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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점검·김대중정권 國富유출시비

해외자본 ‘한국점령’명세서

생리대회사에서 첨단빌딩까지

  • 박태견 < 경제 애널리스트 >

해외자본 ‘한국점령’명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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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부문도 미국 클라크와 볼보가 삼성중공업의 굴삭기와 지게차 부문을 인수하면서 시장점유율을 40%대로 끌어올렸고, 미국 오티스는 LG산전의 엘리베이터 부문을 인수해 시장점유율을 50%대로 높였다. 석유화학 부문의 경우 국내 4대 정유사 중 현대정유, LG정유, S오일 등 3개사의 최대주주가 외국계로 바뀌었고, 폴리우레탄과 카본블랙 등 기초화학제품 분야도 외국계로 넘어갔다.

이 밖에 신문용지업계의 5대 업체 중 3개가 외자에 매각되고, 종묘(種苗)와 주류의 절반 이상이 넘어갔다. 또한 필름은 57.8%, 일회용 건전지는 98%, 살충제는 55%, 생리대와 종이기저귀는 75% 이상이 외국계로 넘어가는 등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외국계의 독점적 지배력이 구축됐다.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이런 외국계의 한국경제 지배력 강화가 ‘빛’과 ‘그늘’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빛’에 해당하는 외자유치의 긍정적 효과로는 구조조정의 기회 확대, 경영 투명성 증대, 재무건전성·현금흐름 중시 경향 확산, 선진 인사관행 도입, 선진 기술·노하우 습득을 꼽았다.

반면에 ‘그늘’에 해당하는 부정적 결과로는 주력사업 매각에 따른 성장기반 잠식, 급속한 미국식 경영 도입에 따른 혼선, 자금운용의 단기화, 구조조정 지원에 대한 어려움, 고용불안 증가, 조직 신뢰 붕괴, 핵심인력 유출, 세계전략에 대한 선진기업의 종속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외자유치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실력이 관건’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외자유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의식과 경제관행 전반의 선진화가 필수적이며, 기업은 경쟁력을 강화해 외자의 시장 잠식, 국내산업의 하청화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정부 의존을 지양하고 시장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외국자본의 진출은 그 동안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안주해온 낡은 기업관행을 타파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1년 3월 말 현재 국내 증시에 등록한 외국인 투자자 수는 1만2038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개인은 4610명에 불과한 반면, 기관투자가가 7428명이나 된다. 전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관투자가 대다수가 한국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높아진 글로벌 스탠더드의 중요성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투자기준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경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들 외국계의 출현은 실제로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 경영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데, 우선 사업구조에서는 종전의 외형적 팽창보다 수익성 위주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지배구조에서는 더 이상 황제경영이 용납되지 않는 대신 경영 투명성이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재무관리는 재무건전성과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었으며, 인사·조직 문화 역시 성과주의 및 능력주의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외환위기 후 정부가 추진해온 외자유치 정책의 대표적 순기능이다.

더욱이 아직까지 한국 등 아시아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중은 미국이나 유럽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낮아, 정부 주장대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스탠더드 수준의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외국인자본의 국내 투자환경을 더욱 개선해야 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영국의 IR(투자설명회) 전문기관인 톰슨 인베스터스 릴레이션스의 조사에 따르면, 99년 말 현재 전세계의 투자자금 시장 규모는 820조8700만 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기관투자 규모는 전체의 58%에 달하는데, 그중 아시아지역에 대한 투자규모는 기관투자 전체액의 7%에 불과하다. 반면에 런던, 뉴욕, 보스턴, 취리히 등 대부분 구미지역에 위치한 25개 대도시가 전체 기관투자액의 48%를 흡수하고 있었으며, 북미지역이 31%, 유럽지역이 21%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한국 등 아시아 블록은 그리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자본의 유입을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일이다. 외국자본의 국내유입이 급증함으로써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는 경제 헤게모니 문제이며, 이에 따른 과도한 국부유출도 우려된다.

헤게모니란 시소게임처럼 상대적인 것이다. 한쪽이 바짝 정신을 차리고 대응하면, 아무리 막강한 물리력을 가진 상대방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헤게모니를 쥐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쪽이 약점을 보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거친 야수가 먹이를 채듯,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마련이다.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진입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리가 목격하는 게 바로 그런 꼴이다.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포기(2000년 9월16일), 네이버스의 한보철강 인수포기(9월30일), AIG의 현대투신에 대한 정부의 1조원대 추가 지원요청 등 지난해 하반기에 잇따라 터진 미국계 외국자본의 ‘한국 흔들기(Korea Bashing)’는 국내 금융시장을 크게 요동치게 하며 한국의 생명줄인 대외신인도를 위협했다. 2000년 10월에 들어서는 그 강도가 더 세져, 단기성 자본이 주류를 이루는 홍콩계 투자가들을 중심으로 ‘Sell Korea(팔자! 코리아 주식)’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됐다. 홍콩의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 무렵 이 같은 홍콩 금융계 분위기에 기초해 “한국이 제2의 금융위기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센세이셔널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외환위기 도래 전인 지난 97년 가을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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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견 < 경제 애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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