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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일본 우익의 선봉 산케이신문

산케이(産經)의 돌격 vs 아사히(朝日)의 정론

  • 심규선 <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 ksshim@donga.com

산케이(産經)의 돌격 vs 아사히(朝日)의 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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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의 주장은 이렇다.

“국적이야 어떻든 납세 등의 의무를 지고 있고, 일본인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역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안의 조기 가결을 바란다. 영주외국인은 약 62만 명에 달한다. 90% 가까이가 한국·조선(북한) 출신자 및 그 자손들이다.…이에 대해 자민당 내에서는 ‘참정권을 얻으려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된다’는 목소리 외에, ‘지방선거권을 인정하면 나중에는 국정(국회의원 선거)에도 파급된다’ ‘주민의 4분의 1 가까이가 영주외국인인 지역도 있다’는 등 강한 반대론이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의) 근저에는 참정권과 국적은 하나이며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인정하면 국가의 일체감이 훼손될 수 있다는 뿌리깊은 위기감이 놓여 있다. 한국이나 조선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일본에 살게 된 역사적 경위나 국제적인 조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주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국제화와 어린이 감소경향에 따라 외국인이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참 모습과도 관련이 있다. 영주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인정하는 것은 지방자치 이념에도 맞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다.”(2000년 2월 사설 ‘영주외국인에게도 부여를, 지방선거권’에서)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절대 반대다.

“국가와 국민주권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으로 논란을 불러온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문제에 드디어 해결의 길이 보이고 있다. 자민·공명·보수의 여 3당은 특별영주외국인이 일본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적특례법안의 요강을 마련해 이번 국회에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일본국적을 취득해서 합법적으로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앞으로도 일본에서 함께 살아갈 영주자들에게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일본국적이 없는 영주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원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에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국가의 방향타를 맡기는 참정권은 국정, 지방정치를 막론하고 그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국민고유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001년 4월 주장 ‘국적취득으로 결론을 내라’에서)

산케이신문은 5월9일 1면 머리기사로 영주외국인이 신고만 하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의 전문(全文)을 보도하면서, 이 법이 통과되면 참정권 부여법안은 필요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참정권을 얻으려면 귀화해야 하며, 지금까지 심사제였던 귀화절차가 간단한 신고제로 바뀌므로 별도의 참정권 부여법안은 필요없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이 문제는 최근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자민당과 연립하고 있는 공명당은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에 가장 적극적이다. 연립정권을 발족할 때 자민당과 이 법안 제정에 합의했으므로 빨리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반대하는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워낙 많아 자민당 집행부는 머리를 싸매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자민당 내 반대 움직임을 매우 자세히 전하고 있다.

김정남과 납북자 문제

북한문제에 대해서도 산케이신문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추정되는 김정남(金正男)이라는 인물이 위조여권으로 불법 입국하려다 추방된 사건과 관련, 두 신문은 모두 사설(5월5일)을 게재했다. 두 신문은 불법여권으로 입국을 시도한 것은 북한의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건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적발한 지 사흘 만에 강제추방을 한 데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입국관리국이 불법입국을 시도한 남성을 경찰에 고발해서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든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해결하는 흥정재료로 썼어야 했다든가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납치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원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정부 조치에 납득하지 못할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성(김정남)의 신병을 계속 붙잡아두는 것이 과연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가. 오히려 예전처럼 국교정상화 교섭을 통해 끈기를 갖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불법 입국하려던 남성이 김정남씨라고 단정할 수 있을 때까지 조사를 하거나 형사고발을 하면 북한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일북 교섭은 단절될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판단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아사히신문 사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의 장남, 김정남씨로 보이는 남성 등 4명이 불법입국을 기도하다 추방됐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자식으로, 후계자로도 주목받는 인물이 위조여권을 사용하는 수법은 역시 국제상식에서 벗어난 ‘테러국가’의 체질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불법입국자의 처리는 일차적으로 법무성이 관할하지만 총리 관저와 외무성의 대응은 석연치 않다. 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 최장 60일간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과 사흘 만에 본인이 희망한 대로 중국으로 돌려보냈다.…말할 필요도 없이 북한과는 일본인 납치 의혹을 비롯해 많은 현안이 존재한다. 국교정상화 교섭도 지난해 10월 이후 중단된 채다. 이번 ‘사건’을 관계 타개의 카드로 쓰겠다는 정치적 판단은 할 수 없었나. 납치 피해자의 가족이 ‘절호의 재료를 납치 문제 해결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민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라고 분노한 것도 당연하다.”(산케이 주장, ‘테러국가 체질을 엿보게 하는 수법’에서)

‘김정남 사건’에 대한 의견차이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는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사히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고, 국교정상화를 통해 ‘불안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과정에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산케이는 “국교정상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양보’만이 능사는 아니다. 강경하게 대응할 때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이나 납치문제 대응방법, 남북간 화해 등 북한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두 신문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산케이신문은 북한에 가족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가족들의 대(對)정부활동이나 해외에서의 호소운동 등을 빠짐없이 보도하고 있다.

“쇼와 천왕의 날을 제정하라”

국기·국가법안에 대해서도 두 신문은 현격한 의견차이를 보였다. 국기·국가법안은 99년에 통과됐다. 아사히신문은 이 법안이 논의될 때부터 ‘법안이 통과된 뒤 강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이 법안이 성립되더라도 일선 학교에 국기 게양이나 국가 제창을 강요하지는 않겠다’는 자민당의 의견이 지켜지는지에 대한 감시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가 국기 게양이나 국가 제창 등을 강요하거나, 학생들이 이를 거부하는 사례를 자세히 보도했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반대로 이 법안을 지키지 않는 일선 학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과거와 관련된 문제로 대립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하나가 ‘쇼와(昭和)의 날’ 제정법안에 관한 것이다. 이는 ‘쇼와’ 연호(年號)를 사용했던 히로히토(裕人) 천황의 탄생일인 4월29일을 ‘쇼와의 날’로 정하자는 것이다. 현재 이날은 ‘미도리(녹색)의 날’로 국경일이다. 쇼와 천황이 생존했을 때는 물론 ‘천황탄생일’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국경일이었다. 그러나 1989년 히로히토가 사망하고 현 천황이 즉위함으로써 ‘천황탄생일’은 현 천황의 생일인 12월23일로 바뀌고, 쇼와 천황의 생일은 ‘미도리의 날’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난해 ‘미도리의 날’이라는 것이 애매하므로 분명히 쇼와 천황을 상기할 수 있도록 ‘쇼와의 날’로 이름을 바꾸자는 법안이 자민당 주도로 제출됐다.

아사히신문은 “각자의 역사관이나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안이 무리하게 처리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제정된 ‘쇼와의 날’이 ‘국민 모두가 축하하고, 감사하고, 기념하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쇼와라는 시대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등에도 부(負)의 유산을 남겼다. 이것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열어가는 것은 얼마나 미묘하고 어려운 과제인가”(2000년 5월 사설 ‘다시 한 번 폐안을 요구한다’)라며 이 법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산케이신문은 “그럴 때마다 쇼와 천황을 중심으로 국민의 구심력이 작용해 위기를 모면했다. 전후 불에 탄 폐허에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흥을 이룬 것은 천황을 모시고 긴 역사를 걸어온 일본국민의 자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입법화 노력을 해서 반드시 ‘쇼와의 날’을 실현하고 싶다. ‘쇼와’가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2001년 4월 주장 ‘다시 한 번 쇼와의 날을 시도하자’)라고 촉구했다.

비슷한 사안으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문제가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메이지(明治) 천황이 전몰자(戰歿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도쿄(東京) 쇼콘샤(招魂社)’가 전신이다. 1879년 야스쿠니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제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군인·군속 246만6000여 명의 위패가 놓여 있다.

1978년 이곳에 도조 히테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合祀)되면서, 종전일(패전일)인 매년 8월15일이 되면 일본 총리나 각료의 참배 여부가 주목을 끌게 됐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에서는 총리나 각료가 이곳을 참배하는 것을 ‘과거에 대한 반성의 결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 총리 자격으로 ‘공식참배’했을 때, 한국과 중국 등은 맹렬히 반발했다. 그 후의 총리들은 공식참배를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유족회 등 전몰자 가족들과 우익세력들은 해마다 총리의 공식참배를 요청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최근 “현재의 일본은 전몰자의 희생 위에 성립한 것이다. 그들에 대한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이 문제가 또다시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결사반대한다. 종교와 정치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결국 “개인 자격으로 참배를 하되 방명록에는 ‘내각 총리대신’으로 쓰겠다”는 타협책을 내놓았다. 형식은 개인자격이지만 결국은 총리로서 공식참배를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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