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치매는 크게 노화로 인해 서서히 뇌가 위축돼 발생하는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와 뇌혈관 경색이나 출혈로 신경세포가 괴사돼 갑자기 발병하는 뇌혈관성 치매로 구분된다. 그 외에 2차성 치매라 하여 뇌종양이나 알코올 중독, 파킨슨씨 병 등으로 치매가 동반하기도 한다.
서양의학에서는 임상적인 측면에서 치료 가능한 치매(treatable dementia)와 치료가 곤란한 치매(irreversible dementia)로 구분하기도 한다. 치료 가능한 치매는 전체 치매 환자의 15∼20%에 불과하며 대부분 중풍과 같은 뇌혈관 계통의 이상으로 인해 발병하는 뇌혈관성 치매가 많다. 이때는 뇌에 이상을 일으킨 원인을 치료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치료가 곤란한 치매. 국내 전체 환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이 이에 해당한다. 알츠하이머병, 즉 노인성 치매는 그 이름처럼 연령이 증가하면서 발병률도 현저하게 증가한다. 65세 이상의 인구군에서는 치매 이환율이 5∼15%에 이를 정도. 또 남성(25.5%)보다 여성(31.9%)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보고가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외모나 외관은 멀쩡한데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는 크게 인지기능 장애 증상과 비인지기능 장애 증상 두 가지를 보인다.
먼저 인지기능 장애 증상으로는 초기에 단기 기억력 감퇴가 생긴다. 지갑이나 자동차 키 같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가스불 잠그는 일을 잊어버리곤 한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장기 기억력 감퇴도 동반해 가족의 이름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언어에도 장애가 찾아온다. 처음에는 적절한 단어를 구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나중에는 물건 이름을 대지 못하고, 언어 이해력이 떨어지면서 실어증이 생기기도 한다. 또 익숙한 거리에서 길을 잃거나 심하게는 집 안에서 방이나 화장실 등을 찾지 못하는 공간력 장애, 옷을 입지 못하는 등의 실행능력 장애, 필요없는 물건을 사거나 사치스러운 물건을 구입해 남에게 주는 등 판단력 장애도 올 수 있다.
비인지기능 장애로는 대표적으로 우울증과 행동장애를 꼽을 수 있다. 조맹제 교수는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약 30%에 이르고, 행동장애도 50% 이상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비협조적 행동이나 반사회적 행동, 욕설, 부적절한 성행위 등 행동장애 증상들은 환자 간호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이 때문에 치매 환자들은 병원이나 수용기관인 요양소 등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증상들을 두고 예전에는 ‘노망(老妄)’이라고 하여 환자 스스로도 부끄러워하고 심지어 보호자조차 환자를 외부로부터 감추려 했다. 그러나 노인성 치매는 만성적으로 진행하는 질병의 개념으로 인식돼야 하며 적절한 치료가 요구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치매환자 심리치료가 중요
질병 개념으로 인식되는 노인성 치매는 왜 생기는 것일까. 조맹제 교수는 노인성 치매 원인과 관련해 그간 알루미늄 중독설, 면역기능 장애설, 유전학적 가설, 신경전달물질 장애설 등이 제시돼 왔는데 그중 유전학적 가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밝힌다. 즉 뇌 신경세포의 특정 유전자 이상이 발병에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유전학적 가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440~443 페이지 서유헌 교수의 기고문 참조).
그런데 이런 가설들에 입각해 그간 여러 가지 치매 치료제가 개발돼 왔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게 조교수의 설명.
“단적으로 말하면 서양의학계에서 현재까지 치매를 완치하거나 병의 진행을 정지시키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현재 시중에 항치매제로 아리셉트, 에셀론 등 3∼4가지 약제가 있으나 치매 치료제라기보다는 일정기간 치매의 진행을 완화해주는 정도의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 약도 치매 초기에나 유효하지 중기로 넘어가면 잘 듣지 않는다.”
다만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동반되는 비인지기능 장애(우울증, 불안, 망상, 폭언, 환각, 환청 등)는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약물로 조절이 가능하다고 한다. 조교수는 이와 함께 심리적·환경적 치료도 비인지기능 장애를 겪는 치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결함을 부인하는 환자에게는 억지로 그 결함에 직면하지 않도록 배려하거나, 환자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환자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사랑으로 대해주는 등 심리적 치료가 필요하며 매일 규칙적으로 TV나 신문을 보게 해 현실감을 갖도록 하고, 일상적인 생활 환경을 가능한 한 단순화해 주는 등 환경적 치료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치매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경희대병원 황의완 교수(신경정신과)도 같은 견해다.
“노인성 치매든 뇌혈관성 치매든 가족들이 환자를 간호하면서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일단 환자는 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므로 실수를 많이 하게 돼 있다. 이때 환자의 실수를 말로 고치려 하지 말고 애정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손을 꽉 잡아주거나 안아준다든지, 따뜻한 물 한 컵과 과일 한 조각을 줄 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치매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또 환자가 비록 정상적인 언행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한다.
치매 환자는 장소나 사람, 환경이 바뀌면 몹시 불안해져서 일시적으로 나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가급적 치매환자를 둔 가족은 이사를 가지 않는 게 좋고, 환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7년째 치매 환자인 아내를 돌보는 유모씨 역시 경험상 환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라고 밝힌다.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하고 모든 실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려 한 덕분인지, 아내가 큰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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