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산케이(産經)의 돌격 vs 아사히(朝日)의 정론

  • 심규선 <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 ksshim@donga.com

    입력2005-04-12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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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교과서 문제, 북한 문제, 재일동포의 지방 참정권 문제, 國旗·國歌 문제, 자위대의 군대화 문제, 헌법개정 문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 일본 내의 가장 뜨거운 주제에 대해 산케이와 아사히는 항상 정반대의 논조를 내놓고 있다. 보통국가 지향이 일본의 국론이 되어 가는 지금, 아사히는 이러한 움직임에 우려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으나, 산케이는 당연하다는 논조다. 아사히를 맹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논조를 극명화하는 산케이. 그 내막을 살펴본다.
    한국 정부가 5월8일 일본측에 역사교과서의 재수정을 요구하자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9일자 신문에 일제히 사설을 게재했다. 그러나 각 신문사의 시각을 대변하는 사설은 완전히 양분됐다. 아사히(朝日)신문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지만, 산케이(産經)신문의 ‘주장’(사설에 해당)은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썼다.

    “…(한국 정부의) 지적은 ‘명백한 잘못’ ‘해석이 왜곡돼 있다’는 등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추상적인 비판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검토가 가능한 구체적인 지적이다. 이웃이 전문가를 모아 확실한 검토를 바탕으로 요청한 의견이다. 겸허하고 냉정하게 귀기울이고 싶다.…후소샤(扶桑社·‘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집필한 교과서를 출판한 출판사)를 비롯해 각 교과서 발행사도 이번 지적을 확실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아사히신문, ‘더 나은 교과서에 일조가 되도록’)

    “한국정부가 검정이 끝난 교과서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문제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롯해 각 각료들은 검정 후의 재수정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다시 한 번 표시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의 방침을 이어받아 우선은 냉정하게 대응한 것을 평가하고 싶다.…이번 한국의 요구는 모두 역사 인식을 둘러싼 주장이다. 비록 자세히 조사를 하더라도 그에 따른 정정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문부과학성에 일층 의연한 자세를 촉구하고 싶다.”(산케이신문, ‘의연하게 거부하는 자세를 관철하라’)

    아사히를 공격하는 산케이

    두 사설은 아사히신문과 산케이신문이 같은 사안에 대해 얼마나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사설은 교과서 문제와 관련한 두 신문의 상반된 사설과 기사 중에서도 일부분에 불과하다. 올 들어 교과서 문제가 한일 간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아사히신문이 먼저 의견을 제시하면 산케이신문이 곧바로 반박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산케이신문은 5월6일 ‘역사를 배운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부제는 ‘일본인으로서의 긍지를-요구되는 국가의식의 함양’이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 측이 집필하고 산케이신문의 계열사인 후소샤가 펴낸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3월 말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것을 계기로 쓴 사설이었다.

    “근년, 국제화의 진전에 따라 일본의 전통이나 문화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풍조가 일부에서 강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5월1일자 사설 ‘역사를 배운다’에서 ‘이미 국가가 전부가 아니다. 국가의 틀을 넘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나라를 위하여라는 생각이 당연시되던 반세기 전과 비교해볼 때 ‘인간으로서’의 부분이 확대되고 있다’고 쓰고 있다. 확실히 지구온난화 등 국경을 넘어 인류가 서로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국가의식의 희박화나 지구시민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제화가 진행되는 시대야말로 건전한 국가의식은 더욱더 필요한 것이다.”

    이 사설은 명백히 아사히신문의 사설을 반박하기 위해 쓴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사설이 5월1일자였고, 산케이신문의 사설은 6일자였다. 아사히의 사설 제목이 ‘역사를 배운다’였는데 산케이의 사설도 ‘역사를 배운다’로 똑같았다. 사설은 보통 하루에 두 건을 싣는데 아사히 사설은 한 건으로 매우 긴 것이었고 산케이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203만 對 839만

    이뿐만 아니다. 아사히신문이 2월22일 ‘검정의 행방을 주시한다’는 사설에서 모임 측이 집필한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통과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자 산케이신문은 이튿날인 23일 즉각 ‘아사히 사설-검정에 압력을 가하려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3월6일에는 1면에 ‘아사히신문의 교과서보도’라는 장문의 기사로 아사히신문의 교과서 관련 보도 전체를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다.

    다른 신문의 사설이나 기사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 이런 식의 공방은 일본 언론계에서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아사히와 산케이가 정면대립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교과서 문제뿐만 아니다. 여러 가지 쟁점에서 두 신문은 상반된 의견을 제시할 때가 많다. 이 글에서는 아사히신문과 산케이신문이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글은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사설과 기사라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두 신문의 주장을 비교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대일본 제국’의 피해자인 한국으로서는 산케이신문의 보수적인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국내에 산케이신문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아사히신문은 산케이신문과 대립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아사히신문의 역사는 120년을 넘어섰다. 산케이신문은 1933년 창간된 ‘일본공업신문’이 모태다. 1월 현재 아사히의 공식 판매부수(ABC부수)는 839만 부로 203만 부인 산케이신문의 네 배가 넘는다. 역사와 부수가 전부는 아니지만, 아사히신문으로서는 산케이신문과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탐탁치 않은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산케이신문이 자신의 기사나 사설을 반박하더라도 이에 직접적인 재반론은 하지 않는다. 자체 판단에 따라 ‘마이 웨이’를 갈 뿐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신문이 대립하고 있는 사안을 살펴보자.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현안인 영주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문제를 둘러싸고도 두 신문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영주외국인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재일동포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 문제는 한국 관련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민단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전 총리 등도 일본을 방문하거나 일본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일본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했다.

    아사히의 주장은 이렇다.

    “국적이야 어떻든 납세 등의 의무를 지고 있고, 일본인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역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안의 조기 가결을 바란다. 영주외국인은 약 62만 명에 달한다. 90% 가까이가 한국·조선(북한) 출신자 및 그 자손들이다.…이에 대해 자민당 내에서는 ‘참정권을 얻으려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된다’는 목소리 외에, ‘지방선거권을 인정하면 나중에는 국정(국회의원 선거)에도 파급된다’ ‘주민의 4분의 1 가까이가 영주외국인인 지역도 있다’는 등 강한 반대론이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의) 근저에는 참정권과 국적은 하나이며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인정하면 국가의 일체감이 훼손될 수 있다는 뿌리깊은 위기감이 놓여 있다. 한국이나 조선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일본에 살게 된 역사적 경위나 국제적인 조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주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국제화와 어린이 감소경향에 따라 외국인이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참 모습과도 관련이 있다. 영주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인정하는 것은 지방자치 이념에도 맞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다.”(2000년 2월 사설 ‘영주외국인에게도 부여를, 지방선거권’에서)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절대 반대다.

    “국가와 국민주권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으로 논란을 불러온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문제에 드디어 해결의 길이 보이고 있다. 자민·공명·보수의 여 3당은 특별영주외국인이 일본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적특례법안의 요강을 마련해 이번 국회에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일본국적을 취득해서 합법적으로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앞으로도 일본에서 함께 살아갈 영주자들에게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일본국적이 없는 영주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원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에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국가의 방향타를 맡기는 참정권은 국정, 지방정치를 막론하고 그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국민고유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001년 4월 주장 ‘국적취득으로 결론을 내라’에서)

    산케이신문은 5월9일 1면 머리기사로 영주외국인이 신고만 하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의 전문(全文)을 보도하면서, 이 법이 통과되면 참정권 부여법안은 필요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참정권을 얻으려면 귀화해야 하며, 지금까지 심사제였던 귀화절차가 간단한 신고제로 바뀌므로 별도의 참정권 부여법안은 필요없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이 문제는 최근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자민당과 연립하고 있는 공명당은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에 가장 적극적이다. 연립정권을 발족할 때 자민당과 이 법안 제정에 합의했으므로 빨리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반대하는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워낙 많아 자민당 집행부는 머리를 싸매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자민당 내 반대 움직임을 매우 자세히 전하고 있다.

    김정남과 납북자 문제

    북한문제에 대해서도 산케이신문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추정되는 김정남(金正男)이라는 인물이 위조여권으로 불법 입국하려다 추방된 사건과 관련, 두 신문은 모두 사설(5월5일)을 게재했다. 두 신문은 불법여권으로 입국을 시도한 것은 북한의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건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적발한 지 사흘 만에 강제추방을 한 데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입국관리국이 불법입국을 시도한 남성을 경찰에 고발해서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든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해결하는 흥정재료로 썼어야 했다든가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납치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원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정부 조치에 납득하지 못할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성(김정남)의 신병을 계속 붙잡아두는 것이 과연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가. 오히려 예전처럼 국교정상화 교섭을 통해 끈기를 갖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불법 입국하려던 남성이 김정남씨라고 단정할 수 있을 때까지 조사를 하거나 형사고발을 하면 북한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일북 교섭은 단절될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판단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아사히신문 사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의 장남, 김정남씨로 보이는 남성 등 4명이 불법입국을 기도하다 추방됐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자식으로, 후계자로도 주목받는 인물이 위조여권을 사용하는 수법은 역시 국제상식에서 벗어난 ‘테러국가’의 체질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불법입국자의 처리는 일차적으로 법무성이 관할하지만 총리 관저와 외무성의 대응은 석연치 않다. 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 최장 60일간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과 사흘 만에 본인이 희망한 대로 중국으로 돌려보냈다.…말할 필요도 없이 북한과는 일본인 납치 의혹을 비롯해 많은 현안이 존재한다. 국교정상화 교섭도 지난해 10월 이후 중단된 채다. 이번 ‘사건’을 관계 타개의 카드로 쓰겠다는 정치적 판단은 할 수 없었나. 납치 피해자의 가족이 ‘절호의 재료를 납치 문제 해결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민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라고 분노한 것도 당연하다.”(산케이 주장, ‘테러국가 체질을 엿보게 하는 수법’에서)

    ‘김정남 사건’에 대한 의견차이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는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사히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고, 국교정상화를 통해 ‘불안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과정에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산케이는 “국교정상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양보’만이 능사는 아니다. 강경하게 대응할 때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이나 납치문제 대응방법, 남북간 화해 등 북한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두 신문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산케이신문은 북한에 가족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가족들의 대(對)정부활동이나 해외에서의 호소운동 등을 빠짐없이 보도하고 있다.

    “쇼와 천왕의 날을 제정하라”

    국기·국가법안에 대해서도 두 신문은 현격한 의견차이를 보였다. 국기·국가법안은 99년에 통과됐다. 아사히신문은 이 법안이 논의될 때부터 ‘법안이 통과된 뒤 강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이 법안이 성립되더라도 일선 학교에 국기 게양이나 국가 제창을 강요하지는 않겠다’는 자민당의 의견이 지켜지는지에 대한 감시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가 국기 게양이나 국가 제창 등을 강요하거나, 학생들이 이를 거부하는 사례를 자세히 보도했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반대로 이 법안을 지키지 않는 일선 학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과거와 관련된 문제로 대립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하나가 ‘쇼와(昭和)의 날’ 제정법안에 관한 것이다. 이는 ‘쇼와’ 연호(年號)를 사용했던 히로히토(裕人) 천황의 탄생일인 4월29일을 ‘쇼와의 날’로 정하자는 것이다. 현재 이날은 ‘미도리(녹색)의 날’로 국경일이다. 쇼와 천황이 생존했을 때는 물론 ‘천황탄생일’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국경일이었다. 그러나 1989년 히로히토가 사망하고 현 천황이 즉위함으로써 ‘천황탄생일’은 현 천황의 생일인 12월23일로 바뀌고, 쇼와 천황의 생일은 ‘미도리의 날’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난해 ‘미도리의 날’이라는 것이 애매하므로 분명히 쇼와 천황을 상기할 수 있도록 ‘쇼와의 날’로 이름을 바꾸자는 법안이 자민당 주도로 제출됐다.

    아사히신문은 “각자의 역사관이나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안이 무리하게 처리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제정된 ‘쇼와의 날’이 ‘국민 모두가 축하하고, 감사하고, 기념하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쇼와라는 시대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등에도 부(負)의 유산을 남겼다. 이것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열어가는 것은 얼마나 미묘하고 어려운 과제인가”(2000년 5월 사설 ‘다시 한 번 폐안을 요구한다’)라며 이 법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산케이신문은 “그럴 때마다 쇼와 천황을 중심으로 국민의 구심력이 작용해 위기를 모면했다. 전후 불에 탄 폐허에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흥을 이룬 것은 천황을 모시고 긴 역사를 걸어온 일본국민의 자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입법화 노력을 해서 반드시 ‘쇼와의 날’을 실현하고 싶다. ‘쇼와’가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2001년 4월 주장 ‘다시 한 번 쇼와의 날을 시도하자’)라고 촉구했다.

    비슷한 사안으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문제가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메이지(明治) 천황이 전몰자(戰歿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도쿄(東京) 쇼콘샤(招魂社)’가 전신이다. 1879년 야스쿠니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제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군인·군속 246만6000여 명의 위패가 놓여 있다.

    1978년 이곳에 도조 히테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合祀)되면서, 종전일(패전일)인 매년 8월15일이 되면 일본 총리나 각료의 참배 여부가 주목을 끌게 됐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에서는 총리나 각료가 이곳을 참배하는 것을 ‘과거에 대한 반성의 결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 총리 자격으로 ‘공식참배’했을 때, 한국과 중국 등은 맹렬히 반발했다. 그 후의 총리들은 공식참배를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유족회 등 전몰자 가족들과 우익세력들은 해마다 총리의 공식참배를 요청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최근 “현재의 일본은 전몰자의 희생 위에 성립한 것이다. 그들에 대한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이 문제가 또다시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결사반대한다. 종교와 정치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결국 “개인 자격으로 참배를 하되 방명록에는 ‘내각 총리대신’으로 쓰겠다”는 타협책을 내놓았다. 형식은 개인자격이지만 결국은 총리로서 공식참배를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4월26일 고이즈미 내각의 발족에 즈음한 사설(4월27일자)에서 이렇게 촉구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이번 국회에서 결론이 날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모리 정권에서 논의가 시작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 해석의 변경, 8월15일 야스쿠니신사 공식참배의 세 가지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들 모두가 하시모토 파와 연립한 공명당과 고이즈미 총리 사이에 의견차이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을 위무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외국을 배려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주장 ‘초심(初心)을 대담하게 관철하라’)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같은 날짜에 고이즈미 내각에 입각한 각료 17명 중 16명에게 일일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를 물어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겠다는 각료는 한 명도 없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가 공식참배를 한다고 했지만 각료들은 아직 그럴 마음이 없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또 5월12일자 ‘야스쿠니 참배-총리는 잘 생각해서 재고를’이라는 사설을 통해 “고이즈미씨는 일 개인이 아니라 내각을 대표하는 총리의 지위에 있다. 그 점을 깊이 자각해서 대국적인 판단을 내려줬으면 한다. 참배는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라고 촉구했다.

    아사히신문과 산케이신문이 앞으로 계속해서 대립할 것으로 보이는 사안 중의 하나가 자위대에게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할 것인지의 여부다. 이는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할 것인지와 현재의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키는 등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것은 자국이 직접적인 무력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이나 주변국이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위를 위해 교전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는 국제법상 모든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일단 이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만 헌법 9조 때문에 행사는 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을 통해 “만약 미국이 일본 공해상에서 공격을 받는다면 일본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산케이신문은 4월29일자에 ‘집단적 자위권-행사 용인에 정치적 결단을’이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고이즈미 총리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관하여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본의 안전보장 정책에서 최대의 결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 문제였다. 이제까지 자칫 터부시돼 온 테마에 과감히 파고든 총리의 자세를 지지하고 싶다. …이는 일본 안보체제의 공동(空洞)부분을 적확하게 인식한 발언으로서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은 정치 주도의 정권운영을 추진하겠다는 결의 표명으로서 받아들이고 싶다”고 지적했다.

    산케이의 이러한 사설은 전날인 28일자 1면 머리기사로 고이즈미 총리의 첫 기자회견 내용 중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언급을 ‘집단적 자위권행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한 데 이은 것이었다. 아사히신문이 같은 날 1면 4단 기사로 ‘헌법 개정 총리직선제에 한정-9조 개정은 곤란’이라고 보도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한마디로 산케이신문은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의욕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했고, 아사히신문은 총리가 헌법개정에 신중함을 보였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사실상 헌법 개정문제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데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개정을 둘러싼 논란

    헌법개정에 대한 인식차이는 일본의 제헌절인 5월3일 ‘헌법기념일’ 사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사히신문의 사설은 이렇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만을 보면 ‘한 개 조항도 안 된다’고 강조한 호헌론은 약화됐지만 국민의 헌법의식은 놀랄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헌법 9조에 관해서는 74%가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했고, 국제협력에 관해서는 66%가 ‘군사 이외의 협력을 철저히 하면 된다’고 응답했다. 고이즈미 총리도 인정했듯이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개헌론 등은 여론의 현실적 기반을 결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사설은 헌법 개정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의 사설은 전혀 다르다. 제목은 ‘「개선」은 시대의 요청-무르익어가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였다. 사설은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개헌발언이 국회에서 어떻게 취급될 것인지를 차분히 지켜보고 싶다. 각당 당수들을 보더라도 여당 보수당의 오기 지카게(扇千景)씨, 야당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씨,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씨 등 소위 개헌파가 즐비하다. 국민의 대다수도 개헌에 유연한 의식을 보이고 있다. ‘정치’가 헌법으로부터 도피만 한다면 태만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세기의 국가상을 추구해 가다 보면 아무래도 헌법의 결함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헌법 개정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일본인으로서의 공동체의식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라는 무거운 명제에 매달리는 것과 동의어인 것이다”로 이어진다.

    아사히와 산케이의 주장을 들어보면,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각 신문의 주장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그 무엇’이 있다. 그 출발점은 모두 일본의 태평양전쟁 참여와 패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사히신문은 전쟁 참여와 패전에 대한 반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교과서나 영주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 야스쿠니신사 참배, 북한에 관련된 문제 등에 이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아사히신문이 전쟁으로 치달았던 군부를 제지하지 못하고 한때 그 선전에 앞장섰다는 반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의 생각은 다르다. 전쟁에 참여한 것을 찬양하지는 않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것에 발목을 잡힐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패전국 일본이 아니라 일본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과도하게 강조해온 ‘열등의식’과 ‘가해자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사히신문이 이해를 보이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주변국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으며 일본의 자체 판단에 따르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의 주장은 과거의 ‘부(負)의 유산’을 청산하고 ‘보통국가’를 만들자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아니 그런 움직임에 힘을 주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보통국가론’은 과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설계가 지장을 받지 않는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이를 ‘전후(戰後) 총결산’이라고 불렀다. 요즘 분위기는 ‘제2의 전후 총결산’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주창하는 ‘개혁’의 상당 부분이 아사히신문보다는 산케이신문의 주장과 부합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국가’의 최종적인 지향점은 무엇일까. 결국은 군대도 보유하고 자위권도 확보하는 국가를 상정하고 있다. 그것이 최종 목표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않고는 보통국가가 됐다고 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헌법 개정 문제는 앞으로 일본 국내의 최대이자 최후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회는 지난해 중·참 양원에 ‘헌법 조사회’를 설치했다. 5년간 시한부 활동을 한 뒤 헌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예정이다. ‘조사’라는 점잖은 표현은 개정 반대파를 의식한 것이지만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 헌법 조사회가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을 낼 것이 거의 틀림없다.

    경제대국에서 정치대국으로

    헌법을 고친다면 9조 개정이 핵심이다. 헌법 9조는 ‘전쟁의 포기, 군비 및 교전권의 부인’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본 헌법의 가장 핵심적인 조항으로 이 조항 때문에 일본 헌법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조항을 고쳐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고 교전권과 집단적 자위권도 확보하자는 것이 개헌론자의 주장이다. 물론 고치기 어려운 헌법을 고치는 김에 9조뿐만 아니라 사회변화에 맞춰 지방분권이나 환경권, 사생활보호와 알 권리 등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9조가 개정되면 일본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일본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일본은 요즘 ‘경제대국’을 넘어 ‘정치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작은 옷에 큰 몸집을 억지로 맞춰 왔는데 이제는 몸집에 맞는 옷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정치대국을 지향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정치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명백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적어도 한국 정부의 주장이다.

    일본이 ‘보통국가’이자 ‘정치대국’이 되었을 때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사히신문은 그 과정에 ‘우려’의 눈길을 주고 있고, 산케이신문은 ‘당위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아사히와 산케이의 의견대립은 더욱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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