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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계종은 중풍에 걸렸다”

팔만대장경 한글로 완역한 월운(月雲) 스님

  • 소종섭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sjm@donga.com

“조계종은 중풍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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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전은 부처님 말씀이고 사상을 담은 것입니다. 부처님 사상의 근본은 절대적인 휴머니즘이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엑셀러레이터나 브레이크를 잘못 밟으면 죽습니다. 가속과 정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게 중도이고 불교입니다. 이런 철학이 뿌리내렸으면 세상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불교가 한때 제 기능을 잃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불교는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에 서도록 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교 가운데 인과응보의 법칙을 가르치는 것은 불교가 유일합니다. 불교는 금생(今生)에 닦은 것을 내생(來生)에 다시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불교 교리를 따르면, 국민들은 자기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리에, 어머니는 어머니 자리에 서게 해주고, 나를 내 자리에 서게 해주는 것이 불교입니다. 기본설계를 모르면 단청을 새로 하고 내부를 고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어떤 일에 종사한다면, 결코 잘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나와 가족, 나와 삶의 관계에서 나를 나답게 하는 법을 터득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불교 경전이 널리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대장경에 들어 있는 경전 가운데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어느 약이 가장 중요합니까?’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결국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이 중요한 약이지요. 경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과연 그렇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경전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주의 진리를 꿰뚫어 설파한 경전의 경우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독송하면, 책장이 공중에서 술술 넘어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뭐가 생긴다고 해야만 좋아하게 됩니다. 예컨대 ‘경전을 머리맡에 놓고 자면 꿈자리가 편해진다’거나 ‘재물을 많이 얻을 수 있다’거나 하는 얘기죠. 어린애다운 경전, 어른다운 경전 등 경전마다 다 특징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경은 인생문제의 종합백화점입니다. 경전은 ‘무슨 물건이 좋으냐?’고 묻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맞는 것이 다 있으니 일단 와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한국불교는 참선이나 기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학(經學)을 중시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요.

“그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교리 구성상으로도 참선이 경보다 위입니다. 그래서 사교입선(捨敎立禪·교학을 버리고 선으로 들어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교학을 보고 내용을 파악한 뒤에는 이론적인 교학에 마냥 머물러 있지 말고 그것을 떠나 실천 수행인 선(禪)의 길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무조건 교학을 멀리하라’는 얘기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어요. 교학을 무시한 채 참선에만 매달려 세월을 낚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는 경향이 있어 걱정입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린다는 말이지, 가져보지도 않은 것을 버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교학을 공부해서 이론으로서의 불교, 학문으로서의 불교를 이해한 사람에게 과감히 길을 떠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듯 교학을 배운 이가 참선을 수행하고, 그렇게 해서 깨친 이가 다시 중생 속으로 들어가 이미 얻은 교리와 수행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려는 것이 불교 전체의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선과 교는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안과 밖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요즘은 선을 정신수련의 한 방법으로 보는 사람이 많고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높습니다. 특히 한국의 선법(禪法)에 대해서 관심이 대단합니다. 이처럼 선의 붐이 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이럴 때 교학의 튼튼한 토대 위에 선을 하는 분들이 수행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아직 기초를 쌓지 못한 분들은 선학적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틈나는 대로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의 선이 세계적인 권위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한글대장경 완간은 교학계와 선학계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한글대장경도 완역됐으니 스님이라면 어떤 경전이든 60종은 읽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좋은 약은 쓰다고 했습니다. 힘이 들어도 경전을 열심히 읽다 보면 항체가 생기고 인내심도 커집니다. 경전을 열심히 파고들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도 들립니다. 경전을 제대로 읽지 않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른다면, 일상을 제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경전을 안 읽는다면 자의적인 해석에 의지하게 되고 불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스님들은 교단의 장래를 위해 비전을 갖고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전파하는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스님이라면 자기수행과 대인포교를 겸해야 하는데 경전을 읽음으로써 그 방법을 알게 되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신도나 일반 국민들도 불경을 읽고 그 속에서 힘을 얻어야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완간된 한글대장경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시대변화에 뒤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스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실제로 강원교육 같은 경우 보완할 점이 많지만 오랜 전통 때문에 쉽게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인도의 경우 쇠고기를 먹어도 되는데 오랜 전통 때문에 안 먹는 것으로 굳어졌잖아요. 그 사회에서 편하지 않기 때문에 못 먹는 겁니다. 승려들의 전문교육기관 역시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맞추어 교육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영원한 진리를 현대 감각으로 포장만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한문경전을 중간에 번역하는 과정도 없이 바로 현대식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한문경전을 교재로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죠. 초보자들에게는 번역된 경전으로 먼저 이론을 알려주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문경전으로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각자의 실력에 맞게 교육과정을 세분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종단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조계종단의 3대 사업은 포교 역경 도제양성입니다. 이 가운데 역경이 바탕이 돼야 도제양성이나 포교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세 개의 축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야 합니다. 포교나 도제양성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역경은 이제 걸음마 단계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불교계가 싸움만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역경사업을 마무리한 뒤 ‘싸움질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런 것을 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글대장경 완간을 계기로 포교와 도제양성이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조계종은 표바람에 휘말렸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무조건 잘되겠다고 하면 근거 없는 낙관론이고, 안 될 것이라고 하면 욕을 먹겠지요. 부처님은 각자가 자기 자신의 창조주라 했습니다. 자기 하기에 달렸다는 뜻이지요. 지금 종단은 군주시대의 체질에 익숙해서 신·구세대의 지식을 골고루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희망은 계율정신이 많이 강화됐다는 점입니다. 종단이 전에 비해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신진 승려들이 지식을 쌓고 사회봉사를 열심히 해서 균형을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도 밝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분규가 일어나 종단이 흔들린다면 한국불교의 장래는 어둡고 막막할 따름입니다. 결국 선택이 좌우하는 거죠. 딱히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는 정답은 없는 셈입니다.”

월운 스님은 한국불교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출가했다는 생각을 잃어버린 데서 한국불교의 문제가 비롯됐다” “현재 조계종단은 중풍에 걸렸다” “표바람에 휘말렸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한 “종교는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번 종단의 어느 지도자가 특정 정치인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등 정치적인 행위를 했을 때 세간의 비판 여론을 따갑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적인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불교적인 삶은 한마디로 불교사상을 골격으로 한 삶입니다. 여기에는 서구 사람들이 말하는 청교도적 자세, 동양에서 말하는 군자적 자세도 다 포함돼 있습니다. 불교용어로 하자면 보살도(菩薩道)지요. 보살은 양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거의 같은 수준이면서도 중생과 별 차이가 없는 게 보살입니다. 보살을 상징하는 것은 자비와 지혜입니다.

불교적인 삶이란 전진이나 후퇴를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러면서 전진과 후퇴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추진력과 목표의식 속에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을 하나씩 가꿔 나가는 삶입니다. 물론 첫째는 자신의 물욕을 제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겠지요.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살도 속에 파묻어 버리는 공부부터 시작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완성을 봐야 합니다.”

스님의 설명은 ‘불교의 본질’로 이어졌다.

“불교의 본질은 우리가 말하는 신앙이니 영험이니 하는 개념과 달리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믿는 마음이 바르게 서면 영험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불교신앙의 본질적인 영험은 자신이 ‘참 자기(眞如)’의 변화체임을 믿고, 그 믿음으로써 삼보(三寶·佛法僧)에 간절히 귀의하여 참 자기로 복귀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잃었던 참 자기로 복귀했을 때 너와 나의 참 자기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고, 너와 나의 차이를 보지 않을 때 남의 괴로움과 나의 즐거움을 둘로 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는 누구입니까.

“부처를 하늘이나 산 또는 곰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완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결함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개념인 셈이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일신론자의 신 개념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 신은 ‘나는 빛이요, 생명’이라고 했지만, 부처는 ‘네 생명은 네가 갖고 있지, 내가 갖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습니다. 단지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건네주는 나룻배 노릇을 할 뿐이지, 정작 길을 찾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거죠. 그게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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