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 4개국이 만든 최첨단 전투기 유러파이터 타이푼은, 한국 공군이 추진하는 FX(차기 전투기) 사업에 도전한 4대 기종 중의 하나다. 지난 4월21일부터 9일간 기자는 스페인·독일·영국의 유러파이터 타이푼 조립공장과 부품공장을 방문하면서 유러파이터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기사는 FX 기종에 관한 기자의 세 번째 시리즈에 해당한다. 지난 해 가을 기자는 라팔 전투기를 제작하는 프랑스의 다쏘항공을 방문하고 그에 관한 기사를 신동아 2000년 11월호에 게재했다. 지난 겨울에는 F-15K를 들고 FX 사업에 도전한 미국의 보잉사를 방문 취재해, 그에 관한 기사를 2001년 1월호에 실은 바 있다.)
유러파이터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비하라’는 격언을 실천하는 유럽인의 상징물이라는 사실은 이 전투기가 냉전시 소련이 이끈 바르샤바조약기구(WTO·1991년 해체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산하 기관인 ‘넷마(NETMA)’의 통제하에 개발되고 배치된다는 데서 간접 확인된다. 넷마는 ‘나토 유러파이터 토네이도 전투기 운영위원회’를 뜻하는 영문 NATO Eurofighter Tornado Management Agency의 첫 글자를 딴 축약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러파이터는 소련이 개발한 걸작 수호이-27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소련이 수호이-27 양산에 들어간 것은 1986년이었다. 그후 소련은 단좌형인 수호이-27을 개량해 복좌형인 수호이-27SB를 만들었다. 이어 대형 항공모함에서 뜨고 내릴 수 있는 ‘함재기(해군기)’ 수호이-33을 개발했다. 수호이-33은 날개를 수직으로 꺾어 올리는 것이 특징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항모 갑판에 내린 수호이-33은 공간을 덜 차지하게 되었다. 이어 러시아는 미국의 F-15E처럼 제공은 물론이고 전폭 기능도 할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35를 개발했다. 미국의 F-15E는 전부 복좌나, 수호이-35는 단좌가 기본이다(복좌형은 수호이-35SB). 러시아는 이러한 수호이-35를 들고 한국 공군의 FX 사업에 도전한 것이다.
NATO에는 유럽 국가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도 참여한다. 처음 NATO군은 미군 대장 지휘하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NATO군 사령부가 벨기에에 본부를 둔 ‘유럽 동맹군 사령부’와 미국 버지니아주에 본부를 둔 ‘대서양 동맹군 사령부’로 나뉘면서, 벨기에에 본부를 둔 유럽 동맹군 사령부가 일차적으로 유럽 방위를 책임지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인에 의한 유럽 방위를 추구하는 유럽인의 자세를 보여준다.
NATO의 주력기
소련이 수호이-27을 내놓았을 때, 유럽인들은 “제때에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또다시 유럽 방어를 미국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래서 ‘유럽 3강’이라는 영·독·불과 이탈리아·스페인 5개국이 모여 수호이-27을 능가하는 제공기 개발을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이 유러파이터 타이푼이다. 유러파이터 개발에 참여한 5개국 중에서 프랑스는 NATO 회원국이 아니다. 1949년 4월 NATO가 출범할 당시 프랑스는 회원국이었으나, 드골 대통령 시절 NATO가 미국과 영국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반발해 탈퇴했다.
이러한 프랑스가 수호이-27을 능가하는 제공기 개발에 참여했다는 것은, NATO 회원국 여부보다는 유럽인에 의한 유럽 방어가 그만큼 더 중요했다는 뜻이 된다. 1999년 코소보 전쟁은 코소보를 침략한 유고군을 NATO군이 공동으로 쳐부순 전쟁이었다. 프랑스는 이 전쟁에 참여해 NATO 국가인 영국보다 더 많은 공군기를 출격시켰다.
유러파이터 이전에도 유럽 국가들은, 공동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해온 적이 있었다. 1965년,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앙숙으로 알려진 영국과 프랑스는 세페캣(Sepecat)이라는 컨소시엄 회사를 설립해 고등훈련기 겸 경(輕)공격기인 재규어(Jaguar·아메리카 표범) 개발에 들어가, 1972년부터 이를 양산했다.
유러파이터의 개발 주체인 ‘넷마(NETMA)’라는 이름 속에 토네이도를 뜻하는 T자가 들어 있는 것은, NATO 국가들이 유러파이터와 유사한 개념으로 토네이도 전투기를 공동 개발했다는 뜻이다. 두 개의 엔진을 가진 쌍발 전투기 토네이도(Tornado·돌풍) 개발은 1969년 영국과 서독·이탈리아 3개국이 서독 뮌헨에 파나비아(Panavia)라는 컨소시엄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파나비아사는 1974년부터 토네이도 양산에 들어갔는데, 제공기와 전폭기는 물론이고 전자전기·정찰기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토네이도 881대를 생산해 NATO 국가들에게 보급했다. 토네이도는 주로 3개국이 자급자족하는 형태로 생산했기 때문에 전체 생산량 중에서 다른 나라에 수출된 비율은 12%(120대)에 불과했다.
토네이도가 성공을 거두자 프랑스가 자극을 받아, 1975년부터 ‘미라지(Mirage·신기루)-2000’으로 명명된 새로운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단발 엔진을 장착한 미라지-2000은 1982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프랑스는 미라지-2000을 포함한 미라지 시리즈를 이집트·인도·페루 등 제3세계에 집중적으로 수출했는데, 이렇게 해서 팔려나간 미라지 시리즈는 무려 1762대였다. 미라지-2000을 제외한 미라지 시리즈의 수출률은 무려 69%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비율은 1960년대 미국이 기록한 F-104의 수출률 89.7%(2162대) 다음으로 높은 것이었다. 미라지-2000도 47%(289대)의 수출률을 기록했다.
그러자 아주 가까운 동맹국에게만 첨단 전투기를 판매해오던 미국이 자기네 전투기 시장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해, 기타 동맹국에 대해서도 F-16과 FA-18전투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F-16전투기 1953대(수출률 47%), FA-18 전투기 439대(수출률 29.8%)를 수출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이 KFP(한국형 전투기 프로그램) 사업을 벌여 120대의 KF-16 전투기를 도입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NATO 국가들의 토네이도 개발이 프랑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프랑스의 미라지 수출이 미국을 자극해 한국이 KF-16을 도입하게 된 것은, 세계가 유기체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5개국은 유러파이터 개발에 머리를 맞댔으나 곧 이 모임의 리더격인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심각한 의견 대립이 일어났다. 영국은 “수호이-27을 막는 것이 가장 시급하니 유러파이터는 순수 제공기여야 한다”는 원칙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유러파이터는 제공 기능은 물론이고 항공모함에서 이·착함(離着艦)하는 함재기(해군기) 기능과 전폭 기능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수 제공기냐, 다목적기냐’의 논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처한 국가 상황이 다른 데서 나왔다.
미국과 구 소련 해군은 10만t급 내외의 초대형 항공모함을 갖고 있으므로, F-14 톰캣(F-15에 버금가는 미 해군용 제공기)이나 수호이-33 같은 대형 제공기를 이·착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해군은 3만t급 내외의 중형 항모를 갖고 있어 대형 제공기를 운용할 수가 없었다.
영국이 수직 및 단거리 이착륙기인 ‘해리어(Harrier·사냥개의 한 종류)’를 개발한 것은 1969년이다. 영국은 이 해리어를 개량해 공격능력을 배가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영국은 그들이 갖고 있는 중형 항모에 전투기다운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영국 항모에 실려간 해리어기들은 아르헨티나 공군기를 압도적으로 제압했다. 해리어가 있기 때문에 영국은 “유러파이터는 순수 제공기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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