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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작은 장군’ 金正男의 비밀행각

도쿄 · 워싱턴 · 베이징 · 유럽 대북정보망 밀착취재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특종! ‘작은 장군’ 金正男의 비밀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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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법무성이 김정남의 신병을 너무 신중하게 처리하자 화가 난 일본 경시청이 니혼TV에 그의 구속 사실을 귀띔하고 법무성에 그를 밀입국 혐의로 기소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NTV 보도가 나간 지 20분 뒤에 지지(時事)통신과 교도(共同)통신도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체포된 사람이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임을 확인했으나 법무성의 요청에 따라 ‘김정일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김정남’ 또는 ‘북조선 김정일 총서기의 아들로 추측되는 김정남’이라는 표현으로 보도해서 일본 정부와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일본 언론들은 국가 이익과 북·일 관계를 고려해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일본과 중국의 막후 접촉은 잘 풀렸다. 중국이 김정남 일행을 받아들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 이에 따라 일본은 5월4일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전일본항공(ANA) 편으로 김정남 일행을 추방했다. 이들 일행이 ANA 항공기에 탑승하는 장면은 전세계 언론에 공개되었다. 김정남이 아버지 김정일과는 1년 시차를 두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은둔’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일본은 북한의 황태자 김정남 일행을 특별히 배려했다. 6명의 일본 관리를 포함한 김정남 일행은 베이징으로 날아가는 보잉 747기 2층을 독차지했다.

김정남의 방일 목적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김정남 사건을 신중하게 처리했다. 사흘 동안 그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가 마침 평양을 방문중이던 유럽연합(EU) 대표단이 평양을 떠난 뒤에 추방했다. 덕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체면을 덜 구겼다. 물론 북한 언론은 김정남 체포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김정남 일행은 5월4일 오후 1시11분경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중국과 북한 당국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경호를 받으며 공항 귀빈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은둔’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김정남의 방일 목적은 무엇인가? 그 열쇠는 일본 수사 당국이 쥐고 있다. 현재 일본 당국은 김정남 수사 결과를 한국측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김정남 사건에 대해서 진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건 직후 김정남의 일본 방문 목적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다. 그는 합동조사반 조사에서도 “아이에게 도쿄 디즈니랜드를 보여주기 위해 입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남 정도의 인물이 여행이나 다니려고 일본에 밀입국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는 분명히 모종의 임무를 띠고 일본을 방문했던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묵인 아래 후계자 수업을 하기 위해 비밀 해외여행을 했을 것이다”, “김정남이 북한의 IT산업 책임자인 만큼 일본의 고급 컴퓨터 부품을 구입하고 IT 시장을 둘러보며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입국했을 것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일 수교 협상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기 위한 방문이었다”는 등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북·일수교 역할론’은 김정남이 체포된 5월 초순이 일본의 정권 교체기였기 때문에 나온 추측이다.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지난해 모리 총리는 북한과 수교 협상을 시도한 적이 있다(신동아 2001년 5월호 참조).

단순한 컴퓨터 칩이 아니라, 미사일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밀입국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은 그의 밀입국이 일정한 임무를 띤 것이었다는 점이다. 북한 권력 구조상 김정일의 지시 없이는 함부로 해외여행을 할 수도 없거니와 업무에 필요한 여행이 아니라면 그토록 많은 외화를 소지하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추측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기자는 일본 공안 관계자로부터 결정적인 정보를 얻었다. 김정남 일행을 66시간 동안 조사한 일본 공안조사청은 김정남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 대금을 수금하기 위해서 도쿄에 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 북한은 최근 SAM16A(견착형 대공미사일) 300기를 이라크에 수출했다. 김정남은 이 돈을 챙기려 했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SAM16A 대금을 스위스, 홍콩, 시드니, 도쿄 등 4곳의 비밀 은행 계좌에 분산 예치했다. 대금을 송금한 지역은 국제금융 중심지인 런던이다. 미사일 판매 대금과 같은 거금이 이동하면 국제 정보망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이라크는 서방 정보기관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판매 대금을 네 곳으로 나누어 송금했다. 런던을 최초 송금지로 택한 이유는 엄청난 규모의 국제자본이 이동하는 곳이라, 현금 이동을 감추기 쉽기 때문이다.

나리타공항에서 체포되기 전, 김정남의 여행 루트를 보면 이라크가 판매 대금을 분산 예치한 도시 네 곳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는 일본에 오기 전 호주 시드니에 가서 미사일 판매 대금 네 보따리 가운데 하나를 중국의 비밀계좌로 송금했다. 김정남이 미사일 판매대금을 세탁하는 장소는 중국이었다. 중국에서 세탁한 뒤, 이 돈을 평양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그는 3개 도시에 분산 예치된 미사일 대금을 모두 챙긴 뒤, 나머지 4분의 1을 걷으러 도쿄에 들어가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김정남 같은 북한의 최고 로열패밀리가 왜 직접 돈을 찾으러 위험한 해외여행을 했느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현금이야말로 김정일 정권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김정일이 북한의 핵심 세력인 군부를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외화를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에게 외화 수금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핵심 업무다. 더구나 최근 북한에서는 최고 기밀을 가진 권력 수뇌부의 서방 망명이 이어지고 있다. 황장엽씨와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가 대표적인 예다.

김정남 이전에 북한의 미사일 수출업무는 1997년 8월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전 대사가 맡고 있었다. 당시 이집트는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수출하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 노릇을 했다. 북한은 1981년 이집트와 ‘미사일 개발 협정’을 체결하고, 이집트를 통해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 기술을 도입, 1985년에 사정거리 340km의 북한산 스커드B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이에 따라 스커드B 미사일을 양산하기 시작해 1987년 이란과 시리아에 160기를 수출해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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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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