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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한국 하늘로 몰아치는 ‘태풍’ 유러파이터 타이푼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한국 하늘로 몰아치는 ‘태풍’ 유러파이터 타이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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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주장하는 순수 제공기란 기동성과 적기(敵機) 제압 능력이 뛰어난 전투기를 말한다. 기동성이 좋으려면 많은 연료를 실어야 하고, 적기를 제압하려면 좋은 탐지 체제와 많은 무장을 실어야 한다. 때문에 순수 제공기는 F-15C/D처럼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영국은 F-15보다는 작은, 그러니까 ‘중형’ 제공기 개발을 희망했다. 하지만 중형 제공기도 3만t급 항모에는 내릴 수 없다. 수직 및 단거리 이착륙기가 없는 프랑스는 3만t급 항모에서 뜨고 내릴 수 있도록 ‘소형’ 유러파이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유러파이터의 크기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은 예상외로 심각했다.

이러한 대립에 덧붙여 프랑스는 유러파이터의 최종 조립지는 프랑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1980년대 말까지 세계 민항기 시장을 석권한 것은 미국의 보잉사였다. 대항하기 위해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 4개국은 1970년 ‘에어버스’라는 민항기 제작 회사를 만들었다. 이때 프랑스는 ‘위대한 입심’을 발휘해, 에어버스의 최종 조립지를 프랑스 툴루즈로 유치시켰다. 20여 년 후 에어버스사는 보잉사와 대등한 규모로 성장했다. 이로써 프랑스는 지분 참여에 의한 이득뿐만 아니라 프랑스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보너스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이러한 추억 때문에 프랑스는 유러파이터도 유럽의 중심인 프랑스에서 조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에어버스의 성공에 입맛만 다셨던 3개국과 유러파이터사업에 참여한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속셈을 간파하고, 한 목소리로 ‘프랑스의 욕심’을 성토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한술 더 떠서 유러파이터에 사용될 엔진은 프랑스의 스네크마사에서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네크마는 F-15용 엔진을 만드는 미국의 프랫 앤드 휘트니에 필적하는 세계적인 엔진 제작 회사다. 하지만 영국에도 세계적인 항공기 엔진 제작 회사인 롤스로이스(이 회사는 세계 최고급 승용차를 만든 롤스로이스 자동차사의 자매 회사다)가 있고, 독일에는 기차와 선박·잠수함에 들어가는 엔진을 제작하는 세계적인 엔진회사 MTU가 있다.

4개국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마침내 프랑스는 유러파이터 프로그램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다쏘사가 차기 전투기로 개념 설계를 해두었던 미라주-4000을 토대로 그들이 원하는 전투기 개발에 들어가 성공을 거뒀는데, 그것이 바로 라팔 전투기다. 라팔은 애초부터 제공기와 전폭기, 공군기와 해군기 겸용을 목표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크기가 작은 다목적기가 되었다. 하지만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유러파이터와 라팔에는 흡사한 외양이 많다.



“강력한 기동성을 갖춰라”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유선형의 델타익(delta翼·삼각날개)을 갖고 있는데, 델타익은 초음속 비행에 유리하다. 유러파이터와 라팔은 초음속 비행에 유리한 델타익을 채택했다. 조종석 바로 밑에 ‘카나드(carnad)’라는 작은 ‘귀날개’가 달려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물고기가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듯이, 유러파이터와 라팔은 귀날개 덕분에 고(高)기동성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가 탈퇴하자 4개국은 넷마(NETMA)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공기를 개발한다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하고 엔진 제작 문제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엔진은 전투기의 부품 중에서 금액상으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전투기 전체 가격의 40%에 육박한다. 때문에 엔진 제작을 어느 한 나라가 독식한다면 나머지 세 나라에 돌아갈 ‘파이’는 너무 작아진다.

넷마는 엔진 제작을 위해 ‘유러제트’라는 컨소시엄 회사를 만들었다. 이 컨소시엄에는 영국의 롤스로이스·독일의 MTU·이탈리아의 피아트(자동차 제작회사로 이름이 높다)·스페인의 ITP가 참여했다. 넷마는 유러제트로 하여금 엔진을 제작케 하되 4개국에 공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엔진을 최종 조립하도록 했다. 이로써 엔진 제작을 둘러싼 갈등이 일단락됐다.

이어 넷마는 유러파이터의 최종 조립회사로 역시 4개국 컨소시엄인 ‘유러파이터 GmbH’를 만들었다. 이 컨소시엄에는 영국의 BAE·독일의 다사(DASA)·이탈리아의 알레니아(ALN)·스페인의 카사(CASA)가 지분 참여를 했다. 이 컨소시엄은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두었기 때문에 GmbH라는 독일어를 붙이게 되었다(GmbH는 영어로는 LTD Co.이고 우리말로는 주식회사쯤에 해당한다). 넷마는 유러파이터 GmbH로 하여금 4개국에 공장을 지어 4개국이 지분 비율대로 유러파이터를 최종 조립하도록 했다.

엔진 다음으로 중요한 레이더도 ‘유러레이더’라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지분에 따라 공동으로 제작·조립케 했다. 그외 부품에 대해서도 넷마는 투자 지분에 따라 4개국에 공평히 일감을 나눠주었다. ‘낸 만큼 가져간다’는 이러한 결정에 대해 4개국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이로써 4개국의 시험비행 조종사와 전투기 설계자들로 구성된 기술진은 유러파이터의 개념 정립에 들어갈 수 있었다. 4개국 기술자들은 수호이-27은 물론이고 미국의 F-15를 능가하는 운동성을 가진 제공기를 만들겠다는 데 합의했는데, 이들이 합의한 운동성이 강한 전투기는 이런 것이었다.

“아주 동글동글한 유리 구슬을 매우 매끈매끈한 유리 판 위에 올려놓아 보자. 유리판의 편평도가 눈꼽 만큼만 기울어져도 또 미약한 공기의 파장만 있어도, 유리 구슬은 ‘도그르르’ 구르다 가속이 붙어 ‘홱’ 굴러가 버린다. 자체 추진력이 없는데도 유리 구슬이 이러한 운동성을 가지게 된 것은 유리 구슬과 유리판이 가진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마찰력이 아주 작아졌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기 마찰을 최대로 줄이도록 전투기를 설계하고 여기에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다면, 이 전투기는 아주 운동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오랜 연구 끝에 4개국 기술진은 운동성이 강한 기체를 설계하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엔진 컨소시엄인 유러제트가 EJ-200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만들어 냄으로써, 고 기동성의 유러파이터가 탄생했다. 강력한 운동성을 가진 천리마(千里馬)라고 해서 모두 명마(名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등 위에 올라탄 기수를 마구 흔들어 떨어뜨리는 야생마 기질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코 명마가 될 수 없다. 유러파이터의 운동성이 아무리 좋아도 통제되지 않는다면, 전투기로서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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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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