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교수교류로 대학교육 활성화하자

<대학교육>

  •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입력2005-04-14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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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는 분위기가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교수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자유롭게 대학을 이동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21세기 지식산업시대에는 국가 경쟁력이 기본적으로 과학기술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에 세계 각국은 모두 국력을 쏟아부어 자기 나라의 과학기술력을 증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나라도 최근 정부가 다른 예산에 비하여 과학기술 투자를 빠른 속도로 증가시키고 있으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주춤하던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도 급속히 회복되는 등 정부와 민간 모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가 그러하듯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잘못된 제도와 운영 시스템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많아 올바른 개혁이 시급히 요구된다.

    우선 국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체제에서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은 정부 부처간이나 정부와 민간 부문 사이에 적절한 역할 분담이 안 되어 있으며, 이를 조정할 메커니즘도 없다는 점이다. 현재 공공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는 정부 부처는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교육인적자원부를 비롯하여 무려 19개 부처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이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할 때 부처간 협의를 통해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큰 그림을 합의하고 그 그림에 맞도록 각자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타 부처와는 관계없이 독립적인 계획을 입안하여 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통신(Infor- mation Technology: IT) 분야를 예로 들면, 제품개발과 인력양성 사업, 인프라 구축사업 등을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및 산업자원부가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균형 잡힌 연구개발이 되지 못하고, 쓸데없이 중복 투자되는 부분도 있는 반면,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수행하지 않는 부분도 생긴다.

    또한 정부는 공공성이 높은 기술, 기초과학을 비롯한 원천기술, 그리고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기술 등을 위주로 개발하여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를 보완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장기 투자 방향보다는 사회 여론과 상황에 따라 단기적인 상품개발에 집착하거나 유행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시장성 없는 상품개발을 하느라고 공공 예산을 낭비하거나, 소위 ‘뜨는’ 분야만 기형적으로 키워 국가 전체의 연구개발체제를 절름발이로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연구개발을 종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국민의 정부 들어와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주요 부처 장관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아직도 운영이 미숙하고 부처간에 실질적인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장관급 위원회에서는 실무적인 협의를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므로, 실무를 맡은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구체적인 협의기구를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연구개발사업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 제고를 들 수 있다. 부처간 실무협의가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들이 그 분야의 전망과 문제점을 정확히 이해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정부 부처의 순환 보직제는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되고 있으며, 특히 과학기술정책처럼 그 성과가 장기에 걸쳐 나타나는 경우에는 책임이나 공적의 소재를 분명히 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적어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순환근무제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이 시급히 요청된다.

    둘째로 연구개발 주체별, 특히 정부출연연구소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과거 민간기업과 대학의 연구 능력이 부족한 시기에 정부가 출연연구소를 설립하여 많은 분야에서 기술개발을 주도하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정책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당위성이 있었고, 실제로 정부출연연구소가 그 동안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능력 신장에 크게 기여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구개발 주체별 위상정립 시급

    하지만 이제는 민간기업과 대학의 연구능력도 일정 수준에 이르러 일부 정부출연연구소가 담당하는 역할은 오히려 민간기업연구소에 더욱 적합한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패러다임에 안주하면 비효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소의 효율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연구원 수를 동결하거나 정년을 단축하고 과제 수행에 따라 인건비를 지급하는 PBS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 등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연구원들의 사기만 떨어뜨리고 연구성과의 증진 면에서는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제는 모든 연구소를 서서히 고사(枯死)시키는 이러한 대증요법을 쓸 때가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이다. 예를 들어 공공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출연연구소는 정부가 충분히 지원해주고, 그렇지 않은 연구소라면 과감히 민간으로 이양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는 우수한 연구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결국 사람이 창출하는 것이므로 우수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우수한 인재들이 과학기술분야에서 일하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사항을 포함한 과학기술계의 많은 문제점들은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가장 근본적인 과제이며 개혁의 최종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왜냐하면 과학기술 분야의 우수 연구인력은 어느 나라나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을 통하여 양성되는데, 우리나라의 대학원 중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처럼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개발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있는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수간, 학교간 경쟁체제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특성없이 대동소이하게 운영되며,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는 분위기가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미국의 대학에서는 교수의 임용과 승진, 정년보장 등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제도화되어 있고, 이러한 경쟁을 통해 우수한 학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또한 대학간의 경쟁도 심해, 교수들의 연구실적과 학교의 지원정책에 따라 학과의 서열과 학생들의 선호도가 바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대학의 전임교원이 되면 커다란 문제가 없는 한 대부분 승진과 정년이 보장되며, 교수들의 연구능력보다는 학부생의 입학성적에 따라 대학교의 서열이 정해지기 때문에, 교수들이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하는 인센티브가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와 같은 원인을 분석해 볼 때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력 부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개혁 프로그램은 대학 내, 대학 간의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우선 전임교수들의 연구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교수 임용, 승진 및 정년보장 제도 등 교수인사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과 교수 업적 평가 강화를 통한 연봉제 도입 등을 추진하여 대학 내 교수간에 선의의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교수간 경쟁체제가 정착되고, 폐쇄적인 대학문화를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교수인사제도의 개혁은 학교운영이 투명하지 못한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재단의 횡포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우려되나, 적어도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국립대학과 대형 사립대학에서는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별 특성화와 분야별 경쟁 체제를 확립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모든 대학이 서울대학교와 대동소이하게 운영되고,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선도대학이 모든 분야에서 인재를 독점하는 한 진정한 경쟁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킬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미국과 같이 대학교육이 최고로 발달한 나라에서도, 카네기 분류법에 따라 연구중심대학으로 분류되는 대학은 전체 4년제 대학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나 대학교육의 발전단계로 볼 때, 현 상황에서는 150여개의 4년제 대학 중 8~10개의 대학을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정책 방향일 것이다.

    그리고 대학간 교수의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은 전임강사나 조교수로서 한 대학의 전임교원으로 자리잡으면, 좀처럼 다른 대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개인의 연구업적이 뛰어나도 인적·물적 지원이 우수한 연구중심대학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거의 없고, 반대로 좋은 대학에 한 번 자리를 잡은 사람은 연구생산성이 떨어져도 탈락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이와 같이 교수들의 능력과 업적에 따른 모빌리티(mobility)가 없기 때문에, 연구중심대학의 육성을 위한 집중지원 필요성은 인정하는 교수라도 본인이 재직하는 대학이 지원대상이 될 가능성이 없으면 극력 반대하게 마련이다. 또한 대학 내의 전공 통폐합 등 구조조정도, 구조조정 대상분야 교수들의 퇴출로가 없기 때문에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대학별 특성화와 구조조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모빌리티가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증진되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과학기술 연구나 교육 수준이 21세기의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산업화시대에는 중등교육의 힘으로 우리나라가 그나마 버텨 왔으나, 지식이 곧 경쟁력인 미래의 지식산업사회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산업이 치열한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에 관여하고 있는 당사자와 국민, 정부 모두 대학의 신속한 내실화와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다행히 최근 일부 대학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고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여 개혁의 추진 속도는 매우 느리다. IMF 경제위기에서도 구조조정이 거의 없었던 대학이지만, 우리나라가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 미래 사회를 짊어질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려면 대학 내부의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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