기는 수완을 보였다. 그런데도 테스코측이 오히려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삼성테스코의 CEO가 된 이사장은 뛰어난 개인기를 발휘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삼성그룹이 지분 19%를 갖고 있지만 삼성테스코는 전적으로 영국 테스코의 경영권 아래에 있다. 하지만 테스코는 경영권을 이승한 사장에게 주고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승한이라는 CEO를 믿기 때문이다.
그는 유통업을 국가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로 가치점이란 새로운 형태를 창안하는가 하면, 독특한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직원들의 근무의욕을 높여나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신바레이션 문화(Shinbaration Culture)’. 한국의 신바람문화와 서구의 합리문화를 조화시켜 팀워크를 강조하면서 프로의식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삼성테스코는 친절직원에게 포인트를 부여해 포상하는 스태프 마일리지 제도, 동아리 활성화, 신바람 뮤직 페스티벌, 종업원 성과 인증제도, 어학 클래스, 해외연수 등을 시행하고 있다. 주 5일 근무에 금요일은 자유복장인 점도 삼성테스코 직원들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
“경영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등 모든 악기의 특성과 기능을 알아야 아름다운 곡이 나오듯 경영자도 기획 인사 마케팅 상품 운영 설계 건축 등 주어진 경영자원을 조화롭게 잘 활용해야 뛰어난 경영성과를 올릴 수 있는 거지요.”
예술 같은 경영
이사장은 그런 ‘예술경영인’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삼성에 근무하면서 런던지점장을 비롯해 기획 마케팅 금융 건설 부동산개발 등 다방면에 걸쳐 경험을 쌓았지만 세계적인 유통 전문가가 되기 위해 쉴 틈을 아낀다. 그의 사무실은 마치 신문사 편집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갖가지 서류와 자료더미가 쌓여 있고, 설계 도면이나 디자인 시안 등도 가득하다.
하지만 이사장은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CEO치고는 권한을 아래로 많이 이양하는 편이라 직원들이 모시기에 그리 까다롭지 않다고 한다. 직접 결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사장은 부서의 리더가 직원들과 토의하여 결정하도록 유도하고, 주요 경영정책이나 비전 등도 웬만하면 ‘톱-다운’하려고 애쓴다.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와 신조어를 내놔 직원들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비상한 이사장의 아이디어 창고는 집 뒤편의 황무지를 활용해 꾸민 정원이다. 그는 그곳에 농구대를 설치해 농구를 즐기는가 하면, 샌드백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두들긴다. 운동도 즐기고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도 그만이라고 한다.
승승장구하는 CEO로서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에게는 말 못할 슬픔이 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고, 부인마저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다. 다행히 부인은 회복됐지만 그 시절이 그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었다.
“인간은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다행히도 그 고통을 잘 이겨냈다면 그건 어릴 적 7형제 중 막내로 자라면서 자갈밭에서도 살 수 있도록 엄한 가정교육을 시킨 아버지 덕일 겁니다.”
그 시절 신발과 옷을 형들에게서 물려받아 떨어지고 헤질 때까지 입고 살았던 근성이 삼성이라는 치열한 경쟁터와 아들을 잃은 상처에서 살아남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에서 가장 빠른 기간 안에 과장과 차장으로 승진한 기록을 세웠고 이건희 회장이 총애하는 아이디어맨 이승한. 그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것은 55개 점포가 그의 손으로 다 세워지는 날까지 유보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